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의 간만의 합류인데다가 시간도 길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아깝기 그지없지만 어제는 오래 전에 예약된 병원행이 있어서 어딘가 가기는 어려웠습니다. 그저께 간밤에 휘몰아친 강풍과 폭우로 제주행 비행기가 착륙을 못하고 회항될 정도였다니, 심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야 약과지 생각될 정도로 무텨진 듯 합니다.
작년, 제주도는 50년만에 태풍이 없었던 한 해였다고 합니다. 아직 제주도 1년살이 4계절 순환 경험이 마무리 전이라, 모든 계절의 특성을 파악 중에 있습니다. 어제 낮시간대는 4월 급에 해당되는 날씨라서, 겨울의 싸늘함이 다 해제된 듯한 날씨였습니다. 두껍지않는 외투를 둘렀는데도 덥게 느껴질 정도로, 바람없고, 햇빛 화사하고, 간밤의 요란한 바람과 폭우는 사라지고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오전에는 예약되어있던 치과치료. 이건 저의 것이고 오후에는 태균이 신장결석 상태체크와 의사면담, 그리고 준이의 뇌MRI 검사를 위한 예약 등 한꺼번에 처리하고자 하루잡았던 날이었습니다.
아침식사 차려주고 보충제까지 다 챙겨서 식판에 놔주고는 저는 멀지않은 치과로 출발. 완이가 집으로 돌아간 상황에서는 저의 부재가 조금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마음편히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 되고보고 이것 또한 감사할 노릇입니다.
완이가 있었는 상황에서는 아이들끼리 놔둔다는 것은 마음의 큰 짐이었는데 그 짐을 내려놓은 듯한 가벼움. 물론 무게는 크지않지만 진이에게 좀더 알차게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은 짐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은근히 마음이 바쁘기는 합니다.
오늘의 계획은 태균이 제주대학 병원 검진을 마치고, 용두암주차장으로 가서 제주공항 뒷편 바닷가에서 육지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20대 쳐다보기 였습니다. 진이가 볼 수 있는 시야 거리가 많이 짧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느끼게 됩니다. 아이가 워낙 순해서 먼 거리의 시각처리가 잘 되지않아도 그러려니 살아온 세월들이 길어지다보니 이런 상황이 진이의 지적발달을 자꾸만 정체시키고 있습니다.
보라고 하면 보려고 하고, 뭐든 거부하지 않고 시키는대로 다 하지만, 이미 눈은 먼거리에 촛점을 맞추는 동공가동 기능이 거의 안되고 있습니다. 진이가 5년 전 제게 와서 살면서 유난히 뛰어난 음색 음정 모방력과 청각기억력에는 시각처리의 어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준이는 불균형한 청각감각 우세를 지독한 혼잣말로 풀어내는 반면에, 진이는 청각적 기억력 청각적 모방력이 우수한 쪽으로 진화되어 버렸습니다. 태균이가 오래 전에 갔었던 식당의 화장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의지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은 여전합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요구되는 정보처리 방식들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베트남여행 다녀와서 아침 일찍 들렸던 대부도 해장국집. 자주 가긴 했지만 제주도살이 때문에 꽤 간만에 갔었는데요, 이 집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서 비밀번호를 누루고 사용해야 하는데 늘 간만에 가도 태균이 항상 이를 기억하고 잘 사용합니다. 지독한 청각적 둔감이 시각적 기억력을 크게 발달시켰습니다.
일단 진이에게는 먼거리보기와 동작추적에의 동공훈련을 시켜주기에 거기가 최적입니다. 바로 머리 위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2-3분에 한 대씩 계속 들어오니 오늘의 틈새활동으로 딱 이었건만 태균이 진료시간이 거의 1시간 반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무려 오후 5시나 되서야 진료가 끝났습니다.
CT사진 결과는 바로였겠지만 혈액검사 결과가 너무 늦어진 모양입니다. 준이의 뇌MRI 검사도 지지난 주 집에 보냈을 때 부탁할까 싶어 검사의뢰서를 들고갔지만, 그냥 다시 가지고 와 버렸습니다. 준이의 머리감싸고 다니는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절실한 상태지만 준이집에서 이걸 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없으니 제가 해주는 게 맞습니다.
처음에는 두통 전문 의사를 배정했다가 제가 다시 설명해서 간질두통 신경외과 의사로 바꾸는 작업을 어제 제주대 병원에서 했습니다. 예전 태균이의 간질 증세가 꽤 아픈 시간을 보내게 했던 것처럼 준이도 시간이 필요할테고, 그 시간들 속에서 고통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태균이에 비하면 준이는 일찍 보충제를 해서 그런지 정도가 훨씬 덜하기는 합니다.
태균이 신장결석 상태는 답보상태... 살빼야 한다는 의사의 친절한 충고도 잘 듣고... 맞습니다. 살빼야 합니다.
병원일이 너무 늦게 끝나 아이들 배고플까봐 밥부터 먹이는데 먹는 중에도 준이의 부분발작 모습이 잡힙니다. 잘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진이는 준이보다 신체적 사춘기 성징이 늦어서 그런지 이런 격동의 시간은 아직 모르는 듯 합니다.
부모님들이 감각뇌신경망의 문제의 본질을 좀더 상세히 이해하고 더 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책으로 엮어야 하는데 바쁜 마음 이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 그 또한 많아서 하루가 너무 순식간입니다. 순식간들 사이에서 또 마음이 바빠지지만 세상에는 '해야될일'들의 비중이 '하고싶은일'보다 크기 마련이니 그 균형잡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병원을 빠져나오니 제주시는 축축한 비가 뿌려대고 안개가 너무 짙어서 한치앞도 분간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도로를 달려 서귀포 쪽으로 오니 언제 그랬냐는듯 안개도 비도 전혀 없는 쾌청함!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작은 제주도에서의 구역별 날씨가 어찌나 다르고 극과 극을 달리는지 그것 지켜보기 재미도 쏠쏠합니다. 옛날식 돈가스를 맛있게 먹는 녀석들, 키오스크 주문에 맛들인 태균이 모습 등등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첫댓글 아, 청각 시각의 상호 보완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진이의 머무는 날들 날씨가 좋기를 바래봅니다.🍒‼️🙏
시지각훈련에 아이바가든이 좋았다면 빛의 벙커도 좋을듯 합니다. 대표님 계신곳에서 멀지않아요. 전 너무 좋아서 올라와서 워커힐에 빛의 시어터도 또 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