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좋아 손을 절대 놓지 않는다. 옆에 있던 나무가 가지에서 만난다. 그 인연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다. 다른 나무의 종류에서 가지끼리 만나더라도 비비기만 하지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할 수 없다. 가지끼리 만나 하나의 몸이 되어버린다. 이것을 연리지라고 한다. 나무에 접을 붙어 엉겨 붙게 하는 접붙임은 인위적 방법이다. 이것도 살 확률은 반반이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만나 살 확률은 아주 낮은데 살아 있다면 더 좋은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힘을 모아 살면 뿌리도 더 많아질 것이고 가지도 튼튼하게 된다. 두 나무는 영양분 면에는 전과 다를 바 없다. 두 힘이 만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행복한 것들이 제곱의 이상일 것이다. 둘 사이 거리는 있지만 손을 잡을 수 있고 평생 손을 놓지 않는다. 우리에겐 단순한 메시지지만 신념과 은근의 세월을 길게 잡고 갖는다는 것이다. 요란한 만남은 오래 못 간다. 나무처럼 말이 없어도 삶의 내용은 다 이야기하고 있다. 오래된 고목나무에 기대어 있으면 마음이 포근하다. 산벚꽃이 얼그슬나무 속에서 피웠다. 이는 서로 다른 나무 과다. 얼그슬나무는 오꼬시나무라고도 부른다. 오래된 나무라 상처가 큰 곳이 생긴다. 그곳에 벚꽃 씨를 산새들이 그곳에다 배설하다 보니 새싹이 돋았다. 또한 그곳에 낙엽이 모아졌다. 시시때때로 비가 오고 적당히 배수된다. 벚꽃이 자라기는 최소한의 환경을 갖췄다. 벚꽃이 지고나면 오꼬시나무 꽃이 핀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목나무와 신참 나무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더불어 살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것인데 4월과 5월의 꽃을 만들고 있다. 앞에서 연리지 인연도 좋지만 멀리서 날아와서 벚꽃의 품이 되어준 고목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일까. 같은 뿌리는 아니지만 만남의 공간을 같이 공유한다. 빛바랜 세월의 한 장 속에 풍경화가 선선한 봄바람을 타고 있다. 옛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갔을 것이고 지금은 둘 뿐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인간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서 5월의 향기를 자아낸다. 보라색 얼그슬나무 꽃은 아주 작다. 멀리서 꽃을 보면 세월의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옛것은 삶의 흔적이 있다. 인정과 사랑 그리고 그 속에 신념이 있다. 계절이 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매년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살아가는 감정은 서로 다를 것이다. 세월의 흔적 속에 산 벚꽃이 피어 순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지난 세월을 이야기 하고 현재 순간의 풍경이 우리의 삶이다. 고목나무는 눈빛 초롱초롱한 얼굴을 가졌으니 가장 인간적이다. 무수히 떨어지는 꽃잎을 내 나이처럼 세어보면 무엇하리. 그냥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바람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