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봉 아래 신비한 비구니 연화 스님
“스님 맛있게 드세요. 제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오디가 잘 익어 있기에 스님 드시라고 따왔습니다” 연화스님이 내 방 앞에다 오디 한 대접을 따다 놓고가면서 남긴 쪽지글이다. 저녁 예불 종소리가 울려 석양의 논들과 숲 속으로 퍼져나갈 때였다. 저 쪽 산자락이 끝나고 논길이 시작되는 지점. 종소리가 멈추는 곳에 긴 머리 카락을 바람에 날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는 연화스님을 보았었다. 오랜만에 실상사에 들리는가 했는데 예불을 모시고 나오니 스님은 간 곳이 없고 내 방 앞에 오디 대접만 놓여 있고 이렇게 작은 쪽지 글만 남아 있었다. 바람처럼 휑하니 왔다가 바람같이 돌아간 것이다.
지난 초봄이었다. 선우 도량이 예산 수덕사의 산내에 있는 정혜사에서 이 곳 실상사로 근본도량을 옮기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다. 아직 이 곳 살림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어수선하기까지 할 때였다. 도감 소임을 보고 계신 수경 스님이 낯선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고로쇠 물 열 통을 가져왔다. 한 통은 대두 한 말이다. 사실 지리산 산 중에 살아도 누구에게나 고로쇠 물은 귀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고로쇠 물을 한꺼번에 열 통씩이나 가져온 것이다. 대중들은 너나없이 반가워하면서 어디서 가져왔느냐고 한마디씩 물었다. 수경 스님의 말씀인즉, 어느 낯선 할아버지가 전화를 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자기 집 앞 길 옆에 오면 물통이 열 개 있을 것이니 가져가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웬 물통이냐고 했더니, 물은 고로쇠 물이고 물을 직접 받아 낸 사람은 연화라는 비구니 스님이며, 자기는 그 스님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하는 것이라고 했더란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할아버지가 일러주는 장소에 가 보았더니 정말 고로쇠 물이 열 통이나 있더라는 것이다. 마침 선우도량 회의가 있어서 적지 않은 스님들이 모였는데 모두 원없이 고로쇠 물을 마셨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이 고로쇠 물이다. 나도 계속해서 마셨는데 하루 종임 오줌 누면서 얼굴에 약간 열기가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마셨다.
고로쇠 물이란 이 곳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남도지방에서 초봄에 나오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이다. 고로쇠나무란 단풍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다. 초봄, 땅이 녹고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할 때 쯤에 나무 밑동에댜가 톱날같은 것으로 흠집을 내고 그 흠집에서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은 것이 고로쇠 물이다. 이 고로쇠 물은 곡우 때에 자작나무에서 받는 곡우 물과 같이 예부터 약이 된다 하여 많이 마셔왔다. 큰 고로쇠나무 하나에서 밤을 새워 받아야 한 말들이 물통에 겨우 한 통을 받을 수가 있다. 거기다가 갚기 험한 산중에 있는 고로쇠나무를 찾아야 하고 또 물을 받아 그 무거운 것을 힘들여 운반해야만 한다. 이렇게 힘들고 귀한 것을 우리들은 얼굴도 모르는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공양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연화라는 비구니 스님과 우리 대중은 인연이 맺어졌다. 그리고 한참을 지난 어느 날 내가 거처하는 극락전에 머리를 삼단같이 늘어뜨리고 긴 치마를 입은 여인이 나타나서 연일 기도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인이 바로 수수께끼의 연화스님이었다. 비구니 스님이 승복도 팽개치고 머리도 삼단같이 기른 것이 첫 인상부터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은 매우 건강해 보였다. 화사하게 잘 웃었으며 키가 크고 기운이 당찬 것이 느껴졌다.
한 보름 여를 실상사에서 기도를 하다가 어느 날 표연히 떠났는데 사중의 대중이 모두 아쉬워했다. 몇 번인가 내 방에서 같이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도 했는데 그는 항상 조금치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이 무엇인가를 했다. 내가 잠시 방을 비운 사이에도 처소를 깨끗하게 해놓았다. 물론 사중의 여러 스님들 방을 다 그렇게 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는 항상 방을 깨끗하게 치우지 못하는 악습이 있다. 그런데 연화스님이 실상사에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내 방도 항상 깨끗했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는 요즘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몸은 1992년도에 살고 있는데 마음의 깨끗함은 옛 어진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이다.
한 번은 연화 스님의 옷이 하도 몸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시장에 가서 작업복 바지나 등산복으로 하나 사다 줄까 했더니. 단호히 거절했다. 이유인즉슨 자기는 돈을 주고 옷을 사 입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남이 입다가 버린 옷을 주워 모아 놓은 것이 몇 벌 있는데 그것을 다 입는데도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약초를 캐서 산동네 할머니들에게 부탁해 팔아 용돈으로 쓰는데, 주로 돈은 산동네 혼자 사는 외로운 할머니들 약값도 하고 심심풀이 과자도 사드린다고 했다.
내가 한번은 왜 이렇게 비구니 스님이 산중에서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자신의 본사는 계룡산 동학사이며 은사 스님은 동학사 주지도 역임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늘 대중처소의 생활이 낭비가 심하고 승려로서 공부보다 사찰의 여러 가지 잡무가 주 업무가 되고 있는 것 등이 싫어서 혼자 토굴 살이를 하려고 산 속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혼자 살면 식생활 문제며 여러 가지가 더욱 번거롭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시주의 은혜로부터 벗어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지리산은 매우 큰 산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은 깊다. 그래서 예부터 도를 닦는 사람들이 이 산 속으로 모였고, 어지러운 난세를 당하여 서는 의병이나 민족의 영웅 열사들이 이 산으로 숨어 은신하기도 했다. 특히 현대사에서 지리산은 우리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8.15와 6.25 때에는 수많은 이 땅의 젊은 피가 계곡에 흘렀고, 산 능선에는 주검이 묻혔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피를 먹지 않고 자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더욱 영산이 되었고 성지가 되었다. 지금도 이곳 지리산은 전국 어느 산보다 많은 수행자가 찾아와 도를 닦고 수행의 내공을 쌓고 있다.
산 하나에 쌍계사와 화엄사라는 대본사가 둘이나 있고. 이 밖에도 천은사, 연곡사, 대원사, 벽송사, 칠불사,. 영은사 그리고 실상사 등 대찰이 있으며, 작은 암자는 일일이 기억하기 벅찰 정도로 많이 있다. 주봉인 반야봉에서 상봉인 천왕봉까지의 종주거리가 백 리라고 한다. 단일 산으로서 반도 땅 이남에서는 제일 큰 산이다. 이 산 속에는 내가 알기로도 수많은 수행자가 살고 있다. 그 많은 수행자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또 이런 별별 사람들 때문에 지리산은 더욱 신비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 신비로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연화스님이다. 그는 지리산 반야봉 밑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반야봉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스스로 어디에 산다고 말한 일도 없고 또 그가 살고 있는 곳을 본 사람도 없다. 더욱 신비로운 것은 그가 여자의 몸이며 그것도 젊은 여인이고 얼굴이 화사한 미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출가한 사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옷은 남이 입다가 버린 작업복에다가 머리는 삼단같이 길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긴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면서 그가 산길을, 바람을 가르면서 걸어가면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사람이라도 따라잡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빠른 걸음이다. 이쪽 능선에 서 있던 사람이 잠시 후면 저 쪽 능선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리산에는 산을 의지하고 사는 산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산을 좋아하고 산에 대한 지식이나 산을 타는 것은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이들도 산길을 걸어가는 것에는 연화스님에게는 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들 산사람 사이에서도 연화스님은 신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내게 들려준 많은 이야기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새벽에 일어나 산길 몇 십리를 걸어서 혼자 사는 할머니의 감자밭도 매주고, 저녁 석양에 다시 자신의 처소인 토굴로 돌아온다고 했다. 밤이 어두워지면 어떻게 산길을 걷느냐고 했더니, 숙달이 되면 어두워도 잘 보인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마냥 고생만 하고 살 것이냐고, 더 나이 들어 늙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스님의 질문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저는 수행하는 사람인 걸요.”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들 사문은 누가 뭐래도 수행자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스스로가 수행자라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때가 많다. 그리고 세속적인 온갖 탐욕에 찌들어 있는 때가 많다. 오디 한 대접을 두고 간 이후, 여름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여름 낸 지리산으로 몰려든 피서 인파 때문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바람에 그 긴 머리카락을 날리면 여름 산의 능선을 달려가는 시원한 연화 스님의 모습을 연상해 보고는 했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우며 건강한 삶인가!
출처 ; 효림 지음 /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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