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신부님을 모시기까지
그 후 일 년 정도 지난 후에 한인 공동체에 신부님을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1978년 3월 몬트리올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귀국길 연수차 캘거리에 도착한 변갑선 치릴로 신부님이다.
일 년 남짓 변신부님과 함께 한인 공동체는 활기를 찾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 신부님의 걱정어린 기도와 노력으로 1979년 3월 조병기 바오로 신부님이 정식 초대 신부로 부임하게 된다.
변갑선 치릴로 신부님의 주요 활동 사항
-어린이 교리 공부와 최초 한글 학교 설립
-성인 교리 공부와 교양 강좌
-성전 건립 기금 3,000불 조성
-캘거리와 에드몬튼 합동 미사를 겸한 캠핑
자리를 다져가는 캘거리 한인 성당 공동체
대전 교구에서 부임하신 조병기 바오로 신부님을 맞이하는 일은 캘거리 한인 천주교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한국 교민의 수가 적은 도시 캘거리에 한국 교회에서 사제를 파견할 만큼 우리의 위상을 세웠다는 자부심과 둘째는 우리 교회도 이제 안정된 체제를 갖춘 가운데 공번된 교회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세 번째로는 한국 교회에서 정식으로 이민 사목을 위하여 파견되신 첫 신 부님을 우리가 맞이하는 것이었다.
조신부님은 Molnor신부님의 사제관에서 기거하시고 미사는 Sacred Heart성당에서 봉헌하였다.
1979년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최정수 야고보 가족외 몇 가족이 조신부님으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당시 사목회장으로 이상복 요한 형제, 부회장 이문철 형제가 봉사하였다.
1979년 9월 9일 대전 교구장 황민성 베드로 주교님의 방문으로 많은 교우들이 견진성사를 받는다.
1979년 10월 이세진 세자요한 신부님이 에드몬튼에 부임하여 캘거리와 겸하여 사목을 시작하시고 조신부님은 6 개월 정도의 사목을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로 떠나셨다.
1980년 4월 제 4대 사목회장에 김형기 시몬 형제가 1981년 3월까지 일 년간 많은 봉사를 하였다.
재임 중 특기 사항은 캘거리 한인 학교와 대전 성모 국민학교와의 자매 결연, 천주교회 주최 캘거리 교민 친선 축구대회 개최 등이 있다.
1981년 3월 제 5대 사목회장으로 김리환 요한 형제
1982년 1월 부터 2월까지 사목 회장이 없는 시기에 총무 강대훈 형제, 재무 김무환 형제.
3월 부터 4월까지 회장 대행 최승진 형제
5월 부터 12월 까지 회장 대행 강대훈 형제가 봉사하였다.
미사 장소는 주교좌 성당 Pastral Centre였고 미사 시간은 주일 10시 참석인원은 100명에서 120명 정도였다.
한글 학교 수업은 미사 후에 시작하였으며 교장은 윤완 형제였다.
1982년 7월 어린이 캠핑이 Kananaskis Group Camping Site에서 50여명의 참여한 가운데 2박 3일 열렸다.
한글학교 자매학교인 대전 성모 국민학교 교사 한 분이 참가하셨다.
1982년 성당주소록 첫 제작을 교우 조광호 형제와 김무환 형제가 함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