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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마나식 그리고 알라야식을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오식(五識)이다. 안식(眼識)은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이고, 이식(耳識)은 귀로 들어 아는 것, 비식(鼻識)은 코로 냄새 맡아서 아는 것, 설식(舌識)은 혓바닥으로 맛을 봐서 아는 것, 신식(身識)은 온몸으로 느껴서 아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이 첫 번째 안식(眼識)이다. 눈으로 강력한 게 들어오면, 그것이 장애물이 되어 끊임없이 괴롭힌다. 수행을 할 때 집중을 못 하고 자꾸 딴 생각으로 빠져버린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온몸으로 느끼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사물이 우리 의식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정상적으로 순화되어 내 생명을 기쁘게 하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고, 나를 깨어있게 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게 전부 마장(魔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오식(五識) 다음에 의식(意識)이 있고, 일곱 번째 마나식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연결해주는 중간 고리가 마나식이다. 그리고 제8식이 인간의식의 바탕, 생명 의식의 창고 역할을 하는 알라야식이다. 그걸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는데, 장藏이란 저장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우주에서 태어나 살아온 삶의 전과정이 의식의 바다인 장식(藏識), 무의식에 전부 그대로 기록돼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수행을 하다보면 어릴 때 생각이 그대로 다 난다. 비록 어려서 말은 못해도,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문득 자연과 하나가 됐었다면, 그 때의 장면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사진이 찍히듯 순수의식에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어릴 때 일이 모두 떠오른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첫째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몸의 기운이 수승화강(水昇火降)의 과정을 거쳐 정화된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의 기능은 삼초(三焦)로 나누어진다. 폐, 심장, 머리가 상초(上焦)이고, 비위 중심의 소화기관이 중초(中焦), 방광, 신장 등 배설, 생식하는 기관이 하초(下焦)다. 즉 상초上焦에는 신神이 작용하고, 하초下焦에는 신神이 생성되는 힘의 근원, 내 몸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근원인 정精이 자리잡고 있다. 그게 내 몸 속의 천지다.
정精은 곧 땅이요, 신神은 곧 하늘이다. 정신精神! 인간은 몸 속에 하늘과 땅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 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둘째,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마음은 체(體)와 용(用)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체體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등,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고 마음이 작용하기 전 단계,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성性, 본성이라고 한다. “야~, 그래도 걔는 바탕은 착해. 본래 마음은 그런 애가 아니야. 본성은 착해.” 이런 말에서처럼,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불덩어리,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거기 보면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선후천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러한 본성에 머무르려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모든 죄업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마음 닦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후천적인 성품 그걸 기질이라고 하든, 성격이라고 하든, 환경적인 요인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형성된 지금의 ‘나’라는 독립된 개체가 갖고 있는 것 가운데 문제되는 것을 정화해서, 천지율려의 조화 속에 일체를 이루는 본래의 자기 생명의 모습, 즉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그 다음, 하나의 개체로서 구체적인 의식활동을 하는 것,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걸 정(情, emotion)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동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불가의 유식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감정활동에는 오식五識과 의식, 그 다음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제7식 마나식, 그리고 내 생명 의식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은 바탕인 장식藏識, 알라야식이 있다.
나무로 얘기하면, 잔가지들이 오식(안이비설신)이고, 잔가지들 아래로 뻗은 줄기가 의식, 의식의 줄기와 뿌리를 연결하는 가운데 큰 줄기가 마나식, 그 다음 뿌리가 알라야식이다. 뿌리에서 모든 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말이나 행동, 습관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해 온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닦으려면 자기의 과거 인생사, 더 나아가 전생부터의 어둠까지 모두 씻어내고, 잘못한 것, 죄 지은 것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기초 작업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수행을 통해 내 몸 자체를 정화해서 의식의 경계를 넓혀야 하는 것이다.
수행하려고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식(眼識)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몇 미터 이상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도 일정한 거리 이상이 되면 맡지 못한다. 이것이 보통 중생들의 몸이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내 몸의 음양 기운이 개벽되어 율려도수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혼탁한 음양이 순수음양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감아도 다른차원의 경계가 환히 보인다. 또 깊은 밤 주문(呪文,mantra)을 읽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뚝 소리가 난다. 귓밥이 스스로 파헤쳐져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또 아주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춤추면서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내 의식의 경계가 천지의 대생명과 하나가 되어, 내 생명이 온 천지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하게 되는 경계가 있다. 정신이 확 깨져서 수행을 잘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없어진다. 내 몸뚱아리가 온 우주 생명 자체라는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첫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출처: 월간개벽
『태백일사(太白逸史)』의「소도경전본훈 蘇塗經典本訓 」'신선 발귀리의 찬가'
5400년 전, 신선 발귀리가 소도(蘇塗) 제천(祭天)행사를 보면서, 동방문화의 원형 역사정신을 찬양하는 시詩로 지어서 노래로 불렀다. 이분의 시詩에 대우주와 인간관의 원형,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서 깨달음의 큰 틀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신선 발귀리의 찬가'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니
일월지자(日月之子)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원각이능(圓覺而能)하며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유만기중(有萬其衆)이니라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첫 구절이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 ‘대일(大一)’, 말할 수 없이 큰 하나! 이 대일(大一)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의 근원이다. 그걸 ‘한없이 크고 하나다’라고 하고, 이것을 다시 찬양한다. 그 대일(大一) ! 우주만유, 존재하는 것 즉 존재자의 그 존재,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神과 같은 것, 우주 만유 생명의 어떤 근원 그 지극함이여,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걸 이름하여 ‘양기(良氣)’라 한다.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발귀리의 시詩에서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즉 ‘무(無)와 유(有)가 섞여 있다, 구분할 수가 없다, 하나다, 일체다, 무와 유는 둘로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도 형상, 몸이 있고, 이것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다.
공간, 허공은 있지만 이것은 무(無)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허공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수가 있고, 사물이 이동할 수가 있다. 공간의 실상이 무(無)와 유(有)의 문제인데, 이 무와 유는 일체다.
허조이묘(虛粗而妙), 허(虛), 텅 빔. 거기서 나타난 조(粗)라는 것은 조박(糟粕)한 것인데, 이 대우주의 무수한 별자리, 은하계가 우리 인간 중심으로 볼 때는 조박한 것이다. 그러니까 텅 빈 우주의 공간, 허의 실체는 궁극으로 비어 있는 ‘텅 빔’ 속에서, 조화의 근원 바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조(粗)라는 것은 우주의 무수한 은하계, 지구 만물의 생명, 바다의 물고기, 아름다운 푸른 산하에 있는 꽃, 식물,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허조이묘(虛粗而妙)라, 묘妙라는 것은 오묘한 것인데, 이 우주가 나타나 있는 자체가 너무도 오묘한 것이다.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그다음에 만물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법칙성을 얘기한다.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여기서 체용론(體用論)이 나온다. 체體라는 것은 본체, 용用이라는 것은 작용 또는 현상으로도 말한다. 어떤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실세계로도 말한다. 우주의 문제에서 크게 보면, 우주의 근원이 되는 본체가 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우주가 벌여져 있다.
그런 의미의 본체와 현상, 또는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상세계, 사물의 양극, 근원과 현실, 본체와 작용은 마치 우리 몸으로 보면 ‘몸과 몸짓의 관계’와 같다. 여기 이 몸통이 있고 몸짓이 나온다. 수많은 몸짓이 나오는데 그 몸짓이 다 다르다. 그래서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삼三은 일一을 본체로 삼고,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일一은 삼三을 작용으로 삼는다.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무無와 유有 그 근원이 되는 우주의 텅 빈 허虛의 조화세계, 무궁한 조화의 이 텅 빈 허虛의 세계, 거기에서 나오는 조박한 우주의 현상계 허조(虛粗). 그러니까 무와 유, 허虛와 조粗가 일환一環, 하나로써 일체가 되어 어우러져서 순환한다. 환環이라는 것은 순환, 생성한다는 것이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체軆와 용用이라는 것은, 구분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갈라지는 게 아니다,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에 보면 서양은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체와 용은 둘이 아니고 갈라질 수 없다.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그러면 궁극의 유(有)와 무(無)가 생성되고, 우주 만유가 태어나는 지극히 비어 있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
거기는 누가 있다는 말인가?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허(大虛), 장대하게 거대하게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그 텅 빔 속에 광명이 열려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모습, 신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이걸 경구로 해석하면 ‘네 마음을 크게 비워라. 그러면 여기에 광명이 열리나니 이것이 신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너의 신성의 모습이다’ 라는 것이다. ‘이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대광명이 네 몸과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도통한 승려 안함로가 쓴『삼성기(三聖紀』를 보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라고 했다. 그당시의 사람들이 도를 닦아 도통을 해서, 우주 광명 인간(홍익인간)이 되어서 나라를 열었는데, 그게 환하다"라고 말할 때의 빛날 환(桓), 광명의 나라, 환국(桓國)이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주 광명 인간이 될 때 환국(桓國)을 인식할 수가 있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것은 소도제천 행사를 직접 보면서 대신선이 된 깨달음의 도통 경계를 고백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이 우주와 하나가 되느냐? 어떻게 해야 불멸의 생명, 도통한 인간, 신선이 될 수 있는가? 우주 조화의 세계, 그 바다를 걸어 다닐 수가 있는가? 지금 여기서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 거대한 기운이 영원히 살아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조화다, 신의 손길이다, 신의 집이다, 신의 의존처다, 신의 생명 자체다라는 것이다! 이 텅 빈 대우주의 허공 그 깊은 속에 누가 있느냐? 바로 신神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神은 광명 그 자체다.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라
유·불·선·기독교의 신관과 불교의 일심법, 주역의 건곤乾坤이라든지 십익十翼에서 말하는 도교 또는 불가적인 심법, 그 모든 가르침이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라’는 것이다. 이 자리는 참된 영원한 생명이 발원하는 바요, 일어나는 곳이다. 만법萬法이 여기서 생한다는 것이다.
만법(萬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법法사상에 보면 우주 만유, 살아있는 대우주 자체도 법法이고, 그것을 깨달은 성자들의 가르침, 부처님의 말씀이라든지 모든 성자들의 말씀, 삶 그 자체도 법法이다.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게 법法이다. 깨달음의 법法은 어떻게 우주생명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주 현상계의 법칙, 그 속에서 태어난 인간의 삶, 삶에 대한 가르침, 깨달음의 길, 도통법, 그 모든 법이 시생是生이다! 이것은 강력한 메시지다. 진명소원(眞命所源) 만법시생(萬法是生), 영원한 생명이 여기에서 발원하는 바요, 그리고 모든 동서고금의 법法이 여기서 생한다.
일월지자(日月之子)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그래서 ‘일월지자(日月之子)오’, 현실세계에서 생명의 근원은 해(日)와 달(月)이다. 태양이 한순간 멈추면 지구 생명계는 한순간에 다 없어진다. 소멸된다. 바로 이 일월(日月), 생명 현상의 1차 근원인 일월, 일월광명(日月光明), 일월생명의 씨, 근원이란 말이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여기서 신神의 문제가 나오는데, 천신天神은 대표적으로「삼신오제본기」에서 말하는 대우주의 통치자, 우주 정치의 주관자 삼신상제(三神上帝), 일상제(一上帝), 한분의 상제님을 말한다. 여기서 천신(天神)은 우리 동방 문화의 정서로 보면 천지신명, 신의 마음자리다. 신명의 참마음이다. ‘천신지충(天神之衷), 충(衷)이라는 것은 속마음, 참마음, 우주와 하나 된 일심(一心) 자리다.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이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에서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삼신(三神)이 무궁한 광명을 비춰주고 생명선을 열어준다. 그 기운을 받을 때 ‘원각이능(圓覺而能)’ ; 원각圓覺이 일어난다. 대원각(大圓覺)이 일어나서 무소불위의 능한 인간이 된다. 옛날 안함로 같은 분은 돗자리를 타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런 도통의 경지에 있던 분이『삼성기(三聖紀)』를 썼다.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유만기중(有萬其衆)이니라 :
그리고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이런 기운이 크게 내려서, ‘유만기중(有萬其衆)’, 온 천하의 창생이 번성한다.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 원(圓)은 하늘을 상징하니까 삼신(三神)이, 신이 우주 현상세계에 나타나 있다. 이게 우리 문화의 원형정신이다. 신神이 따로 있고, 현상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사고는 너무도 잘못된 것이다.
본체 세계의 영혼의 생명계는 플라톤Platon의 이데아Idea처럼, 영원한 것은 저 천상의 이데아로 있고 현실세계는 다 그림자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런 이원론에 구약의 정신이 들어가서,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문화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서구 근대역사에서, 근대과학의 우주론에서 크게 정리되고 극복되고 있다.
삼신(三神)은 삼극(三極)이고, 그것이 살아있는 하늘과 땅, 인간이고, 그것을 수학 언어로 천일(天一) · 지일(地一) ·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하늘의 본성은 원만구족(圓滿具足)이니까 모든 걸 수용한다. 진리원상(眞理原象) 자체, 우주의 생명의 바다 그 자체다. 그래서 여기서 원圓이라는 것은, 일一이고 무극(無極)이다. 그러니까 하늘의 근본정신은 무극無極이다.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
그다음에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어머니 땅의 정신은 방정한데, 모든 생명, 인간이 태어나는 생명의 바탕, 어머니 지구 생명이라는 것은 음(陰)이다. 음陰의 근원이라는 뜻인데, 그것을 반극反極이라 했다. 반反이라는 것은 하늘과 정반대된다는 뜻도 있지만, 돌아갈 반反 자로, 하늘의 근원 정신으로 돌아가는, 하늘의 근원 정신과 영원히 일체, 하나 됨의 경계에 있다는 뜻도 된다.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
여기서 결론은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각角은 정삼각형을 말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영원히, 탄생하기 이전이나 탄생되는 순간이나 성장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나, 천일·지일·태일이다. 우주 궁극의 생명의 바다, 그 속에 있는 일신(一神) 즉 삼신(三神)이 현상화되어 나타나서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다. 삼위일체 문화원형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할 때 태극(太極)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극미세의 양자, 소립자 세계를 들어가면, 그 바탕은 진공인데 거기서 쌍입자雙粒子가 태어나서 쌍생쌍멸雙生雙滅한다고 한다. 매 순간 수억 조, 수수 억조의 입자들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이렇게 생성과 소멸의 춤을 춘다는 것이다.
이 대우주의 생명의 바탕 자체가 진공이고, 여기서 양자 요동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래서 초프라Deepak Chopra(1946~ ) 같은 사람은 ‘이 우주의 진공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허虛다. 여기에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무궁한 생명력이 있다’고 했다. 음양의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동양에서는 태극이라 하고, 그 태극을 정의할 때 물물物物이 태극이라 한다.
소립자, 원자, 이 우주 은하계에 있는 하나의 사물 그 각자가 다 태극이다. 그것을 거느린 우주정신 자체가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생명이 요동을 친다. 일본 동경에 가면 미래과학관이 있다. 거기에 가보면 앞으로 나올 과학의 여러 가지 진귀한 것도 보여주는데, 위로 올라가면 극장이 있다. 누워서 보는 거대 화면으로 보는 30분짜리 영화가 있다. 이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우주의 살아있는 모습인데, 극미의 입자 또는 끈이 막 요동을 치는 것이다.
동경 미래과학관 3D 돔 영상 작품 『버스데이 우주와 나를 잇는 것』 그 마지막을 보면, ‘우주는 끈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끈이 뭉쳐서 만물이 태어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자, 갑시다. 새로운 소식이 들립니다. 그것은 차원을 넘어야죠’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차원을 넘어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물리적 공간계, 시공 일체의 4차원 공간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수행을 해야 된다.
인류 문화 창조의 자궁, 소도제천 행사에서 우주의 천신(天神)과 어머니 지구의 영신(靈神)과 그 주재자인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천제를 올리고 있는데, 그때 신선 발귀리가 한마음이 되었을 때 바로 그 마음의 경계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소도제천 행사의 솟대다. 이 문화가 일본에 가보면 그대로 살아있다.
원형 삼도三道 : 전도佺道 선도僊道 종도倧道
전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우리가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이후 9천 년 국통 맥에서 문화를 창조한 원형정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三神), 천지부모와 한마음, 한 생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 생명의 바다에, 바로 그 생명의, 존재의 주인인 삼신(三神) 상제님이 계신다. 인간은 도를 닦아 도통을 해서 살아 있는 삼신(三神)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완전히 발현한 우주 광명 인간(홍익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불멸의 동방 원형삼도(原型三道) 정신이다.
원형 삼도(原型三道)는 삼신(三神)이 하늘땅 인간으로, 삼극(三極)으로, 삼재(三才)로, 천지인 사상으로 전개된 것이다. 동방의 천지인(天地人) 삼재 합일 사상의 원형이 바로 삼신(三神)이다. 우주 삼신三神, 이것이 우주 신학(神學)이고 서양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신학神學의 원형이다. 강단사학자들이 서양에 있는 삼위일체를 뜯어다가 삼신관(三神關)을 조작했다고, 잘못된 이야기를 한다.
유·불·선·기독교의 원형정신, 유·불·선·기독교의 모체 원형 삼도(三道)가 있다. 하늘의 조화 신성을 받아내린 것이 바로 전도(佺道)이고, 어머니 땅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나온 것이 선도(僊道), 신선도(神仙道)다. 그다음에 천지의 원주인인 인간, 인간의 다스림의 도,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의 도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종도(倧道)가 나왔다. 그러고서 불도(불교)가 이 전도佺道에서 나오고, 선도僊道, 신선도가 원형 선도僊道에서 나오고, 그다음에 유도(유교)가 종도倧道에서 나왔다.
지금 우리는 우주 1년의 봄여름 5만년이 지나고 우주의 가을 5만년 시간대로 넘어가는 문앞에 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바로 이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夏秋交易)의 문제다.
천지우주와 하나 되는 태일(太一) 심법(心法)을 열자
근대에 와서 이제는 종교 중심 시대도 끝났다. 철학 중심 시대도 끝나고, 과학 중심 시대도 끝났다. 한 가지에만 매달려서 거기에다가 사활을 걸면 성공을 못 하고 패망을 당한다. 지금은 종교, 철학, 과학 모든 인류 동서고금의 문화역사 정신이 융합되는 때이다.
동학(東學)에서 ‘12제국(19세기 전세계를 열두제국으로 말했다.) 12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니냐’고 했다. 앞으로 지구촌에 괴질병의 병란이 터진다. 괴질병이 터지기 전, 앞으로 약 4,5년 과정에서 우리 대한민국에서 천연두가 크게 유행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기후변화를 말하는데, 이 기후변화와 병란의 문제가 하나가 되어서 온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 천지우주와 하나 되는 태일 심법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회복해서 우주의 생명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조화생명 자체가 되고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 역사를 창조하는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신선 발귀리가 소도문화, 그 원형의 역사문화 정신을 가지고 노래해 주신 우주 생명관, 신관, 역사관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 지향할 통일문화 시대 열어나가는 역사관의, 미래 비전의 기초가 된다고 본다.
첫댓글 중국은 동이 문화다. 은나라도 동이족, 진시황도 동이족 영정, 수나라 당나라 선비족 , 원나라 몽고, 청나라 여진, 동이 민족에 대해서 일깨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