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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집단의 비교연구 ―한국, 일본, 미국 Ⅰ.서론 최근에 이루어진 산업조직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기업집단이 가지고 있는 제도적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많은 국가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활동들이 동일한 그룹이름 아래 상호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합법적으로 독립된 여러 기업들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집단은 모든 선진국에서 발견되는 현대적 산업기업의 일종의 변형으로, 대규모 생산단위를 갖는 다부문 생산체이며 계층적으로 경영된다. 그러나 후발산업국가들의 기업집단은 현대적 산업기업에 비해 상호연관성이 적은 생산부문으로 더욱 다각화되어 있으면서도 반면에 복합기업보다 더욱 중앙집중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룹형태의 조직은 특히 한국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며, 재벌은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직접적인 가족소유나 상호주식소유를 통해 회원사들을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지난 30여년 동안 숫자나 규모 면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비록 합법적인 측면에서 단일법인으로 인식되지는 않을 지라도 한국경제에서 이들을 구별하기란 어렵지 않다. 재벌이라고도 표현되는 기업집단은 초기 개발계획단계에서 중요시되는 기업-정부 관계에서 보여지는 정부의 역할, 경제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비경제적인 요소들, 그리고 기업가 정신과 경제성장 사이의 복잡한 관계 등이 상호 결합된 결과로 출현했다. 기업집단은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기업이 아니다. 기업집단은 합법적인 독립기업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개별 독립기업들은 상호간에 경제적 혹은 재정적인 관계를 갖고 있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다른 계열기업들을 조정할 수 있는 회계 및 경영관리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그룹내의 모든 기업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핵심기업, 때로는 모기업, 은행, 핵심 제조업에 의해 소유되기도 한다. 다른 경우에는 한 개인 또는 소그룹, 때때로 친족이 기업집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기도 한다. 따라서 단순히 통합된 소유권만으로 기업집단의 특성을 정의하지는 못한다. 대신 기업집단의 특성을 정의하는 것은 조사에 의해 밝혀질 수 있는 그들 조직만의 속성, 방식, 결과를 가진 독립기업들의 조직화된 네트워크이다. 재벌과 같은 거대 기업집단들은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이와 같은 산업 및 경제지배조직을 쉽게 찾아 볼 수 가 있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거대 기업집단 현상은 스웨덴, 독일,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들이나 멕시코, 브라질 같은 중남미 국가들,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역사에서도 정치․경제적인 권력을 장악했던 장씨 가문, 송씨 가문과 같은 10개의 큰 가문을 중심으로 한 기업집단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견해는 기업집단의 기원을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대기업이나 기업집단이 서구 국가들의 산업화 초기에 출현했고, 예를 들면 듀퐁, 모르간 같은 거대 자본그룹들이 독립적으로 형성되었지만, 이들 기업들은 일본에서처럼 정교한 체계를 갖춘 계열기업과 산업을 지배하는 조직체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앙집권화된 지배체계를 갖는 기업집단들의 기원을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 재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늘날 일본 기업집단의 양상은 한국의 재벌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직접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일본의 기업집단은 기업집단들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인 특징들을 내포하고 있고 한국 재벌과 비슷한 성장경로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 재벌을 연구하는 데에 일본의 기업집단들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유용할 것이다. 현대 대부분의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 기구라는 ‘보이지 않는 손’ 보다는 대기업 경영자의 의사결정, 즉 ‘보이는 손’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근대적 대기업은 여러 개의 소단위 사업체로 구성되어 있고 피라밋 형태의 경영자 계층에 의해 운영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 기술진보와 시장규모 확대에 따라 자원배분이 소단위 단일기업들이 시장을 통하여 자원을 배분하는 것 보다 더 효율적이 될 때 근대적 대기업이 등장하였다. 반복적인 거래를 내부화 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절감하고 구매, 생산, 분배단위를 결합함으로써 시장 및 원료공급에 대한 정보비용을 줄이며 원자재와 제품의 흐름을 긴밀히 계획조정하고 과정을 표준화하여 개개 단위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속도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현물과 금융자산의 지속적 흐름을 가능케 하는 경영조정으로 자본비용을 절감하고 소유와 분리된 전문경영인의 등장으로 경영효율을 제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기업은 외형상 단일법인 이지만 기업집단의 전형적인 속성을 갖추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 기업은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이다. 특히 기업집단은 한 나라 경제의 경쟁력을 결정짓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 걸맞을 만큼 기업집단은 한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공과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으며 그 공과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평가되어 진다고 하겠다. 한국의 재벌이 그 동안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부작용도 많이 일으켰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인 IMF 사태를 맞아 재벌의 구조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 맞춰 앞으로 바람직한 한국재벌의 모델을 설정하기 위해 선진국의 기업집단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의 재벌, 일본의 기업집단, 미국의 복합기업의 형성 및 성장, 특징 등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바람직한 한국재벌의 구조조정 방향설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Ⅱ. 한국의 재벌 1. 재벌의 형성 및 성장 대부분의 한국 재벌들이 1945~1960년대 사이에 형성되었지만 일부 토착기업은 이미 식민지 시대에 재벌형태로 생성되었다. 조선왕조 말기에 설립된 대부분의 토착기업은 외국 상업자본에 비해 자본, 기술, 경영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쉽게 파산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예외는 섬유 도매업자인 박승직이 경영하던 ‘박승직상점‘이었다. 이 상점은 오늘날 한국에서 상위 대재벌 중의 하나인 두산그룹의 모기업이 되었다. 식민지시대 한국에서는 총독부와 관련기관들이 사기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공적인 대규모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경제적 우선 순위에 대한 적응력이 선행조건이었다. 확실히 외국 정부와 기업이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식민지 상황에서 이러한 적응력은 토착기업에게 필수적이었다. 식민통치시대의 지역사업은 외부통제와 성장 사이의 딜레마를 발생시켰지만 권력의 지원을 수반했다. Hirschman(1958)이 제기한 ‘협조적 기업가정신’은 식민지 한국에 농업 이외의 부분에서 성공한 대규모 지역 기업가들의 성장을 나타낼 수 있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소수 주요 기업들만이 고유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유지하였다. 금융지원과 위험이 높은 사업에 대한 보조금을 위해 식민지 권력에 의존하였던 소수 기업가들만이 소유권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투자에 대한 내부 감독 없이 식민지 권력의 필요에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수천 명의 한국 기업가들은 해방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맡았으며, 특히 1950년대 성장한 상업 및 산업자본가는 새로운 계층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등장했다. 실제로 해방 후 한국의 성공적 기업가들의 대다수는 이런 그룹의 부류였다. 이 기간 기업집단의 특징을 지닌 많은 재벌이 설립되었으며, 대다수 오늘날의 대재벌들은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동안 창립되었다. 1988년을 기준으로 30대 재벌 중 6개만이 해방 전 일제통치하에서 시작했으며, 거의 대부분인 16개는 이승만정권 기간동안 시작되었고 나머지 8개는 박정희정권 기간동안 설립되었다. 기업들의 식민지적 양상은 1945년 해방의 격동기와 1948년 제 1공화국 출범시기에 사라졌다. 대표적 기업가들은 갓 태어난 민주주의 안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 지역에 대한 지배와 새로 발견된 기회를 잡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곧 그들은 강력한 서구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라는 새로운 파트너를 맞았으며, 일본과의 연계를 끊도록 하는 국내 압력에 직면했다. 그러나 새로운 한국적 형태의 주요 기업이 등장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형태는 서구의 대기업이나 일본의 재벌과도 매우 달랐다. 새로운 이념과 제도의 불안정한 틀 안에서 적응하려고 한 기업들의 노력은 확실히 기업정부 관계의 초기 양상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가족통제의 기업집단, 즉 재벌로의 집중현상과 국가의 정책방향에 따른 지원이 놀랍게도 서로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이승만 정부는 전쟁 중에 파괴된 기간산업시설과 공장들을 재건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경제재건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나라가 안정됨에 따라 정부는 다음과 같은 주요 목표를 세워 정책방향을 수정했다. 즉, 외국원조의 유입을 촉진하는 것, 주요 식료품과 섬유와 같은 소비재 제조업에 새로운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는 것, 농업부문의 안정적 지원을 유지하는 것 등이었다. 정부는 수입대체 산업화전략에 소요되는 필요한 금융자원을 조달하는 데 있어 민간부문의 국내저축을 증가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외국원조의 유입과 개인무역으로 얻어진 수입관세, 텅스텐과 같은 천연자원의 수출로부터 얻어진 자체수입 등에 더 많이 의존했다. 비록 국내통화가 1950년대 전체에 걸쳐 과대평가 되었지만, 정부는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그 외에 다른 정책수단을 사용했다. 공식적인 금융시장에서 이자율은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낮게 통제되었다. 이런 특징들은 경제성장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추진력의 결여와 행정관료제의 미숙련과 함께 1960년 4월 이승만정권이 붕괴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해방 이전의 일본인 재산, 원조자금과 물자와 같이 민간부문에 배분할 가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같은 정부의 자원배분은 대개 낮은 이자율의 금융과 수입허가와 같은 다른 가치 있는 자원과 기회의 배분을 수반했다. 어떻게 정부가 이들 자원과 기회를 배분했는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많다. 어떤 이들은 부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하며, 다른 이들은 당시에 자격 있는 기업가가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위의 어떤 경우에서도 재벌축적의 기본적 원칙은 대개 정부에 의한 자원과 기회들이 재벌의 형성과 축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자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재벌은 심화와 확장과정의 연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심화는 운영규모와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생산함수상의 한 점을 향하여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과정은 재투자를 통해 현재의 생산함수를 확장하는 것도 포함한다. 확장은 연관되거나 연관되지 않은 부가적 사업영역으로 기업집단이 확장되는 것을 말한다. 특히 확장은 다각화, 즉 새로운 사업분야의 창출과 현존 사업영역의 확장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기업집단은 이런 확장과 심화의 연속적 과정을 유지할 수 있는 그룹들이었다. 재벌의 형성단계는 초기 기업설립에서 1회전 확장․심화과정까지를 말하며, 반면에 성장단계는 정착기․팽창기․성숙기를 포함한다.1) 정착기는 형성단계 말기부터 고성장산업 혹은 대규모 산업으로의 최초 확장시점까지의 기간이고 팽창기는 대규모 심화가 발생한 때부터 확장과정의 빈도가 지속적으로 낮아질 때까지의 기간으로 정의한다. 정착기와 팽창기에는 많은 심화․확장이 있을 수 있다. 성숙기는 기업집단의 성장이 기본적으로 이전 시기보다 현저히 빈도가 적은 확장과 심화에 의해 유지되는 기간이다. 한국에서 재벌성장의 열쇠는 대규모 심화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으로의 초기확장이었다. 그런 확장과정을 얻기 위해 한국 재벌들은 대량의 금융자본과 정부로부터의 투자허가권을 획득해야 했다. 따라서 확장․심화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재벌의 기업가적 의사결정과 함께 정부의 투자허가권과 산업금융의 할당은 재벌의 성장과 전생애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비록 오늘날 상위 재벌의 대다수가 일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빠른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박정희정부 이전에 설립되었을지라도 실질적인 재벌로의 성장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적극적인 정부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따라서 재벌의 형성기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1945년부터 시작되었을지라도 실질적으로는 박정희가 군사혁명에 의해 정권을 장악한 1961년을 한국 재벌의 성장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초기 재벌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는 귀속자산의 배분이었다. 귀속재산의 불하가격은 당신의 실질가치보다 훨씬 낮았던 해방전의 회계가치로 책정되었으며,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욱 낮은 가격으로 불하되었다. 이와 함께 귀속재산의 불하는 장기 유예기간과 값싼 은행대출 같은 좋은 지불조건, 원자재 수입허가권, 낮은 공식환율로 외환배분, 독점적 지위보장 등과 같은 많은 유리한 조건도 수반되었다. 대표적으로 귀속재산의 불하를 받아 재벌의 반열에 오른 기업가들은 조선화약공장을 물려받은 김종희(한국화약), 기린맥주를 불하 받은 박두병(두산), 방직재벌 정재호(삼호), 견직재벌 김지태(한국생사) 등이 있었다. 국영기업 불하도 재계 판도변화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수송물자 운송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 베트남전쟁 때 크게 자본을 축적한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인수하면서 일약 10대 재벌로 도약했고,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여 1960년대에 국내 자동차업계를 독점하면서 10대 재벌로 도약한 신진은 한국기계까지 불하 받아 그 지위를 더욱 굳혔다. 1950년대 말 10대 재벌이었던 극동해운도 해운공사를 불하 받아 1960년대에도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했다. 이밖에 대한통운, 대한철강, 대한종합식품, 한영공업 등을 각기 불하 받은 동아(최준문), 삼미(김두식), 벽산(김인득), 효성(조홍제) 등은 10대 재벌의 문턱까지 왔었다. 또한 정부의 특정산업 육성정책에 편승하는 것도 재계 판도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중화학공업정책과 중동건설경기로 대변되는 1970년대도 재계의 부침은 심했다. 1972년과 1979년의 10대 재벌을 비교하면 신진, 대한전선, 극동해운, 대농 등 4개 재벌이 탈락하고 대신 대우, 효성, 국제, 선경이 그 자리를 메웠다. 신흥그룹은 한결같이 중화학공업정책에 적극 편승한 기업들이고 이중에서 현대그룹이 가장 돋보였다. 1950년대에 미군 건설 용역을 하면서 성장, 1960년대 초부터 동남아에 진출하여 해외건설을 해오던 현대건설은 이때의 경험과 중동건설 특수를 발판으로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인천제철과 대한알미늄을 인수하기도 했고 중전기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하였다. 다른 재벌에게도 1970년대는 ‘황금의 성장’ 시대였다. LG그룹은 계열사 수를 1974년 말 17개 사에서 4년 뒤 43개 사로 대폭 늘렸고 대우도 10개 사에서 35개 사, 효성은 8개 사에서 24개 사, 국제는 7개 사에서 22개 사, 롯데는 6개 사에서 15개 사로 크게 늘렸다. 앞의 정의에 따라 한국 재벌의 성장단계를 정착기․팽창기․성숙기의 세 기간으로 나누어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정착기는 고성장, 개발에 대한 강력한 의지. 효과적이고 광범위한 정부간섭, 대내지향으로부터 대외지향적 전략으로의 전환시기였던 1960년대로 간주된다. 팽창기는 경제성장이 가속화됨은 물론 재벌성장이 가속화된 1970년대로 볼 수 있다. 비록 경제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 태도는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시기는 보다 강력한 경제성장에 대한 정책수행. 해외지향 전략의 완성,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으로의 경제구조의 전환시기였다. 성숙기는 경제성장이 둔화된 1980년대 이후로 볼 수 있다. 안정성장을 추구한 전두환 정부는 정부간섭을 줄이고 시장기구에 보다 더 많이 의존하였으며, 재벌규제를 강화하였다. 재벌의 확대는 계속되었던 반면 그 성장은 대개 재벌구조의 심화에 기초하였다2). 2. 재벌의 특성 기업집단의 출현이 저개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반면에 한국재벌은 다른 국가의 기업집단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국 재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공통적으로 재벌의 정의에 포함되는 ‘족벌경영’과 ‘다각화’이다. 대부분의 재벌에서 소유와 경영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비록 전문경영인의 비율이 점진적으로 증가해왔을지라도 족벌경영이 지속된 결과였다. 따라서 상의하달식 의사결정이 재벌 내에서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재벌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창업주들은 아직도 최고경영자 직책을 가지고 있다. 경영권의 승계는 경영권뿐만 아니라 소유권 이전이 혈연관계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재벌에게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Chandler(1977)에 의하면, 비록 후발산업국들의 많은 현대적 산업기업이 다각화된 기업집단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한국 재벌은 그들의 문어발식 확장방식과 소규모 사업영역으로의 무분별한 진출, 기업윤리성의 부족으로 인해 비난받고 있다. 한국에서의 소유집중 현상은 독특한 한국적 재무환경의 특징들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대기업의 급속한 성장에는 막대한 양의 자본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 기업은 사내유보금의 사용, 주식발행 또는 차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일반 소득수준이 낮고, 인플레이션이 만연하며 이윤이 많은 투기적 투자기회가 존재하는 경제에서 기업이 일반대중에게 주식을 발행해서 필요한 자본을 얻어내기란 극히 어려웠다. 더구나 자본집약적 산업에서는 새로운 투자계획에 자금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좀처럼 보유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소량의 기초자본을 가지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외부자본에 거의 의존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자금지원 방법으로 인해 재벌의 소유권은 그들의 성장과정에서는 분산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러한 소유집중은 계열사 상호간의 주식소유 방법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표 1> 참조). <표 1> 30대 재벌의 내부지분율 현황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한편 은행의 대부정책도 계열사 상호간의 주식보유의 동기를 제공했다. 이는 자금에 대한 만성적 초과수요를 처리하기 위해 은행이 대출수혜자의 총자본의 양에 비례하여 대출 가능한 자금을 할당하는 배급제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하에서는 상호 주식보유로 인하여 재벌들은 각각의 계열회사간의 자본이 가공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은행대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재벌의 계열회사는 같은 규모의 독립기업보다 은행대출을 받는 데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상대적으로 다른 독립기업들 보다 재벌들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요인들 중 하나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한 재벌을 소유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가장 확실한 것은 각각의 계열기업에서의 최대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막대한 자본을 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 다음 방법은 지주회사를 통한 피라미드식 기업지배 방식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1986년에 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에 포함시켰다. 기업지배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회사 상호간의 주식소유이며 이는 직접적, 방사적, 순환적 형태 중에서 하나 또는 모두를 사용할 수 있다. Hattori(1989)에 의하면 한국 재벌의 가족소유구조는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될 수 있다(<그림 1> 참조). 유형‘Ⅰ’은 대지주나 그의 가족이 직접 재벌회사들을 소유하는 직접소유 구조이다. 한진그룹이 유형‘Ⅰ’의 대표적인 예이다. 유형‘Ⅱ’는 대주주나 그의 가족이 지주회사를 소유하고, 이것이 계열회사들을 소유하는 지주회사구조이다. 대우그룹이 유형‘Ⅱ’의 좋은 예이다. 유형‘Ⅲ’은 대지주나 가족이 지주회사 또는 문화재단과 같은 중간매개 조직을 소유하고, 이들이 계열회사와 함께 공동으로 상호주식을 보유하는 상호소유구조이다. 삼성그룹이 유형‘Ⅲ’의 전형적인 예이다. 또한 핫토리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 재벌들은 점차로 유형‘Ⅰ’에서 유형‘Ⅲ’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형‘Ⅰ’에서 유형‘Ⅱ’로 이행은 진행속도가 느린 반면 비교적 부드럽게 나타난다. 하지만 유형‘Ⅱ’에서 유형‘Ⅲ’으로의 이행은 완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소유권을 단일화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특별한 조치, 즉 후계자의 단일화 내지는 집합화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림 1> 한국재벌의 소유구조 유형 a.유형 Ⅰ:직접소유구조 b.유형Ⅱ:지주회사구조 기업주 가족 기업주 가족
` 지주회사 계열회사
계열회사 기업주 가족
지주회사 중간매개조직
계열회사
자료: Hattori(1989)
소유구조의 본질이 경영지배체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한국재벌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대부분의 재벌에서는 각각의 그룹들이 서로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할지라도 재벌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대주주가 공식적, 비공식적인 지배를 통해 계열회사 전체의 의사경정에 관여한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재벌들이 소유와 지배의 일치라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재벌총수의 가족은 실질적으로 소수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지만, 상장회사가 되어버린 대부분의 계열회사에서 나머지 지분의 상당 부분이 고용인들과 불특정한 다수의 소액주주들에 의해 흩어지기 때문에 그 정도의 지분만으로도 회사를 지배하기에 충분하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의 한국 재벌총수들은 계열사의 인사권, 장기경영전략, 설비투자 등 경영의 핵심사항을 자신의 친위조직이라 할 수 있는 그룹총괄 조직의 도움을 받아 직접 결정하며 이 결정사항을 사장단회의에서 지시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대해서는 전문경영인에게 자율권을 주지만,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한다. 뿐만 아니라,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나 핵심위치에 자신의 혈족을 배치함으로써 계열사의 경영을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고 나아가 사장단회의도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둔다. 이렇게 함으로써 재벌총수는 계열회사의 경영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3) Moskowitz(1989)의 연구는 챈들러의 기업발전 모형을 한국 기업의 발달과정에 적용하였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 기업의 경우에는 챈들러가 제시한 기업변천의 요인들, 즉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자금 조달, 전문화된 경영기술, 그리고 시장경쟁의 심화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작용하지 못함으로써 한국에서는 전문경영인 제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주식시장의 규모가 대폭 확대되고 전문경영인의 세력이 새롭게 형성되는 등 한국에서도 근대적 기업구조로서의 전환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 까지도 한국 기업가들의 기업가치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한국재벌의 소유구조는 계속해서 폐쇄적일 것이며 경영의 전문화는 소유자 지배체제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자의 가치, 목적, 전략과 더불어 경영방식은 기업형태에 의해 나타나는 중요한 특성이다. 경영방식은 기업의 전략과 그것에 대한 경영가치와 병행하여 변화한다. 결과적으로 재벌의 경영방식은 경영관, 목적, 전략과 같이 조직구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재벌의 경영방식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 중의 하나는 전문경영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록 전문경영인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할지라도 이들의 역할은 여전히 소유경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그 이유는 주로 족벌체제의 소유와 지배구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전문경영이 발전하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한국의 후발산업화와 경제발전의 특수한 환경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Chandler(1977)에 의하면 주도적인 특정 기업에 의한 특정 산업의 성공적인 발전과 이런 산업에서의 지배구조는 현대적 형태의 기업들이 출현함에 따라 생산물시장에서의 생산과 분배의 통합에 기인한 것이다. 기업가들의 선도적 역할과 산업에서의 기업발전의 초기단계에 자본을 제공했던 재정적 후원자들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경우에서의 성공은 전문경영인들이 탁월한 역할을 수행했던 거대조직의 정교함과 경쟁적 역할 수행의 성공에 기인했다. 다시 말하면 전문경영인들이 기업의 의사결정과 경영에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써 결국에는 자본가인 창업주들의 권력을 능가하게 된다. 이런 전문경영인의 성장은 자본시장구조와 자본가의 경영지배권 발전에 영향을 주고, 또한 의사결정권에 대하여 최고경영자들과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기업조직에 대한 압력의 한 원천이 되었다. 재벌의 또 다른 현저한 특징은 모든 산업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요 재벌은 조선업에서 악기제조업, 정유산업에서 유제품가공업, 건축업에서 항공운수업 등에 이르는 고도로 다각화된 양상을 보인다. 1983년에 상위10대 재벌은 200개 이상의 독립된 기업들을 거느렸다. 일반적으로 이들 그룹들의 대부분은 중공업분야에 적어도 2~3개의 대규모기업과 다양한 생산라인을 가진 보다 많은 소규모기업을 가지고 있다. 주요 10대 재벌은 평균적으로 각 그룹마다 11개의 제조기업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상위 50대 재벌은 평균적으로 6개의 제조기업을 가지고 있다. 특히 상위 10대 재벌은 금융, 무역, 건설과 같은 다른 비제조업으로도 다각화되어 있다. Amsden(1989)은 발명 또는 혁신의 반대개념인 학습이 후발산업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후발산업화 국가들에서 기업집단들이 선진기업의 기술이나 판매에 익숙하지 못한 경우에, 그들은 새로운 관련 생산공정을 개발하거나 현존시장에서 고품질시장으로 진입하는 방법 등에 의해서는 성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위험을 분산시키거나 부족한 자원들을 활용하기 위해서 많은 비관련시장의 최하층단계부터 중간단계까지의 광범위한 생산다각화를 시도한다. 한국 재벌은 과거 30년간 이러한 패턴에 따라 다각화 전략을 추구하였다. 한국의 경우 다각화 전략은 국가 경제정책의 일부로 추진되었다. 재벌과 정부는 국제시장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고, 미래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기반을 창출하여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 할 수 있는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세계적 수준의 거대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따라서 정부 지원에 의해 재벌은 문어발식 다각화 전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생산제품의 다각화와 시장영역의 확장은 어떤 기업이든 성장에 필요한 과정이다. 한국에서 기업의 급속한 성장은 1960년대에 시작되었으며 대부분 대기업에 의해 주도되었다. 특히 재벌은 한국의 기업발전과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Rumelt(1974)에 의해 사용된 분석 틀을 이용하여 정구현(1987)은 대부분의 거대재벌이 비관련생산 다각화 전략을 추구하는 반면 이보다 작은 재벌들은 일반적으로 단일 또는 우세품목 생산구조를 갖는 전략에 따랐다는 것을 밝혀 냈다. 그에 의하면 기업의 다각화는 단일, 우세, 관련 그리고 비관련 다각화, 이렇게 네 가지 범주들로 분류할 수 있다.4) 이러한 분류는 상대적인 특화, 수직적 결합, 관련성의 정도에 따라 분류된다. 특화란 기업의 수입이 우세사업 단위에 의해 산출되는 정도를 말하고 수직적 결합은 기업이 생산과정의 다양한 단계를 통제하는 정도를 설명한다. 그리고 관련성은 한 기업의 핵심기술이 각 사업단위에 의해 공유되어지는 정도에 따라 측정된다. 단일전문기업은 하나의 제한된 생산라인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다각화된 기업은 다수의 생산라인을 운영한다. 다각화된 기업들은 우세, 관련, 비관련 유형으로 보다 더 세분화된다. 우세다각화는 다각화된 몇 개의 우세한 생산라인에 집중하고 연구와 교육시설과 같은 경영자원을 공유한다. 관련다각화는 다양한 경영자원과 함께 유사한 기술 혹은 시장을 공유하는 다수 생산라인을 가진 기업이다. 비관련 다각화는 거의 우세적이지 않거나 관련되지 않은 다수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가장 다각화된 기업구성형태이다. 이들 극단적인 유형 사이에는 관련생산 다각화전략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 중간규모의 기업들이 있다. <표 2>는 108개 재벌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정리한 것으로서 기업규모와 다각화 전략간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표에서도 확인되듯이 10대 재벌 사이에서 가장 지배적인 전략은 비관련 다각화전략이다. 그 다음의 재벌 중(11위~50위) 에서 17개 재벌(43%)은 관련생산 다각화 전략을 따르고, 12개 재벌(30%)은 비관련생산 다각화 전략을 따른다. 보다 소규모 재벌(51위~108위)중에서 33개 재벌(57%)은 단일전문 혹은 우세다각화를 추구하고, 19개 재벌(33%)은 관련생산 다각화 전략을 추구한다. 다각화전략의 유형과 정도는 그들이 속해 있는 산업의 속성상 차이점을 반영하듯이 각 산업분야별로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관련다각화는 그들 생산물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시장과 유통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음식료품산업에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반면 금속과 비금속산업에서는 동일한 조직적 자원을 사용함으로써 소수의 우수한 생산라인에 경영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우세다각화 전략이 선호된다. 관련․비관련생산 다각화전략을 따르는 재벌의 수는 1970년대 보다 1980년대 동안에 꾸준히 증가했다. 재벌들의 전체 수는 1974년에 87개에서 1984년에 108개로 증가했다. 관련 다각화전략을 채용한 재벌들의 비율은 위와 같은 기간에 16%에서 34%로 증가했다. 이는 재벌이 점차적으로 관련과 비관련 다각화전략에의 의존성을 더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특히 비관련 다각화전략은 재벌에겐 중요한 성장전략이다. 성장을 위한 다각화에 대한 의존도에 의하면 한국 기업이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보다는 훨씬 더 많이 비관련 다각화전략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여러 나라와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입증된다. 성장, 위험기피, 진입장벽의 강화와 같은 기업의 다각화에 대한 일반적 동기 외에 재벌의 다각화는 두 가지의 다른 환경요인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았다. 첫째는 한국 기업이 직면한 시장의 불완전성은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며, 둘째는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 지향적 성장정책은 많은 지원과 보조를 재벌에 제공했고 이것들이 더욱 더 다각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표 2> 재벌의 다각화전략, 1984
자료 : 정구현(1987) Ⅲ. 일본의 기업집단 1. 기업집단의 형성 및 성장
일본 구재벌들은 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5) 3대 일본 재벌들 즉,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는 일본 전산업 총불입자본의 23%를 차지했다. 그리고 여기에 네 번째로 큰 일본재벌인 야슈다를 포함할 경우 그 비중은 25%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4대 재벌 이외에도 아유카와, 아사노, 후루카와, 오쿠라, 나카지아, 나무라 등과 같은 다양한 규모의 재벌이 있었다. 기업구조와 경영방식의 면에서 일본 재벌은 에도시대의 상점과 유사했다. 실제로 주요 일본 재벌인 미쓰이와 스미토모는 에도시대의 상점들이었다. 메이지시대 초기부터 정부는 한 가문의 투자에 의존하지 않는 ‘합작주식회사’를 장려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상인들은 공동투자라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합작주식회사의 대중화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1893년 신상법의 실시 후에도 그들은 거의 모든 가문사업들을 계속해서 전통적인 기업형태로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규모가 큰 대가문기업들은 무한책임과 유한책임의 동업체계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모험적 사업의 투자자들은 가장과 가문구성원에게만 제한되었다. 고용된 경영인의 투자는 형식적이었으며, 실제로는 실질투자로부터 배제되었다. 이것은 가문사업의 소유주가 투자의 순수성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영의 지배는 가장에게만 있거나 오래된 가문사업체의 경우에는 전문경영인에게 있었다. 이것은 에도시대의 관습에 의해 성립되어진 특수한 경영지배체제였고, 주식소유의 분산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형태의 경영지배는 이후에 거대 일본재벌이 된 가문사업의 경영과 정책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공식적인 측면에서 일본 구재벌의 자본소유권은 그 재벌의 가문구성원에 의해 장악되었고 관리는 소유주에 의해 위임된 경영지배권을 가진 경영인에 의해 수행되어졌다. 그와 같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대 가문기업들은 가문의 규약을 바탕으로 각 가문구성원들의 행동을 규제했다. 1876년부터 1879년 사이의 국립은행 붐과 1887년에서 1889년 사이의 면화공장과 철도 붐을 타고 일본에 도입된 합작주식회사는 1893년 일반회사법 제정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동안과 그 이후의 경제적 붐을 타고 다른 산업기업들로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갔다. 결론적으로 합작주식회사는 그것이 도입된 이후 약 40년간에 걸쳐 농업과 소매업을 제외한 일본 경제의 주요 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높은 팽창률은 영국에 비해 몇 배 더 빠른 것이었다. 합작주식회사제도의 급격한 발전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일본의 신흥산업들은 공개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을 통해 대규모회사로 시작했다. 둘째로는 최신 서구 산업기술의 도입은 근대적 형태의 기업조직을 수반했다. 셋째로 과거 사무라이들의 교육을 받은 후손들은 전통적인 가문사업보다는 합작주식회사에 고용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넷째로 산업화 초기 단계에 외부의 투자를 바탕으로 성장한 가문기업의 구성원들은 합작주식회사 형태의 새로운 산업투자로 방향을 전환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쓰이와 미쓰비시는 많은 독립회사들을 자신들의 산업다각화를 위한 두 개의 통로 즉 그들 소유의 은행과 종합무역상사(소고쇼샤)를 통하여 인수하고 지배했다. 이런 기업들은 보통 이윤이 적은 회사창업 단계를 넘어선 데다가 구재벌은행에 의해 충분한 자금이 공급되었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높은 이윤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해 갔다. 그리고 그들은 주식의 공개매각 없이 그들 자신의 이윤을 재투자함으로써 시설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일본재벌 계열회사들의 자립재정 능력이 성장함에 따라, 구재벌은행의 역할도 점차로 20세기 초 이후부터 감소했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비재벌은행은 러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빈번했던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도산되었기 때문에 전체 일본 국민의 예금은 점차로 주요 구재벌은행으로 집중되었다. 1차 세계대전 중이나 그후로 구재벌은행이 새로운 산업개발에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1920년대의 전등, 전력, 전철산업 등의 개발은 구재벌은행에 의해 보증 날인된 회사채 발행에 의해 자금이 조달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재벌 자신들도 여타 새로운 산업부문, 특히 중공업부문에 집중투자를 했다. 일본 구재벌의 지주회사는 1차 세계대전 직전에 형성되었으며. 일본 구재벌은 전쟁 중에 급속히 성장하였다. 일본 구재벌들은 1909년에서 1920년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통합된 일본 구재벌은 1893년에 설립된 미쓰비시이며, 미쓰이와 스미토모는 1909년 1921년에 각각 설립되었다. 겨우 30~40년 동안에 일본 구재벌은 거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미쓰이는 직물과 금융사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스미토모는 동제련과 광업에서. 미쓰비시는 해운사업과 그리고 관련산업의 다각화를 통해 보다 유리한 분야로의 진출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점령정책은 일련의 민주화조치들에 기초했었다. 이것은 노동조합 합법화와 토지개혁의 도입 등을 포함하고 구재벌의 해체도 이 민주화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사업체로서의 일본 구재벌은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그들의 자리에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푸요, DKB, 산와로 구성된 6대 기업집단들이 나타났다. 각각의 거대 기업집단은 계열이라는 형태의 수직적으로 통합된 계열회사와 자회사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계열회사와 자회사는 장기간에 걸쳐 계열소속이 아닌 중소규모의 회사들과의 하청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그 하청계약관계는 그들이 생산과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따라 3등급으로 구별되었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을 지배했던 구재벌로부터 직접적으로 성장했다. 전후 미국 점령군이 이들 구재벌을 많은 독립기업으로 분할하려고 했지만, 구재벌들은 미군 점령이 끝난 후에 비록 전쟁 전에 비해서 중앙집중화는 떨어지지만 그들의 네트워크를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3개 그룹―푸요, DKB, 산와―은 전후에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이들 신흥그룹들은 은행그룹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더욱이 이 3개 그룹은 각각 2개 이상의 소규모 재벌이 그룹화한 형태였다. 푸요를 예로 들자면, 과거 야수다그룹을 중심으로 생성되었고, DKB는 후지그룹과 가와사키그룹의 많은 회사들을 물려받았다. 이 6대 그룹 이외에도 약간 뒤에 성립된 보다 작은 독립적 기업집단들이 있었다. 이들은 제조업분야에서 시니데추, 토요다, 닛산, 히다치 등과 유통 및 서비스 부문에서 도큐, 세이브 등과 같은 그룹들이다. 이 같은 독립적인 금융 및 산업그룹들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산업분야를 수직적으로 통합한 기업의 네트워크를 대표한다. 독립적 그룹들은 계열회사로 조직되고 그 각각은 대개 대규모의 모회사와 수직적으로 제휴된 계열회사들로 구성된다. 이들 독립적 그룹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안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했다. 그 회사들 중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6대 기업집단과 연관되어 있지만, 이들의 빠른 성장은 그들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전쟁 전에 영향력 있는 금융기관이 부족했던 구재벌들은 다른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재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사노, 닛산, 오쿠라, 모리 등과 관련된 기업들은 후지은행과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이와 유사하게 후루카와, 스지키, 후지야마사들은 다이이치은행과 통합했고, 반면 관서지방의 대기업들은 산와은행과의 연계를 형성했다. 이 같은 통합과정은 마지막으로 후지그룹에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3개 은행중심의 그룹들은 이 시기에 완전한 콘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다만 준콘체른이라 할 수 있는 통합의 중간단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구재벌해체로 독립하게 된 대기업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기업통합을 시행했다. 첫째, 그들은 계열화를 통해 소규모 기업들과 수직적 관계를 형성했다. 둘째, 그들은 다른 대기업들과의 상호 주식보유를 통해서 수평결합을 형성했다. 이런 수평결합은 기업집단의 핵심 대기업 사장들이 구성원인 사장단회의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6) 구재벌들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던 1950년대 초, 주로 광업, 경공업에 기초한 전쟁 전의 산업구조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의해서 본질적으로 전환되었으며, 이것은 구재벌들이 불가피하게 새로운 산업구조하에서 재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합성섬유, 석유화학, 가전제품 그리고 자동차 등과 같은 새로운 산업들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중화학공업에 대한 민간투자를 빠르게 증가시켰다. 이러한 산업구조변화에 대응해서 구재벌들의 내부구조도 당연히 재조직되었다. 경공업과 석탄, 비철금속업과 같은 광업은 구재벌 내에서 그들의 지배적 위치를 잃어버렸으며 대신 석유화학, 전기, 전자기계공업들이 점차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동시에 대규모 독립기업들은 구재벌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1987년에 6개 주요 기업집단들로 구성된 사장단회의 내에서 비금융권 회원기업의 수는 163개였는데 이것은 일본의 모든 비금융권 기업들 중에서의 비중이 0.006%에 해당하지만, 모든 비금융권 기업들의 총자산의 13.28%, 총출하액의 14.68%, 총불입자본 중에서 15.19%를 차지했다. 이러한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6대 기업집단들은 전쟁 전 구재벌의 영향력에 필적할 만큼 일본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것은 1987년 총자산 기준으로 상위 100대 비금융권기업 중에서 54개 기업이 6대 기업집단의 회원기업이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표 3> 참조). <표 3> 6대 기업집단의 비중 : 1987a
주 : a. 이 표는 금융관련 회원사를 제외했다. 6대 기업집단은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푸지, 산와, DKB이다. 자료: 이규억․이재형(1990)
그러나 대규모 기업집단들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의미에서의 구재벌의 부활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기업집단 내에서 그들간의 성격상의 차이는 상당한 것이었다. 이것의 직접적 원인은 강력한 금융계열그룹이 형성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점금지법’하에서 2차대전 전 구재벌 본사와 같은 지주회사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화학공업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 또한 그에 따라 산업조직을 더욱 경쟁적으로 만든 기술혁신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본의 기업집단은 경쟁적 과점체제로 발전하였다. 새로운 그룹들은 과거 구재벌 이외의 중화학공업 관련 대기업들로 형성되었다. 그룹간의 경쟁은 증가했고 과거 구재벌에 비해서 회원기업의 자율성이 강조되었다.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지배는 제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룹내부에서 조차도 경쟁은 증가했고 새로운 산업계열이 기존 그룹의 외부에서 형성되었다.
2. 기업집단의 특징 전쟁 전의 일본 구재벌은 가족소유 체제였고 기본적으로 가족이 소유한 부를 확대하고 축적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현대적 복합기업보다 원시적인 조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일본 구재벌들은 금융독점자본의 형태로 이들의 목적은 단일한 생산부문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산업부문으로 생산을 다각화하고 자본을 광범위하게 분산시킴으로써 투자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있었다. 또한 일본 구재벌에서 지속적인 상업자본의 중요성은 미쓰이물산이나 미쓰비시상사와 같은 구재벌 종합무역상사의 강력한 역할에서 확실히 나타난다. 전쟁 전의 일본 구재벌은 다른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난 금융자본의 형태와는 다른 여러 가지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본 구재벌의 핵심은 본사나 지주회사였다. 본사는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기업들의 대규모 네트워크를 지배했으며, 계열회사들을 간접적으로 지배했다. 여기서 계열회사란 지주회사가 직접적인 지배권을 갖지는 않지만 이들에 대해 지주회사가 상당한 이권을 갖고 있는 관련회사를 의미한다. 어떤 경우에는 한 가문이 지주회사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했고 이것은 명백히 그 가문에게 막강한 지배권을 부여했다. 이들의 막대한 개인적 자산과 소득은 전쟁 전 일본에서 극심한 부의 집중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전쟁 전 구재벌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구재벌은 몇몇 가족의 독점적 지배를 통한 봉건적 사상 속에서 운영되어졌으며 이 특징은 현대의 기업경영과 부합되지 않았다. 둘째, 구재벌 내부의 지배메커니즘은 피라미드 형태로서 최상층에는 지주회사, 그 다음으로 자회사, 계열회사, 방계회사를 포함하는 여러 계층의 회사들을 계층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를 띠었다. 셋째, 구재벌은 거의 모든 산업에 문어발 식으로 참여했고 그들이 지배한 산업 내에서 다른 기업들은 재벌의 지배에 종속되거나 단지 제한적으로 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 넷째, 구재벌은 제조업부문뿐만 아니라 금융부문도 지배했다. 구재벌은 은행을 소유했고 신탁회사, 보험회사 그리고 다른 금융기관도 소유했는데, 이것들은 그들 자본의 주요 원천과 다른 회사를 지배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1951년에 발효된 미․일 평화조약과 함께 일본 기업들은 기업통합을 시작했으며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처럼 과거에 익히 알려진 상호들이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1955년 무렵 긴요우카이(金曜會), 니기카이(二木會), 하주주우가미(白水會)와 같은 사장단회의가 조직되었고,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졌다. 3개의 전쟁 전 일본 구재벌들은 주요 기업집단으로 그들의 위치를 재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 전 일본 구재벌을 지배했던 과거의 가문들과 지주회사들은 과거와 같은 소유권과 권력을 완벽하게 회복하지는 못했다. 전후 일본 기업집단들은 많은 면에서 전쟁 전과는 달랐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롭게 형성된 기업집단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기업집단내의 거대기업은 서로 각기 다른 기업의 지분을 소유함으로써 조직적으로 연계된다. 또한 연계된 기업집단 전체를 위해서 기업 내부간 상호주식보유는 순환형태를 취한다. 둘째, 각 기업집단은 계열회사의 사장들로 구성된 사장단회의를 갖는다. 각 사장들은 자기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동료계열사들의 지분을 대표하므로 이 사장단회의는 실제적으로 대주주들의 이사회로서의 역할을 한다. 셋째, 대규모 시중은행들은 기업집단들의 최대 주주들이므로 기업간 상호주식보유 관계의 핵심을 형성한다. 동시에 그들은 기업집단 내에서 다른 계열사들의 자본수요를 조달하는 금융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넷째, 시중은행, 종합무역상사들과 더불어 기업집단은 상당히 많은 산업에서 계열회사들을 가진다. 따라서 그들은 단순한 거대 복합기업일 뿐만 아니라, “한 세트주의”로 불리는 종합적인 산업복합체를 형성한다. 현재 활동중인 일본의 기업집단은 아주 낯익은 계열사 금융기관과 종합무역상사들의 상호를 오랫동안 사용해 오고 있기 때문에 전쟁 전의 일본 구재벌과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기업집단과 전쟁전의 구재벌과는 여러 측면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 현재 기업집단은 과거와는 달리 지주회사나 지배가문이 없다. 계열사들의 주식은 상호 보유되고 따라서 계열사들 사이의 관계는 전쟁 전의 구재벌구조가 수직적이었던 것에 반해 수평적인 구조이다. 계열사들의 사장들이 구성원인 사장단회의가 연합회의의 성격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이지만 이 회의를 총괄하는 특정 개인은 없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집단들은 동업자들 사이에 ‘민주적 협력모형’을 제시한다. 또한 과거의 구재벌과 현재의 일본 기업집단들 사이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소유구조에서도 발견된다. 구재벌이 상층 지주회사들로부터 일방적인 수직보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오늘날의 일본 기업집단은 기업간 상호주식보유를 통해 그들 계열회사에 의해 소유된다(<그림 2> 참조). 1992년 현재 6대 기업집단의 평균 집단내 주식소유율은 22.2%이었다. <그림 2> 일본 기업집단의 소유구조 a. 2차 세계대전 전 : 피라미드 형 구조 b. 2차 세계대전 후 : 별모양 구조 소유자가족 그룹회원사
지주회사 자회사와 협력회사 자료: 핫토리(1989)
둘째, 현재 기업집단의 시중은행들은 과거 구재벌에서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일본 구재벌의 경우에는 그룹 내부의 계열사들이 지주회사에 의해 자금을 분배받았기 때문에 비록 구재벌 소유의 은행이 계열회사들 중의 하나였을지라도 자금에 대해서 구재벌 소유의 시중은행에 의존하지 않았다. 한편 기업집단들 내부의 계열사은행은 계열사들의 주거래은행이다. 셋째, “한 세트주의”는 기업집단의 한 형태로서 출현했다. 구재벌 가문들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위험성이 높은 신규사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업집단의 경영자들은 위험성이 있는 분야에는 자신들의 재산을 직접 투자하지 않았으므로 위험기피적 양상을 덜 띠게 된다. 새로운 사업에 착수하고 생산능력을 증가시키려는 의지로 충만된 경쟁정신은 기업집단의 계열회사 경영자들에게 각 기업집단들이 모든 경제활동의 주요 방면을 대표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완전한 세트를 위해 수평적으로 다각화하는 것을 고무시켰다. Ⅳ. 미국의 대기업7) 1. 대기업의 형성 및 성장 미국의 경우 근대적 대기업의 등장은 교통통신, 대량분배, 대량생산, 그리고 뒤이은 대량생산과 대량분배의 결합의 순으로 일어났다.8) 미국과 같이 국토가 큰 나라에서 교통통신의 발달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방대한 지역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기업이 담당할 경우 규모의 경제 때문에 기업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자금조달의 어려움 때문에 정부 및 해외자본의 역할이 커졌다. 19세기 후반부터 빠른 속도로 건설된 전국적인 철도, 전산망은 한편으로 시장을 확대하여 생산 및 분배에서의 혁신을 가능케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목, 건축, 철강산업을 활성화하고 투자금융시장을 발달케 하였다. 선점의 이득이 절대적이었던 철도와 같은 자연독점산업에서 투자자금 확보경쟁은 당시 미국의 상업은행들이 방대한 장기시설자금의 조달을 감당할 만큼 발전할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투자은행을 통한 주식, 사채의 발행으로 필요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투자은행은 이후 각 산업부문의 기업대형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철도산업 자체가 근대적 대기업의 산실이었다는 점이다. 외부자금의 대규모 동원 때문에 재무관리나 감사가 중요하였을 것이며, 초기부터 열차를 단선으로 운행하였기 때문에 충돌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교통서비스 운영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한편 기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경영조직의 정비도 필요하였고 전문경영인의 광범한 고용이 필수적이었다. 기술진보와 회계방식의 혁신 등도 촉진되었다. Chandler(1965)는 이를 가리켜 철도산업이 미국 경영혁명의 효시라고까지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대량분배의 등장, 즉 유통구조의 혁신은 대규모 도매상과 대량소매상을 등장시켰다. 1870년대까지 이루어졌던 가장 중요한 유통구조상의 변화는 수수료를 받고 상품을 판매하던 위탁도매상이 모두 자기 책임 하에 구매와 판매를 수행하는 전업도매상으로 전환되었다. 이들은 전에는 담당하지 않던 포장, 상표부여, 광고, 신용판매 등의 기능을 포괄하는 대규모 전업도매상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신속한 재고처리에 있었다. 이것은 철도 및 전신으로 대표되는 교통통신의 발달과 상품거래소, 도착계약 등 거래기술의 발달에 의해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그리고 유통경로의 단축, 상품운송의 속도 및 정확성 제고가 취급 가능한 상품의 양을 증가시키고 이에 따라 단위당 비용이 감소하고 이윤이 증가한 것도 그와 같은 전환의 유인을 제공하였다. 이들 도매상들은 서부로 이동하였고 국내와 해외의 직접생산자로부터 상품을 매입할 수 있는 구매망과 농촌지역과 도시의 소매점을 모두 포괄하는 확장된 판매망을 조직하였다. 대도매상들은 19세기 후반의 미국 유통구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1880년대 들어오면서 이들의 지위는 유통경로의 양극단에서 출현한 두 유형의 경쟁자에 의해 잠식되기 시작했다. 그 하나는 자체 구매망을 조직,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매하여 최종소비자에게 대량 판매했던 대소매업자이고, 다른 하나는 원료의 구매망과 제품의 판매량을 건설하기 시작한 제조업자였다. 대소매상들은 제조업체에서 상품을 구매, 소비자에게 직접 연결해 줌으로써 유통구조를 혁신시킨 새로운 형태로서, 미국에서 출발한 백화점, 통신판매점, 연쇄점들이 그 효시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백화점은 도매업자가 자신이 취급하는 상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 소매점을 설립한 후 점차 여러 가지 상품을 추가적으로 판매하여 백화점으로 발전한 경우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의류나 잡화를 판매하던 소규모의 소매상이 가구, 보석 등의 추가적인 매장을 만들면서 백화점으로 발전한 경우가 있다. 전자의 예가 필라델피아에 대규모의 소매점을 건립했던 잡화도매업자 마샬 필드(Marshall Field) 의 경우이다. 한편 1858년에 뉴욕에 잡화소매상을 설립한 이후 1860년대를 통해 거래상품을 늘리고 매장을 확장하여 백화점으로 발전시킨 메이시(Rowland Macy)의 경우는 후자의 예에 속한다. 또한 통신판매점은 백화점보다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교통통신수단을 이용하고 농촌시장이 중요했던 미국적인 상황에 대응했던 대소매상의 형태였다. 통신판매점은 생산자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상품을 확보하고 자신들이 취급하는 상품의 목록을 수록한 안내서를 발송하여 우편으로 주문을 받고 역시 우편으로 상품을 배달하였다. 1890년대를 통해 통신판매점은 크게 확산, 성장하였다. 이때 부상한 시어스(Sears, Roebuck & Company)는 1899년까지 24개의 판매부서를 갖춘 통신판매점으로 발전하였다. 통신판매점은 제조업자들과의 접촉은 물론 자신들의 구매망 조직을 통해 필요한 상품을 확보하였으며 시어스처럼 직접 공장을 건설하여 필요한 상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상품의 구매, 주문의 접수, 상품 발송 등의 제반 업무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대량의 상품을 빠르게 판매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선구적인 통신판매점들은 백화점과 대도매상들의 매출액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연쇄점(chain store)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 출현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성장하였다. 연쇄점은 도매상이나 통신판매점과는 달리 애초 전국적인 시장보다는 지역적인 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910년대를 통해 연쇄점은 크게 성장하여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춘 연쇄점이 늘어났다. 1920년대에 연쇄점은 다른 어떤 형태의 대소매상보다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미국 대소매상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농촌시장의 퇴조가 시작됨에 따라 주요 통신판매점은 수백 개의 소매연쇄점을 각지에 설립하였다. 이러한 소매업의 혁명은 유통산업에서 규모의 경제에는 단순한 크기보다 재고순환의 속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광고의 대규모화, 즉 판매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경쟁에 살아남는다는 것이었으며, 이는 급속히 성장하는 시장의 선점이 경영의 관건중의 하나임을 보여주었다. 대량생산은 기술혁신이 필수적이므로, 다른 산업보다 일찍 대량생산이 도입되는 산업들은 명백히 구별된다. 연속공정산업의 경우 고속도생산(high speed through-put)이 가능케 되며, 수직결합에 의해 연속공정이 된 산업들, 예를 들면 철강산업이나 자동차산업들에서 대규모 고속도생산이 가능케 되었다. 생산과정에서 복잡한 전문 부서간에 자재 및 반제품의 흐름을 신속히 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결국 생산에서의 경영혁신, 또는 노동통제에 있어서의 ‘과학적 관리’가 시작되었다. 록펠러 등 정유재벌의 신경이 주로 공장설계, 에너지 확보 등에 집중되었다. 한편 대량생산에서의 표준화, 전문화, 과학화와 함께 전문경영의 대두가 확산되었다. 마지막으로 생산과 유통의 결합은 1880년대에 제조업자들이 그들의 유통망을 건설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결합은 주로 기존의 유통망이 제조업자들의 공급을 충분히 소화해내기 어려웠던 산업들에서 시작되었다. 이것들에는 연속공정기계를 도입하여 대량생산을 행했던 산업들과 유통에 있어서 특별한 주의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을 생산했던 산업들이 포함된다. 전자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른 시장확대의 가능성에 대응하여 새로운 기계를 도입, 연속공정에 의한 대량생산을 시작한 제조업자들이 기존의 유통망에 의해서는 그들의 공급상품이 제대로 처분되지 못함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판매망 건설로 유통상의 애로를 극복한 경우이다. 후자는 부패성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전국적인 유통을 위해서는 냉장차의 도입 등 특별한 수단이 필요했으며, 고가의 복잡한 기계들은 사용방법의 설명, 소비자 금융, 애프터서비스 등이 판매의 전제 조건이었는데 기존의 유통망이 그 같은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없었으므로 제조업자 스스로 판매망을 건설한 경우이다. 연속공정기술의 도입에 의한 대량생산이 판매, 구매망의 건설로 이어진 산업에는 담배, 성냥, 제분, 통조림 제품 등이 있다. 1881년 담배산업에 참여한 듀크(Duke)는 두 대의 본삭(Bonsack)기계로 하루 12만 개의 궐련을 제조하여 곧 전 미국시장을 거의 독점하였으며, 1885년에는 본삭 기계의 독점적인 사용권을 획득했다. 생산량은 계속 치솟았으며 판매가 애로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듀크는 뉴욕에 경영사무소를 설립하고 주요 도시에는 판매사무소를 건설하여 광고 및 판매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의 결합을 통해 낮은 상품가격과 높은 이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연속공정기술이 도입되었던 제분업, 통조림제조업, 오트밀제조업, 필름제조업 등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초기부터 생산과 유통을 통합했던 선도적인 기업들은 이후로도 계속 우세한 지위를 유지했고 이들에 의한 과점적인 산업구조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현재까지도 귀에 익은 여러 기업들은 모두 이시기에 생산과 유통의 결합을 실현함으로써 과점적인 지위에 오른 것이다. 고가의 복잡한 기계산업의 유형에는 재봉틀, 농기계, 사무용 기계, 자전거 등의 내구소비재와 엘리베이터, 펌프, 보일러, 인쇄기, 전동기계와 그 장비 등의 자본재 산업이 있었다. 이 유형의 상품들은 대부분 새로운 상품이었기 때문에 집중적, 조직적 광고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애프터서비스와 고가품이 대부분인 만큼 할부판매 등의 소비자금융도 요구되었다. 따라서 이 유형의 산업들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자체의 유통망 건설이 절실했다. 이들의 새로운 판매조직망은 일반적으로 독점판매권(franchise)을 가진 소매업자들을 포함하고 있고, 대량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공급할 목적으로 대규모의 구매조직을 건설하였다. 이와 같은 대량생산과 대량분배의 수직적인 기능결합으로 말미암아 광고 및 판매, 신용 등을 담당하는 중간경영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경영계층(managerial hierarchy)의 생성이 촉진되었다. 이러한 생산, 판매, 그리고 그 결합의 대규모화와 더불어 나타난 대기업간의 경쟁은 궁극적으로 카르텔, 트러스트 및 기업합병 등을 통한 독점적 형태의 산업조직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스탠다드 오일의 트러스트(1882년)를 효시로 한 트러스트 운동은 셔먼법(1890년)에 의해서 좌절되자, 합병운동은 지주회사 형태로 대규모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유에스 스틸사, 제네랄 일렉트릭사, 듀퐁사, 코닥사 등 거대기업이 형성되었다. 그후 셔먼법은 지주회사 형태의 기업조직도 위법으로 간주하게 됨으로써 구성기업들은 단일사업기업 형태로 재편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단일사업기업으로 통합된 형태가 미국의 거대기업의 기본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에서는 복수사업단위, 복수직능부 형태의 거대기업이 다수 출현하고, 그것이 대량생산, 대량판매를 통하여 미국에서 상품의 생산 및 유통을 관리하는 표준적 제도가 되었다. 미국의 산업기업은 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경제적 번영기동안 시장의 큰 확대, 새로운 기술진보, 특히 전기, 화학, 자동차 등 신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의 발전이라는 조건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거대통합기업은 설비를 확대하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면서 내부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기업규모의 거대화에서는 합병을 통한 외부성장이 더욱 중요하였다. 이후 기업규모는 계속해서 거대화되고 그와 함께 산업집중이 진전되고 과점체제는 확대되었다. 이시기에 거대기업이 추구한 성장전략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기존의 주력제품에 집중하여 대량생산, 대량판매 한다는 수직통합기업이 추구해온 전략, 둘째는 신제품을 개발한다는 다각화전략, 셋째는 국내외 원격지에서의 신시장의 개발, 즉 해외시장의 개척과 다국적 기업화 전략이다. 이들 전략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다각화전략이었으며, 주로 중화학공업 부문의 기업에서 추구되었다9). 현대적인 대기업은 1950년대 이후 새로이 발전하여 성숙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내외 시장의 확대, 기술혁신에 따른 각종 신기술의 산업화, 중화학공업의 새로운 발전이라는 조건에서 미국의 거대기업은 대량생산과 제품다각화를 추진하면서 성장하였다. 1960년대의 거대기업은 합병을 통해서 나타났고 주로 중소규모 기업의 합병에 의한 복합기업적 합병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전개되었다. 기업규모는 더욱 거대화되고 그들의 과점적 지위는 더욱 상승하였다. 과점적 거대기업간의 경쟁이 이루어지는 속에서 그들 상호간의 지위는 크게 변동하였다. 그들 기업은 다각화를 추진하고 조직능력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높이면서 선두주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이 시기에도 기업의 수직통합, 복수생산단위, 복수직능 기업화는 진전되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다각화된 복수 산업기업의 성장이었다. 기업의 연구개발 노력과 함께 더욱 촉진된 다각화 비율은 30%(1949년)에서 86%(1970년)으로 크게 상승하였다. 다각화의 진전과 함께 IT&T(International Telephone & Telegraph)사의 예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거대기업의 다국적화도 진전되었다. 그 대부분은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산업기업들이었다. 한편 다각화의 추진, 다방면으로의 확장, 주가상승 및 세금 경감, 반트러스트법의 적용 대상으로부터의 제외 등의 이점을 노린 복합기업이 성장하였다.
2. 대기업의 특징
오늘날 미국 대기업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다품종기업은 주로 195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예를 들어 듀퐁(Dupont)사의 경우, 1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과잉시설이 들이닥칠 것에 대비 연구개발이나 판매부문의 인적, 물적 자원을 재분배할 방법을 모색하여 무연화학과 고성능 폭약으로부터 염료, 페인트 등 관련 제품으로 다각화를 시도하였다. 다각화와 함께 기업조직의 개편이 불가피하였는데 점차적으로 이전의 기능적 부서조직(functional departmental structure)으로부터 제품별 사업조직(product division structure)으로 변하였다. 이는 각각의 독립적인 제품 사업별로 회계, 구매, 제조, 판매, 연구개발 등의 기능부서를 설치하고, 중앙기획실은 장기기획조정 및 평가만을 담당케 하는 구조로서 M-형(multidivisional form) 조직이라 불리 운다(<그림 3> 참조). M-형 조직의 여러 장점들 중 특징적인 것으로는 자본과 경영의 내부시장 형성에 의한 규모의 경제 실현, 장기적 평가․기획의 기능, 다각화전략의 제도화 등을 들 수 있다. M-형 조직의 다각화기업은 주로 관련 산업으로의 다각화 또는 신상품 개발의 형태로 2차 세계대전 후 선진공업국에 광범위하게 등장하였고, 특히 전기, 기계, 화학, 자동차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림 3> 미국 대기업의 M-형 조직
사장 집행위원회
부사장 자문역
부사장 재무담당임원 법무 인사 구매 광고 PR 공학 개발 운수 부동산 서비스 재무 회계
증권 세무 감사 보험 통계 회계 수금 비용분석
폭약 필름 섬유 도료 합성수지 화확
회계 구매 생산 판매 연구개발 운수 회계 구매 생산 판매 연구 개발 운수 자료: Chandler(1977, p.458). Williamson(1975)은 수직적 결합을 중간재시장 실패의 증거로 보며, 복합기업을 자본시장 실패의 증거로 보았다. 복합기업은 시장의 자본배분 기능을 대체하는 소형자본시장을 포함하고 있다. 다수사업부 조직형태(M-형 조직)는 계열회사들로부터 합동자금을 형성하고 투자의 수익성을 위해 자금을 재분배한다. 복합기업은 자금을 계열사들 사이에서 회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금흐름을 유지 할 수 있으며 고이윤이 생기는 계열사로 자금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다각화가 다수사업부로의 분할을 초래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될 수 있다. 제품의 몇 가지 생산라인의 생산과 분배를 위해 조정, 감독, 배분하는 데 요구되는 의사결정의 빈도와 복잡성은 애초에 단일 혹은 우세다각화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앙집권적 조직의 각 기능부서장들인 중간경영자들의 능력으로는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최고경영자(사업부서장, 사장, 회장)들은 운영상의 의사결정에 몰두하게 되어 기업의 성장과 장기적인 번영의 유지를 위한 계획을 수립할 시간이 없게 되었다. 결국 M형-조직은 동일시장에 대한 제품의 각 생산라인의 운영에 관한 감독과 협조를 위한 의사결정을 통합된 단일 부서에 할당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했다. 더욱이 M형-조직의 채택은 직접투자, 합병과 인수(M&A)를 통해서 다각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새로운 생산라인들이 M형-조직으로 쉽게 통합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직접투자에 의한 다각화는 생산조직 뿐만 아니라 유통과 연구조직의 설립을 요구한다. 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새로운 사업 부서를 설립하게 한다. 성장이 M&A를 통해 이루어졌을 때 계열사들의 영역과 활동을 합리화하고 개편하는 것에 추가하여 또 다른 중요한 관건은 효율적인 기획조정실을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의 두 경로는 기업들이 하나의 그룹 내에서 관련산업들로서 같이 운영되고 하나의 확대 부서를 통해 관리됨으로써 성장이 이루어진다. 듀퐁사와 대조적인 길을 통해 M-형 다품종 기업으로 전환한 예로는 제너럴 모터스(GM)가 있다. GM은 중앙기획실을 확충하여 경영정보 관리 및 장기계획에 힘쓰는 한편, 자동차 시장을 심층적으로 파악하여 각 소득계층의 기호에 적응하도록 캐딜락, 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세브롤레이 등으로 차종을 다양화 하였다. 이와 함께 각 차종에 따라 제품별 사업조직을 만들어 각각 독립 회계에 의거 경영하게 하였다. 이 결과 GM의 미국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1921년의 12.7%에서 1927년에 43.5%로 급상승하였으며, 단일 모델을 고집하고 방만한 경영을 고수하던 포드(Ford)사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55.7%에서 9.3%로 떨어졌다.10) 1960년대 이후로는 관련산업 다각화가 아닌 비관련 다품종이 특징인 복합기업(conglomerate)들이 눈에 띠게 증가하였다. 이들은 다각화보다는 주로 기업합병에 의해 생성되어 왔으며, 이런 기업합병은 주로 단기적 금전적 이득을 위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복합기업이 형성된 원인들 중 중요한 것으로 다음을 들 수 있다11). 첫째는 기업이 사업전망이 좋지 않은 본래의 사업분야에서 방어적 전략으로 유리한 새로운 분야로 투자기회를 찾아 다각화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야심적인 소수의 경영자 집단이 다각화를 기업성장을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보고 다방면으로 확장하였다는 것이다. 셋째는 새로운 자산을 창출하지 않아도 타기업을 매수함으로써 그들은 큰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넷째는 복합기업은 경쟁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어 반트러스트법의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복합기업의 조직구조는 사업부제에 기초한 다각화기업의 조직구조와는 다른 것이었다. 복합기업은 재무, 법률부문 등 현업과 관계없는 부문으로 구성된 본사가 그 밑에 매수된 다수의 비관련기업을 거느리는 기업그룹으로서, 본사의 규모는 작고 구성기업의 자율성은 다각화기업 사업부의 그것보다도 컸다. 복합기업의 본사는 재무, 법률, 경영계획 담당 전문스탭을 가지고 그들의 보좌를 얻어 산하기업의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자원배분이라든가 산업, 시장분야에서의 진입․퇴출을 결정하였다. 따라서 복합기업은 새로운 산업 또는 시장으로의 진입과 기존 산업 또는 시장으로부터의 퇴출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복합기업의 본사에는 구매, 수송, 연구개발, 판매, 광고, 생산 등 현업과 관련된 스탭기구가 없어 사업부내의 감시, 평가, 영업성적의 개선조치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 자본비용을 줄이고 경영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가능케 한다는 이점이 있으나 실물 경제적 효율에 바탕을 둔 관련 다품종기업보다 수익률이나 국민경제 기여면에서 뒤떨어진다는 실증적 연구들이 있다. 이것은 복합기업이 관련 산업에만 치중하는 기업보다 연구개발투자와 장기 시설투자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12) Ⅴ. 기업집단간의 비교 한국 재벌이나 전쟁 전 일본 구재벌의 계열기업들은 법적으로는 각각 독립된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기업을 한 사람의 총수나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단일기업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반면 전후 일본 기업집단의 회원기업들은 법적으로 각각 독립된 기업이지만 서로 각기 다른 회원기업의 지분을 소유함으로써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회원사 사장들로 구성된 사장단회의가 기업집단 전체를 위한 실제적인 대주주들의 이사회로서 역할을 한다. 한편 미국의 복합기업은 반트러스트법의 규제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단일사업기업의 형태로 되어있으나 실제적으로 보면 재무, 법률부문 등 현업과 관계없는 부문으로 구성된 본사가 그 밑에 다수의 비관련기업을 거느리는 기업그룹이다. 한국 재벌이나 일본의 구재벌은 “가족자본주의 경영”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들 나라에서 화학, 전기 및 자동차 등의 산업에서 대기업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는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교통통신의 발달도 국토가 좁은 관계로 국내시장의 확대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으며, 제조업체가 직접 유통업에까지 진출할 틈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으므로 제조업자들의 유통업 진출도 미미하였다. 제조업체가 주도하는 수직적 통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서 기업의 대형화도 제조업 부문 내에 머무는 정도로써 국내시장의 규모가 크게 확대되지 못한 만큼 대형화의 규모도 크게 제한되었다. 기업의 대형화가 이렇게 제한된 것이었으므로 그에 소요된 자금규모도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결과로 지배적 대주주의 지분율은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고 전통적 소유경영방식 또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 지배적 대주주들이 규모의 경제를 최대한 누릴 만큼의 신속한 규모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면도 강하게 작용하였다. 기업이 대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경우만큼 그 규모가 크게 확대되지 않았고 그 업무가 여러 업종에 복잡하게 걸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영방식을 본질적으로 전환할 필요성은 제기되지 않았다. 경영업무의 분화 및 전문화가 진전되지 않았으며, 소유경영자가 기업의 모든 경영업무를 직접 관장하는 방식이 유지되었으므로 중간단계의 경영조직은 처음부터 형성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그 규모 면에서도 규모․범위의 경제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전문경영인력을 조직화하는 측면에서도 낙후됨을 면치 못하였다. 기술․경영 교육을 등한시하는 교육전통이 전문경영인력의 양성을 외면하는 것도 경영조직이 현대화되지 못하는데 대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미국의 대기업들이 제조, 유통, 경영혁신 등에 투자를 강화하여 조직역량을 축적하고 여러 업종에 맹렬하게 뛰어들면서 성장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들은 눈앞의 규모․범위의 경제조차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점의 이익을 확고하게 장악하는데 실패하였다. 선진국에서 대기업의 소유권은 다양한 주주에 의해서 소유되고, 기업경영은 전문적인 경영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짐으로써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다.13) 각국은 특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을 반영하여 독자적인 기업경영 형태를 발전시켰으나, 한국과 같이 개인이나 그 가족이 재벌을 지배하는 ‘개인자본주의’가 계속 유지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본은 ‘법인자본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법인상호간의 주식보유가 일반적인 형태이고 직원출신의 경영자가 갖는 경영권은 역시 안정적이다. 미국 또한 ‘경영자본주의’라고 할만큼 전문경영인의 위치가 확고하며 이사회가 경영권의 안정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다. 유럽 특히, 독일은 금융기관이나 지주회사를 통해 기업경영은 자율책임체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소유는 국민에게 분산된 ‘금융자본주의’를 이루었다. 정구현(1987)이 108개 재벌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95.8%가 재벌을 총괄하는 조직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그룹기획조정실, 종합기획실, 비서실, 경영관리실, 그룹본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 부서장의 직위가 상무급 이상인 그룹이 약 90%라는 점에서 이들 부서가 재벌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Chandler(1962)는 1920년대 초 기능본위로 조직된 미국의 몇몇 대기업들이 기업규모의 증대와 업종다양화에 따라 직면하는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점차 복잡해짐에 따라 다수사업부(M-형 조직)라는 내적 구조를 개발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연구를 이어받아 Williamson(1975)은 기업이 급격하게 확장될 때 지배력이 점차 상실되어 가고 전략 및 운영상의 의사결정에 관한 일관성이 저하되는 두 가지 주된 문제점에 봉착한다는 것을 찾아냈다.14) 다수사업부 구조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순수한 M-형 조직은 각 사업부로 하여금 적절한 목표를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통제체계를 갖고 있으며, 본부의 감독 하에 운영되는 반자치적인 사업부들로 구성된다. 규모증대에 따라 지배력이 상실되는 것은 그 확장이 계급조직의 심화를 통한 것이 아니라 사업부의 증가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다. 기업의 상․하위간에 오가는 정보의 종류를 변화시킴으로 해서 정보 및 의사결정의 경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사업부들은 운영상의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그룹본부는 전략상의 의사결정을 맡는다. 따라서 그룹본부는 첨단기계의 설계와 조작을 비롯해서 사내감사와 자본배분을 통하여 지배력을 갖게 된다. 한국 재벌의 구조는 다수사업부 형태이지만, 그룹본부의 역할을 하는 중앙기획실 같은 순수한 M-형 조직이 비교적 소규모인 점을 감안해 볼 때 한국 재벌의 구조는 순수한 M-형 조직이라고 하기 보다 U-형 조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U-형 조직이란 중앙집권화된 사업부에 기초한 기능조직을 갖는 전통적인 구조를 말한다. 실제로 몇몇 재벌은 사장과 그의 측근을 도울 만한 그룹본부나 비서실 내지 참모진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또한 그룹본부를 갖추고 있는 재벌에서도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은 제한적이다. 대개의 기능은 필요할 때만 집중적으로 발휘되며 이와 같은 그룹의 단일기업 수준의 사안별 경영방식은 임시전담반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예를 들면 새로운 업종에 진입하는 여부를 결정하는 임무를 맡은 특별전담반이 좋은 사례이다. 전쟁 전 일본 구재벌, 전후 일본 기업집단, 한국 재벌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개의 뚜렷한 차이점들도 존재한다. 첫째, 한국 재벌과 일본 기업집단의 사이에 지적되는 차이점은 계열기업들에서의 소유권과 경영권 사이의 연계정도이다. 정부가 재벌 기업들을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도록 강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 재벌은 소수 계열기업에서 전체 1/3보다 적은 주식지분을 가진 창업주와 그의 가족들에 의해 여전히 지배된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비가족구성원에 의해 소유된 지분의 대다수도 대개 지배가족에 의해 지배되는 금융기관들에 의해서 소유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지배주주로부터의 경영독립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에서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적다. 재벌의 경영지배에서 가족소유권의 강한 영향력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된다. 창업주와 그의 후손들은 소유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파생된 권위로 재벌의 모든 주요 의사결정은 물론 세세한 것들까지도 관여하였다. 더욱이 상당수의 전문경영인이 이들 대기업에 고용되어 있었지만 주요 계열회사의 대부분은 가족구성원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그러므로 관료주의적 지배체제가 고도로 발전했을지라도 사적이고 배타적인 속성과 연줄들이 공식적인 규칙과 절차, 고위경영층의 결정보다 더욱 중요시되었다. 비록 한국 재벌과 전쟁 전 일본 구재벌이 모두 족벌기업일지라도 소유와 경영이 일본 구재벌에서는 분리되어 있는 반면에 한국 재벌에서는 분리되지 않고 있다. 일본 구재벌가문들 특히 미쓰이 혹은 스미토모의 경우, 구재벌가문들이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경영은 고용자들의 대표로 상징되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졌다. 경영으로부터의 소유권 분리는 일본 구재벌 해체 이후 기업집단에서 보다 명확해지게 되었다. 전쟁 전 일본 구재벌들과는 다르게, 한국 재벌의 소유권과 경영의 분리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15) 모든 한국 재벌의 기업들은 지금까지도 단일가문의 지배와 소유권 하에 있다. 이런 가문은 거의 대부분 그 재벌의 창업주나 가문의 상속자로 선택된 한 사람의 가장에 의해서 지배된다. 둘째, 한국 재벌의 광범위한 가족소유권의 결과로 한국에서 최고경영자의 대다수는 가족구성원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업상층부에서 자기 방식으로 의사 결정하는 전문경영자 비율은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더 높다. 이러한 차이점의 많은 부분은 한국 재벌이 상대적으로 일본에 비해 역사가 짧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상당수의 한국 재벌 창업주들은 여전히 생존해 있는 반면에 대다수의 주요 일본 기업집단의 역사는 몇백 년이나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전문경영자의 비율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의 최고경영진의 92%는 내부에서 승진된 ‘토박이’ 전문경영인이고, 그들 중의 74%는 적어도 한번은 자회사나 계열회사에서 승진되었다. 이런 내부 인사체계의 개발은 과거 일본 구재벌 시대를 거쳐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경영인들이 내부승진을 통해서 배출된다는 사실은 구재벌해체 이후 과거 일본 구재벌이 재형성할 수 있었던 주요 요소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이 종종 외부로부터 채용된다. 한국 재벌의 빠른 성장 때문에 토박이 형태의 전문경영인의 발전은 그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부족했다. 셋째, 한국 재벌들은 일본 구재벌만큼 강력한 종합무역상사나 주요 시중은행을 갖지 못하였다. 한국 재벌이 종합무역상사를 소유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일본의 종합무역상사처럼 정보, 경영, 금융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 종합무역상사라기보다는 순수한 수출회사와 같은 단순기능만을 수행한다. 또한 한국 재벌내의 금융기관은 일본의 기업집단 경우에서처럼 자기 자신의 주식을 소유하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에 총수가족이나 지주회사에 의해서 소유되어 있고, 그룹내의 다른 계열회사에게 금융재원을 제공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어쨌든 한국 재벌은 주식소유권 면에서나 계열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조달능력 면에서 일본 재벌처럼 강력한 위치에 있지 않다. 이러한 한국과 일본의 기업집단 사이에 실제 존재하는 차이점들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국에서 기업집단들이 활동한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 19세기말에 설립된 두산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재벌은 1950년경에 설립되었다. 반면에 미쓰이와 스미토모는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쓰비시조차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불과 30~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재벌은 여전히 창업주나 그들의 2세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경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재벌은 족벌기업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한국 재벌과 일본 구재벌이 그룹과 계열회사 사이의 결합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재벌의 결합은 재벌가문의 직접적 소유권과 적극적인 경영참여를 통해서 지속된다. 반면 일본의 구재벌들은 재벌가문에 의해서 소유되지만 경영은 재벌가문의 구성원이 아닌 전문경영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전후 기업집단의 경우에도 상호 주식보유를 통해 그룹 계열사들을 결합시켰기 때문에 재벌가문에 의한 직접적인 경영은 없었다. 셋째, 특히 가족의 개념에서 한국과 일본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가문을 지속시키는 것과 가문자산을 증식시키는 것은 최고의 가치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만약 가장이 그의 자손들이 가문의 사업을 이끌 능력이 없다고 느낀다면, 그는 그 가문의 사업을 계승할 양자를 입양한다. 대조적으로 한국의 가족개념은 엄격한 혈연관계에 기반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가족을 경영 실체로 보지 않는다. Ⅵ. 결론 현재 한국은 IMF관리체제라는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그동안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 외형적인 성장만 추구해온 재벌들의 구조조정과 경영의 투명성제고 등을 권고 받고 있다. 재벌문제의 모든 것이 재벌특유의 소유-지배형태에서 출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총수에게 지나치게 편중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결국 총수의 경영전권 전횡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은 한국 재벌개혁의 핵심문제이다. 기업 지배구조의 차이는 주로 소유구조에 의하여 발생한다. 소유구조의 차이에 따라 의사결정권, 책임소재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주식소유 분포 상황을 비교해 보면 양국의 특징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1990년 미국기업의 소유구조를 보면 가장 큰 지분의 소유자는 개인으로서 53.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다음으로 큰 지분의 소유자는 24.8%의 지분을 소유하는 연금기금이다. 일본은 1949년에 70%에 달했던 개인지분은 1993년 23%에 불과해 고도성장기에 주식소유의 법인화 현상이 극단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식소유의 법인화 현상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주식 상호보유였고, 이것이 2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일본의 기업집단화의 핵심적 요소였다. 미국 대기업의 경우 단일 대주주의 지분율이 지극히 낮아 대리인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는 주주총회에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가 선출되는데, 절반 이상이 그 기업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외이사로 선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사회는 몇 개의 소위원회를 두고 특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표적인 소위원회로 감사위원회를 들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내부지배구조 대신 자본시장이 잘 발달되었으므로 소액주주권의 활성화와 기업지배권(M&A) 시장을 통한 외부지배구조가 대리인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 선진국 대기업들은 나라별로 소유-지배-경영구조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는 1880년대에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일찍부터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한 소유-경영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한편 일본에서는 가족경영체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초창기부터 고용경영자 경영체제를 도입하는 구재벌들이 생겼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재벌해체를 통해 단번에 소유-경영의 분리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선진국 대기업은 효율성을 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켰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해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한 갖가지 기업지배구조를 개발하고 있다. 더군다나 소유자경영체제나 전문경영체제나 각기 장단점이 있으므로 인위적인 소유분산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선진국의 대기업에서도 소유자경영의 형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새롭게 창업 발전하는 대기업에서 소유자경영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한국 재벌의 가족경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유주가 경영을 맡는 체제가 아니라 그 소유주가 경영전횡을 휘두르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그 혈족들이 세습적으로 경영총수 지위를 계승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소유-경영 분리가 아니라, 재벌총수의 경영전횡을 실질적으로 감시, 견제할 수 있는 내부와 외부지배구조를 강화함으로써 책임경영을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본 구재벌 해체의 역사적 경험이 한국 재벌개혁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 재벌개혁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와 같은 극한 상황이 아닌 자본주의체제하에서의 개혁은 한국 재벌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점진적인 발전을 기대해야 한다. 기업간 결합의 한 형태인 기업집단화에 대한 규제는 기업간 결합을 규제하는 형식, 소유집중의 세습화 방지, 기업경영의 투명성제고 등을 통해 재벌총수의 절대적인 경영권력하에 다수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는 체제가 아니라 ‘유연한 기업간 네트워크’를 통해 계열기업의 자율성과 기업간 결합의 효율성을 동시에 제고하는 방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 재벌은 모든 계열사가 완전한 독립체제로 되는 것보다는 1인 총수의 독재가 철폐되고 계열사의 자율성이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강화된 상태에서 전략적 제휴는 존속되는 독립기업들의 연합체가 바람직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모든 사업부문에 참여하여 이익이 나는 기업이나 손해나는 기업이나 모두 끌어안고 가는 재벌의 선단식경영으로는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이러한 선단식경영에 대한 개선으로 독립경영제의 주장이 있는데, 총수가 계열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독립경영은 공정거래제도의 강화, 정부의 인위적인 기업구조조정 등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한국 재벌의 계열기업은 법적으로는 각각 독립된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기업을 한 사람의 총수가 경영하는 단일기업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재벌은 개개의 계열기업을 하나의 사업부문으로 보아, 미국 대기업의 M-형 조직에서와 같이 제품별 사업조직의 독립회계에 의한 경영처럼 독립경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그렇지만 독립경영이라 하더라도 총수의 사적이익이 아닌 기업들간의 시너지효과를 위해서는 일본의 기업집단처럼 유연한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 전후 일본의 기업집단은 지주회사와 같은 본사는 없는 대신 상호출자 등을 통한 회원사간의 연계가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회원사는 법적으로 독립기업이고 독립경영을 하고 있지만 사장단회의가 기업집단 전체를 위한 회원사들간의 조정역할을 한다. 반면 미국의 복합기업은 단일사업기업의 형태로 되어있으나, 실제적으로 보면 재무, 법률부문 등 현업과 관계없는 부문으로 구성된 본사가 그 밑에 실질적인 독립경영을 하는 다수의 비관련 다각화기업들을 거느리는 기업그룹이다. 이것들과의 비교를 통한 소유-지배구조의 가장 특징적 차이점을 살펴보면, 한국 재벌은 실질적인 본사기능을 갖는 계열기업이나 조직도 있고, 동시에 상호출자 등을 통한 연계가 이루어져 있어 재벌행태의 가장 문제점인 총수가 경영전권을 가지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향후 한국 재벌의 형태는 현재의 소유구조를 인정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경영책임을 물릴 수 있는 합리적인 지주회사를 양성화하고, 그 지주회사가 총괄하는 계열사들은 상호출자, 상호지급보증, 내부거래 등의 금지를 통한 철저한 독립경영을 유도하되 계열사간의 시너지효과는 인정하는 독립기업들의 연합체가 바람직할 것 같다. 참고문헌 1. 국내 문헌 강명헌(1993), "한국기업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비교경제연구』, 창간호. 한국비교경제학회. 강철규(1999), “재벌개혁의 향후 방향”, 『재개혁 대토론회 자료집』,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혁태(1999), “일본의 재벌해체와 기업집단”, 『한국재벌개혁론』, 김대환․김균 공편, 나남출판. 김기원(1999), “재벌체제의 지양과 책임전문경영체제의 구축”, 『한국재벌개혁론』, 김대환․김균 공편, 나남출판. 김종현(1993․1994), “현대기업의 발전에 관한 비교사적 연구”, 『경제논집』, 제 32집 4호와 제 33집 1호,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양동휴(1994), 『미국 경제사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이규억․이재형(1990), 『기업집단과 경제력 집중』, 한국개발연구원. 이한구(1999), 『한국재벌의 형성사』, 비봉출판사. 정구현(1987), 『한국기업의 성장전략과 경영구조』, 대한상공회의소. 2. 외국 문헌 Amsden, Alice H.(1989), Asia's Next Giant: South Korea and Late Industrialization, New York a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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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The original> : http://www.kdea.re.kr/wp/102.hw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