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Blue Whale, Синий кит) 챌린지' 게임을 기억하는가?
소셜 미디어(SNS)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7년 러시아 10대 청소년들을 대거 자살로 몰고간 SNS 게임이다. 러시아 단어 Синий кит는 '푸른고래', 혹은 '대왕고래', '흰긴 수염고래' 등으로 번역된다.
러시아에서 이 게임을 시작한 필립 부데이킨은 100여명을 자살로 몰고간 혐의로 체포돼 2017년 시베리아 법원에서 3년 4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왕고래’외에 2013~2016년 게임 이용자들에게 가학행위 및 자살을 강요하거나 협박하는 SNS 게임 8개를 만든 혐의도 받았다. 그에게는 '대왕고래 게임'이 최종판인 셈이다.
‘대왕고래 게임'이 러시아에서 사회문제로 불거진 것은 2015년 말쯤이다. 리나 팔렌코바라는 10대 여성이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면서 부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죽음은 '첫 (대왕)고래'라는 평가를 받았고, '대왕고래 게임'을 10대 청소년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대왕고래 게임의 미션 완수 인증샷을 트위트에 올린 사진/캡처
대왕고래 게임의 계정/캡처
이 게임은 '게임 관리자'(총책 부데이킨으로부터 시작되는 점 조직/편집자)로부터 미션을 받고, 24시간 내에 이를 수행한 뒤 미션 완료 인증 사진을 SNS에 올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미션에는 ‘칼로 몸에 상처를 내 글씨 새기기’, ‘친한 친구 때리기’, ‘공포영화 보기’ 등 폭력적 행위 50개가 포함돼 있는데, 마지막 미션이 바로 ‘자살’이다.
그의 체포로 끝난 것 같았던 이 게임은 2019년 2월 터키(튀르키예) 남부에 사는 에민 카라닥의 죽음으로 또다시 '현피'(온라인 상의 일이 현실화한 것/편집자)가 왔다. 그녀는 마지막 미션(자살)을 수행하기 위해 아버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가족들은 추정했다. 그녀의 자살 당시, '대왕고래 게임'의 총책 부데이킨이 복역 중이었는데, 누가 그녀에게 미션을 제공했는지, 미스터리였다.
부데이킨은 2019년 4월에 출소했다.
그 사이, '대왕고래 게임'의 관리자로 활동했던 알렉산드르 글라조프는 2019년 한 소녀를 자살로 몬 혐의로 체포돼 중형(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중에 군사 기업 '바그너 그룹'에 자원했고, 우크라이나 최전선에서 6개월 이상 싸운 뒤 사면을 받았다.
글라조프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모스크바의 한 '쉬콜라'(초중등 11년 교육 과정 학교/편집자)에서 애국심을 주제로 특강을 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한 쉬콜라에서 애국심을 주제로 강연한 전직 대왕고래 게임 운영자/사진출처:텔레그램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10대 청소년들에게 자살을 선동한 '대왕고래 게임'을 운영하고, 최전선에서 '바그너 전사'로 활약한 글라조프는 최근 모스크바 외곽의 코텔니키 1번 쉬콜라에서 8학년(우리 식으로는 중학생)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 주제는 '애국심의 시작'
쉬콜라 측은 그가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싸운 애국자로 변신했다는 점을 높게 산 것으로 추정된다. 그도 학생들에게 자신의 '봉사'(우크라이나전 참전)에 대해 소개하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 결과, 글라조프는 SNS(주로 텔레그램)의 '대왕 고래' 계정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미성년자들에게 집 지붕이나 건설 중장비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기차가 달려오는 걸 보면서 철로를 건너고, 면도날로 손을 긋는 등 폭력적인 미션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 소녀에게는 자살을 요구했다. 다행히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구출돼 목숨을 건졌다.
그는 2019년 법정에서 스스로 '대왕고래 게임'을 수행했다고 진술한 뒤 "누군가로부터 게임 참가자 1명 당 80만 루블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고 자백했다. 징역 6년형을 받은 그는 복역중 '바그너 그룹'에 자원했고,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가 얼마 동안 전선에서 근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복역중 '바그너 그룹'에 합류한 뒤 일정 기간(최저 6개월)이 지나 사면을 받은 중범죄자들이 다시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40대 살인범이 '바그너 전사'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레닌그라드주로 돌아온 뒤 한 여성의 사지를 절단하는 끔찍한 범죄를 또 저질러 지난 21일 체포됐다.
부랴티야 공화국의 한 학교에서 올린 '바그너 전사'의 특강 vk 사진. 오른쪽 깃발에는 '개인적인 것은 없다. 다 돈을 받는다'고 적혀 있다/사진출처:vk
그런가 하면, '바그너 전사'들은 글라조프 처럼 '애국심'과 '용기' 주제로 하는 특강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시베리아 부랴티야 공화국의 한 학교에서는 '바그너 전사' 서너명이 '(참전하는) 용기'에 대해 강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적인 것은 없다. 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