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는 시각은 정확했다.첫번째 촬영 장소에 도착한 시간이 5시40분해가 높다란 빌딩 숲 사이로 빛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할 무렵 촬영한 첫번째 컷.
아인은 조금 피곤한 듯 했지만특유의 장난스런 표정과 활기찬 몸짓은 여전했다.롤업한 반바지를 한단 더 걷어 올린다."어정쩡한 건 싫어. 이래야 더 멋있어"걷어 올리 반바지 아래로 미끈하게 뻗은 긴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얇은 셔츠 하나 반바지 차림으로 활보하기엔 새벽녘 공기가 제법 서늘하다"안 추워?" 하고 물었다."괜찮아"
늘 그랬다.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까칠할 것 같은 눈빛. 그러나 막상 그를 접해본 사람은 안다.고집을 부리고 컴플레인을 하는 부분이 다른 이들과는 포인트가 조금 다르다.춥다거나 피곤하다거나 자세가 불편하다거나 그런 것들이 아니다.그건 거의 상관없다.단,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있어서는 묻는다.
"이게 뭐야? 이건 뭐에 쓰는 거야? 이게 예뻐?"그가 그렇게 묻는 순간에 잠시 공황상태에 빠진다.누구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법도 거의 없다.특별히 예의를 갖추거나 조심스러운 것도 없다. 그냥 묻는다. 진짜 궁금하다는 듯.
그런데 이상하다.질문을 받는 순간...내가 뭘 잘못했난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게 아인이 갖고 있는 매력... 아니 마력이다.
#3 AM 6:30
늘상 다니는 도시 속. 그러나 생각에 따라 그냥 무심코 지나치던 길가의 가로수, 건물, 사람들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지 않을까.이번 시즌 잭앤질 촬영의 핵심은 그냥 아침에 일어나 아무 생각 없이 발 길 닿는데로 떠나는 유아인의 여행이다.늘상 걷던 거리 인데도 궁금한게 생기는... 평소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나만의 여행 말이다.
큰 길가 코너 건물 1층이 휑하니 비어있다.아인에게 그 안을 들여다 봐달라고 부탁했다.
금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안을 들다 본다.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응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을 치켜떠 보기도 한다.
나도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그가 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천상... 배우는 배우다.
#7 PM 1:30
파란색 철망이 클린한 느낌의 스트라이프와 어울려 선택된 장소.쉴 틈 없이 강행된 촬영에 아인은 조금 지친 듯 보였다.새벽 녘 진행된 영상 촬영 때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전력 질주를 한 터라발가락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풀 컷이 아니었기에 발이라도 편하라고 슬리퍼를 신겼다.
구로나 오핼하지 말길...절대 발가락 슬리퍼는 스타일링이 아니라 아인의 편한 발을 위한 것임을...
#8 PM 4:00
아무렇지 않게 툭 걸친 점퍼, 루즈한 와이트 티셔츠에 반바지를그 만큼 내추럴하게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듯
까무잡잡한 피부와 무심한 듯한 표정.해질녘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다운타운은 아인과 제법 닮았다.
첫째날 촬영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10 AM 8:30
도시에서 두시간 남짓 떨어진 사막. 광활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탁 트인 시야는 시원했지만 해가 떠오르면서 어는 곳에도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곳이 없다.포토그래퍼와 앵글을 맞추고 뒤늦게 다른 스텝들과 뒤섞여 아인이 걸어온다.200m 전방에서도 누군지 딱 알겠다.우월한 키며 얼굴크기, 무엇보다 걸어오는 포스가 남다르다.
촬영 시작, 가방 하나 들려줬을 뿐인데 참 자유롭게 움직인다.어깨에 들러 맸다가 손을 뻗어 들었다가...
카메라 앵글 속 아인은 참으로 잘 논다.
#12 AM8:00
아마도 이틀간의 이번 촬영을 통틀어 아인이 제일 편해했던 씬이었을 것이다.헐리우드 영화 촬영에서 사용됐다던 미래적인 스포츠카에 편안히 누었으니.내리쪼는 태양에 인상을 찡그릴 법도 한데 한쪽 팔을 들어 멋진 그림자를 만들어낸다.어딘가를 응시하는 듯 몽룡한 표정과 함께...
나도 그냥 눕고 싶어지게 만드는 눈빛이다.
에필로그
마지막 밤... 자정을 넘긴 어느 시간.광고 촬영 짬짬이 엠넷 'Launch My Life' 촬영을 진행했던 터라 아인에게 이번 촬영은 컨셉과는 달리 자유로운 여행이 아닌 고행이었을 듯.엠넷 촬영을 마치고 아인이 자정이 넘은 시각 돌아왔다.달아오른 얼굴 빛에서 적지 않은 알코올 기운이 느껴진다.다 식어버린 먹나 남은 컵라면에 젓가락을 휘젓는다.이 친구 참... 가리는 것도 없다.
화제는 어느새 '배우'로 흘러갔다.아인은 정말 훌륭한 배우인데도 상대적으로 저 평가 되고 있다는 한 선배에 대해 이야기 했고드라마와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왜 멋지기만 해야 하냐며...남자 주인공이 찌질했던 적이 있었나? 등등... 아이처럼 투덜거린다."왜 난 말랑말랑한 부잣집 도련님 역할이 안들어올까. 못살든가 잘 살아도 반항하거나 암튼 맨날 힘들것만 하게 돼"
그런데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한 드라마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근데... 고민하다가 안했단다. 그야말로 그가 방금 전 읊어댔던 부잣집 도련님들이 떼로 나오는 드라마였다.난 말했다. "진짜 아깝다.""아깝지 않아 하나도... 그건 안 하는 게 맞았어"놀라서 재차 물었다."그건 누가봐도 되는 드라마였어. 왜 안했어?"그가 말했다. 망설임도 없이...
"아마 스타는 될 수 있었겠지.근데 난 배우를 하고 싶거든... 그래서 안했어"
그의 선택이 옳았다 옳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그저... 그 순간... 난 이 스물다섯의 젊은 배우의 앞날이 몹시 기대됐다.어쩌면 조금은 더딜지도 모르겠다.그래도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을 듯 했다. 기꺼이...
첫댓글 감사해요
.......... 정보감사해요
잘봤어여
잘읽었어여
잘봤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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