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6.25전몰군경유자녀 미 수당 윤정오46경남(yun10916)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6.25 전몰군경 미 수당 유자녀 형제자매님께
사랑 하는 미 수당 유자녀 형제자매님 여러분 북한 괴뢰도당의 남침 야욕에 의거 오직 조국 수호를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용감히 구국 전선에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하신 우리 아버지의 영혼과 절규가 60년이 넘어 장구한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아직 까지 우리들의 뇌리와 가슴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갓 태어난 형제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상상조차 하기 싫은 비참한 생활을 겪고 지금 이 순간까지 정신적 육체적 고난과 고통의 한 많은 세월을 원통과 억울함과 눈물로서 보내고 있는 우리 유자녀가 아닙니까?...
그러면 국가는 우리 유공자 유족을 위해 무었을 했단 말이니까, 누가 어려울 때 국가를 위하여 귀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받치겠습니까? 이젠 국가가 유공자 유족을 위해 당당하게 아버지의 공훈과 회생의 대가를 당연히 치러야 하며 유족 또한 떳떳하게 보상을 받어므로서 사회적 귀감이 되어야 함에도 국가보훈처와 유족회는 자녀수당 문제가 16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아예 모른다는 식으로 방관하며 국가보훈이 무엇인지 천지분간을 못하고 자기들만의 무사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찾는 길에 기수당자와 미수당자가 왜 구분되어야 합니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아버지의 숭고한 정신이 중요하지 어머니의 사망날짜를 기준으로 수당지급을 구분하는 천하에 개 같은 이런 법이 이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는 공평하지 못한 사실이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고 또한 부끄러울 뿐입니다.
위정자들은 이제헛소리. 헛구호는 접고 오직 현시점에서 잘못된 법이나 규제를 가감이 풀어 비정상을 빨리 정상으로 돌리는 참된 보훈행정을 펴야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 미 수당 형제 자매여러분들이 이 억울함을 수차례 국가보훈처 및 현지 지청에서 대. 소규모의 집회와 면담을 수차례 하였으며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하소연도 수없이 하고 유족회를 방문 유족회장을 붙잡고 도와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지금은 주요 언론에 알림은 물론 국가최고기관인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으나 앞으로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참을 때로 참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똘똘 뭉처 우리 일을 방해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단호히 박살을 내어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숨통을 쥐고 있는 보훈악법을 기여코 뿌리 뽑아서 억울하게 살아온 악몽 같은 과거를 한시바삐 영원히 물리칩시다.2014년 중앙회 업무추진계획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서로 격려하면서 잘한 점은 칭찬하고 박수치는 우리 미 수당 형제자매가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미 수당 지회 및 지부운영에 노력하시는 지부장님과 회원님 간 상호 업무연락에도 만전을 기함은 물론 여타 미 수당 업무에도 열정적으로 동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직이 하나 같이 뭉쳐 2014년에는 기필코 미 수당 유자녀 권리회복의 해로 갑시다.
감사합니다.
이글은 경남 미 수당 유자녀사무국장께서 경남에 살고 있는 미 수당유자녀한테 보낸 사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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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자 50 울산 : 2014/04/04 22:36
우리의 아픔을 눈꼽만큼이라도 지들이 알겠습니까
우리의 이 가슴에 맺힌 한을 또한 어릴적 부터 아버지 없이 어렵고 어렵게
엄마는 입에 풀칠할 일에 연연하고 있을때 어느 누구 우리를 돌아본 사람 있습니까
저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도 옳게 받아 보지 못 하고 할머니 손에 맡기워 커온 신세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 컷기에 마음이 든든하고 천진난만하게 자라고 있을때
우리는 어땠습니까 부러운 눈으로 측은하게 그런 가정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엄마가 날 버리고 재가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잘커온것 같애 너무나도
엄마가 고맙고 이제와서 너무나 그립습니다
윗글을 읽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찍기 힘드네요
고교시절에는 다른 친구들은 학교 단체로 캠핑가는데 나는 엄마랑 논을 매야했고
논이 높아 물을 퍼올려야 했습니다 그러고 있을때 친구들을 태운 기차가 쁑~소리 지러며 내앞을 지날때
엄마께 친구들이랑 가야한다는 얘기도 못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께 우는모습들키지 않을려고 빠른 손
으로 풀을 매갔던 생각도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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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복 49 울산 : 2014/04/05 05:10
선자아우님의 어린날 회상하며 적은 글이 아득한 나의 옛 모습이 슬픈 눈물이 되어
가슴을 저리게 하네.....
아우는 그래도 할머니도 계시고 매야 할 논이라도 있으니까 나 보다 훨씬 좋은 어릴적을
보냈구나........
천지간에 엄마와 둘이서 남의집 부엌도 없는 방 하나를 빌려 직물공장에 다니는
엄마가 밤일 가며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다 잠들고 아침이며 옹가지에
꽁꽁 얼은 물로 쌀을 씻어 소깝으로 불을 피워 밥을 했어.
아랫목에 엄마 밥 한 그릇 묻어 놓고
학교 갈 시간이 늧어 울면서 뛰어 다녔어 고작 9살 어린 나이에.......
한 번씩 맺힌 한을 삭이지 못하시고 별 잘못도 없는 나를 두드려 패시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사 조금 알것 같구나.........
불쌍한 엄마가 생각나게 한 아우님이 밉네..........아우님의 활달하고 밝은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웃음 주고 기쁨을 주는 행복의 천사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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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51용인 : 2014/04/04 23:59
보훈처장이 바꾸어야 됨니다. 직원들이 다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입법을 고안 한것도 그들입니다.청와대앞1인 시위도 보훈처장 물러가라 문구을 넣고 싶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