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세요?
김광한
손주 손녀들에게만 할아버지 소리 듣는줄 알았다가 할아버지란 호칭이 이제는 광범위하게 상식적으로 통하는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지요.지하철의 경로석에 앉기가 뭣해서 일반석에 서서 가려면 뒷쪽에서 하는 소리, 할아버지 여기 자리났어요. 앉으세요 하는 말에 괜찮다고 하다가 슬그머니 앉게 되는 요즘입니다.아저씨란 호칭은 삶의 기간이 좀 길어지는 것같은데 할아버지 호칭은 삶의 시간을 절박하게 만드는 것같아요.그래서인지 아침밥을 넉넉하게 먹고 나왔다가도 그런 소리 들으면 맥이 빠집니다.지난번 터키와 그리스를 갔는데 함께 간 21명 가운데 70뒤 끝의 나이가 나혼자이고 대부분 환진갑 겨우 지난 새내기 영감들이었지요. 그래선지 손주뻘되는 가이드가 내게 보내는 눈총이 남달라요.먼길이 나타나면 하는 말이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하고 걱정이 된다는 표정이에요.
터키의 파묵칼레란 곳이 있는데 목화(木花)의 성(城)이란 뜻이에요. 여기는 아주 옛날에 클레오 파트라가 와서 목욕을 했다는 곳인데 제법 올라가는 길이 높아요. 가이드 아가씨가 하는 말
"할아버지 괜찮으시겠어요?"
하면 예외없이 물어요. 괜찮다고 하면서 열심히 낙오되지 않고 뒤를 따라가다보니 체력이 역시 달려요.그리스 아테네에 가서 그곳 아프로 폴리스를 오르려면 언덕이 꽤 높아요. 중국처럼 가마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버스에서 쉰다는 것도 그렇고, 또 거기서 파르테논 신전까지 가려면 한참을 더 올라가요.가이드 아가씨가 유독 제게 눈총을 보아면서
"할아버지 괜찮으시겠어요?"
하면서 또 물어요.잘못해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겠지만자꾸 물어보는데 화가 날 지경이에요.몇년전만해도 해외 나갈때는 나보다 대여섯 위인 영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천연기념물이 된 것같아요.세계 최고높이의 수도원인 괴테미라에서도 또 물어요.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래서 언성을 좀 높였지요.
"나 이래뵈도 백두산 천지도 올라갔고 중국 장가계 천문산도 가마타지 않고 올라갔어!자꾸 할아버지 소리 하지마!"
중국에서는 가마꾼들이 있어서 양쪽에 만원과 팁 만원 3만원이면 앉아서 높은 산을 올라가는데 여긴 그렇지가 않지요.어느덧 내 나이 80이 다음다음 달이면 도달하는데 이발소에 가서 거울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과 남은 세월이 짧아졌다는 것이 목주름과 처진 볼따구니의 밋밋한 볼살, 휘어진 목에서 눈길을 돌려버리게 되지요.참 한 세상 짧기도 해요.고려 후기시대 우탁이란 선비가 지은 시가 생각이 나요.
한손에 가시쥐고 또 한손에 막대들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 길로 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