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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와 요단 도하의 의미 / 김주한 목사
홍해도하(구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되기까지 두 번에 걸친 도하를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는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것으로 양쪽에 물 벽이 된 바닷길을 마른땅같이 건넌 일이고 다음으로는 가나안 입성 시에 창일한 물이 흐르는 요단강이 상류에서 끊어져 멈추는 것으로 역시 마른땅처럼 건너간 일입니다.
이 두 번의 사건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의미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애굽이라는 죄악세상에서 구원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바다로 들어간다는 것은 한 백성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보았을 때는 새로운 한 백성이 살아나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24의 말씀처럼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아나오는 시간입니다. 오직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것으로 급하게 건너게 된 홍해입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의롭게 되기까지 자신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희가 다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10:2)
요단도하(성화)
홍해 도하가 구원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면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성결과 성화를 의미합니다. 신명기1:2~3을 보면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홍해를 나와 열하루길이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40년 광야를 돌아다니다가 이제 광야 2세대가 다시금 가나안 코 앞에 다다르게 된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시간입니다. 이때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12지파의 대표 제사장 한 명씩을 택하여 언약궤를 메게하고 요단강 물가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요단이 곡식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맨 자들이 요단에 이르매..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수3:15~16)
12지파 제사장 대표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멘 언약궤는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곧 그리스도입니다. 언약궤 안에 들어있는 만나는 요한복음 6장51절의 말씀처럼 “주님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하신고로 주님을 예표하며 아론의 싹난 지팡이 또한 모세의 지도권을 말하는 것으로 신명기18:15의 말씀처럼 “나와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리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신고로 오직 주님만이 그리스도인 것을 나타내며 십계명 또한 요한복음1:14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을 가리킵니다.
새 생명가운데..
성도들과 그리스도가 함께 요단강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의 모습으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는 모형이 되기도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은 성도들의 성결과 성화를 말씀하시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로마서 6:3에서 사도바울이 성화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씀하고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 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우리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나의 죄된 옛사람은 예수를 메고 요단강에서 죽은 것입니다. 요단강을 나올 때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쫒는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어 없어진 것이고 새사람이 살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려함이니 ..”(고후4:10) 하나님은 우리로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거룩한 백성 삼으시는 동시에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심으로 성화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결하게 만들어 놓고서야..”
다시 말씀드리지만 홍해를 나올 때는 내가 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후로 불순종 불신앙의 40년이 끝나고 이제 요단을 건너면서는 주님과 같이 내 안에 죄를 몰아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나의 의지와 결단과 단호함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내 정욕이 부인되고 내 자랑이 사라지며 가루가 되고 부서지는 것으로 그야말로 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요단도하를 앞두고 오늘 본문 여호수아3:5절에서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결하게 하고야 기이한 일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땅은 비어있는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죄악이 가득한 가나안 7족속을 쫒아내고서야 즉 성결하게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젖과 꿀이 흐르는 내 나라 내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강대한 민족이고 철옹성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광야 1세대가 가나안 민족을 향해 저들은 강대한 민족이라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라고 까지 한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를 어찌 쫒아 내겠습니까! 정답은 오직 순종함으로입니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쫒아내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이 이스라엘이 용맹하고 출중한 무기로 작전 잘 써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참으로 내 땅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죄악을 몰아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이기려할 때 갈라디아 5:16의 말씀인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육체를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풍성한 주의 나라를 경험하고 하늘의 충만한 것을 오늘 내 것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적극적 의미의 성결
죄를 멀리하고 쫒아내는 일이 소극적 의미의 성결이라면 적극적 의미의 성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결은 부부의 성결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모든 성도들의 신랑이십니다. 신부가 신랑 안 쳐다보고 다른 남자 쳐다보면 질투의 불이 일어납니다. 세상과 바람난 아내를 그냥 두는 남편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가리켜서 나는 소멸하는 불이요 질투의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우리가 주님만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를 성결하게하면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12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안에 들어섰습니다. 12제사장은 오늘날의 성도이며 언약궤는 주님이십니다. 성도가 주님을 꼭 붙들고 있는 그림을 상상해야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을 메고 있었더니 위에서 맹렬한 기세로 내려오던 큰 물이 멈춰 끊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너가야 하는 인생의 강에서 우리를 덮치려하고, 우리를 쓸고가려하며, 우리를 수장시키려는 세력을 막아주시는 기이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사야4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