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410]泰村고상안(高尙顔)-박주려강(泊舟驪江)
박주려강(泊舟驪江)
泰村 고상안(高尙顔)
萬頃蒼波萬斛船(만경창파만곡선)
微瀾細起月娟娟(미란세기월연연)
不知煙寺藏何處(불지연사장하처)
風送鍾聲到枕邊(풍송종성도침변)
넓고 푸른 바다에 만 곡의 배 뜨있고
달빛은 곱기만 하고 잔물결 인다
절은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하는데
바람불어 베개머리에 종소리 들려온다
泊舟驪江 박주려강=
泊舟 박주= 배를 대고
驪江 려강=경기도 여주
泰村 고상안(高尙顔)
萬頃蒼波 (만경창파)= 넓고 푸른 바다에
萬斛船(만곡선)= 만 곡의 배 뜨있고
微瀾細起 (미란세기)= 잔물결 인다
月娟娟(월연연)= 달빛은 곱기만 하고
不知煙寺 (불지연사)= 절은 알지 못하는데
藏何處(장하처)=어느 곳인지
風送鍾聲 (풍송종성) = 바람불어 종소리 들려온다
到枕邊(도침변) = 베개머리에
고상안(高尙顔) =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사물(思勿), 호는 태촌(泰村).
할아버지는 충순위증판결사 고극공(高克恭)이며,
아버지는 증 한성우윤 고천우(高天佑)다.
어머니는 신천 강씨(信川康氏) 습독 강희언(康希彦)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76년(선조 9)에 문과에 올라
함창현감 · 풍기군수 등을 지냈다. 40세 되던 해인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침입하자,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어 큰 공을 세웠다.
49세인 1601년(선조 34) 이후지례현감 · 함양군수를 지냈고,
이덕형(李德馨) · 이순신(李舜臣) 등과의 서사 기록(書事記錄)도 남긴 바 있다.
그 뒤 울산판관을 지낸 후,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 생활을 하였다.
문집으로 1898년(고종 15)에 간행한 목판본 6권 3책이 전한다.
그 가운데 행장(行狀)에 보면 농사에 밝고 문장이 능하며,
농군을 가르치고 농사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학계에서는 현전하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그의 작품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는 문집인 『태촌집(泰村集)』에 「농가월령」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이후 농경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 문집의 행장에 기록되어있어,
「농가월령가」는 고상안과 관련이 깊으리라는 짐작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 밖에 그의 문집에는 총화(叢話) · 여화(餘話)에 해당되는 「효빈잡기(効嬪雜記)」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유성룡(柳成龍)에게 올린 팔책(八策)과 유합(類合),
『해동운부군옥(海東韻府群玉)』에 대한 기록과 풍속 · 전설에 관한 기록 등이
전해지고 있어 일반 문집에 비해 이색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점을 종합하여 볼 때,
「농가월령가」의 나타난 계절 감각, 영농 내용 등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까닭에, 학계에서는 그가 「농가월령가」의 작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집으로 『태촌집』이 있다.
泰村先生文集卷之一 / 詩
泊舟驪江
萬頃蒼波萬斛船。微瀾細起月娟娟。
不知烟寺藏何處。風送鍾聲到枕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