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림 칼럼>
법정 스님, 성불 하십시오
최광림(주필)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을 것이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동화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儀式)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1971년 3월 ‘미리 쓰는 遺書(유서)’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만 39년이 흐른 오늘, 남아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몇 권의 동화책을 신문쟁이 꼬마에게 전해주고 몹시 화나게 할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도 생략했습니다. 사리(舍利)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던 말씀도 실행에 옮겼으니 지금쯤 당신은 육신을 버린 후에 훨훨 날아서 가고 싶다던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에 안착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韓半島)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母國語)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을 하고 싶다.”던 당신의 소박한 희망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1986년으로 기억됩니다. 대학축제 초청강연을 부탁드리기 위해 송광사에 갔었습니다. 마침 스님께서는 운수(雲水)중이시라 헛걸음만 치고 말았지요. 적당한 날을 잡아 뵈러 가겠노라고 편지를 드렸더니 “번거롭게 그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되면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정중한 답신을 마지막으로 글만을 통한 영혼의 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무소유≫≪영혼의 모음(母音)≫≪서 있는 사람들≫≪텅 빈 충만≫≪물소리 바람소리≫...
그 속의 언어들은 한결같이 향기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신비롭고 감미로웠습니다. 훈훈한 산들바람으로 때로는 강열한 폭풍으로 필자의 뇌리를 파고들었지요. 비가 올 듯 한 무더운 날 정랑(淨廊)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도 ‘사람의 양심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보다 낫지 않겠느냐,’며 기꺼이 껴안던 당신, 10분 늦은 공양에 단식을 선언한 효봉선사(嘵峰禪師)의 분서(焚書)로 불연세속(不戀世俗)의 번뇌까지 남김없이 태워버린 당신, 어디 그뿐인가요, 밤손님의 무거운 지겟짐을 살그머니 밀어준 혜월선사(慧月禪師)의 자비의 가르침을 일러주시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 솔 벨로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권력과 투쟁하는 인류의 핵심문제와 영혼을 지키기 위해 비인간화와 싸우는 개인의 핵심문제를 화두로 삼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국민과 지도자의 순결만이 국가의 진정한 재산이 될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을 빌어 사회정의와 윤리를 강조하셨지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바탕으로 한 ‘무소유’ ‘묵언과 무심’ 그 진리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지 미천한 범부요 소시민인 필자로써는 아직 이 깊고 오묘한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탁상시계를 훔쳐간 밤손님과의 조우도 인연으로 여기고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 아니라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입적(入寂) 전날인 10일 밤 당신은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어리석은 탓으로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시며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앞장서고, 불교의 파행을 지탄하며 종교의 벽을 허물고 올 곧고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한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요, 대종사(大宗師)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당신을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어 13일 집사람과 함께 천리 길을 달려가 다비식(茶毘式)에 참석했습니다. 3만 명이 넘는 신도와 조문객들은 눈물어린 합장에 ‘나무아미타불’로 입적한 당신의 성불을 축원했습니다. 아직도 못내 눈에 밟히는 것은 영정을 어루만지며 쉴 새 없이 눈물을 훔치던 젊은 스님의 애통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필자를 비롯, 그 경건하고 엄숙한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만큼은 성불할 당신의 영혼의 힘으로 적어도 지금보다 조금 더 선해지리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진정한 ‘무소유’는 ‘온전한 소유’라는 역리(逆理)도 함께 말이지요.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 했던가요. 아니 시절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우린 또 맑은 영혼으로 해후하겠지요.
문틈으로 새어드는 달빛도 손님이라 여겨 조심스레 맞던 당신, 한평생 비우고 버려가며 무소유마저도 분에 겨워 마침내 벌거벗은 육신조차 소신공양 한 이 시대 위대한 영혼의 스승 법정 큰스님, 이제 남은 이들은 삶의 화두(話頭)로 남기고 간 주옥같은 글을 통해서나마 님의 뜻과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양귀비와 모란이 흐드러지는 극락에 이승의 버거운 짐 내려놓고 부디 성불(成佛)하소서.
<choikwanglim@yahoo.co.kr>
첫댓글 새벽녘에 시원을 찾아와서 선생님의 감동적인 칼럼을 읽고가는 행운을 잡았네요. 법정스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고귀한 뜻과 가르침을 잊지말아야겠습니다. 다비식까지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저도 법정스님이 성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영혼의 스승이신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칼럼 경건한 마음으로 감상했습니다.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성불하시기를 빌고 정말 세상이 의롭고 착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늦었지만 법정 대스님의 성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