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루나 칼럼 >
[나의 금강경 공부 20]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글 | 조성내
(법사,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난 늙은 부부
다음 이야기는 <별역잡아함경>(156쪽; 동국역경원)에 써진 이야기이다.
부처께서 슈라바스티 시내를 걷고 있었다. 늙은 부부가 똥 무더기의 굴속에 앉아있었다. 부처께서 아난에게 말했다.
“저 늙은이가 어렸을 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했었더라면 성내(城內)에서 응당 제일의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법복을 입었으면 응당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저 노인이 소년일 적에 돈을 싸 모았으면 응당 제2의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집을 떠나서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법복을 입었으면 응당 아나함(阿那含)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세 번째 시절에 돈과 재산을 쌓아 모았으면 응당 제3의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법복을 입었으면 응당 수다원(須陀洹)이 되었을 것이다.”
부처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젊어서 청정한 행 닦지 않으며
또한 재물도 모으지 못했으니
마치 늙은 황새가
공연히 빈 못만 지킴 같네.
청정한 행을 닦지도 않았으며
젊은 적에 재산 모으지 못하고서
젊을 적에 즐기었던 것 생각하며
서 있는 그 모양 굽은 활과 같네
부처는, “세계는 업에 따라 존재하고, 사람 또한 업에 따라 존재한다. 수레바퀴가 쐐기에 얽혀져 굴러가듯이 생존하는 모든 것은 업에 속박당하고 있다.”(숫타니파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서 좋은 운명 혹은 나쁜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주위를 둘러보시라. 어떤 사람은 아주 부잣집에서 건강하고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주 가난한 집에서, 성격이 고약한 부모 밑에서 혹은 우둔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런 게 다 전생에 지어놓은 업의 결과인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시다시피, 늙은 부부는 슈라바스티(코살라 나라의 수도)에서 제일가는 부자의 운명을 갖고 태어났었다. 만약 스님이 되었다면 아라한이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었던 것이다. 아라한이라는 말은, 부처님처럼 도를 깨친 사람을 말한다. 부처도 아라한이다. 그런데 늙은 노인은 게을렀고 방일했었기에 부자도 되지 못했고 또한 아라한도 되지 못했다. 그 대신, 늙어서, 저처럼 똥 무더기의 굴속에서 살고 있는 천대받는 노인으로 전락되어버린 것이다. 타고난 운명은 행실에 의해 바뀌어지는 것이다.
방일하지 말라;
부처는 방일하지 말하는 말을 수차례 하셨다. ‘방일하다’는, 국어사전에 의하면, ‘마음대로 꺼림 없이 논다, 혹은 방탕한 짓이나 하며 함부로 논다.’ 라는 뜻이다. 다음은 <증일아함경 제27권>에 써진, 부처가 하신 이야기이다.
저 악마 파피야스에게도 다섯 가지 힘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빛깔의 힘· 소리의 힘· 냄새의 힘· 맛의 힘· 닿임의 힘이다. 저 어리석은 사람은 빛깔·소리·냄새·맛·닿임(色·聲·香·味·觸)의 법에 집착하기 때문에 파피야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만일 성인의 제자로서 한 가지 힘만 성취하면 그러한 힘을 이길 수 있다. 어떤 게 한 가지 힘인가. 이른바 방일하지 않는 힘이다. 만일 성인의 제자로 방일(放逸)하지 않기를 성취하면 그는 빛깔·소리·냄새·맛·닿임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다섯 가지 향락에 매이지 않고 능히 생·노·병·사의 법을 분별해 악마의 다섯 가지 힘을 이기고 악마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으며 온갖 두려움을 벗어나 함이 없는 곳에 이르느니라.
부처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계율은 단 이슬로 가는 길 되고
방일은 죽음으로 가는 길 된다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나니
도를 잃으면 스스로 죽느니라.
부처 탄생 이야기;
늦게 귀여운 태자를 얻는 왕 ‘슛도오다나’는 기쁨에 넘쳤다. 왕은 태자의 운명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름 높은 예언자 ‘아시타’ 선인(仙人)을 찾았다. 왕궁을 둘러싼 서기(瑞氣)를 보고서, 아시타 선인은 스스로 왕궁을 먼저 찾아와 있었다.
아시타 선인은 태자를 안고 그 골상을 살펴보았다. 문득 눈물을 떨어뜨렸다. 눈물 떨치는 것을 보고서 왕은 불안했다. 슛도오다나는 왜 눈물을 흘리느냐고 물었다. 아시타는 대답했다.
“이 왕자는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몸매와 여든 가지 미묘한 모습(32相 80種好)을 갖추었습니다. 이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온 천하를 통치할 것입니다. 세속을 떠나 도를 닦으면 반드시 큰 도를 깨달아 ‘부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널리 중생을 건지오리이다. 나는 나이가 늙어 부처님의 법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슬퍼하나이다.”
그리고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라고 명명했다. ‘싯다르타’라는 말은 “모든 것이 죄다 바로 성취된다.”라는 뜻이다. (우리말 팔만대장경; 부처님의 탄생, 10쪽)
부처의 전생 이야기;
<금강경>(제14분): “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찢길 적에, 내가 그 때 아상(我想; 나라는 생각)이 없었으며, 인상(人相; 남이라는 생각)이 없었으며, 중생상(衆生相;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었으며, 수자상(壽者相;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었다. 옛적에 마디마디 4지를 찢기고 끊길 그 때 만약 나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다면 응당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니라.”
부처는 전생에, 온 몸이 찢길 정도로 심한 인욕을 정진했었다.
<금강경>(제16분); “수보리야, 내가 한량없는 아승기겁 전의 과거를 생각하노니, 연등부터님 앞에서 8백4천만억 나유타 수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뵙고 다 공양하였으며 받들어 섬기어 헛되이 지냄이 없었느니라.”
여기서 보면 부처는 지난 수없이 많은 겁 동안에 수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을 섬겼었다고 했다.
<금강경>(제17분); “실로 어떤 진리가 있지 않은 경계에서 아녹다라샴막삼보리를 얻었기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를, ‘네가 이 다음 세상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나니 그 호를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셨느니라.”
‘아승기’라는 말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 또는 그런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부처는 지난 아승기 겁 동안 수많은 부처님을 모셨다. 또 고된 인욕정진을 해오면서 오늘날 부처가 될 수 있는 수행을 닦았었던 것이다. 지난 아승기 겁 동안의 수행이 없었다면 부처는 부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는 이미 전생에서, 연등부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시면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를 받았었다. 부처는, 이 세상에 ‘부처가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셨던 것이다. 부처는 이 세상에 이미 ‘부처’로서 태어나셨던 것이다.
부처도 6년 고행;
부처가 부처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도, 꼭 부처가 되어야만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위의 늙은 부부에서 보았듯이, 만약 싯다르타가 어렸을 적부터 게으름이나 피우고, 궁녀들하고 향락을 즐기면서 방일했더라면, 싯다르타는 결코 부처는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달랐다.
싯다르타는 결혼을 했었지만, 도를 닦고자 하는 열망을 견디어내지 못했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버렸다. 왕자의 지위와 화려한 궁정생활도 버렸다. 도를 닦고자 하는 일념 때문에 그는 29세 때, 숲속으로 들어갔다. 6년 동안 피나는 고행을 했었다. 36세 때 새벽별을 보고서 갑작스럽게 깨쳤다.
부처가 되고 난 후에도 부처는 매일 참선하셨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1-2마일 정도 걸어서 마을에 들어갔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식을 하셨다. 식사 후에는 제자들을 지도하셨다. 부처는 죽기 전까지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셨다. 부처는 게으름 피우는 것을 제일 싫어하셨다. 부처는 제자들에게 ‘방일하지 말라’, ‘방일하지 말라’ 하고 자주 말하면서 제자들에게 열심히 정진하라고 격려하셨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명문대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었기에, 그는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서, 게을러졌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보통 학생으로 졸업했다. 좋은 회사에 취직이 안 되었다. 미국에 왔다. 미국에 와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만약 이 사람이 대학에서도, 고등학교 때처럼 열심이 공부를 계속하였더라면, 우수학생으로서 졸업을 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회사에서 쉽게 취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방일하지 말라.”고 누차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늙어지면, 은퇴한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놀아버린다. 늙었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뭔가 보람되는 일을 찾아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생에서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부처는 남의 생명을 연장시키지 못 한다;
부처는 아난다를 데리고 바샤알리에 가서 걸식하셨다. 그때에 바샤알리에는 ‘비라선’이라는 장자(큰 부자)가 있었다. 그는 재물이 많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인색하고 탐욕스러워 보시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오직 과거에 지은 복만을 먹고 새 복을 짓지 않았다. 그는 많은 미녀들을 데리고 후궁에서 풍류를 잡히면서 즐겨하고 있었다.
부처는 아난다에게 말했다.
“저 비라선 장자는 지금부터 이레 뒤에는 목숨을 마칠 것이다. 그리고 체곡(涕哭)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떳떳한 법으로서 한 뿌리를 끊은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에는 모두 체곡 지옥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지금 저 장자는 과거에 지은 복은 이미 다하고, 새 복은 짓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아난다가 물었습니다.
“혹시 어떤 인연으로 저 장자로 하여금 이레 뒤에 목숨을 마치지 않게 할 수 있겠나이까?”
“목숨을 마치지 않게 할 인연은 없다. 과거에 지은 업이 이제 다했으니 그것은 면할 수 없느니라.”
아난은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어떤 방법으로 저 장자로 하여금 체곡 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할 수는 없나이까?”
부처는 말했습니다.
“저 장자로 하여금 체곡 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할 방법은 있느니라. 만일 저 장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옷을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배우면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난다는 장자에게 달려갔다. 그 장자는 부처가 말한 대로 수염과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법옷을 입고서 집을 떠났다. 아난다는 비구(장자)에게 말했다.
“너는 생각하기를 수행하라. 즉 부처를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비구승을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며, 휴식을 생각하고, 숨길을 생각하며, 몸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이와 같은 법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를 생각하면 곧 큰 과보를 얻어 단 이슬 법의 맛을 얻는 것이니라.”
비라선은 아난다가 하라는 대로 수행하였다. 그는 목숨을 마친 후 四천왕천에 태어났다. (중일아함경, 제34권)
여기서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하는, 자기의 수명을 갖고 태어나는 가 보다. 부처는 남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옥에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부처는 또한 <금강경>(제3분)에서,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지만 실로 한 중생도 제도된 바가 없느니라.”라고 말했다. 도를 깨치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만, 도 깨침은 각자가 할 일이지 부처가 해탈시켜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처라고 하더라도, 남의 생명을 단축시키거나 연장시킬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부처라고 하더라도 남을 해탈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자는 스스로가 해탈할 수도 있고 그리고 스스로가 자기 생명을 연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생명을 연장하다;
다음은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주굉운서 저, 명나라 사람)에 나오는 글이다.
양나라 지장(智藏; 458-522)스님은 오군(吳郡) 사람으로 종산 개선사(開善寺)에 있을 때다. 상(相)을 보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법사께서 총명이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애석하게 수명이 길지 못하여 31세에 그쳤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때 지장스님의 나이는 29세였다. 2년 후면 죽는다는 말! 지장스님은 이 때부터 강론을 그만두었다. 경장(經藏)을 살피던 중 <금강경>을 보고 정성을 다해 독송하였다. 예불 참회하기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수명의 기한이 다하는 날에 이르자 공중에서 홀연히 말소리가 들렸다.
“그대의 수명은 본래 다했으나, 반야(般若)의 공덕력 때문에 배(倍)의 수명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전에 상을 보아주었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깜짝 놀라면서 그 이유를 헤아리지 못했다. 스님이 그 일을 말해주었다. 독경하는 힘(經力)의 불가사의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찬탄하노라.
길고 짧은 수명은 타고난 분수인데
예불 참회하고 경전을 지송함으로써 수명이 연장되 었으니
숙인설(宿因說)을 폐지해야 하리라.
아-아, 잃어버린 띠(帶)를 주워서 되돌려주고
요절할 상호가 없어졌으며
개미를 물 건네주고도
귀한 상호(相好)나 나타났다 하니
사람의 능력으로도 천명을 돌릴 수 있는데
더구나 불가사의한 3보(三寶)의 힘이겠는가?
유독 한스러운 것은
정성이 위의 스님만 못한 것일 뿐이다.
풀무질하는 소리도 경전이 되고
서로가 방아를 찧으면서도 예(禮)를 이룬다 하였는데
감응의 실마리가 안 보인다고 어찌 괴이하게 여기겠 는가?
게으른 비구는 지옥에 갈 것이다;
다음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증일아함경 제35권)
“카샤파여, 알아야 한다. 내가 반열반한지 천년 뒤에는 비구들은 선정에서 타락해 다시는 두타법(頭陀法)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걸식하거나 누더기 옷을 입지 않을 것이다. 장자들의 초청을 탐내 그 의식을 받을 것이다. 또 나무 밑이나 한적한 곳에 있지 않고, 장식한 방을 좋아할 것이다. 또 대소변을 약으로 쓰지 않고 다만 매우 달고 맛난 약초에 집착할 것이다. 혹 그 중에는 재물을 탐내고 방을 아껴 늘 서로 다툴 것이다.
그 때의 시주(施主)들은 불법을 독실이 믿고 보시하기를 좋아해 재물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는 모두 천상에 날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로서 게으른 자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카샤파야, 이와 같이 일체 행은 모두 덧없이 오래 보존할 수 없느니라.”
여기서 부처는 예언을 한 것이다. 천년 뒤에는 많은 비구(스님)들이 게으름을 피우고, 선정에서 타락하고, 걸식하지 않고, 좋은 옷이나 입고, 장식되어 있는 좋은 방에서 살고자 할 것이다. 재물을 탐내고, 큰 부자들로부터 초청이나 받기를 좋아할 것이다. 이처럼 게으름을 피우고, 열심히 도를 닦지 않는 비구들은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물을 아끼지 않고 비구들에게 보시를 많이 하는 시주(신도)들은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고 부처는 말씀하셨다.
선행과 악행의 과보;
아무리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현생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면, ‘좋은 운명’이 다 효능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동시에, 아무리 나쁜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현생에서 10선행(善行)을 행하면서 열심히 일하면, 태어날 때의 나쁜 운명은 점점 더 좋은 운명으로 바꾸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태어날 때 우리의 운명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행실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바뀌어 진다는 것이다.
다음은 <산암잡록>(山菴雜錄. 무온서중 스님; 원나라)에 써진 글 한 토막을 여기에 적음으로서 끝을 맺겠다.
“속담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닦아서 얻을 수 있는 복이 있고, 연장하여 얻을 수 있는 수명이 있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세상사람 가운에 선행(善行)을 하는 자가 도리어 미천(微賤)하거나 요절(夭折; 젊은 나이에 죽음)하고, 악을 자행하는 자가 도리어 복을 받고 장수를 누리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전생에 많은 선을 행한 자가 현세에 비록 악한 일을 하였다 해도, 현세의 악이 전생의 선을 이기지 못한 까닭에 복을 받고 오래 사는 것이다.
전생에 많은 악을 행한 자는 비록 현세에 선을 행하였다고 해도, 만약 현세의 선행이 전생의 악을 이기지 못한 까닭에 비천하고 요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세의 선악에 대한 과보 또한 내생(來生)에 있는 법이다.
혹시 전생의 선행이나 악행이 그리 무겁지 않아서 현세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많다면 미천함과 요절은 복과 장수로 변하기도 하고, 혹은 복과 장수는 미천함과 요절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화에 통달하여 삼세인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일심이 짓고 받는다는 이치에 어두워 현세의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