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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물론 우리나라가 정신을 안 차리면 4~6년 뒤에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이 달 초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이 나오자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 경제위기론을 거론하고 나섰습니다.
IMF 체제를 겪은 우리로서는 ‘경제위기’라 하면 정말 심각한 얘긴데, 언론이 과연 뭘 근거로 경제위기론을 거론하는지 박찬형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질문1> 박기자! 이번에 이건희 회장의 말 한 마디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파장, 꽤나 컸죠?
<답변1>
그렇습니다.
삼성이라는 그룹이 한국에서 갖는 영향력과 이건희 회장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이 신문의 1면이나 방송의 주요 뉴스는 이 회장의 발언을 머리기사로 채웠습니다.
급기야는 이건희 회장의 말을 토대로 한국 경제의 위기론을 언급하는 언론들까지 나타났습니다.
지난 9일 열린 2007 투명사회협약 보고대회.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한 기자가 삼성전자의 수익률 하락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녹취>이건희(회장):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안 차리면 4~6년 후에는 큰 혼란이 올 것입니다.“
이 회장이 워낙 우리 경제에 비중이 큰 인물이어서 그런지 언론사들은 이 발언을 앞 다퉈 보도했습니다.
특히 국민일보는 이 회장의 ‘혼란’이라는 말을 ‘경제위기’로 해석해 4~6년 뒤 경제위기가 올수도 있다고 제목을 뽑았습니다.
다른 언론들도 며칠 지나면서 이 회장의 말을 ‘경제위기론’의 근거로 들며,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질문2>박 기자! 기사 제목들을 보면 한국 경제에 위기가 왔거나 위기가 임박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경제위기론’에 구체적이고 타당한 근거가 있다면, 경제 위기의 가능성을 미리 경고하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 아닐까요?
<답변2>
물론 그렇습니다.
꼭 10년 전이죠.
우리 언론은 IMF 외환위기가 임박했는데도, 우리 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위기 가능성에 대해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언론들이 쏟아내는 경제위기 기사에는 구체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근거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론사들은 경제상황에 대한 분석보다는 오히려 기업인들의 말을 빌어 ‘경제위기론’을 언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을 누비는 비즈니스맨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한국 경제위기의 징조를 현장에서 읽고 있었다.“
"재계 핵심인사들의 잇따른 경고는 한국경제 위기가 점차 구체적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경제위기에 대한 경고가 재계의 한목소리가 돼가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위기진단을 심층적으로 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는 했지만, 식어가는 경제성장 동력에 대한 우려에 그쳤습니다.
특히, 동아일보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발언을 계기로 차기정부를 잘 선택해야 한다며 정치적 의도까지 드러냈습니다.
또, 경제위기론이 잇따르는 가운데 주요 대기업들이 비상 경영체제에 들어갔다는 식의 보도로 위기감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러나 해당 기업 측에 확인해 본 결과, 경제위기론과는 관계없는 기업의 전략적 선택, 또는 사업전략에 불과했습니다.
삼성측은 이 회장의 발언이 경제위기론으로 확산되자 발언의 취지가 과장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인터뷰>이종진(삼성 전략기획실 상무): "회사가 지금 당장 잘 나간다 하더라도 방심하지 말자는 최고 경영자의 말씀이셨습니다. 삼성전자가 지금 당장은 잘 나간다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미래에 먹고살수 있는 그러니까 4~5년 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먹고살아야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다면 삼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중국 등으로부터 추격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말씀이셨습니다."
<질문3> 네, 경제위기론의 불씨가 된 삼성 쪽에서도 위기론은 다소 과장된 것이다.
이런 입장인 것 같은데...그러나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우리 경제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떠냐는 겁니다.
기업도 국민들도 힘들어하는 건 사실 아닙니까?
<답변3>
네, 우리 경제 상황이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분명한 근거 없이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우선 논란의 핵심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경제가 IMF 위기 때처럼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 경제위기 조짐이 있느냐는 겁니다.
금융권을 살펴보면 부실채권 비율이 지난 98년 10.4%에서 지난해말 0.84%로 부실 비율이 크게 개선돼 쉽게 흔들리지 않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조업체들 역시 97년 자기자본 대비 빌린 돈이 400%에 육박했지만 이젠 100%까지 낮아졌습니다.
그러니까 빌린 돈을 못갚아서 연쇄부도로 이어지는 위험은 크게 줄었다는 뜻이죠.
IMF 당시 39억 달러까지 바닥났던 외환보유고도 이젠 과다한 외환보유고를 걱정해야할 만큼 늘어났습니다.
<인터뷰>김상조(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작년의 성장률이나 또는 국제수지 동향 그리고 물가상승률 등의 거시경제 지표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1997년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통 위기라고 할 때 경제가 주저앉는 형태의 그런 크라이시스를 경제위기라 의미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절대 경제위기라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송태정(LG 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금융 부분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전해져 있고 기업들도 과잉투자보다는 수익성이나 안정성 중심의 오히려 과소투자를 걱정할 단계에 있기 때문에 거시경제 차원에서 기업이나 가계 그리고 금융기관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안전판이 과거보다는 갖춰져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정말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바로 우리 경제가 구조적 문제로 인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가 어려워진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사회양극화와 더딘 소득증가 등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상황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기업들도 최근 경기 상황을 침체국면으로 보는 이유로 내수부진을 가장 먼저 꼽고 있습니다.
전자, 통신 부품 케이스를 만드는 이 중소기업은 내수 침체가 지속되는데다 중국 업체들이 내수시장까지 위협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해엔 직원 20명을 내보내고 공장부지도 팔아 공장을 임차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침체된 내수 경기 때문에 투자를 늘리기도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인터뷰>황규선(중소기업 대표): "2가지 말할 수 있어요. 한가지는 대기업들이 그만한 물량을 주문 줄 수 있는가 하고, 설비 투자 자금 대비 수익성이 날 것인가, 저희들이 판단 못하고 있는 거죠."
기업들이 이렇다보니 경제의 활력을 줄수 있는 설비투자는 미미해 GDP 대비 설비투자의 비중은 지난해 8.9%로 2000년 이후 해마다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잠재성장률에도 못미치는 경제성장, 해결해야 할 우리 경제의 근본적,구조적 문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은 바로 이런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올바로 지적하고 해결점을 찾는데 모아져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송태정(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경제위기론은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심리위축으로 인해서 우리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수도 있는만큼 현재 시점에서는 위기 가능성을 여러 가지로 제기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성장동력을 찾는,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질문4> 그렇군요. 정부는 경제위기론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답변4>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도 문제이긴 하지만, 정부의 대응 역시 미숙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제위기론의 확산을 막는데 치중하면서,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을 보여 언론과 정부 간에 소모적인 논쟁양상만 되풀이됐습니다.
특히, 청와대의 대응에는 일부 언론의 표현과 다를 것 없이 가시가 돋혀 있었습니다.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위기론을 돌아본다는 시리즈물을 게재했는데요.
문제를 제기한 언론들을 ‘청개구리 신문’이라고 속된 표현을 쓰는가 하면, 특정 기자를 지목해 ‘전문성은커녕 오로지 얄팍한 글재주 하나로 먹고 산다’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했다가 뒤늦게 삭제했습니다.
<인터뷰>김상조(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정부나 특히 청와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재계나 언론측의 비판에 대해서 나무 성급하게 대응하기 보다는 이런 경제위기론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차분하게 전제하고 국민들에게 경제의 현실을 차분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한국경제의 구조적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는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해서 국민들에게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그런 노력을 해야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김춘식(한국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언론 보도 내용은 데이터 근거해서 객관적 동의할 심층적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 필요하구요. 정부는 언론 기본 역할 비판 역할을 인식하고 그런 정부 정책 추진 배경,정책 과정에 명확하고 정확한 정보 전달해주기 위해서 최대한 개방 정책 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 정부 들어 언론이 경제위기론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4년에도 한바탕 경제위기 보도가 쏟아졌었습니다.
위기를 사전 경고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긴 하지만 근거 없이 수시로 같은 말을 반복하면 신뢰를 받기 힘들고, 다른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부 역시 우리 경제가 구조적 어려움에 처했다는 언론의 지적은 분명한 사실인 만큼 보다 열린 자세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경제] 박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