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평소에 당신께 기도를 잘 드리지 않는 제가 이렇게 기도를 한다니 좀 뻘쭘하네요. 당신께서도 좀 어색하시지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기도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무슨일 있어서 이러는건 아니니 마음 놓은셔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성탄절이 지나갔습니다. 많은 교회와 성당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미사와 예배 그리고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또한 종교를 불문하고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흥겨운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마음 가짐이 있고, 아기 예수의 탄생에 부여하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매년 똑같이 맞이하는 성탄이지만, 올해 유난히 성탄의 의미가 저에게 뜻깊게 다가옵니다. 저는 성탄의 의미가 '공감, 소통, 그리고 동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굳이 사람들의 아수라속으로 들어올 필요가 없는 절대자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속으로 오신 성탄의 시작은 바로 인간의 고통과 인간의 삶에 대한 뜨거운 공감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인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속으로 뛰어들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처절하게 내재화 한 그 공감이 없었다면 성탄의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공감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직접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과 똑같이 먹고 마시며, 함께 사셨습니다. 고상한 언어가 아니라 바로 사람의 언어 그 중에서도 가장 힘없고 고통스런 사람들의 언어로 쉽게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비유를 통해 말씀 하셨습니다. 속으로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 텐데도 사람의 언어로 함께 이야기하기를 쉬지않으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소통하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공감하는 인간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그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하나님. 그러한 신은 얼마나 멋진 신입니까!
그렇게 인간의 삶을 공감하고, 인간과 함께 소통하신 하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으로서 자신의 진심을 실천하셨습니다. 사람과 동떨어지지 않은, 동떨어지지 않는데서 그치지 않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사람의 몸을 입고 함께 먹고 마시고 소통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그들을 책임진 그 하나님. 그것이 바로 성탄에 새겨야 할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몸소 실천하신 '공감과 소통, 그리고 동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들과 이 땅의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속으로 오셔서, 함께 사셨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교회를 분리하고, 우리들은 깨끗하고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넘어선 자만심속에 세상과 불통하고, 오히려 세상만도 못한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의 아픔,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기는 커녕, 우리는 우리끼리의 잔치에 흥이겨워 다른이들을 돌보는데 게을렀습니다. 게으른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손가락질하는데 앞장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로 자신들이 구원받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거짓된 확신속에 안락히 거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회에서 언제부터인가 크레인에 올라가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과 하루하루 자살의 숫자를 늘려가고 있는 실직자들의 아픔을 애통해하는 기도를 듣지 못했습니다. 많은 봉사활동에 열심을 내면서도 그 봉사활동이 존재하도록 하는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렇게 다른이의 고통, 세상의 고난에 무감각한 채 오히려 그 고통을 심화시키는 공범으로 자리잡고 있는 저와 우리들 그리고 교회를 바라봅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몸으로 친히 오셔서 모든 특권과 능력을 내려놓고 사람의 아픔에 동감하고, 사람과 함께 소통하며, 그 고통에 동참했던 성탄의 의미를 진심으로 묵상하는 이 시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비된 영혼의 감각과 스스로에게 하는 신앙의 합리화와 자기위로가 부수어지고 그렇게 우리들을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에 교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 의미도 모르면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흥청망청 타락한 채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흥겹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감과 소통, 그리고 동참'의 의미와 모습을 한참 잃어버린 이 땅의 저와 같은 기독교인들과 교회보다 성탄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부디, 이땅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성탄의 의미를 온전히 새기고, 그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회복하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