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5세 아이의 초자아
며칠 전 오후에 5세 남자 아이(민서)를 진료하였다. 아이의 어머니가 동행하였다. 아이는 얼굴이 스마트하고 침착해 보였다. 엄마는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말투가 부드럽고 상냥하였다. 아이의 우측 상안검에 다래끼가 관찰되었다. 이미 1주일 동안 소아청소년과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였다. 아이는 두려워하였으나 어머니가 타이르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 검진이 가능하였다. 줄곧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와 말투는 부드러웠고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농양 부위의 절개를 위하여 침대에 눕혀야 하였다. 사실 나이가 5살이면 몸부림치는 힘이 대단하여 강제로 제압해 움직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과적 처치를 하기가 무척 힘들다. 처치 받기를 거부하며 떼를 쓰면 더욱 난감해진다. 이럴 경우에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회유하고 좋아하는 먹을 거리, 장난감 등으로 달래보아도 영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부모가 의도치 않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무시해버리는 상황도 벌어진다.
어머니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시술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라며 같이 고민해 주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침대에 올라가도록 유도하였다. 이 말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안심을 주게 되었다. 아이의 진짜 마음을 파악하지 못하고 괜찮다고만 하면 이럴 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순순히 응하였다. 시술 도중에 ‘아프다’는 표현과 잠시 울었을 뿐 심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엄마의 안타까움이 담긴 위로의 말이 아이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엄마가 너의 발을 잡아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 민서 잘하지, 끝나면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다’는 등 토닥이며 칭찬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는데 무척이나 다정스럽다. 나도 저렇게 달래는 말투를 들어 봤으면--- 어린 아이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의 도움과 억센 간호사의 노련한 제압으로 쉽게 농양을 처리할 수 있었다. 곧이어 아빠가 걱정이 되어 병원을 들렸고 두 사람이 모두 공손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보기 드문 예의를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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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어머니와 함께 아이가 방문하였고 손에는 감사를 표시하는 카드를 쥐고 있었다. 봉투를 받아 뜯어 보니 서투른 글씨로 ‘선생님 눈 예쁘게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민서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가 봉투 속에 매미도 있다고 하여 보니 종이로 어설프게 접은 초록색 매미가 있었다. 진료가 끝나고 나가면서 배꼽인사를 귀엽게 하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진료실을 나가 어머니가 간호사들에게 봉지빵을 하나씩 전해주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들도 엄마가 아이를 다루는 솜씨에 감복하였는지 ‘자기는 도저히 저렇게 못할 것 같다. 참을성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르침을 주기는 어렵다. 여운이 남는 아이와 그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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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민서)는 초자아(superego)가 형성된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획득한 내면화된 도덕 표준과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해야 할 것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진료를 받지 않겠다는 충동을 억제하고 이상주의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정신의학에서 도덕, 윤리, 양심은 초자아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어린아이의 정신은 이드(id)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장하면서 자아가 형성된다. 자아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이드를 현실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를 중개하고 균형을 이루며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갈등이 일어날 때 이를 중재하고, 괴로운 일이 기억날 때 이를 달래주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시하는 게 자아이다.
초자아는 태어날 때는 없었으나 자라면서 점점 발달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것은 하면 않된다’, ‘저것은 꼭 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처음에는 하기 싫지만 혼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스스로 지켜야 할 행동규범이 된다. 도덕과 양심이 점차 내면화되면서 자신만의 것으로 완성된다. 이것이 초자아의 내재화(內在化)이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다양한 이상과 가치들을 보고 배운다. 부모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따라 보고 배운 것이 초자아가 되는 것이다. 아이의 초자아 형성에 부모의 역할이 지대하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아이는 부모라는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며 자기 자신의 미래를 본다. 부모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상을 같이 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하다. 내가 몰상식과 비양심과 반도덕에 기울어진 삶을 살아왔다면 내 아이가 나와는 정반대로 상식과 양심과 도덕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기대한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아이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향후에도 아이(민서)의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언행을 유지하여 아이가 그것을 익히기 바란다. 그래서 목격한 부모의 좋은 언행이 아이로 하여금 이드(id)에 치중되지 않고 초자아(superego)의 형성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건강한 정신세계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경명회 KIT)
사진: 민서의 카드와 초록색 매미
첫댓글 민서가 만든 매미가
나뭇잎과 매미가 하나가 된 색깔을 띠고 있네요.
민서가 앞에 있다면 악수를 한 번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