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에서 80년대 가수왕이었던 한 물간 가수를 내세워 향수로 호소했던 이준익 감독은 이번엔 베트남 전과 맞물린 김추자란 가수를 통해 또한번 그 시대에 대한 향수 불러일으키기를 겨냥했다.
월남전이라는 배경에 김추자의 노래만으로도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만들 수 있음을 그는 간파한 것일까.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추자 노래를 따라 부르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젊은 군인들의 몸짓만으로도 감동은 이미 예약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와 감동은 거기에만 있었다. 영화가 주는 그런 순간적인 감동과 영화의 내러티브 사이엔 간격이 있다. 순이 역의 수애가 남편을 찾아 월남까지 가는 과정, 그리고 거짓말처럼 전쟁터의 포화 속을 헤치고 남편을 만나는 순간은 약간 생경스럽다. 순이는 왜 남편을 만나는 일에 집착하는 걸까. 자신의 몸을 팔면서까지 남편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니, 그 이유가 원래 존재했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남편이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갔던 일도 어떤 희망과 의도를 가지고 했던 행동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 초기에 면회를 갔던 순이에게 이름만 남편뿐인 남편은 이렇게 묻는다. 나 사랑하나, 사랑이 뭔지 아나. 순이는 대답이 없다. 순이는 남편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는지, 사랑이 뭔지 알기 위해 앞날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선 것일까. 남편에 대한 순이의 집착은 설명되지 않은 채, 순이를 둘러싼 밴드 멤버들도 차차 순이의 순정처럼 보이는 집념에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돈까지도 태워버릴 정도로 태도가 바뀐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 변화도 내겐 자연스러워보이지 않는다. 순이에게 감화되었다기보다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그들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몸도 마음도 먼 곳에 있는 님을 찾아나선 순이의 여정보다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잠시 자신의 처지를 잊고 몸을 흔들어대던 젊은 군인들의 미칠 듯한 몸짓, 그리고 그 안에서 순이의 목소리와 춤으로 만나는 김추자의 노래가 더 감동적이었다.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이었지만 김추자라는 가수에 대한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에 우리나라에도 김추자 같은 가수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 같은 몸짓과 목소리, 폭발적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가창력,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몸에 착착 감기는 듯 끈적하다. 그런 끼를 가진 가수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 하게 됐다는 건 정말 비극이다. 조금만 더 늦게, 더 자유로운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안타까운 가수... 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더 가슴이 찡했으니 난 님은 먼 곳에란 영화를 보면서 헛다리만 짚었던 것 같다.
첫댓글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본것처럼 상세한 설명에 안봐도 될것 같네요.ㅋ 김추자처럼 감칠맛나게 부르진 않아도 잘 부르네요.ㅋ 언뜻 듣기에 내년에 김추자가 다시 나온다는 설이 있던데. 예전처럼의 감동은 없을듯 싶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