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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단 파견과 문제 제기여호수아 22장 13~20절
13 이스라엘 자손들은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의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보냈습니다.
14 그들은 또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대표자 한 명씩 열 명도 함께 보냈습니다. 그들은 각각 수천의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15 그들이 길르앗으로 가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했습니다.
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한다. 너희가 이렇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신의를 저버리다니 이게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오늘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너희를 위해 제단을 쌓는 것이 여호와께 거역하는 것이 아니냐?
17 여호와의 회중에게 재앙을 불러왔고 이날 이때까지도 우리가 정결해지지 못한 브올의 죄가 우리에게 작아서
18 너희가 지금 여호와께 등을 돌리는 것이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이라면 그분이 내일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실 것이다.
19 만약 너희 소유지가 깨끗하지 않다면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께서 소유하신 땅으로 건너와 우리의 땅을 나눠 쓰자. 다만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것을 스스로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거나 우리를 거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저주받은 물건으로 죄를 지어 그 진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내리지 않았느냐? 그 악행 때문에 그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 이스라엘은 전쟁 대신 먼저 사자를 보내 사실을 확인합니다.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은 과거 브올의 죄와 아간의 사건을 상기시키며,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신앙적 태도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회개의 길과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다루려는 이 과정은 감정보다 진리를 우선하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나는 갈등 앞에서 즉각적인 단죄보다 진리를 확인하려 합니까?
공동체의 거룩을 위해 책임 있게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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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신가?
저희 교회 부교역자로 섬겼던 목사님이 한국에서 교회를 개척 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1년에 한 번 '예나주'라는 특별 세미나가 열립니다. ‘예나주'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다"의 줄임말입니다. 목사님이 이 세미나를 매년 열게 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모시고는 있지만, '나의 주인'으로 모시지는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교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신이 구원을 얻는 것은 인정하는데,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계속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세미나 시작과 함께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강조하면, 대부분이 벼락에 맞은 듯 놀란다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꽤 충격적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신가?" 아울러 더 중요한 실존적 질문을 해 보길 바랍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시고 있는가? ‘나'에서 '주 님'으로 삶의 중심이 바뀌었는가? 인생의 목적과 행복의 근원, 자녀를 키우는 가치관, 물질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등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이 주인이신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삶의 모든 영역이 거룩해집니다.
♧ 한 절 묵상
22장 18절 |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역동적으로 반응하십니다. 요단 동쪽 지파 사람들이 제단을 만들자(16 절), 서쪽 지파 사람들이 오해해 우상 숭배 행위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지금의 죄가 미래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촉발 한다고 내다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행동에 따라 반응 하시는 분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성도의 마음에는 성령이 거하십니다(고전 3:16). 성령은 우리 삶에서 역동적으로 반응하십니다. 성령님의 반응을 민감하게 의식하며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순전하고 올바른 신앙은 죄에 대한 민감함으로 드러남을 깨닫습니다. 지난날 저지른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 하나님 뜻을 잘 분별하고 민첩하게 죄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소서.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사려 깊게 배려하고 함께 짐을 질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허락하소서
여호수아 22장 10~20절 말씀 명언
참된 사랑은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죄를 멈추게 한다. - 디트리히 본회퍼
하나님의 백성은 죄 앞에서 관용보다 두려움을 먼저 배워야 한다. - 존 파이퍼
거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운명이다. - A. W 토저
하나님의 언약을 위협하는 일에는 중립이 없다. - 프랜시스 쉐퍼
형제의 죄를 외면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임이다. - 어거스틴
공동체는 하나님의 이름이 걸린 문제 앞에서 침묵할 권리가 없다. - 팀 켈러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보다, 그 열심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신다. - A. W 토저
겉모양의 신앙이 참된 예배를 대체하게 두지 말라. - 삶을 노래하다
여호수아22:10-20절
본문은 요단동쪽 사람들이 요단 강가에 큰 제단을 쌓은 것을
우상으로 오해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요단동쪽 사람들이 요단강가에 큰 제단을 쌓은 것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단서편에 자손들이 요단 동쪽에 자손들을 잊을수 있다는 염려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단서편의 제단과 동일한 제단을 만들어 놓음으로 요단서쪽의 자손들 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요단동쪽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요단 서쪽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요단서쪽 사람들은 우상으로 세운줄 알고 오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 경각심입니다
요단서편 이스라엘은 제사장 엘르아살의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각 지파 한 사람씩 10명해서
요단동편으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요단동쪽 사람들에게 죄에 대한 두려움, 경각심
죄에 대해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말합니다
첫째로 우상숭배는 여호와를 떠나는 배교라고 말합니다
16절 하반절에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둘째, 브올의 죄를 상기시키므로 죄가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을 말합니다
17절에 브올사건입니다 브올사건을 출애굽한 이스라앨이 모압여인들의 음란에 유혹을 받은 사건으로
그 결과 24,000명이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20절에 아간 사건입니다
아간 때문에 이스라엘 회중에 진노가 임했습니다
셋째, 죄를 피해라고 했습니다 19절에 제단으로 더럽히지 말고
우리에게 와서 살라고 말했습니다
이상의 내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죄에 대한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도 죄에 대해 이렇게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죄는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며 순결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요단서편의 사람들이 오해였지만 어째든 죄에 대해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조그만 죄라도 멀리하는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수 22:19)
살아가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오해하고, 그 오해 위에 감정을 쌓아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경우 상대의 의도를 묻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는 판단이 끝나 있기도 합니다. “왜 저랬을까?”보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생각을 먼저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쌓은 제단을 보고, 그들은 곧바로 분노했고 전쟁까지 각오합니다.하나님을 위한 열심이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분노였는데 감사하게도 그들은 칼보다 먼저 말을 선택합니다. 먼저 찾아가 묻고, 듣고, 설명을 들을 자리를 만듭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며 내 모습을 비춰봅니다.나는 얼마나 묻지도 들어보지도 않고 상황을 예측해 단정했는지,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대신 거리 두기를 선택했는지 돌아봅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벽을 세우지는 않았는지를 점검해 봅니다.
특별히 공동체 안에서 내 감정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 오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오해를 풀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르심의 마음이 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르는 자로 지레짐작하며 확인되지 않은 분노로 이제는 먼저 판단해 움직이지 않겠다고.결심해 봅니다. 먼저 다가가 묻고, 끝까지 들으며, 필요하다면 내 자존심과 내 몫을 내려놓고라도 관계를 살리는 쪽을 선택하겠다 다짐해 봅니다
가나안 땅 정복전쟁을 마치고 자기들 기업으로 돌아가던 요단 동편
지파의 사람들이 요단강 가에큰 제단을 쌓자 서편 지파에서 오해를 했고
대표단을 파견하여 확인하고 오해를 풀어가는 모습입니다.
오해 받을 일 하지 마라
요단 동쪽 지파 사람들이 자기들의 소유지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제단을 크게 쌓았는데
서쪽 지파의 사람들이 우상숭배하려 한다고 오해했습니다.
또한 이 제단이 제사를 위한 곳이라면 실로 성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모였습니다.
참외밭 옆에서 신발 다시 신지 말고 배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말처럼 선한 의도로 하는 일이라도 상대방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나의 의도와 상대방의 이해가 다를 수 있기에 작은 일이라도
먼저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
요단 서쪽 지파의 사람들은 동쪽 지파의 사람들이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에 발끈했지만 섣불리 행동하면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으므로
제사장의 아들 비느하스와 각 가문의 수령들로 구성된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여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제단을 세운 의도를 파악한 서편 대표단은 동편 지파의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권면을 하고 헤어집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게 되면 먼저 상대방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시도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성급하게 단정짓거나 비난하기 전에
그 행동의 이유와 동기를 알아보려고 노력하면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알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많은 얘기가 흘러다니는 곳입니다.
이야기 중에는 불필요한 소리도 많고 사람이 사는 곳이니 성도 사이에 갈등도 없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빚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것입니다.
경청하고 소통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힘써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단 언덕의 새 제단(22:10~12)
선한 의도로 하는 일이라도 상대방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요단 언덕 가에 큰 제단을 쌓았고, 그 제단으로 인해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제단이 제사를 위한 것이라면 실로 성소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드리면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에서만
제사드려야 했습니다(신 12:13~14). 제단은 언약 공동체의 구심점이었기에, 이 일을 두고
전쟁도 불사하려는 서편 지파들의 반응은 과민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선한 일에도 오해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며 늘 신중해야 합니다.
나의 의도와 상대방의 이해가 다를 수 있기에, 작은 일이라도 먼저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묵상 질문: 요단 동편 지파들이 세운 큰 제단은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키나요?
- 적용 질문: 선한 의도로 시작했으나 상대방의 오해를 불러온 일이 있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단 서편 지파들의 비난(22:13~20)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위기에서 여호수아는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합니다.
제사장 비느하스를 비롯한 요단 서편 대표단은 동편 지파들이 제단을 세운 것은 하나님을 거역한
범죄 행위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브올의 사건(민 25장)과 아간의 범죄(수 7장)를 상기시키며
요단 동편 지파들이 배역하면 자신들에게도 하나님의 진노가 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요단 동편 지파들이 원한다면 서편 땅을 재분배할 의향이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작은 의심과 불신으로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연대 의식은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를 잘 해결해야 성숙한 공동체입니다.
- 묵상 질문: 비느하스와 요단 서편 대표단은 과거의 어떤 사건을 예로 들며 동편 지파에게 경고하나요?
- 적용 질문: 오해와 불신으로 생긴 갈등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공동체가 오해와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지지 않게 하소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공동체의 화평을 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드러내는 언약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상을 단호히 배격하는 세대
여호수아 22장 10~22절은 오해가 어떻게 공동체를 전쟁 직전까지 몰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큰 제단을 쌓자, 요단 서편 이스라엘은 이를 우상숭배로 오해하고 즉시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성급한 판단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다루려는 절차가 이어집니다. 동편 지파들은 제단의 의도를 분명히 밝히며(29절),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마음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본문은 열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분별과 소통임을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께서 아실 것이요”
신앙의 열심은 아름답지만, 분별없는 열심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스라엘은 제단을 보고 즉시 분노했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다루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판단의 자리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확인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공동체를 살리는 힘은 옳음의 크기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겸손한 걸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 제 안에 있는 성급한 판단과 분노를 내려놓게 하옵소서.
거룩을 지키려는 열심이 사랑을 잃지 않게 하시고,
오해 앞에서 먼저 주님을 찾게 하옵소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진실을 선택하게 하시며,
모든 판단의 기준을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하나님,
오해 앞에서 너무 쉽게 판단하고, 상처 앞에서 너무 빨리 마음을 닫아왔던 저를 돌아봅니다.
묻기 전에 오래 전 기억속 일로 지금의 상황을 단정하지 않게 하시고,
분노하기 전에 대화하게 하시며,
내 것을 지키기보다 관계를 살리는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키우는 말이 아니라,
이해를 여는 말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오늘도 내가 먼저 다가가는 용기와 끝까지 듣는 인내 그리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사랑을 택하는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00:59
생명의 삶 12월 22일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