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밤 11시 30분 철도노조 김명환 위원장이 은신해 있던 서울 정동 경향신문 건물 13층에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이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이들은 '철도 산업 발전을 위한 소위원회' 구성을 조건으로 한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 합의문에 김명환 위원장의 서명을 받기 위해 함께 차를 타고 이곳에왔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두 의원은 "날도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손을 맞잡았다.
김 위원장은 소위 구성 외에 파업 철회에 대한 다른 조건을 걸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여야 노력으로 파업이 철회되면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사진 촬영도 요청했다. 27일 코레일이 이날 밤 자정까지 업무에 복귀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고 정부가 수서발 KTX 자회사 면허를 발급한 이후에는 파업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27일부터 업무 복귀자가 급속히 늘어 29일 밤에는 복귀율이 26%를 넘었다. 박 의원은 "파업 복귀 시 조합원에 대한 징계 최소화 등의 조건을 언급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그런 요구가 없어 좀 놀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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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무성(오른쪽 둘째)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오른쪽 셋째) 의원이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철도노조 파업 철회 브리핑을 한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철도소위를 먼저 고민한 건 박 의원이었다. 이날 오전 "연내에 철도 파업 문제를 풀어달라"는 김한길 대표의 요청을 받고 그는 민주당사에 머물고 있는 최은철 철도노조 사무처장을 만났다. 복귀 인력이 늘어나며 노조 지도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고집하면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설득했다. 박 의원과 최 처장은 김명환 위원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동의를 끌어냈다.
이후 박 의원은 새누리당 협상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낀 박 의원은 평소 친분이 있던 김 의원을 떠올렸다. 김 의원은 "어느 정도 합의문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연락이 왔고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최종 합의문 내용을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전화로 알렸다. 3~4차례 통화가 이어졌다. 조 수석은 마지막 통화에서 OK 사인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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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사진)與·野·철도노조 파업철회 합의문… 여야, 철도노조가 30일 합의한 파업 철회 합의문. 합의문에는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간사)과 김무성 의원, 민주당 이윤석 의원(간사)과 박기춘 의원이 서명했다. /전기병 기자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여야가 철도노조의 퇴로를 열어준 데 대해 불만이 컸다. 우선 29일 밤 코레일 서울본부에서는 코레일과 철도노조 간 비공개 실무 협의가 진행 중이었다. 노조의 요구로 밤 11시부터 협의에 들어간 양측은 향후 철도 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 노사정 기구를 만들어 논의하면 파업을 철회할 수 있다는 선까지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내 소위 구성 방안보다 정부 측에 더 유리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밤 12시쯤 노조 쪽 협상단은 "위원장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한 시간가량 자리를 떴다. 결국 철도노조는 코레일, 여야 양쪽과 동시에 협상을 하다 유리한 쪽을 택한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철도노조의 부당한 파업은 며칠 지나면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철도노조마저 포기한 소위 구성을 여야의 일부 중진이 나서 합의해줌으로써 사태 해결에 물타기 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뒤늦게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뒤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불쾌한 심기를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