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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좌] 삶과 죽음
갓난아이가 세상에 나오면서 처음 우는 울음소리를 고고지성(呱呱之聲)이라 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 기도가 막혀 호흡이 곤란해 헐떡이며 내는 소리를 천명(喘鳴)이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고고지성으로 시작하여 천명으로 끝을 맺어야만 하는 운명적 존재다. 『성경』은 인간이 그러한 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는 까닭을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창세1,26-5,5)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창조된 인간은 죄를 범함으로써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인 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철학자의 성찰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죽어야 할 운명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눈앞에 닥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아니,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는 『죽음과 죽어감』에서 임종 환자의 심리적 변화를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는 ‘부정과 고립’으로 자신이 죽어야 하는 처지를 강하게 부정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2단계는 ‘분노’로 적개심을 갖고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화를 낸다. 3단계는 ‘협상’으로 자신의 처지를 다소 인정하지만 지난날을 회개하고 후회하며 생명을 연장시켜 주길 바란다. 4단계는 ‘우울’로 죽음을 불가피하게 여기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5단계는 ‘수용’으로 자신의 죽음을 비로소 인정하며 안정을 취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사실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선하게 살아온 자신이 왜 그처럼 일찍 죽어야만 하는지 의아해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만은 오래도록 죽지 않고 살 것이라고 믿어왔던 데 기인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많은 이들이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털끝만큼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점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자신의 자서전인 『생의 수레바퀴』에서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그러나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고 한 말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연구는 곧 삶에 대한 지향이었던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현상이고, 결코 피할 수 없는 길이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 종말이자 절망의 나락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그러하다. 죽음은 영원한 생명에 있어서 삶의 한 매듭이며, 또 다른 생명으로의 전이인 것이다.
우리 천주교회 박해시기 때, 교리를 용이하게 전파하기 위해 천주가사를 창작하였다. 그 중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최양업 신부가 직접 창작하였다고 전해지는 <샤향가(思鄕歌)>가 있다. 하느님 나라인 고향을 그리는 노래다. 이 노래는 안으로는 신자 교육, 밖으로는 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교와 적대자들을 향한 호교의 양상을 띠고 있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락토 찾아가?’로 시작하는 <샤향가>는 죽음 이후의 개별심판, 최후심판, 천당, 지옥 등과 같은 사말(四末) 교리에 주안점을 두고, 현세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노래에 따르면 현세는 잠깐 지나가는 풍진세계로서 눈물의 골짜기이자 귀양살이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현세의 즐거움을 탐할 것이 아니라, 사후의 심판과 그에 따른 지옥과 연옥과 천당을 염두에 두고 선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참된 도리를 몰라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세속사람들과 달리, 낙원이자 고향인 천당의 영원한 복락을 생각하며 신자답게 살아야 대부모(大父母)이자 대은주(大恩主)인 천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샤향가>는 현세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무게 중심을 둠으로써 자연스럽게 순교영성과 긴밀한 연관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천주가사의 시점은 전적으로 죽음 이후의 하느님 나라에 주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세에서 맛보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생지옥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생천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당시의 교리에서는 현세가 번개처럼 지나가는 의미 없는 나그네 길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지나치거나, 혹은 허황되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천상 교회의 하느님 나라보다는 지상 교회의 하느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적어도 우리 초기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천주의 자녀이자 예수의 제자인 신자들이 지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었다. 오늘날처럼 현세 중심적, 물질 중심적 사유가 팽배한 가운데 과연 정신적 가치, 또는 온전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나아가 죽음 이후에 맞이할 개별심판과 최후심판,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가야 할 지옥 · 연옥 · 천당에 대한 믿음은 고사하고, 죽음 이후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지복직관에 대한 갈망은 있는지 성찰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는 곧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출발점이며,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대비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때 죽음은 고통스러운 삶의 끝이 아니라,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고 결승점에 도달하였을 때와 같은 대견함과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해 늘 죽음을 묵상하는 한편,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득 앞을 볼 수도,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러한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는지 되묻게 된다. 앞으로 사흘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구상 시인의 <오늘>이라는 시가 빛난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인문학 강좌] 인간과 자연
오래전,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느 봄날이었다. 길을 걷던 까만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학생의 눈이 보름달만큼이나 커졌다. 마치 신발이 땅에 붙은 듯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가톨릭 서점 앞 유리창에 붙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우주의 한 점인 지구’라는 글귀와 함께 파란 지구 사진이 내걸렸던 것이다. 하얀 구름 사이로 파란 바다와 갈색의 대륙이 보였다. 내가 살고 지구의 모습을 그처럼 생생하게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주의 한 점인 지구, 파란 행성 속의 한 점인 대한민국, 그 안의 한 점인 나!’ 충격이었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그럴까 싶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례 받은 지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처럼 광활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분이실까’를 생각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피조물인 나와 대자연, 그리고 창조주인 하느님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떠올린 날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에 의미 있는 서한을 발표하였다. 정교회에서 오래전부터 거행해 온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가톨릭교회에서도 2015년 9월 1일로 제정한다는 것이었다. 교황은 서한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명백히 밝혔다.
“영성은 인간의 몸이나 자연, 또는 세상 현실에서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찬미받으소서」 216항)이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위기는 우리의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찬미받으소서」 217항). 이처럼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의 삶에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찬미받으소서」 217항).”
이러한 선포는 오늘날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생태계 파괴에 기인한 것이다. 지구의 자연환경은 산업혁명과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불과 이백여 년 만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말았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로 인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대기오염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또한 프레온가스 등의 화학물질 과용으로 인해 오존층이 파괴되었다. 급속한 온실효과가 진행되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바다에 잠기는 섬들이 속출하고 있다. 기상 이변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뭄과 홍수, 폭염과 폭풍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막화에 따른 황사와 공해에 따른 산성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아마존의 열대우림과 같은 울창한 숲들이 사라지고, 그곳에 서식하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멸종하고 있다. 편리한 과학 기술의 무분별한 적용과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그릇된 인식, 그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이러한 현상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문득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대중과학작가인 레이첼 카슨(1907-1964년)이 떠오른다. 그녀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명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대규모 농업을 꿈꾸던 1950년대 미국에서는 해충 박멸이 무엇보다 골칫거리였다. 바로 그때 DDT라는 기막힌 살충제가 개발되었다. 비행기로 그 살충제를 대량 살포한 며칠 뒤 사람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그토록 속 썩이던 벌레들이 모조리 땅에 떨어졌던 것이다. DDT의 위력은 막강하였다. 실로 과학의 승리이자 인간의 쾌거였다. 그 해 곡물을 비롯한 농산물이 넘쳐나 풍년을 이룬 것은 물론이었다. 문제는 그 이듬해였다. 새들이 지저귀는 봄이 왔건만, 숲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였다. 지난해 살포된 DDT에 오염된 지렁이를 비롯한 동식물 먹잇감으로 겨울을 난 새들이 대부분 죽거나 불임이 된 탓이었다. 새끼들이 부화하여 한창 생기 넘쳐야 할 숲이 깊은 침묵 속에 묻힌 까닭이었다. 그 상황을 기록한 책이 1962년에 발표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었다. 결국 1963년 미국 의회는 잔류 농약이 동식물 조직에 축적되어 그 연쇄작용으로 피해가 확대된다는 레이첼 카슨의 증언을 청취하였다. 아울러 대통령 과학고문위원회가 ‘농약에 관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DDT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은 동양에서도 꾸준히 있어 왔다. 맹자는 4촌(약 16센티미터) 이상의 크기로 짠 그물로 고기를 잡고, 한 자 이상의 물고기만 시장에 내다 팔면 대대로 물고기를 먹을 것이라 하였다. 치어를 잡지 않고 남획을 방지하기 위한 묘책이었던 것이다. 또한 초목의 잎이 말라 떨어진 이후에 벌목을 하면 자자손손 목재를 쓸 것이라 하였다. 이 역시 자라는 생명체를 해치지 않고 남벌을 막기 위한 혜안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신라의 귀산이라는 사람이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원광법사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그러자 원광법사는 그 유명한 세속오계를 내렸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그리고 살생유택(殺生有擇)이 바로 그것이었다. 귀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살생유택만은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법사가 말하길 “6재일과 봄 · 여름에는 살생치 아니한다는 것이니, 이는 때를 택하는 것이다. 또한 말 · 소 · 닭 · 개처럼 부리는 가축을 죽이지 않고, 고기가 한 점도 되지 못하는 미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니, 이는 사물을 택하는 것이다.”(『삼국사기』 45, 열전 5, 귀산)라 하였다. 살생에 있어 때와 사물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과 자연이 어떤 관계를 맺고 지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었던 것이다.
한편, 1854년 미합중국의 피어스 대통령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는 땅을 매입하고자 하였다. 그때 스쿼미시 부족의 시애틀 추장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오늘날까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경종이자 묵상거리이다.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땅과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신선한 공기와 물방울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사가겠다는 것인가? 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반짝이는 소나무 잎, 바닷가 모래밭, 짙은 숲속의 안개, 수풀과 지저귀는 곤충들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핏줄 속을 흐르는 피처럼 나무속에 흐르는 수액을 잘 안다. 우리는 이 땅의 한 부분이며, 땅 또한 우리의 일부이다. 향기 나는 꽃은 우리의 자매다. 곰과 사슴과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바위, 수풀의 이슬, 조랑말의 체온, 사람, 이 모든 것이 한 가족이다. 시내와 강을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물은 단순히 물이 아니다. 우리 조상의 피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땅을 팔면, 이 땅이 신성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호수에 비치는 모든 것은 우리 민족 삶 속의 사건과 기억을 말해준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목소리다. 강은 우리의 형제다. 우리의 갈증을 달래주고, 우리의 카누를 옮겨주고, 우리의 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니 당신들은 형제를 대하듯 강을 친절히 대해야 한다.’
[인문학 강좌] 이웃과 사회공동체
가정 밖으로 나가 서로 접하여 사는 이들을 이웃이라 부른다. 이웃에 살며 정이 들어 친분이 두터운 이들을 이웃사촌이라 칭한다. 예전에는 이웃의 대소사와 애경사를 챙길 뿐만 아니라, 빈대떡만 부쳐도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이사하면 으레 이웃에게 떡 접시를 돌리고, 이웃은 그 보답으로 과일 한 알이라도 접시에 올려 되돌려 줌으로써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애정이 식어 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을과 마을, 지자체와 지자체 간에도 공동운명체로서의 인식이 박약해지고 말았다. 내가 사는 곳에 장애인 · 노숙자 등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화장장, 쓰레기 매립장, 하수종말처리장, 핵 폐기물 처리장 등과 같은 혐오시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들어설 수 없다고 입을 모아 악다구니를 쓰게 되었다. 반면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고 여겨지는 시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사는 곳에 유치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게 되었다. 지방자치제에 따라 극성하게 된 집단이기주의인 소위 님비(not in my back yard)와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 바로 그러하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한 편이 떠오른다.
신라 성덕왕 때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친구가 도를 닦기 위해 산 속에 암자를 따로 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리따운 낭자가 달달박박의 암자에 찾아와 의미심장한 시를 지어 부르며 하룻밤 묵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달달박박은 사찰은 깨끗해야 하니 여인이 가까이 올 곳이 아니라며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이어 낭자는 노힐부득의 암자에 찾아가 또 다른 노래를 부르며 재워 주기를 청하였다. 노힐부득은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더욱이 깊은 산골에 밤이 어두우니 어찌 소홀히 하겠느냐며 안으로 맞아들였다. 노힐부득은 잡념을 물리치기 위해 밤새 염불을 쉬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낭자가 해산기가 있다며 도움을 청하였다. 노힐부득은 하는 수 없이 방에 짚자리를 깔아 주고, 물을 데워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도왔다. 해산한 낭자는 노힐부득도 그 물에 목욕하라고 권하였다. 노힐부득이 마지못해 그 말에 따르자 물에 연화대가 생겼다. 그제야 낭자는 자신이 관음보살이며, 대사를 도우려 왔다고 실토하였다. 이튿날 달달박박이 찾아가 보니 몸이 금빛으로 물든 노힐부득이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채를 내고 있었다. 달달박박이 사연을 듣고 후회하자 노힐부득이 목욕을 권해 그 역시 무량수불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구름을 타고 서방으로 갔다.(『삼국유사』 권3 탑상4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서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여인으로 현신한 관음보살은 수행자들의 성향에 따라 달리 시험하였다. 관음보살은 자신이 득도하고 난 후에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소승적 성향의 수행자인 달달박박보다 중생과 더불어 득도하겠다는 대승적 성향의 노힐부득을 먼저 득도하게 하였다. 이러한 관음보살의 선택은 달달박박이 행한 소승적 수행방식보다는 노힐부득이 행한 대승적 수행방식을 높이 평가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관음보살이 소승적 수행방법에 대해 잘못이라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소승적 수행 자세를 지니고 있던 달달박박 역시 노힐부득과 마찬가지로 득도하였으니 말이다. 수행방식은 시대상황과 종단의 선택, 그리고 개인의 기질에 따라 최고선이 결정된다. 하지만 중생과 함께하고자 하는 대승적 수행방식이 우위에 선 것은 이 이야기를 전승하던 이들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시회공동체 의식은 오래전부터 나와 이웃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주안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사회공동체는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전환되면서 점차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변모되었다. 자연히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데 있어 이웃에게 한 치의 양보도 없게 되었다. 이러한 면모는 개인주의 내지 자유주의가 사회집단주의 내지 전체주의와 대립 갈등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개인주의 내지 자유주의는 개인의 발달과 완성이 최고 목적이므로 사회공동체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필요악과 같은 계약의 산물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사회집단주의 내지 전체주의는 개인을 집단 전체의 목적에 종속시키므로 개인은 사회라는 유기체의 세포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반된 목적을 융합하여 양자를 조화롭게 공존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동선(共同善)이다.
공동선은 사회보존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가치와 재화로서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 각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인식이다. 즉 개인의 발전과 이익이 곧 사회공동체의 발전과 이익이며, 역으로 전체로서의 사회공동체를 위하는 것이 곧 개개인을 위하는 길이라는 인식인 것이다. ‘사회 질서와 그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여야 한다.’(<사목헌장> 26항)는 가르침에 주목하는 한편, ‘가톨릭 신자들은 진정한 공동선을 증진하여야 할 책무를 자각하여, 국가 권력이 올바로 행사되고 법률이 도덕률과 공동선에 부응하도록 그 의견을 관철시켜야 한다.’(<평신도 교령> 14항)는 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인간은 이성과 의지를 지닌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여 연대감을 갖고 자아실현과 사회공동체 발전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공동선을 이야기하다 보면 누군가는 극단적인 예를 들며 반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힐부득이나 달달박박처럼 깊은 산속의 암자에서 홀로 수도하는 이들이 과연 사회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는 우리 가톨릭교회의 봉쇄수도원이 사회공동체의 발전과 이익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노골적인 회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홀로 자신의 길을 가는 수도자들은 자신들만의 삶을 영위하기에 공동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수도자 개인 입장에서는 사회공동체를 떠났다고는 하지만,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용품들을 자급자족하지 않는 한 그가 사회공동체에서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반대로 사회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수도자가 격리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의 열망이 오로지 수도자 개인의 영달과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공동체에 이바지하는 바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보이지 않는 기도와 기원이 사회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개인과 사회공동체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누가 자신의 이웃이냐고 묻는 율법교사에게 들려준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가 오늘도 새롭다.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본체만체하였지만, 유다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던가. 나는 이웃과 사회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대목이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29-37)
김문태 교수의 인문학 강좌 (4) 신앙과 교회공동체
인간의 보편적 본성으로 흔히 종교심성을 든다. 이는 곧 인간은 영혼을 지닌 존재이자 영성적 존재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인간은 나와 내면적 자아의 관계, 나와 외면적 타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초월적 신의 관계를 염두에 두는 존재임을 뜻한다. 인간은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지향을 통해 삶의 근원과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물론 긴 혀를 이리저리 내둘러 목탁소리를 내는 소, 또는 스님이 예불하는 동안 곁에 엎드려 있는 개를 예로 들면서 이를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이한 행동을 종교심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물의 보편적 본성이라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신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영성적 존재이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 민족 역시 오래전부터 신앙을 표출하며 살아왔다. 수목신앙과 암석신앙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수목신앙은 고조선 신화의 환웅이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에 내려왔듯이 우리 신화 주인공들이 모두 나무나 숲으로 강림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나무는 신의 하강처이자 거처이며 제사처가 되었다. 솟대는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소도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소도는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천신을 제사하는 별읍(別邑)으로 죄인이 피신하여도 끌어낼 수 없는 성스러운 구역이었다. 제관인 천군이 솟대에 드리는 천신제가 오늘날 마을공동체 단위로 드리는 동제의 원형이었다. 또한 지역에 따라 벅수 · 수살목 · 하르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장승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짝이 되어 동구 밖에 서서 잡귀를 쫓는 수호신이었다. 그리고 서낭당 또는 성황당이라 불리는 당목(堂木) 역시 마을 수호신의 거처였다. 당목은 우주목의 위상을 지니고 있으므로 명실상부한 마을의 중심으로서 동제를 올리는 주안처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암석신앙은 부여 신화에 등장하는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가 자식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여 마침내 큰 돌 아래에서 금빛 나는 개구리 형상의 금와를 얻었다는 데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암석이 자식을 비는 기자석(祈子石)으로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암석신앙의 대표적인 신체로는 선돌, 선바위, 입석, 갓바위 등으로 불리는 남근석(男根石)을 들 수 있다. 마을의 평지나 산등성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기자석은 자식이 없거나 아들이 없는 여인이 찾아가 치성을 드리던 곳이었다. 남성 상징인 석상의 코를 떼어다 빻아 먹으면 양기를 받아 잉태할 수 있다는 믿음도 암석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늘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간 신부가 돌하르방의 코를 잡고 사진 찍는 것도 그와 같은 마음의 발로다.
신앙은 신을 믿고 받드는 일이다. 동양의 ‘宗敎’는 근본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서양의 ‘Religion’은 라틴어 ‘Religio’에서 나온 말로 다시 읽는다(Re-legere)는 뜻인데, 반복되어 낭송되는 종교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종교라는 용어에 대한 어원은 종교의 조건으로 가르침과 의례와 조직을 꼽는 것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관에 의해 일정한 형식의 의례가 진행되는 마을공동체 단위의 수목신앙은 개인의 기복을 위한 암석신앙보다 종교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목신앙 역시 가르침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로써 본다면 하느님을 믿고 받드는 가톨릭 신자의 신앙과 교회공동체의 참모습은 이미 규정되어 있는 셈이다. 가톨릭 신자는 가르침의 측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교리를 숙지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가톨릭 신자는 의례의 측면에서 개인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교회 차원의 공적인 경배이자 공동체를 위한 기도인 미사를 비롯한 7성사와 준성사 등의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신자는 조직의 측면에서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보편적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일반적인 사회와 달리 남녀노소, 지위고하, 동서고금, 혈연 · 지연 · 학연을 초월하여 보편적 종교로서의 가톨릭(Catholic)이라는 어의를 온전하게 실현하여야 하는 것이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나이다.’라는 <사도신경>의 구절과 부합하는 대목이다.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이 1997년에 공포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의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이며,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달로서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곳이다. 교회를 뜻하는 라틴어 ‘Ecclesia’는 불러 모은다는 뜻이고, 영어 ‘Church’는 주님께 속한 모임이라는 뜻으로 주님 백성의 집회를 의미한다. 즉 교회는 목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불러 모은 양 떼(루카 12,32)들이 머무는 곳으로 예수의 참 가족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라는 말씀처럼 하느님을 중심으로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공동체는 교계제도에 의한 주교, 사제, 부제 등의 성직자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백성인 평신도로 구성된다. 교회공동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는 말씀에 따라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사제직 · 예언직 · 왕직에 참여한다. 특히 한국천주교회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평신도의 손으로 세워졌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1779년(정조 3년)경 권철신 · 이벽 · 정약전 · 김원성 · 권상학 · 이총억 · 이윤하 등의 남인 학자들이 참여한 주어사 강학회에서 파견한 이승훈이 1784년 베이징의 베이탕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함으로써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1794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기 전까지 평신도 공동체인 명도회를 결성하여 신앙을 키워 나갔다. 복자 정약종 초대회장이 지은 한글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가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천주교회는 그야말로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세워지고 다져진 교회공동체였던 것이다. 오늘날 평신도의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역할이 부단하게 요구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교회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고통 받고 가난하고 박해받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구성원 모두는 각자의 고유한 조건과 임무에 따라 그리스도 몸의 건설에 협력하여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806, 872항) 즉 하나의 머리 아래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은 누구든지 살아 있는 지체로서 교회의 발전과 그 끊임없는 성화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기울이도록 부름 받고 있는 것이다.(『교회헌장』 33항) 따라서 교회공동체 안에서 병들고 힘없는 지체를 배려하고자 하는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움직임이 교회 밖으로 확산될 때, 사회의 복음화가 실현될 것임은 자명하다. 교회공동체의 지체인 평신도들이 자리적(自利的) 편협함을 깨고 나와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이타적(利他的) 포용심을 지닐 때, 지금 여기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견결한 신앙은 그 옛날 나무와 돌을 향해 드렸던 기복적인 청원기도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감사와 찬미의 기도에서 그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교회공동체를 지탱하는 평신도의 지향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가 시의적절하다.
“평신도로서 여러분이 받은 은사는 여러 가지로 많고 또 여러분의 사도직이 다양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은 현세 질서를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우고 완성시키며 그분의 나라가 오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여 교회의 사명 수행을 진전시키는 것입니다.” (2014. 8. 16. 평신도 사도직단체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한 연설 중)
김문태 교수의 인문학 강좌 (2) 가족과 가정공동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가장 먼저 만나는 타인은 가족이며, 가장 먼저 접하는 사회는 가정공동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족과 가정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우선적으로 여겨진 까닭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기에 앞서 가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오늘도 새롭다.
하나의 가정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성인 남녀가 혼인의례로 결합하여야 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신화의 웅녀(熊女)는 어두운 동굴에서 삼칠일간 쑥과 마늘만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고 금기하는 시련을 이겨낸 뒤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주몽신화의 유화(柳花) 역시 어두운 방에 일정 기간 격리되는 한편, 새의 부리처럼 세 자나 늘어난 입술을 가위로 세 번 자르는 시련을 겪은 후 해모수와의 사이에서 주몽을 낳았다. 공히 신모(神母)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무적(巫的) 시련을 수반한 통과의례를 치렀던 것이다. 성인의례나 혼인의례에 수반되는 시련은 마한의 젊은이들이 등가죽에 끈을 꿰어 큰 나무에 붙들어 매고 소리 지르며 잡아당기는 행위(『삼국지』 권30 위서 동이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무적 시련을 이겨냈을 때, 소년 소녀는 성인으로 재생하여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사례편람』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열다섯 살이 된 남자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관례(冠禮)를, 여자는 쪽을 찌어 비녀를 꽂는 계례(?禮)를 치렀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고, 자긍심과 자존감을 드높이는 의례였다.
성인이 된 처녀 총각은 혼인의례를 통해 사랑으로 맺어진 완전한 상호보완적 존재이자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났다. 오죽하면 혼인하지 못하고 죽은 손말명(처녀귀신)이나 몽달귀(총각귀신)를 가장 한이 맺힌 귀신이라 하였을까. 지금도 혼인을 하지 못하고 죽은 혼백을 위로하기 위하여 영혼결혼식을 올려주고 있지 않은가. 옛 풍속을 보면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혼인이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는지, 그리고 그 대사를 치르고자 하는 집념이 얼마나 컸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민요와 가사로 전승되어오는 ‘노처녀가’의 내용이 절절하다.
‘어떤 처녀는 팔자 좋아
이십도 되기 전에 시집간다
남녀자손 시집장가
떳떳한 일이건만
이내팔자 기험하여
사십까지 처녀로구나
앞집 김동이도 상처하고
뒷집 이동이도 기처로다.’
마음이 급한 노처녀는 아내가 죽은 남자[喪妻]든, 아내를 버린 남자[棄妻]든 가리지 않겠다고 스스럼없이 토로하고 있다. 혼인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그렇게 혼인에 성공한 여인은 암환자가 겪는 아픔보다 한 단계 위라는 산고를 이겨내고 마침내 새 생명을 낳는 기쁨을 맛보았다. 자손이 귀한 가정에서는 우뚝 솟은 기자석(祈子石) 앞에서 기도하였고, 그도 안 되면 석상의 코라도 깨어다 갈아 마시기까지 하며 출산하고자 하였다. 아이를 낳으면 삼칠일 동안 삼신할머니에게 흰쌀밥과 미역국을 올렸다. 아울러 대문에는 숯과 고추와 솔가지 등을 매단 금줄을 자랑스럽게 내걸어 자식의 탄생을 온 동네에 알리고, 새 생명에 대한 친지와 이웃의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켰다.
사정이 이러하였으니 혼인을 통해 가정을 꾸린 부부가 어찌 다정한 단짝이 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사랑으로써 새 가족이 된 자녀들이 어찌 소중한 분신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부모와 자식은 생명을 주고받은 관계로서 자애와 효도로 부자유친의 도리를 지키고, 형제와 자매들은 그 생명을 공유하는 관계로서 서로 돕고 기대어 우애를 나누며 행복을 누렸다.
오늘날 우리의 가족과 가정공동체 현실은 어떠한가. 성인의례, 혼인의례, 출산의례는 상업화의 물결을 타고 겉치레 행사가 된 지 오래다. 무적 시련을 수반한 - 물론 후대에는 시련이 상징화되었지만 - 의례를 통해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혼인과 출산은 줄고, 이혼과 낙태와 자살은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2013. 9 - 2014. 2) 혼인은 164,028건인 반면, 이혼은 58,095건으로 이혼율이 무려 35.4%에 달하고 있다. 평균초혼연령은 남자가 32.2세이고, 여자가 29.6세로 점차 늦어지는 추세이다. 날이 갈수록 혼인율은 낮아지고,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다. 혼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정을 꾸렸다고 하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추세이다. 2013년의 경우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1.19명에 불과하다.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로 보고되고 있는 반면, 가임여성 1천 명 중 29.3명이 낙태 경험이 있어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해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살률 역시 놀랍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통계청 보고서의 2002년과 2012년을 비교해 보면, 사망원인 순위 중 자살이 8위에서 4위로 급상승하였다. 자살 사망자 수를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인구 10만 명당 17.9명이었던 것이 28.1명으로 무려 57.2퍼센트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OECD 표준인구 10만 명당 평균 자살률이 12.5명이라는 사실에서 그 심각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주목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80세 이상 노인의 자살이 50대에 비해 세 배나 된다. 최근 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강력범죄의 70%가 이혼, 가정폭력, 부모의 무관심과 과잉보호, 경제적 빈곤 등 가정의 위기로부터 발생하는 ‘홈 메이드 크리미널’이라는 보고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오늘날 가족과 가정공동체 안에서 야기되는 혼인율, 이혼율, 출산율, 낙태율, 자살률 등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는 생명의 문화가 아닌 죽음의 문화에 경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는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될 것이니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5-6)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한 말씀, 또한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라(에페 6,4)는 자녀교육에 대한 말씀, 그리고 자식들은 생명의 근원인 어버이에게 효도하라는 제4 계명이 무색하다.
‘혼인제도 자체와 부부 사랑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며, 그로써 마치 절정에 이르러 월계관을 쓰는 것과 같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52항)는 가르침이 새롭다.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가정공동체는 참된 인간공동체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기반이 된다. 가정은 창조주의 협력자인 부부가 사랑으로써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지성소이자 자녀를 양육하는 못자리인 것이다. 오늘날 ‘대박’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버린 ‘다복’(多福)은 원래 자녀가 많은 가정을 지칭할 때 쓰던 말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과 생명으로 이루어진 가정공동체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 위에 세워진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친교에서 태어난다.’(<사목헌장> 48항)는 가르침에 눈을 돌려야 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정공동체의 구성원은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존중해야 한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타고난 권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러한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38항)는 가르침이 따끔하다. 가족 간 사랑의 친교는 방법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생명으로 맺어진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고자 하는 마음이 성가정을 닮은 사랑의 가정공동체를 이루는 핵이 아닐까.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그것들은 주님과 사람 앞에서 아름답다. 형제들끼리 일치하고 이웃과 우정을 나누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이다.(집회 2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