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서울에 기자가 쓴 글입니다.
찌라시 신문 기자치곤는 조리있게 나름대로 사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썼더군요.
이글은 비단 릭윤에 대한 논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헐리우드 영화에 스며든 한국의 비하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긴 내용이지만 한번은 읽어볼만한 글이더군요.
시간나시면 한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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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윤씨, 일면식도 없는 처지에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말로 서두를 대신하게 돼 안타깝습니다
어제 당신이 호주에서 새로운 007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를 홍보하면서 한 말을 대만 언론이 크게 보도하면서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오늘 오전만 해도 당신의 공식 홈페이지(http://rickyune.na.fm)에서 많은 이들의 비난덧글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용량이 폭주했는지 아예 다운이 되고말았군요.
당신과 감독 타마호리는 대만기자들에게 이 영화의 캐스팅을 거부한 차인표를 "거짓말쟁이" "차인표는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일할 생각을 하지마라"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차인표는 수개월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새로운 007영화의 문대령역에 캐스팅됐지만 줄거리가 남북한의 현실을 왜곡하고 있어 출연을 거절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어쩌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도 있는 영화의 배역을 제의받고도 국가와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출연을 거부한 그에게서 우리 국민들은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그후 당신이 또다른 한국인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당신인만큼 크게 괘념치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당신이 대만 언론을 통해 차인표를 맹비난하고 또한 감독은 우리 국민들에게 훈계조로 "남북한 분열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라"는 식의 막돼먹은 소리를 했다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최근 007영화홍보차 서울을 다녀갔을 때 미군장갑차 사건의 여파로 소기의 성과를 못거뒀지만 우리 국민들이 당신에 대해 비교적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만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영화 홍보는 커녕 치도곤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릭윤씨,작금의 비난여론이 무척 당혹스러울줄 압니다.저 역시 할리우드에서 흔치 않은 유망한 한국계 배우인 당신에 대해 다름아닌 조국의 팬들이 분노하게 된 상황이 야속할 따름입니다.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언론이 당신과 직접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고,대만 언론의 보도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좀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대만언론이 전후사정을 거두절미하고 일부 멘트를 자극적으로 옮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당신이 꼭 알아야 할 몇가지 얘기가 있기 때문입니다.우선 당신이 출연한 007영화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요.007시리즈는 1970년대까지 나오기만 하면 전 세계적인 흥행이 보장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습니다.여성을 상품화한 본드걸의 존재,권선징악형의 단순한 줄거리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선 보기드문 첨단무기들과 악에 맞서 세계 평화를 지키는 영웅의 출현을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80년대이후 하늘높은줄 모르던 007영화의 인기는 점차 꺾이고 말았습니다.외형상의 이유는 가공할 액션에 초점을 맞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지면서 007영화의 차별성이 퇴색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무엇보다 큰 이유는 초기 007에서 포괄적인 악의 무리들이 동서냉전을 반영하여 구소련으로 옮겨가는 등 악의 대상을 정형화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서방중심적인 시각으로 포장된 것이 제3세계권 관객의 반발을 불러왔기때문입니다.007류의 영화들은 구소련 등 공산블럭이 무너지면서 악의 정체성이 흔들리자 곧 국적이 불분명한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새로운 악으로 규정하게 되었습니다.(아놀드 슈왈체네거가 주연한 '트루 라이즈'에서 중동의 테러수괴를 무식하고 한심한 대상으로 조롱한 장면도 마찬가지지요)
급기야 미국이 지구상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면서 할리우드는 외계인을 또다른 악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그렇다고 중동의 테러국을 써먹기엔 너무 진부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겠지요.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악의 무리는 어디일까요.부시가 이란 이라크 등과 함께 지칭한 이른바 악의 축,북한입니다.왜 진작에 북한소재를 쓰지 않았을까 하고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무릎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제작사인 20세기폭스는 북한의 강경파 특수요원이 평화적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북한의 온건파장군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007이 각종 신병기로 분쇄한다는 내용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북한을 악의 무리로,남한을 꼭둑각시로 빗댄 것이 얼마나 우리의 공분을 자아내는지,남북의 분단지점을 안개낀 통나무로 처리하고 남한을 낙후한 국가로 묘사한 것이 얼마나 몰상식한지 괘념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뻔뻔스럽게 한국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단 말입니까.할리우드에서 캐스팅하면 배역이나 줄거리가 어찌됐건 침 질질 흘리며 고개를 조아릴줄 알았단 말입니까.
여기서 아쉬운 대목은 릭 윤,당신입니다.미국적 사고에 얼마간 동화됐을 당신이기에 차인표만큼의 역사인식을 바라진 않지만 닳고닳은 30년전의 냉전의식이 지배하는 영화에,그것도 우리 민족을 희화하고 남북분단의 비극을 담보한 영화에 덥썩 출연결정을 한단 말입니까.
물론 쉽지 않은 결정과정이 있었을지 모릅니다.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편견이라는 할리우드의 높은 벽과 싸웠을 당신에게 007영화는 다시 잡기힘든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그렇지만 당신은 최소한의 문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검토했어야 합니다.당신의 뿌리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금융기업경영학위를 받았고 월스트리트에서 선물중개업을 했던 엘리트입니다.필라델피아의 와튼 비즈니스스쿨 재학중 경험한 모델생활을 인연으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했고 99년 영화 '삼나무에 내리는눈'으로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습니다.
혹자는 당신의 최종적인 꿈이 주지사라는 얘기를 합니다.할리우드와 영화배우는 그를 위한 과정이라는 말도 합니다.사실이라면 제발 그렇게 되주길 바랍니다.미국의 유태사회처럼 당신같은 재미동포 2세 엘리트가 미국의 주류사회에 한사람이라도 더 진출해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대변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릭윤씨,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입니다."지금 욕을 먹더라도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한 다음에 한국을 도우면 된다"라고 생각하십니까.그러나 그 과정에서 받는 우리의 상처가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혹시 안하셨습니까.
릭윤씨,원로배우 오순택 선생을 아시지요? 당신의 대선배로 할리우드의 준스타급 대우를 받은 분 말입니다. 57년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 59년 홀홀단신 도미한 그이는 할리우드라는 황야에서 지금의 입지를 굳히기까지 말못할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뉴욕의 배우전문학교를 다니면서 접시닦기를 비롯,주차장 보조,헬리콥터부속품 공장사원,벌목공,호텔 바텐더,심지어 어느 노인부부집에서 4년간 남자가정부 생활까지 했다는군요.
157명의 대학동기생중 졸업생이 16명에 불과할정도로 엄격한 학교를 나온 그이는 65년 연극 '라쇼몽'으로 데뷔했고 TV 영화에도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학업에도 충실해 67년엔 UCLA에서 실기부분 최고학위인 연기 및 극작석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오순택선생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당신과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기때문이지요.그이 역시 007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거든요.1975년 전 세계에서 히트한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그이는 홍콩 주재 영국 정보원역을 맡아 로저 무어와 짝을 이뤘습니다.
당시 그이가 세계 최고의 인기영화에 출연한 것은 상당한 화제였습니다.그이가 어떻게 그런 역을 맡을 수 있었을까요.이것에는 숨겨진 비화가 있습니다.당초 그이의 역은 영국배우들이 맡을 예정이었습니다.그러나 마땅한 사람이 없자 제작진은 홍콩배우,일본배우순으로 오디션을 했고 마지막으로 그이에게 기회가 돌아온 것입니다.그이는 "만일 하우스보이같은 단역을 줄 생각이라면 007영화라도 안한다"고 가이 해밀턴감독에게 당당히 말했다는군요.
그이는 배우 생활을 하면서 자존심을 버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릭 윤씨,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한 93년도 영화 '폴링다운'을 잘 아실 것입니다.한국인을 돈벌레처럼 묘사해 국내에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영화말입니다.
얼마전 오순택 선생은 한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폴링다운'출연제의를 거절한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마이클 더글라스가 한국인 가게에 들어와 인종차별적 분풀이를 해대며 야구방망이로 물건을 부술 때 비참하게 엎드려 굽신거리는 한국인 주인역이었습니다.한국인을 능멸하는 배역을 용납할 수 없었던 오순택 선생은 "한국인은 그렇게 졸장부가 아니다"라는 말로 거절을 대신했습니다
릭윤씨,영화 '폴링다운' 얘기를 좀더 해야겠군요.
이 영화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지금 당신에 분노한 사람들의 정서를 읽는데 도움이 될것이기 때문입니다.조엘 슈마허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마이클 더글라스가 주연힌 '폴링다운'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아침 로스앤젤레스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으로 차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되지요.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남자 주인공 '디펜스'( D-Fens)가 차안에 있는 파리한테 마구 신경질을 부리다 길이 막힌다고 아예 차를 버리고 걸어가 버립니다.디펜스는 근처 식료품 가게로 들어가 공중전화를 걸게 잔돈을 좀 바꿔달라고 하다가 바가지를 씌우려는 한국계 주인을 참지 못합니다. 발음이 나쁜 것도 기분나쁘고 미국의 많은 원조를 받은 한국인이라는 것도 맘에 안든다고 독설을 퍼부으며 야구방망이로 가게의 물건들을 죄 때려부수고 나갑니다. 디펜스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는데 이혼한 전처와 함께 사는 딸의 생일을 맞아서 찾아가는 길이었지요. 꼭지가 돈 디펜스는 한국인 가게 주인을 시작으로,라틴계 불량배들을 혼내주고 그불량배들의 총을 빼앗아서 도심의 람보가 됩니다.구걸을 강요하는 부랑자도 쫓아버리고 고객의 불친절하고 광고와 비교해 훨씬 빈약한 햄버거를 팔고 있는 햄버거 집에서도 총을 갈겨댑니다. 동성애자나 여성을 혐오하는 신 나치주의자는 아예 죽여버립니다. 유색 인종인 도로 공사장 인부들에게는 쓸데없는 공사를 해서 도로 체증을 유발한다며 바추카포까지 쏘아댑니다. 돈 많은 유태계 노인들은 복지 혜택을 누려 평균 수명 이상을 살면서도 건강한 모습이 배 아프다고 윽박질러 결국 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게 만듭니다.
릭윤씨,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당초 이 영화는 한 실업자의 울분을 통해 사회와 자신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안목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려 했던 모양입니다.그러나 조엘 슈마허감독은 디펜스가 상징하는 미국 중산층의 짜증나는 일상에 대한 분노를 터무니없게도 유색인종과 사회적 약자에게 폭발시킵니다.비록 주인공이 성격파탄자임을 암시하고 가족앞에서 총을 맞고 추락하는 비극으로 결말짓지만 미국의 수많은 백인들이 디펜스의 람보식 좌충우돌을 보고 박수갈채를 보냈다는 사실은 한국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희생양으로 삼는 백인 중산층의 편견과 분노,근거없는 우월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 영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하필 디펜스의 미친 짓거리가 한국인 상인 때문에 촉발되기때문입니다.이같은 상황 설정은 92년 LA 폭동으로 큰 시련을 겪은 우리 한인들에게 악몽을 심어주고 또한번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릭윤씨,당신이라면 아무리 영화가 뜰 것같고 배역이 중요하다해도 한국인 가게주인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결국 이 역은 중국계 배우 마이클 챈이 맡았습니다.물론 007영화와 폴링다운은 차이가 있습니다.다만 저는 당신이 출연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고민의 흔적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들이 얼마나 대한민국을 업수히 여겼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은 '폴링다운'을 제작 이듬해인 94년 우리나라에서 기습적인 개봉을 하려했다는 사실입니다.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의 시도는 그러나 스포츠서울의 사전보도로 커다란 저항에 부딛칩니다.
당시 영화기자였던 저는 워너브라더스가 한국내 비판여론을 의식,제목을 '추락'으로 바꾸고 한국인을 비하한 내용을 편집한 상태에서 몰래 심의를 신청하고 슬그머니 개봉하려한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제보로 알게 되었습니다.아마도 그 직배사는 영화 흥행에는 실패하더라도 비디오 판권으로 수입을 건질 수 있다는 계산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94년 2월 26일자 스포츠서울 사회면 톱기사로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삽시간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이 분노하고 사회단체들도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워너브라더스는 12일만에 "개봉을 전면 철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할 때였습니다.메이저 직배사의 영향력이 말도 못하게 클 때였지요.폴링다운의 개봉 좌절은 선과 악을 자기들 입맛대로 규정하고 인종차별적 시각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무소불위의 할리우드 영화권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미있는 승리였습니다.폴링다운은 그로부터 3년후 국내에서 개봉됐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직배사가 아니라 국내 수입업자가 거의 공짜(100달러라는 설도 있더군요)로 판권을 얻어서 들여온 것이었습니다.
릭윤씨,제 글에 모두가 공감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다른 견해도 있었습니다.비록 극소수였지만 폴링다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폄하한 사람도 있었지요.
<<몇 년 전에는 한국인을 비하하는 내용이 있다며 무슨 사회 단체에서 미국영화 ‘폴링 다운'의 개봉을 천박한 반미감정을 팔아가며 저지한 적이 있다.문제의 장면은 이런 거다. 되는 일 없어 열이 머리끝까지 받친 백인이 구멍가게에 들어가 동전을 바꾸려 한다. 마침 주인은 한국인이고, 그 한국인 주인은 뭔가를 사지 않으면 동전을 바꿔줄 수 없다고 못되게 군다.분노가 폭발한 주인공이 가게를 다 부신다.뭘 사지 않으면 동전을 바꿔주지 못하겠다는 태도와 이런 장면을 반미에 연결시키면서 사회운동이랍시고 수선을 떠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저열한가? 혹은 한국인다운가? 참고로 난 요새도 시내에서 동전이 필요할 경우 껌을 산다.>>
천박한 반미감정이라구요? 동전을 안바꿔주는 장면을 반미에 연결시키면서 사회운동이랍시고 수선을 떤다구요? 어느것이 더 저열하냐구요? 릭윤씨,유감스럽게도 저는 문제의 필자가 쓴 글을 1년후에야 보게 됐습니다.영화가 표현하는 자유는 어떤 경우에서도 침해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왜 폴링다운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왜곡하는 것으로 논리가 전개됐는지 안타깝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너희들이 전쟁으로 곤란할 때 얼마나 도와주었는데, 배은망덕하다"“여기와서 살려면 말부터 제대로 배워라"면서 야구방망이로 구타하고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주인공에게,한국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폭력을 정당화하는 감독에게 박수라도 보내라는 말입니까?온화한 표정의 일본경찰서장이 한국상점 주인에게 "잔돈좀 줬으면 되는 걸 가지고…"라는 핀잔을 주는 장면에서 왜 불순한 의도를 발견하지 못하나요.
폴링다운을 규탄한 YMCA측은 "시민단체의 개봉철회요구는 사회적 검열의 전례를 남기자는 뜻이 아니라 왜곡된 인종편견주의로 위협받는 우리 대중문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기회로 삼자"는 뜻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릭윤씨,정당한 분노와 거부감은 솔직하게 표출해야 합니다.그것은 우리들의 자존심을 수호하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가해 당사자들에게도 자기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기때문입니다.
97년인가요.문제의 조엘 슈마허감독이 배드 컴퍼니라는 영화를 개봉하면서 한국기자들과 인터뷰를 했습니다.그때 폴링다운 얘기가 나오자 슈마허감독은 "특별히 한국을 비하할 의도는 없었다"고 유감을 표명하고 "그 사건 이후로 한국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LA는 한국사람들로 인해 범죄도 많이 줄어들었고 상업적인 면에서도 많이 활발해졌다"며 한국인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음을 토로했습니다.
릭윤씨,무엇보다 제가 관심을 쏟는 것은 영화속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입니다.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만 헐리우드 영화속에서 비춰지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새로운 영웅상을 구축한 중국과 경제대국으로서 관리자의 이미지와 긍정적인 문화대상인 일본에 비하면 정말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일본의 과거 죄악을 건드린 '진주만'같은 영화조차 사실은 일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위해 일본 조종사의 이미지를 가능한 미화하고 자극적인 대사까지 순화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반면‘아웃브레이크’(감독 볼프강 피터슨)에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미국에 옮기는 죽음의 화물선이 한국의 ‘태극호’입니다. 많은 한국선원들이 등장하고 선실엔 태극기가 걸려있지요.
심해의 외계물질과 탐사단과의 대치를 그린 ‘스피어’(감독 배리 레빈슨)에서 탐사대원은 “뒷면을 살펴봐.‘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씌어 있을지도 몰라”라며 싸구려 물건을 풍자합니다.
줄리아 로버츠에게 아카데미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에린 브로코비치’(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에서 현대 엑셀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지만 사실은 초라한 삶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쓰이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인종편견에 대한 의식있는 영화라고 알려진 '스파이크 리'감독의 '똑바로 살아라'에서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고발하면서 애꿎게 한국인을 조롱합니다. 브루클린 흑인지역의 피자가게를 무대로 식품점을 운영하는 김씨는 흑인들로부터 ‘영어 좀 배워. 영어 못해?’라고 계속 무시받습니다. 급기야 이런 소리까지 듣습니다. “째진 눈이 뉴욕의 과일·야채상점을 다 차지했어! 88올림픽 엿먹어!"
물론 미약하지만 한국을 좋게 묘사하는 영화도 더러 있는 게 사실입니다.우리가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준 것도 있겠지요.그러나 전반적으로 할리우드는 한국에 철저히 무지하며 종종 터무니없이 나쁜 쪽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릭윤씨,우리가 당신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한국을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라도 당신같은 한국계 영화인들에게 우리는 성원을 보낼 것입니다.
우리의 힘을 작게 보지 마십시요.대한민국은 할리우드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입니다.대한민국의 관객들이 단결하고 힘을 불어넣어준다면 당신은 보다 좋은 배역을 맡을 수 있습니다.
릭윤씨,우리가 당신을 오해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러기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공개적으로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해주십시오.당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기때문입니다.
당신과 우리들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정의롭고 양심적이며 아름답고 선량한 한국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는 할리우드영화속에서 재미 한인들이 양념같은 존재나 하나의 특수한 문화적 코드가 아닌,당당한 주인공이요,진지한 가치를 추구하는 캐릭터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릭윤씨,
아니,끝으로 당신의 아름다운 한국이름으로 불러보겠습니다.
윤성식씨!
지금도 미국 이름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Soon-tek Oh'를 고집하는 당신의 대선배 오순택선생의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부디 오늘의 아픔을 거울삼아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대배우가 되시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