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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창 37: 12-36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가 장의사 옆에서 살았더니, 맨날 장의사 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내기에 보다 못한 맹모가 시장으로 이사갑니다. 그랬더니 하루 종일 시장의 상인들 흉내내며, 장사 놀이만 합니다. 할 수 없이 서당 옆으로 이사 갔더니 학문에 열심히 해서 성공하였다는 얘기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맹모를 따라서 서울의 8학군이라는 곳으로 이사가서 자녀를 그곳에 있는 학교에 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원래 이 얘기는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맹자를 동양의 군자로 키울 만큼 현명했던 어머니라면 아무 생각 없이 장의사 집 옆에서 살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에 이사가면서 서당으로 가면 될텐데, 그러지 않고 시장에서 살다가 마지막에야 서당 옆으로 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맹모는 군자란 학문을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첫 번째는 인생의 의미와 백성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군자란 자고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덧없는 인생이 정든 세상 등지고 북망산천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인생의 소중함과, 다른 한편으로 인생의 허망함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맹모는 장의사 집 옆에서 맹자에게 인생의 의미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경제를 알아야 합니다. 한 푼이라도 값을 더 깍고 받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서민들의 애환, 그리고 그 시장에서 움직이는 경제의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학문이란 당장 먹고사는 삶의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장의사 옆에서는 인생의 의미와 백성의 소중함을 깨닫고, 시장에서는 경제를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 맹자의 어머니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 위에서 진정한 학문이 나오고, 정치를 바르게 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팔려 가는 요셉의 모습을 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큰 꿈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 꿈이 언젠가 이루어 질 것을 믿었고, 믿음으로 형제들과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대견스러웠을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의 길은 장미꽃 길이 아닙니다.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그 만큼의 과정과 시간이 요구됩니다. 맹모가 아들 맹자를 바르게 교육하기 위해서 일부러 장의사와 시장에서 아들을 키웠던 것처럼,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시기 위해 고난의 학교에 입학시키십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꿈은 성실을 먹고 자란다.(12-17절)
요셉은 무엇보다도 성실했던 사람입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이 그 형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는 것은 외면적으로 보면 고자질하는 형편없는 아이이거나, 철없는 동생, 또는 조금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셉의 정직함을 말합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계속되는 유혹에도 그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직함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의 정직을 잘 알고 있던 야곱은 요셉을 믿고서 심부름을 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겜이란 곳은 좋은 목초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의 형제들이 이복동생 디나가 그곳 추장의 아들이 겁탈했다는 이유로 그 부족을 모두 몰살시킨 곳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들의 보복을 피해 얼른 도망쳤던 곳입니다.(창 34:30) 그런 위험한 곳으로 자신의 아들들이 양을 치러 갔으니 아버지 야곱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보낸 것입니다.
요셉은 세겜으로 갔다가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도단까지 갑니다. 요셉이 살던 헤브론에서 세겜까지의 거리는 약 80킬로가 됩니다. 그리고 세겜에서 도단까지는 25킬로 정도입니다. 세겜에서 도단으로 가는 길은 험한 산지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당시는 걸어서 가거나 낙타를 타고 찾아갔을테니 최소한 3-4일 정도, 그리고 세겜에서 찾아 헤매는 시간을 고려하면 약 일주일은 소요되었을 겁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시면 야곱이 요셉에게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라고 말합니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형들이 잘 있는지, 양들도 잘 있는지를 가서 살펴보고, 나에게 와서 소식을 전해 다오" 그러니 요셉은 야곱을 대신하여 직접 살펴보고 근황을 알아보고 돌아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세겜에 없다고 도단으로 갔으니 이제 안전하다고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형들이 동생의 채색 옷을 찢고 수염소의 피를 발라 죽었다고 거짓말한 것처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소한 아버지의 심부름을 잘 해낸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관심은 아들들이 안전한가 라는 것이기에 안전하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형들이 자신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는 것을 잘 아는 요셉입니다. 두려운 형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요셉의 모습은 첫 번째로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 일이 크던 적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도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무엘이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의미로 기름부음을 받고 한 첫 번째 한 일이 다시 양치러 가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성실하신 분이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가십니다. 그곳에서 최초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셔서 당시의 천하고 힘든 막일에 해당하는 목수일을 통해서 집안을 부양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에 비해 이런 작은 일을 내가 해야 하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제 곧 왕이 될텐데 귀찮은 목동일을 때려치워야지 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렇게 천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두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모두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된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순종합니다. 아버지의 귀찮은 심부름에 '예' 한마디로 대답하고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러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묵상하고 있는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하십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 자의 뜻을 전달해야 합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 자의 말만 전하면 되지, 자기 생각과 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라고 요한복음 12장 49절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말만을 했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만 했습니다. 자의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지어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신다고 요한복음 5장 3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셨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분이 자신의 생각과 뜻이 없겠습니까?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가 보낸 자라는 자기 사명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신 자의 뜻과 원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보냄을 받은 자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고린도전서 4장 2절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맡은 자들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처럼, 다윗처럼, 그리고 요셉처럼 우리를 교회와 가정, 직장과 캠퍼스 가운데로 보내신 자의 뜻대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꿈은 고난 속에서 자라난다.(18-35절)
이렇게 힘들게 찾아 온 형들은 요셉을 얼른 알아보고 그를 죽이려는 모략을 꾸밉니다. 그와 함께 그의 꿈도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형들을 보고 기뻐서 뛰어 오는 동생의 채색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당시 구덩이는 목동들이 우기에 빗물을 받아 두고, 나중에 가축에게 먹이는 곳입니다. 마치 항아리 같은 형태로 입구는 좁고 밑으로 내려가면 큰 방 같은 곳으로 입구를 돌 하나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옷을 벗겼다는 것은 아버지의 편애를 없애는 것이고, 요셉을 구덩이에 처넣었다는 것은 요셉의 꿈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20절을 보시면 그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요셉의 꿈입니다. 그가 죽으면 꿈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르우벤과 유다의 도움으로 죽음만은 간신히 면하지만, 은전 20냥에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당시 은전 20냥은 건장한 청년 노예의 값입니다.
우리는 동생을 죽이려고 하고 노예로 파는 형들에게서 무정한 사람의 죄성을 발견합니다. 25절을 보시면 동생을 구덩이 속에 집어넣은 형들이 태연히 앉아 밥을 먹습니다. 창세기 42장 21절에 의하면 동생 요셉이 애걸했다고 합니다. 살려 달라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시는 꿈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눈물로 호소했을 겁니다. 사람은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면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체하기도 합니다. 입맛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형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밥을 먹습니다. 이런 형들의 모습을 아모스는 6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마치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범죄자처럼 자신이 죽인 사람의 시체의 가죽을 태연히 벗기는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요셉에게 말도 못할 어려움을 주시는 걸까요?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으로 팔려가서 노예가 되게 하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 요셉이 쓰임 받기 위해서는 꿈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당신이 쓰실 만한 하나님의 사람의 인격과 실력을 고루 갖추게 합니다. 한 마디로 준비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꿈이 있다고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준비된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꿈은 있으되 준비되지 않는 사람은 몽상가입니다. 능력은 있으나 꿈이 없는 사람은 단지 전문가에 불가합니다. 꿈이 있으면 준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젊어서 자신의 동족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민족 해방의 꿈을 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작 한 일이라고는 단 한 사람의 애굽 사람을 쳐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삽니다. 40년이라니요. 애굽의 학대와 압제 속에서 신음하는 동족을 구원해야 할 사람에게 40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고 지루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 시간 동안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젊어서는 혈기로 사람을 때려죽이던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40년의 연단을 통해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민수기 12장 3절은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고난과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빚어 갑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왜 고난을 받는지, 그 고난의 끝이 무엇일는지 전혀 예측을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세 가지를 확신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욥의 길을 알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것도 선한 인도하심을 분명히 확신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과정은 연단이 있다는 것을 욥은 압니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재앙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로 그는 고난의 끝은 정금같이 될 것, 다시 말하면 축복임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의 고난이 힘들지 않은 거지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곳이라 할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시고, 끝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는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잠시의 고난을 통해서 정금같이 귀하고 복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려 한다는 것을 욥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고난을 주신 다른 이유는 야곱의 집안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 요셉을 애굽으로 내려보내셨을까요? 계속 가나안에 있으면, 70여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식구를 갖고는 그 포악하고, 잔인한 가나안 사람들의 먹이가 되든 지, 아니면, 가나안의 음란한 문 화에 동화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갖 주위의 우상으로부터 격리되는 곳을 찾으셨는데, 애굽이 가장 적당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애굽 민족은 자만심 강하고,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화 되어서, 타민족에 배타적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목축을 가증히 여겨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센 땅에서 요셉의 보호 아래 자기들만의 소중한 전통을 지켜가며, 400여 년 동안 애굽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당당한 민족으로 커나 갈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애굽은 당대 최대의 강국이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곳으로 피라미드가 이미 여러 개 건설되고 있었고, 도서관, 대학들, 예술과 문화의 총본산 이었으니, 거기에서 요셉이 가족들을 잘 보호하고 키워줌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와 모세 5경을 저술해낼 정도로 찬란한 문명과, 학문을 힘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용광로 속에 요셉을 넣고 연단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이라는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뻥튀기 기계로 사용하셔서 70명의 야곱의 가족이 400년 만에 수백 만 명으로 성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큰 뜻이 요셉의 고난에 숨은 그림처럼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에도 뜻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를 연단 시키려는 하나님의 뜻, 고난 속에서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숨은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안과 소망, 그리고 축복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지만, 고난이 목적이 아닙니다. 재앙이 목적이 아닙니다. 고난 너머에, 재앙 저편에 하나님의 평안과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잠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고난 뒤에 하나님의 평안과 소망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래도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36절)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죽을 뻔하고 노예로 팔려 갑니다.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20절)라고 그 형들이 말하였는데, 그의 꿈은 영원히 끝장난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 주는 것이 슬퍼하는 아버지 야곱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앞에 오열하며, 그 누구의 위로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아버지 야곱의 모습은 이제 요셉의 인생과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게다가 모른 척하면서 아버지를 위로하려는 형들의 간악한 위선을 보면 더더욱 요셉의 꿈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37장은 아주 이상한 구절로 끝이 납니다. 3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요셉이 팔려 간 곳은 바로의 신하 시위 대장의 집입니다. 시위 대장은 경호 대장이란 말로, 오늘의 청와대 경호 실장 격의 사람입니다. 소설로 말한다면 이것은 복선입니다. 무언가를 암시합니다. 요셉이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무언가 일이 생길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그곳에서 그의 꿈이 새롭게 펼쳐질 것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구절인 것입니다. 요셉과 요셉의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시편 37편 23-24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요셉이 넘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아주 엎드러지지 않도록 당신의 손으로 붙드십니다. 요셉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에 함께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에는 고난이 있어서 넘어지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야곱은 아들은 죽고, 아들의 꿈은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한없이 슬퍼합니다. 그 형들은 아버지를 위로하면서도, 그의 꿈은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애통과 달리 살아 있습니다. 형들의 생각과 달리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찬 전진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둡고 답답한 현실이 나의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요셉은 죽지 않았고, 따라서 그를 통한 하나님의 꿈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향해 달려라
작년에 시드니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항상 올림픽이 끝나면 그 올림픽을 빛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말라 러년(Marla Runyan)입니다. 그녀는 9살 때 망막 퇴행성 질환을 앓기 시작해서 14살에 시력을 거의 상실했습니다. 30㎝만 떨어져도 희뿌연 형체만 느낄 수 있는 한계를 그녀는 극복하고 104년 만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이 미국 육상 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아 훈련도 정상인들 보다 더 힘이 들었지만 러년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승전까지 진출하기는 했지만,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기자가 그녀에게 메달을 받지 못한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메달을 위해 달리지 않습니다. 나는 희망을 향해 달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신 꿈과 희망을 향해 오늘도 달리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은 대가를 요구한다.
(창 37:12-36)
시작하는 말씀
할렐루야!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큰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분, 주일날 교회에 나오실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오셔야 되는가 하면, 교회생활을 통하여 이 교회가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믿고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 는 사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하나 님의 사람들이 교회가 없이 여러분 들의 힘으로 신앙 생활을 끝까지 잘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 각입니다. 교회라는 영적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이 귀한 축복이 없으 면,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이겨낼 방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는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을 얻 는 것 이상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좋은 교회는 우리의 삶의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뜻은 어 머니는 자식을 낳을 뿐 아니라, 잘 먹이고, 입히고, 양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어머니의 역할은 자식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서, 이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아버지, 이 교회가 내 생애에 아름 다운 영적인 내 영혼의 어머니가 되 게 하여 주옵소서' 라는 마음의 기 도를 드릴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메 시지와 찬양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 여, 여러분들을 훈련시키시고, 교육 시키시고, 구걸하는 신앙이 아니라 내 스스로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자립신앙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0.1 새 천년의 미국 사회의 꿈과 희 망은 (목회적 대형)교회의 등장이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이 시대의 흐 름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우리시대 최고의 미래 예견 학자인 Peter Druker는 21세기의 미국의 미래는 '목회적 대형교회의 손에 달려있다' 고 갈파했습니다. 한달 전에 그는 Fobes(포브스)지에 '지난 30년 동안 미국사회에서의 가장 중요한 사회 변화 현상은 목회적 대형교회의 등 장이다'라고 밝히면서, 예를 들어 시카고의 Bill Hybel 목사님이 섬기 는 Willow Creek교회나 남가주의 Rick Warren목사님이 섬기는 Saddleback교회는 300여년의 미국 역사 가운데 가장 영광스럽고, 큰 역할을 하는 교회들인데, 이 교회들 은 오래된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 라, 단 시일 내에 20년 내지 25년의 짧은 시간 내에 300년 미국 역사에 서 가장 큰 목회적 대형교회가 되었 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들이야말로 앞으로 21세기를 가꾸어 나아가고 열어가야 할, 가장 위대하고도, 중요한 참으로 기념비 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 다.
목회적인 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미국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새 천년의 인간정신을 결속시 키는데 특별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견되는 것입니다! 저는 대형교회, 큰 교회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으로 신실한 하나님의 교회들 이 '영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잘 감 당해서 주일날 교회 나오는 하나님 의 백성들이 참으로 의식과 기대를 함께 모아서 은혜 받게 하시고, 교 회 나올 때마다, 주일예배를 드리며,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고, 무장됨으로 말미암아 한 생애를 하 나님의 사람 '요셉'처럼, 요셉이 애 굽의 이민 생활에 정착해서, 영광스 런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의 사역 과 신앙의 표상으로서 영광을 가졌 던 것처럼, 우리들도 동일하게 요셉 의 사건을 통하여, 영혼의 어머니의 역할을 확인하고 돌아갈 수 있는 축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메시지의 핵심은 '꿈을 꾸는 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 니다.
창 37:19,20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 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 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 다. 영적으로 성공하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꿨는데도, 그를 죽이겠다고 음 모를 꾸미는, 마귀의 공격이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Story를 보시면서, 기억하실 것은 한 사람이 꿈을 가지 고, 그 꿈이 이루어 지고, 한 생애를 펼쳐가는 가운데, 성경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우리에게 예가 되는 것입 니다. 요셉을 하나, 하나 살펴 볼 때, 여러분들의 과거의 생애와 공감 함을 느낄 때가 참 많이 있을 것입 니다. 요셉은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 는 하나님의 인도에 관해서, 참 좋 은 Example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 다.
창 37:12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떼를 칠 때에"
이 세겜이란 곳은 목초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겜을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34장에 보면, 이 세겜에서, 요셉의 이복누이 '디나'의 성폭행사 건으로 인해서, 그 오빠들이 음모를 꾸며서, 세겜에 있는 남자들을 다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야 곱이 유목민으로서 할 수 없이, 목 초지에 가서 양들에게 꼴을 먹여야 되기 때문에, 세겜으로 아들들을 보 냈습니다만, 야곱이 근심하게 됐습 니다. 아들들이 세겜에 가서 무사히 잘 있는 지, 또 살육전을 펼쳤는데, 그들이 보복하지는 않겠는가? 하는 마음의 근심 때문에, 요셉을 정찰병 비슷하게 보내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그냥 보냈겠습니까? 저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이 때, '요셉은 콩 볶은 것과 시루떡을 쪄서 형들에게 가져 갔을 것'이라는 이 얘기를 여러 번 군침을 흘리면서 들었습니다. 요셉이 가는 길에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요 '산 위에서 봄바 람 불어온다, 강가에서 봄바람 불어 온다. 봄바람 살며시 날 찾아와 송 이 송이 꽃송이 맺어주네' 저도, 저 의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이 노 래를 제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었습 니다. 혹은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어찌 즐거운 일 아닌가?'등의 찬송 을 요셉이 아마, 콧노래를 부르면서, 갔을 것입니다.
창 37: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 되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 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 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I. 꿈에는 (마귀)의 (공격)이 있다.
그렇게 야곱의 요청으로, 요셉이 세 겜에 도착해보니 형들이 없었습니 다. 그래서 물어보니까, '세겜'에서 30Km 떨어진 '도단'이라는 곳에 갔 습니다. 그 도단성은 아주 평평한 목초지로서, 그의 형들은 꽤 먼 거 리에서도 '저기 꿈 꾸는 자가 오는 도다'라고 서로 말하고, '그 꿈이 어 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 는 독한 마음을 품고, '잡아 죽이 겠다'는 악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 니다. 요셉의 형들의 마음속에 그 동안 미움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 니다. 이 미움이란 나무는 시기와 질투와 이기심의 물을 먹고 자랐고, 오늘 이와 같이 마귀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드디어 쓰디 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르 우벤(맏형)이 나중에 구출할 마음으 로(창 37:20) '죽이지 말고, 구덩이 에 던지자'고 의견을 내었고, 르우 벤의 숨은 계획을 알지 못하는 형제 들은 그 생각을 따라주었습니다. (아마, 르우벤은 아버지에게 큰 가 중한 죄를 지었는데, <서모 빌하와 통간> 이 때 그의 잘못을 덮고 회 복할 마음이었던 것 같으며, 맏아들 로서 막내를 봐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음) 그러므로, 아주 나 쁜 사람도 없고, 아주 좋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은혜 안 받 으면 꼭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 아야 합니다.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요셉을 구덩이(그 당 시 목동들이 우기에 빗물을 받아 두 고, 나중에 가축에게 먹이는 곳=> 수증기의 증발을 박기 위해 마치 항 아리 같은 형태로 입구는 좁고 밑으 로 내려가면 큰 방 같은 곳으로 입 구를 돌 하나로도 막을 수 있었다) 에 던졌습니다. 그런고로 요셉이 거 기에 던져졌을 때, 얼마나 원통하고, 슬프고, 괴롭고, 힘들었는지 살펴 보 겠습니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 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 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 37:23-2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 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 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마치 신문 기자가 아주 담담한 어조 로, 감정의 굴절 없이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처럼 이렇게 나와 있습니 다만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애걸 복걸하며 꿈의 대가를 치뤄야 했습 니다. 어떤 꿈도, 그 꿈이 제대로 이 루어지기 위해서는 첫번째로, 꿈에 는 마귀의 공격이 있는 것입니다. 허공만 울리는 컴컴한 동굴 속에 갇 혀서 통곡하면서 '살려달라'고 형들 에게 빌었을 것입니다. 애걸 복걸하 고, 슬피 울면서, 그야 말로 통절한 요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잔인한 인간성을 다음의 말씀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창 37: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 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 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 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 가는지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동생이 죽 어가는 데 음식이 넘어갈 수 있습니 까? 사랑하는 아내가 아파서 수술 받고, 누워있는 데 음식이 넘어갑니 까? 주위에 어려움 당하며 고통스러 워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입에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데, 여기 서, 이 잔인한 형들은 동생의 옷을 벗기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서 죽게 만든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 야곱이 보낸 음식을 먹으면서 '빵 좀 더 없 니?'하고 묻는 그들의 행동 앞에 우 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성 타락의 깊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 은 그들의 마음 속에 박힌 질투와 미움의 근육이 얼마나 끈질기고 강 했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무자비하고, 잔인한 인간성 행위에 대해서, 아모스 6:6에
"대접으로 포 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 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 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표현했 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런 종류의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 께서 보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나 그네와 같은 우리의 인생 길에 주님 이 허락하시는 꿈을 가지고, 제대로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이런 공격 들을 감당해 낼 만한 힘이 없습니 다.
(찬송422장. 나그네와 같은 내가 힘이 부족하오니 전능하신 나의 주 여, 내 손 잡고 가오니 / 불과 구름 기둥으로 갈 길 인도하소서 / 나의 주여 힘과 방패 되소서 / 나의 주여 힘과 방패 되소서)
저는 이런 공격 당하면 못 살겠어요. 마귀의 공 격 앞에서, 하나님의 힘과 방패로 요셉이 보호 받은 것처럼 우리 모두 가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요셉의 꿈이 수포로 돌아갔던가? 아니면, 피기도 전에 요셉이라는 꽃봉오리가 떨어지게 되었나? 많은 사람들이 하 나님이 주신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 도, 누가 공격을 하고, 반대를 당하 면, 의기 소침해져서 자신을 좌절의 구덩이에 던지는 사람이 많이 있습 니다. 한번 낙심해 버리고, 어려워지 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 니다. 인생의 도단 땅(Dothan)의 구 덩이에서 던져 지고 난 후, 다시 회 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하 여, 하나님께서 급하셔서, 이스마엘 사람들을 통하여, 낙타와 약대 떼를 동원하여 달려오고 계시는 줄을 믿 으시기 바랍니다. 역시 같은 아브라 함의 자손인 요셉을 위기에서 구하 려고 달려오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 님의 절묘하고도 기가 막힌 Timing 인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통하여 한 차원 더 높은 제안을 합니다.
창 37:26-28
"유다가 자기 형제에 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 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 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 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 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 어 올리고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 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 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형들은 요셉을 죽인 들 유익이 없으 며, 차라리 팔자는 유다의 제안을 이의 없이 받아 들였고, 이의를 제 기할 만한 르우벤은 마침 그 자리에 없었으므로, 요셉은 구덩이에서 올 려져서 그 당시 남자 노예의 보통 가격인 은 20에 팔렸습니다. 르우벤 은 돌아와서 기가 막혔습니다.
창 37:30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 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 로 갈까"
너무 슬퍼하는 르우벤의 모습이 나 와 있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9명의 형제들은 지독한 속임수를 짜내었습 니다. 요셉의 채색 옷을 취하여 거 기에다가 숫염소의 피를 칠해 아버 지께 보냈습니다.
II. 꿈은 (정직)을 요구한다.
창 37:32
"그 채색 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그 결과로 더 못된 저질적인 거짓을 행합니다.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우 리 형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 이라고 말함으로 책임회피를 하는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야곱은 이 후에, 너무나 슬퍼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어떤 위로도 위로 가 안 되었습니다. 사실 못된 자식 들의 위로가 무슨 위로가 되었겠습 니까? 여기서 얻는 큰 교훈은 '죄는 더 큰 죄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따 라서 꿈은 정직을 요구하는 것입니 다. 오늘 요셉의 형들의 한번의 속 임수가 근 20년간 내려가게 되었습 니다. 즉 죄의 속성은 한번만 범하 고 끝이 난다든지, 한가지 죄만 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 다. 한번의 죄는 그것을 숨기기 위 해서 또 다른 한 가지, 죄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거짓을 가리기 위해서, 20년 간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겠습니 까? 20년 동안 아버지 야곱은 날마 다 자꾸 확인했을 것이고, 다른 가 족과 친지들도 얼마나 많이 물어 보 았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기억할 것은 꿈은 정 직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 로 하면, 우리가 한 번 범죄 하게 되면 거짓말이라고 하는 죄를 특별 히 쉽게 거리낌 없이 계속 범하게 됩니다. 이것이 범죄 확대 재생산의 법칙입니다. (저의 원리임) 어떤 한 사람이 살인을 범했다고 했을 때,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기 위해서 수 많은 거짓말을 꾸며댑니다. 형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얼마나 이 형들 이 못 되먹었습니까? 그 아비 야곱 이 슬퍼서 죽기 직전에까지 이르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Mechanism입니다.
잠 14: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여기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성실하 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도 전을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거 짓과 거래하기 시작하면 죄는 분명 히 우리의 삶을 파괴할 것입니다. 한번의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 고, 결국은 그것이 자신을 목 조르 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 들을 넘어뜨리고 괴롭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는 것은 마치 당 신의 손가락을 감은 실과 같습니다. 실 한 가닥을 끊기가 너무 쉽기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의 거짓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들 은 '남들도 다하는데... 한다 그리고 그 한번의 거짓말 때문에 벌을 받지 도 않는다. 누구도 자신의 거짓말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리하여 다시 한번 거짓말을 합니다. 마치 손가락에 실 두개를 감은 것과 같습니다. 이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의 속성, 죄의 속성은 한 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케 하는 악령의 역사 가 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더 하다가 마침내 당신 손가락은 실 때 문에 너무나 꽉 조여져서 더 이상 손가락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여 러분, 이러한 죄의 패턴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지 않도록 기도하십시 오! 하나님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 고 회개하십시오! 왜 사람들이 거짓 말을 합니까? 그것은 '내가 정직하 게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알겠지?'라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면 더 큰 결과가 우리를 얽어 매는 것 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 락하신 꿈을 위하여 정직에 대한 대 가를 지불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I. 꿈은 (슬픔)의 과정도 요구한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 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 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꿈은 슬픔의 과정도 요구한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어려움을 당했던 요셉의 나이가 그 당시에 겨 우 17세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 오! 우리 주위에 17세의 자녀들의 뭘 합니까? 아마 운전면허 따 가지 고, 그저 Drive하고 고등학교 졸업 반의 나이를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이 어린 17세의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노래하면서 도단성에 갔 었고, 그 후 20년간 가족을 볼 수 없는 슬픔을 겪었으며, 형들이 나를 너무나 미워하여 어둠의 구덩이에 던져졌고, 그 구덩이에서 너무나 애 절하게 슬프게 울부짖고 울었는데도 아무도 날 도와 주는 자가 없고 팔 리기만 했다. 나는 먼지가 흩날리는 낙타대열에서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 지 않을까 하고 연신 뒤를 돌아보았 지만 아무도 날 구해주러 오는 이가 없었다.'면서, 너무 너무 슬펐다고 생생하게 증언했을 것입니다. 요셉 은 팔렸고,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것 이 꿈에 대한 대가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요셉의 생애 의 끝이 아닌 것을 감사할 수 있기 를 바랍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Not Yet!) 제 꿈의 사역의 핵심은 인생에게 슬 픔이 있어도 아무리 슬퍼도 가장 좋 은 것은 아직 오지않았다는 것을 믿 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도 가 장 좋은 것은 오지 않았다고 믿습니 다. 제 인생도 끝이 가장 좋을 것입 니다. 정 안되면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멘!!
(결론)
1) 꿈은 (주님)의 손(안에) 있을 때 (안전)하다.
우리의 꿈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을 때만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물건처 럼 팔려서 낙타 등에 실려 애굽에 내려가면서 요셉은 아마도 안전하다 고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요셉은 안전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의 육신의 아버지는 가나안 에 남겨져 있었지만, 그의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애굽에 내려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 의 지상의 아버지의 얼굴은 늘 볼 수 없어도, 그의 천상의 아버지는 늘 느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여 러분, 어떤 때는 하나님의 뜻이 안 전한 집이 아니라, 냄새 나는 낙타 등에서 펼쳐 지는 것을 기억하십시 오! 요셉이 낙타 등에서 뭘 생각하 고 있었을까요? 그의 할아버지 이삭 의 얘기가 버팀목이 되지 않았을까 요? 할아버지의 특권은 손자들에게 깊은 영향력, 따스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음을 Touch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할아버지가 순종의 사람, 이삭 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창세기 22장에서 증조 할아버지 아 브라함이 칼을 빼고 죽이려고 할 때 에 순종했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양 을 준비하고, 그 양을 제사로 드리 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축복을 받 아 누렸고, 거기서, 천사를 통한 용 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4장에서 증조 할머니 리브가가 낙타 타고 왔던 것을 기억하고, 낙 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 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요셉에게
"요셉아, 네가 만일 네 증조 할아버 지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 네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네게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네가 어디에 있고, 네 삶이 얼마나 힘들든지 상관없이 하나 님이 너를 위해 앞길을 예비하실 것 을 너는 발견케 될 것"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셉에게는 이런 축복이 있 었기에 그 어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 을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 님께서 여전히 그의 삶을 통치하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시 27:13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 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아마도 요셉은 이런 은혜도 어쩌면 낙타 등에서 그가 죽을 뻔 했는데 그의 목숨을 살린 르우벤과 구덩이 에서 건져 올린 유다의 제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영감으로 알았을 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반드시 하나 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부 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 다. 우리가 만약 그 순간, 요셉의 형 들에게 왜 요셉을 팔았느냐고 물어 본다면, '그 기분 나쁜 요셉의 꿈을 없애기 위해서!'란 대답을 들었을 것이고, 만약 이스라엘 상인들에게 왜 요셉을 샀느냐고 물어 본다면, ' 애굽에 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사실상 그 들은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주권과 섭리 속에 그들의 범죄도 합 력하여 선을 이루고, 상인들의 이기 심도 결국은 그 형제와 가족을 살리는 데 도구가 되었습니다. Key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 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도 그 분의 계획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사실, 요셉은 노예로 팔려 가면서 노예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슬퍼하고 실망 했을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그 어 떤 사람도 어려움, 깊은 고난을 겪 지 않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습니 다.
귀한 신앙 선배인 A. W. Tozer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 먼저 깊은 상처를 받게 하시고, 위대하게 쓰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위의 깊은 인격의 소유자들 을 한번 보십시오. 그 옆에 가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삶의 향기가 짙 은 분을 보게 됩니다. 반드시 그의 인생에서 고난과 깨어짐을 경험한 것입니다.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분들입니다.!!
젊은이 사역을 할 때 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나이의 젊은이라 해도, 고통 받고, 깨진만큼 그 젊은이의 생의 향기가 짙은 것입 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슬픔의 밤의 눈물들 때문에 고통한 사람들 을 통하여, 따뜻한 위로와 감격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을 바꾸어 주 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생각해 보십시 오! 하나님께서 왜 요셉을 애굽으로 내려보내셨을까요? 계속 가나안에 있으면, 70여명밖에 안 되는 한 웅 큼의 식구를 갖고는 그 포악하고, 잔인한 가나안 사람들의 먹이가 되 든 지, 아니면, 가나안의 음란한 문 화에 동화가 되든 지 둘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갖 주위의 우상으로부터 격리되는 곳을 찾으셨는데, 애굽이 가장 적당했습 니다.
창 43: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하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하고 배석 하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하니 애 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 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그 당시 애굽 민족은 자만심 강하 고, 독일이나 중국, 일본, 한국처럼 단일 민족화 하여서, 타민족에 배타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센 땅에서 나온 요셉의 보호 아래 자기들만의 소중한 전통 을 지켜가며, 400여년동안 애굽 사 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당당한 민족으로 클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애굽은 당대 최대의 강국이었습니 다. 세계 최대의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곳으로 피라미드가 이미 여 러 개 건설되고 있었고, 도서관, 대 학들, 예술과 문화의 총 본산이 되 었으니, 거기에서 요셉이 가족들을 잘 보호하고 키워줌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모세와 같은 Leadership과 모세 5경을 저술해낼 정도로 찬란한 문명과, 학문을 힘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요셉은 지금 슬픔으로 낙 타 등을 타고, 애굽으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범사에 함께 하시 매, 형통하였더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아직 좋은 것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일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시 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 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할렐루야! 오늘 이 말씀 그대로 믿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