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나락으로 떨어졌던 소니가 다시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소니는 올해 4~9월 순이익이 1159억엔(약 1조900억원)으로 5년 만에 첫 흑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2015년에는 연간 기준으로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결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소니 외에도 일본 전자업체들은 새로운 전략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있다. 같은 기간 순이익 기준 파나소닉(1113억엔), 히타치(975억엔) 등도 재기에 성공했다. 2000년대 이후 휴대폰 시장이 급속히 성장한 데 이어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일본 전자업체들은 위기에 직면했다. 전자제품의 최고 강자라고 불리던 소니를 비롯해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았던 파나소닉, 도시바, 히타치와 카메라 업체인 후지필름, 캐논, 올림푸스 등이 스마트폰 탑재 카메라 기능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일본 전자업체들은 마냥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다른 전략을 세워 시장을 공략하면서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전자업체들이 벼랑 끝까지 몰렸다 다시 부활에 성공하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 기존 기술을 활용해 다른 산업에 뛰어들어라
예전에는 다 같은 전자업체였다고 해도 현재 진출해 있는 산업은 제각각이다. 전자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다른 산업에 접목하는 전략을 세우는데, 각기 다른 포트폴리오로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mp3플레이어, CD플레이어, TV 등으로 알려져 있던 파나소닉은 기존 전자기기 기술을 활용해 헬스케어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자체 브랜드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판매하면서 의료기기 업체로서 '파나소닉' 브랜드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카메라 업체로 알려져 있는 올림푸스도 마찬가지다. 올림푸스는 1950년 세계 최초로 위 카메라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의료사업을 시작한 이래 전 세계 소화기 내시경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의료사업 성장은 두드러진다. 올림푸스는 의료 분야에서만 매출이 2011년 3492억엔에서 2012년 3947억엔, 2013년 4923억엔, 지난해는 5583억엔으로 연평균 10% 이상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소니는 전자제품을 선도했던 기술력으로 이미징 센서와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가장 초점을 두는 분야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이미징 센서 기술이다. 소니 관계자는 "소니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부품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증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남명우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전자업체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공략하는 산업을 바꾸면서 성장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시장을 공략해라
일본 전자업체들은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는 시장을 미리 선점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미래 시장을 예측하고 이 시장을 분석해 과감하게 진출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중 헬스케어 산업이 가장 두드러진다. 고령 인구가 이미 23%가 넘은 일본 내에서 일본 전자업체들은 헬스케어 산업의 중요성을 미리 인지하고 이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파나소닉과 올림푸스가 가장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파나소닉은 헬스케어 분야에만 총 30억엔을 투자해 고정밀 혈당측정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림푸스는 1950년대부터 의료산업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의료사업을 진행하면서 의료기기, 산업용 내시경, 생물 현미경 등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바가 제조하는 초음파진단기 등은 여전히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니와 올림푸스는 소니의 강점인 영상 기술과 올림푸스의 의료기기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회사인 '소니 올림푸스 메디컬 솔루션스'를 2013년 공동 설립했다. 이 회사는 3D 영상의 고화질 고성능 내시경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 내시경을 포함한 의료기기 매출을 2020년까지 700억엔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이상명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은 대표적인 고령사회로 일본 전자업체들은 헬스케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미리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시장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R&D에는 꾸준히 투자
일본 전자업체가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기술의 중요성'이다. 끊임없는 연구개발(R&D)로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해가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 같은 연구개발을 소홀히 하지 않은 노력이 최근 일본 전자업체 재기에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자회사에서 인프라스트럭처 회사로 전향한 히타치제작소는 올해 철도, 전력 등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전년 대비 7.2% 증가한 9100억엔을 투자했다. R&D 투자도 올해 3600억엔에서 내년엔 5000억엔으로 39% 늘리기로 했다. 자회사인 히타치화성으로 미국에 자동차용 배터리 기초소재인 음극재 생산공장을 새로 짓는다. 인프라사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 센서, 로봇 등이 집중 투자 대상이다.
소니는 이미지센서 등에 역대 두 번째 규모인 4300억엔을 설비투자하기로 했으며 올 R&D 투자도 4900억엔으로 전년 대비 5.5% 늘렸다. 파나소닉은 로봇 기술과 주택 관련 부문에 4700억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올림푸스도 연평균 6600억엔 가까이를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매출의 약 8.3%에 해당하는데,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중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이다. 파나소닉은 심지어 안마기 판매를 위해 안마기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피트니스 승마기구가 당뇨병과 연관돼 있다는 연구까지 지속하고 있다. 남명우 교수는 "일본 전자업체가 진출하는 업종을 바꾸고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등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세웠으나 큰 맥락에서 기술을 중시하는 기조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