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오병이어(五餠貳魚)의 기적에 대한 사복음서(Four Gospels)의 비교 및 묵상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셔서 공생애(公生涯)를 사시면서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기적 중의 하나가 조그마한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어린 아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인 후에 남은 것을 열두 바구니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적을 일으킨 이야기는 사복음서에서 모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의 각책마다 조금씩 다른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 마다 조금씩 다른 점을 살펴보고 이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묵상을 해 봅시다.
1.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사복음서 각 책의 부분들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는 부분은 마태복음 14장 13~21절, 마가복음은 6장 34~44절, 누가복음은 9장 12~17절, 요한복음 6장 5~15절입니다.
2. 오병이어(五餠二魚)란 무엇입니까?
오병이어란 한문(漢文)의 표현인데 그 뜻은 작은 떡(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한문으로 줄여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란 작은 떡(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3.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먹이시고 남은 부스러기 빵을 거둘 때 사용하였던 용기(容器,container)는 바구니(basket)입니까? 아니면 광주리입니까? 영문 성경에서는 바구니와 광주리 모두를 basket으로 번역했습니다. 헬라어로는 코휘노스(κόφινος)라고 하는데, 사실 한글 성경에서 번역은 바구니와 광주리로 번갈아 가면서 번역하여 웃지못할 해프닝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바구니이거나 광주리로 통일해서 번역했으면 좋겠습니다.
4.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장소에 대한 비교
오병이어의 기적은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첫째, 마태복음은 빈들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고 증언합니다. 빈들이라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이 기적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둘째, 마가복음에서는 한적한 곳으로 예수님께서 가셨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따라왔고 결국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한적한 곳에서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한적한 곳도 정확히 그 장소가 어디인지 나타내는 표현은 아닙니다.
셋째,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벳새다로 가셨고 그 벳새다 지역의 빈들에서 이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곳은 벳새다 지역의 빈들에서 일어났음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넷째,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셔서 산에 오르셨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그 산으로 쫓아갔습니다. 그래서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산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으로는 정확히 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복음서의 기록을 살펴보고 분석해본다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곳은 벳새다 지역에 있는 빈들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 오병이어를 제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병이어(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제공한 사람에 대한 정보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 즉 공관복음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첫째,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우리)에게 “너희가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통해서 우리는 정확히 이 떡이 누구에게서 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둘째,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무리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야 이 무리들이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알아보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에서도 구체적으로 누가 이것을 제공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셋째,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니, 제자들이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에서도 누가 이 음식을 제공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넷째,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셨고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안드레의 대답을 통해 이 음식의 제공자는 어떤 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한 아이는 헬라어로 파이다리온(παιδάριον)이라고 하는데 한글 번역 성경들에서는 모두 “한 아이”라고 번역을 했으며 오직 공동번역에서만 “웬 아이”, 즉 “어떤 아이”라는 의미로 번역을 했습니다. 영문 성경 NLT는 a young boy(어린 소년)라고 NKJV와 NASB에서는 a lad(사내 아이, 혹은 청년)라고 번역을 했고 NIV에서는 a boy(한 소년)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번역들을 비교하고 분석해 볼 때 이 아이는 오늘날의 상황으로 생각해 본다면 초등학교 3학년 전후의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됩니다.
6. 본문에 대한 묵상 -
이 본문은 한 아이가 작은 도시락으로 사람들과 주님을 위해 헌신한 것을 강조하는 본문일까요?
많은 설교자들이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설교하면서 한 아이의 헌신에 집중하고 그 아이의 헌신을 본받자는 식의 설교를 합니다. 즉 그 아이의 헌신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매개체가 되었다고 설교를 하고 우리들도 주님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내어놓자는 식의 설교를 합니다. 물론 그 아이는 자신의 도시락을 먹지 않고 내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설교는 인본주의적 설교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설교의 주인공이 예수님이 아니라 그 아이와 그 아이의 헌신과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와 강조는 복음서의 큰 주제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복음서는 왜 기록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나타내고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복음서 어느 부분을 설교하든지 복음서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나타내야 합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의 주인공은 작은 것을 내어놓은 아이가 아니라 그 오병이어를 통해 그것을 먹은 모든 사람들 중에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 그리고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본문을 읽으면서 여전히 주님을 바라보기보다 조그마한 것을 내어놓은 아이의 헌신에 집중해야 합니까? 아니면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지고서도 많은 사람들의 풍족히 먹이시는 주님께 집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셔야 하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오직 예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합시다.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오직 성삼위 일체이신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