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큼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적인 나라가 드물것입니다.
물론 독특한 자녀교육으로 유명한 유태인의 사례가 있습니다만.
나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자식 농사를 흡족하게 짓지 못했습니다.
후회합니다. 반성합니다.
그 얘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내 주위에
자녀가 잘 된 두 분이 생각납니다.
한 분은 우리 집에 오랫동안 생수를 공급해 주는 박 사장입니다.
늘 웃으면서 신바람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보니 아들이 서울대학교 상대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어깨가 으쓱해진 것입니다.
또 한분은 대학의 청경으로서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김 선생님입니다. 아드님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늘 싱글벙글 이셨습니다.
두 분의 공통점은 자녀에 대해 깊은 관심은 가졌으나 직접 가르치지 않고 아낌없는 격려만 했다는 사실입니다.
"자식은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게 뭔 말인지 처음에는 황당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제 아들이 중학교 저학년 시절얘기입니다. 수학 문제가 어떻게나 어렵든지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평일 저녁이나 휴일에 직접 가르쳐보니 보통 힘든게 아니었습니다.
급기야 싫은 소리를 하게 되고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벗나가게 되어 자식이 웬수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정규 과정을 다 마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다 내탓입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보려고 욕심을 낸 것이 큰 부작용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학원비도 아끼고 학습의 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직접 가르치려 했는데 이게 큰 실수였습니다.
"자식은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라는 법칙(?)을 어긴 것입니다.
"난 아버지처럼 공부하기 싫다"라는 아이를 계속 윽박질렀으니 화나게 만들고 공부에 더욱 싫증을 내게 만든 것입니다.
공자도 공리(孔鯉)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식과 인연을 끊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자식을 직접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자식 뿐만아니라 부모도, 배우자도 형제도 친한 친구도 잘못을 직접 지적하고 타이르고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인연을 오래 이어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다보니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0.72명)으로 떨어지고 결혼을 해도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자녀교육에 왕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직접 가르치려 하지말고 측면에서 응원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행복을 주는 요소로 학력이 한 가지 요소가 되겠지만 이외에도 건강, 정서적 가치, 인간관계 등 수도없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들의 경우, 부부가 열심히 맞벌이를 하면서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낳아 잘 기르고 있습니다.
요즘 결혼을 기피하고 설사 결혼을 했더라도 둘째는 고사하고 첫째도 안낳겠다는 세상이 되고보니 국가에 대단한(?)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입니다.
평생학습 시대입니다.
젊었을 때, 못다한 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나이들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늦게나마 진짜 공부를 하기 를 애비로서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