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
중ㆍ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남자 동창이 우리 집을 방문한다는 전화가 왔다.
우체국 택배로 튼실한 인삼이 배달되고, 잠시 후 손에 롤 케이크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인삼 보냈는데 뭐하러 롤 케이크까지~ 미안했다.
남자 동창들을 만나는 순간마다 나는 회춘을 한다.
이 나이에 떨릴 가슴도 없지만 그래도 보통사람과는 느낌이 같지않다.
학교 다닐 때 남자 동창으로 생각되니 감정이 색다르다.
이 친구는 아주 중후하게 잘 늙었다.
학교 때 세 명이 남편과 각별히 친했는데 그 중 한명이다.
벌써 한 친구는 하늘나라에 미리 가서 자리 잡고 살만큼 이승을 떠난지 한참 되었다.
방문한 친구는 예절이 바르고 공부도 잘했고 조용한 성품을 가졌다.
요즘도 걷기 운동으로 건강도 챙기면서 오대 영양소 골고루 챙겨먹는단다.
가끔 한 번씩 거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우리 집에 오는 친구다.
점심때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들면 거의 겪는 치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해서
먹기 좋은 해물 떡만둣국을 끓였다.
만둣국이면 반찬이 배추김치와 동치미면 끝이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먹든 안먹든 상이 푸짐해야 될 것 같아 몇 가지를 뚝딱 만들었다.
집에 있던 밑반찬까지 나열하니 푸짐한 밥상하다.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데 말이다.
그는 신선한 두어 가지면 충분하다고 노래를 한다.
먹지도 않는 음식이 들락거리는 걸 질색하는데도 나의 고집으로 매번 생일상처럼 차려준다.
친구는 그렇게 많은 동창들 중에 우리를 엄청 챙기는 사람이다.
남편의 친구들은 코흘리개부터 참 다양하다.
시골로 이사왔을 때 농장을 하는 친구가 조경수를 몇 차 실어오고,
너와지붕의 멋진 정자를 유용하게 쓰라면서 줬다.
어릴 적 마을 친구도 장정 다섯 명이 겨우 들 수 있는 몇 백 만원짜리 벽난로를
직접 만들어 주고, 바베큐 도구도 몇 개를 보내왔다.
지금도 많은 제품들을 제작하는 소기업의 사장님이다.
농사도 안 지으면서 가을이면 일반 쌀보다 배나 더 비싼 금쌀,
진도 누룽지 햅쌀을 정미소에 부탁해서 해마다 부쳐준다. 참 정이 많은 친구다.
다른 서울 친구는 자기 사무실로 쓰던 컨테이너를 퇴직하면서 우리 집으로 보내왔다.
남편이 인테리어를 해서 손님방으로 쓰는 <맑은가람> 독채를 준 친구다.
이 나이에도 지금도 능력자라 현장소장으로 일한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풍기에서 스크린 골프를 하는 친구다.
남편 친구들을 보면 지금도 현장에서 뛰는 능력 있는 친구들이다.
모두가 동창 남자친구들이다.
자랑하려면 끝이 없지만 비호감이라 여기서 마무리한다.
남편을 바라보는 나는 남편이 세상을 참 잘 살았구나를 느낀다.
우리는 친구들의 우정에 보답도 못하고 산다.
동창생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는게 대화 주제다.
우리 주변에는 아내를 미리 보내고 혼자 사는 친구들이 많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혼자 음식을 해서 제대로 먹고 살기는 보통일이 아니다.
몇 명은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또 아내 없는 빈자리가 너무 외롭고 적막해서 떠났다.
아직 함께 부부로 남아 있다는 것은 보통 복 받은 일이 아니다.
남자동창생은 고향에서 망년회가 있다고 간다 했다.
우리도 죽령 고갯길을 드라이브 삼아 같이 따라 갔다. 친구는 고향 살던 곳으로 가고,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묵은 때를 빼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기위해 온천엘 갔다.
사우나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 친구들에게 전화가 온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이야기다.
모든 친구들이 이렇게 복 받으라고 빌어주니 복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동창생인 남편과 그 친구들이 항상 고맙다.
2024년은 동창 친구와 망년회까지 한 의미 있는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