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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권들은 과거에 군주를 '차르'라 하였는데 러시아는 류리크 왕조의 이반 4세(뇌제 이반)이 처음 차르를 칭한 이래 공식적으론 표트르 1세가 스스로 임페라토르로 칭할 때까지 관습적으론 니콜라이 2세까지 모두 차르를 불렸는데 차르하면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다 보니 러시아의 차르들이 가장 유명한데 그중에서 유명한 것은 '가짜 차르'(참칭자)입니다.
러시아의 가짜 차르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면 보통의 경우 내가 왕족이고 내가 정당한 왕위계승자임을 주장했다면 러시아으 가짜 차르들은 왕실과 연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왕실과 가까운 인물을 자처하였다는 것으로 아얘 이러한 가짜들이 판을 치던 시대를 '혼란 시대'(혹은 동란 시대)라고 묶어서 분류합니다.
이러한 가짜 차르들이 등장한 배경은 초대 차르 이반 4세가 제대로 된 후계자를 남기지 못해서 입니다. 이반 4세는 여섯 자식을 두었고 이중 이반과 표도르가 성인이 되었지만 황태자이던 이반은 계승하지 못하고 죽었고(독살설이 있음) 표도르가 표도르 1세로서 즉위하게 되는데 문제는 표도르가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모두 결함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슬하에 겨우 딸 하나만 있을 뿐이었는데 그 딸마저도 일찍 죽어 이반 4세의 직계혈통은 끊깁니다.
물론 류리크 왕조 출신은 여전히 있었기에 이들로 계승하면 되었겠지만 오랜 몽골-타타르의 지배를 끝낸 이반 3세와 그 잔재를 없앤 이반 4세였기에 그들의 후손이 아니면 차르 자리를 주장하기에는 정통성이 미약했습니다. 그래도 나라에 군주는 있어야 하니 표도르 1세때부터 그를 대신해 나라를 통치했고 표도르 1세의 처남이던 보리스 고두노프가 차르가 되긴 했으나 류리크 왕조 혈통이 1도 없는 인간이 차르가 되다보니 귀족들이 반발했고 여기다 흉년까지 겹쳐 민심까지 흉흉해지게 됩니다.(보리스도 딱히 비범한 인물도 아니었고)
이러던 와중에 이반 4세의 일찍 죽은 자식들 중 하나인 드미트리가 죽음에 있어 뒷소문이 많았던 관계로 사실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소문에 편승하여 후세에 '가짜 드미트리'라 불리게 된 이들이 3명이나 나타나면서 혼란 시대가 시작됩니다.
첫번째는 그리고리 혹은 유리 오트레피예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로 가짜 드미트리 1세로 불립니다. 그는 진짜 드미트리보다 1살 연상인 부랑자 출신으로 소문을 듣고 자신이 드미트리라고 칭하였는데 특이한 점은 후에 나머지 가짜들과는 달리 진짜로 자신이 진짜 드미트리라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자신이 진짜 드미트리라고 칭하는 자가 나타나자 러시아는 두쪽으로 갈리는데 처음에는 보리스가 그의 체포를 시도해 첫 가짜는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망명하였고 거기서 지원을 얻어내 다시 돌아와 가짜와 지원받은 용병들, 러시아 국내의 반대파들이 함께 모여 내전이 벌어지는데 그럼에도 정규군을 가진 보리스가 우세했으나 보리스가 갑작스레 급사하면서 싸움은 갑작스레 싱겁게 끝이 납니다.
이 첫 가짜는 확실히 이후의 가짜들에 비하면 진짜같긴 했던지 드미트리의 생모가 직접 자기 아들이라고 인정했고 귀족들도 그를 인정해서 차르 드미트리로서 류리크 왕조의 명맥을 이어나가며 러시아를 안정시키나 싶었는데 첫 가짜에게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그의 집권과정에서 폴란드의 힘을 빌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측근은 물론 아내까지도 폴란드 출신이었고 자연스레 새황제와 그 측근은 친 폴란드 성향이었습니다. 그래도 귀족들은 일단은 묵인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측근들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던 것이 민중들에게 불만을, 아얘 폴란드인 아내를 황후로 정한 것이 귀족들의 불만을 샀습니다.(폴란드와는 이전부터 앙숙이었기에)
결국 귀족들은 지금의 차르가 가짜라는 소문을 퍼뜨리며 반차르 활동에 나서게 되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첫 가짜는 자기가 진짜라는 확신이 매우 강해서인지 이를 방치했다가 반란으로 번졌고 심지어 자신을 진짜라고 인정해준 드미트리 생모까지 입장을 바꿔서 결국 가짜 드미트리 1세는 몰락하고 그는 도망치다 죽습니다.
이후 차르가 된 이가 반란 주동자 바실리로 그는 바실리 4세로 즉위했지만 보리스와 비슷한 신세가 되어갔고(보리스와는 달리 류리크 왕조의 직계혈통이지만 이반 3세와는 너무 멀어서...) 결국엔 또 가짜 드미트리가 나타납니다.(가짜 드미트리 2세) 두번째 가짜는 신원미상으로 죄수 출신이라고만 추측되는 인물인데 왜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드미트리임은 물론 이전에 죽은 첫번째 인물과 같은 인물이며 그 때 죽은건 자신의 시종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괴상한 주장에 엉뚱하게도 드미트리의 생모와 가짜 드미트리 1세의 아내까지 호응하며 일이 커집니다.(정작 본인은 본인이 진지하게 드미트리라 생각하지 않음)
아무튼 또 나타난 가짜 드미트리였지만 러시아 민중들의 진짜 드미트리가 나타나주실거라는 믿음이 컸던 덕에 또 내전이 벌어집니다. 이번 내전은 폴란드와 스웨덴까지 개입할 정도로 판이 컸고 이번에도 가짜 드미트리(2세)가 승리합니다.
그런데 정작 러시아 귀족들이 폴란드와 협상하고 다른 인물을 차르로 세우려고 해서 내전의 승리와 관계없이 두번째 가짜는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새로이 차르가 되려고 한 인물이 종교갈등 끝에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되고 폴란드는 폴란드대로 스웨덴은 스웨덴대로 러시아를 공격하면서 혼란이 벌어지자 기회를 잡고 재기하려다가 부하에게 살해당합니다.(이후 가짜 1세의 황후가 가짜 2세의 아들인 이반을 내세워 저항하다가 잡혀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사망합니다.)
이후에 가짜 드미트리 3세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시도르카'라 불리던 하급 성직자 출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가짜는 앞의 두 경우와는 달리 별 임펙트 있는 일을 못 남기고 지지세력의 배신으로 체포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이번 가짜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자신이 드미트리임을 칭하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고 새로운 차르로 이반 4세의 처남의 아들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선출됨에 따라 혼란 시대는 종료되고 러시아 혁명때까지 이어지는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여파는 오래도록 남았는데 이후로 160~170여년 뒤인 예카테리나 2세 시기, 몬테네그로에서 나타난 '차르 슈체판'이라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그는 자신이 예카테리나 2세의 남편인 표트르 3세라고 주장했습니다. 시간을 잠시 과거로 돌려 예카테리나 2세 전의 황제인 표트르 3세는 매우 어리버리한 인물로 거기다가 프로이센빠 성향이 겹쳐 다 이긴 7년전쟁에서 프로이센과 적국이었음에도 프로이센에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주어 아내와 귀족들이 합심하고 일으킨 쿠데타로 실각하고 의문사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10여년 뒤 몬테네그로에서 웬 엉뚱한 사람이 자기가 표트르 3세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선대 몬테네그로의 왕의 자식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 것인데 정작 몬테네그로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또 믿는 사람도 많았기에 차르로 추대되었는데 이 가짜 차르는 정말 그 어리버리한 표트르 3세랑 동일인물인지 좋은 의미로 의문이 들 정도로 유능해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침공을 모두 막아내었습니다.
여튼 해외에 죽은 자국 군주라고 칭하는 인물이 나오자 러시아는 이 때의 기억이 떠올라 그를 제거하기 위한 특사를 보냈습니다. 특사는 조사 끝에 그가 가짜이며 진실은 달마티아 출신의 평범한 농부라는 것을 밝혀냈지만 몬테네그로인들은 슈체판을 계속 차르로 모셨고 특사도 제거가 어렵다고 여겼는지 그냥 돌아가버렸습니다.
여튼 그렇게 차르가 된 슈체판은 정말 표트르 3세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유능했는데 몬테네그로의 분쟁을 해소하고 분쟁을 중재할 재판소를 설립하는가 하면 도로망을 건설하고 상비군을 마련하는가 하면 전국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주목한 나라가 있었는데 바로 러시아였습니다. 슈체판이 가짜라는게 판명난데다 슈체판이 러시아의 차르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별 위협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오히려 오스만과 맞서는 모습에 손을 잡으면 좋겠다고 여겨 아예 그에게 중장 계급과 훈장까지 수여하는 등 호의적으로 나섭니다. 그러나 정작 슈체판은 그로부터 1년 뒤, 즉위한지 7년째에 오스만의 사주를 받은 이발사에게 암살당합니다.
그리고 다시 50년 정도 뒤 반대로 타인에 의해 진짜 차르로 의심받은 인물이 나타납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1세는 공식적으론 크림 반도에 요양을 가 있다가 병사했다고 되어 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스테리한 면이 있었는데 우선 함께 있던 황후의 일기에 이 때 일이 기록되어있지 않았던 점, 임종 의식도 제대로 치뤄지지 않았던 점, 사망(?)당시 건강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 측근들이 황제의 관을 여는 것을 거부한 점, 주치의가 황제 사망증명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점 등 수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심지어 나중에 관을 확인하니 시체가 없었음) 그로부터 10년 후 진짜 알렉산드르 1세로 지목된 사람이 나타납니다.
지목된 사람은 바로 시베리아의 표도르 쿠즈미치라는 늙은 성직자로 그는 치유 능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는데 그의 행동거지와 모습이 죽었다던 알렉산드르 1세와 닮았다는 소문이 퍼졌고 알렉산드르 1세의 하인이었던 사람이 그를 만나고는 그가 알렉산드르 1세라고 주장하였으며 그는 겉으론 농노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농노 출신이라면서 궁중예법에 밝은 점, 알렉산드르 1세가 파리에 입성할 때를 너무 잘 알아 진짜 알렉산드르 1세라고 의심받았고 이에 그가 알렉산드르 1세라는 소문이 쫙 퍼지지만 소문에 부담을 느낀 그가 은둔해버려 진상은 밝혀지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마노프 왕조 멸망 후의 일인데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와 일가족은 적백내전 도중 볼셰비키측에 의해 불법적으로 총살당해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니콜라이 2세는 물론 그 일가족에 대해서는 사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이는 오랫동안 그들의 유해가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짜들이 나오곤 했는데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레가 아나스타샤 공주를 사칭한 안나 앤더슨과 황태자였던 알렉세이라고 주장한 바실리 크세노폰토비치 필라토프가 있습니다.
앤더슨은 아나스타샤와 닮은 외모를 가졌고 그래서인지 자신을 아나스타샤라 주장하며 가족들이 살해당할 때 자신은 기절만 했던 덕에 살았던 것이라는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러시아 황실의 정보와 황실예법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아나스타샤를 알던 이들은 모두 그녀를 가짜라고 여겼는데 그나마 아나스타샤의 고모인 올가는 이를 믿긴 했지만 어떻게든 조카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넘어간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정작 아나스타샤의 할머니인 다우마 공주는 이를 믿지 않으며 믿는 딸을 질책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앤더슨은 프랑스어를 하지 못했는데 당시 유럽 왕실의 공용어가 프랑스어였기에 공주였다는 사람이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점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정작 아나스타샤가 생전에 잘 못했던 독일어는 또 잘해서 더 의심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앤더슨 생전에 이미 가짜로 판정났지만 당사자는 끝까지 자기가 진짜라고 우기며 상속권을 요구했고 소수의 추종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어렵지않게 살다 갔는데 끝까지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해서 묘비에도 그렇게 새겨지긴 했는데 결국 사후 유전자 조사에서 불일치가 나와서 가짜로 판명됩니다.
바실리는 그의 실제 나이는 진짜보다 세 살이 어렸고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집안 출신답지 않게 예술, 역사, 언어, 문학에 걸쳐 조예가 깊다는 구두 수선공이라기엔 믿기지도 않는 능력을 가졌으며 그의 아버지도 구두 제화공으로 알려져 있어서 집안 자체가 어릴적에 몰락해서 그랬을 리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지리교사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1988년 사망하기 직전에 자신이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라고 고백하였는데 실제로 그의 두상은 알렉세이와 닮았다고 하며 이목구비 비율도 비슷했고 자손들의 DNA 검사에서도 로마노프 왕조의 유전자와 일부나마 일치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그가 알렉세이였다는 설이 진지하게 나오게 됩니다. 실제로도 2년 뒤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유해가 발굴되었을 때 아나스타샤와 함께 알렉세이의 유해가 없어서 당시로서는 허황된 주장이라 여기기도 힘들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었는데 알렉세이는 혈우병으로 고생했는데 그는 매우 건강했던 점, 필라토프는 "진짜 바실리 필라토프는 죽었고, 그 부모가 알렉세이 황태자였던 나를 거둬 자신들의 아들인 바실리 필라토프의 인생을 살게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사실을 증명해줄 사람도 없었고 그나마 있던 이웃들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2007년에 진짜 알렉세이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가짜로 판명납니다.(추가로 아나스타샤의 유해는 사실 발견되었는데 당시에 판정을 잘못 내린 것으로 결론)
이와 관련해서 결국에는 필라토프가 왜 자신이 알렉세이라고 주장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남았습니다. 이전까지 가짜들은 판을 쳤고 그들 대부분은 돈과 명예를 노린 인물들로 당연히 생전에 주장했음은 물론 실제로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사기꾼이었지만 그는 실제로 로마노프 황가의 후예는 맞아서 아애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었음에도 죽기 전에야 그런 말을 한 점이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설에는 일단 로마노프 황가의 후예는 맞으니 자신도 니콜라이 2세 일가처럼 될것이 두려워 숨기고 있다가 죽기 직전에야 고백했는데 늙어서 기억에 혼선이 생겨 잘못 말한 것이 아닌라 하는 말이 있지만 당사자가 워낙 오랫동안 입다물다 죽기 직전에야 말한 까닭에 가족들조차 아는게 없어서 진실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번외 격으로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지목된 케이스인데 근데 또 아주 말이 안 되는건 아닌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러시아 제국 최후의 황태후인 다우마 공주는 러시아 혁명 후 영국의 도움으로 영국에 망명하게 되는데 뜬금없게도 영국 왕 조지 5세를 만나자 자기 아들로 오인해 자기 아들이 살아돌아왔다고 착각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사실 진짜로 조지 5세와 니콜라이 2세는 각자의 어머니인 다우마 공주와 알렉산드라 공주가 자매지간에 서로 쌍둥이처럼 닮았고 그래서인지 두 사람도 우연히 서로 붕어빵처럼 닮아서 이미 생전에 조지 5세의 결혼식에 니콜라이 2세가 방문했다가 피로연에서 신랑으로 오인당하는 헤프닝을 겪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첫댓글 17세기 - 가짜 드미트리
18세기 - 가짜 표트르 3세
19세기 - 진짜 알렉산드라 1세(?)
20세기 - 가짜 아나스타샤, 가짜 알렉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