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6. 8. 10. 월요일.
하늘이 맑고, 밝고, 환하며, 무덥다.
내 70여 년의 경험으로는 연간 가장 무더운 때는 8월 5일경.
오늘이 8월 10일이니 앞으로는 더위가 서서히 가시며, 초가을로 진입할 것이다.
찌는 듯한 더위바람이 사그라들면서, 새벽녁에는 다소 선뜻한 바람으로 잠자리에서 일찍 깰 것이다.
2.
나는 1949. 1. 말 생.
지금은 만77살이다.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마을에서, 쌍둥이로 태어났고, 동생은 서울에서 대학다니가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 왔다.
저녁 무렵에 야외변소에 가다가 뱀 물려서, 다음날 병원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동생의 처절한 죽음을 본 뒤로는 나한테는 종교, 신앙, 믿음, 조상의 영혼, 넋 등이 모두 없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의 충남 서해안 산골마을의 살림살이는 정말로 가난했고, 궁색했다.
당시의 시대상을 회상하면 아래 사진들과 거의 엇비슷하다.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산고라당 아래에 있는 산촌인데도 산에는 큰 나무가 별로 없었다.
대부분 키 작은 활엽수 수준.
왜?
소나무 잎을 갉아먹는 송충이가 엄청나게 많았고, 마을사람들이 산에 들어와 솔가루(솔잎, 소나무 잎사귀) 등을 박박 긁어서, 지게로 져서 집으로 가져갔다.
* 시골 국민학교시절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송충이 잡으러 산으로 올라갔고, 대전에서 중학교 다닐 때에도 단체로 송충이 잡으러 산에 갔고다.
청년시절에는 사방공사 작업으로 산으로 갔다.
나무 묘목을 심고, 적당한 크기로 자란 나무의 가지를 너스 톱으려 쳐서 나무순을 제대로 잡아주고. ......
당시 산림녹화사업을 크게 진행했다.
1950 ~ 60년대 당시에는 연료 사정, 땔감 사정 아주 심각했다.
여름철 보리바슴이 끝난 뒤의 보릿대와 늦가을철 벼 바슴 뒤의 짚이 주요 연료였다.
냐 집에 머슴을 두었다.
경제적 여유가 조금 더 있는 농가에서는 동네 일꾼을 사서 먼산 나무를 해서 가져 오도록 일을 시켰다.
열 명 가까운 일꾼들이 왕복 수십리 먼길로 걸어가서 소나무 잎사귀, 참나무 잎사귀 등을 갈퀴로 긁어서 지게에 지고 되돌아왔다.
헐거벗은 동네 뒷산에서는 베어낸 나무의 뿌리, 즉 고주배기를 삽과 괭이로 땅을 깊게 파 냈다. 나무뿌리는 무척이나 단단하고, 제멋대로 울퉁불퉁했다.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후려쳐 내려패서 장작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쌓아 저장했다.
당시에는 일꾼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일꾼들은 밥을 무척이나 많이, 자주 먹었다. 겸하여 막걸리도 엄청나게 마셨다.
예컨대 여름철 보리타작, 늦가을철 벼 타작을 할 때에는 하루 종일 몇 번 밥을 먹었을까?
1 아침밥 이전의 새벽밥
2 아침밥
3 아침땟것
4 점심밥
5 점심땟것
6 저녁밥
7 밤에 일하면 밤참 등.
이러하니 밥 먹을 때마다, 간식 먹는 새참마다 막걸리 술도 엄청나게 마셨다.
주막집, 선술집이 곳곳마다 있었고, 면내 장터에도 술집이 무척이나 많았다.
주막집에 관한 옛사진을 조금 검색한다.
주막집 뒤켠에 농촌 생활도구가 있다.
소에 짐을 싣고 가는 일꾼들
장작을 팔러 가는 일꾼
장작불로 괄하게 불 때서 ......
작두
무녀가 얼쑤 얼쑤 ~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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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50년대 산골 농촌마을의 실상을 보고 자랐다.
1960년 봄에 대전으로 전학가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1960년대 말에 서울에서 대학 다녔다.
1970년대 초에 고향 면내에서 군복무를 수행했다.
당시에는 서해안지방에는 무장간첩 상습 침투지역이었기에 일부 청년은 방위병으로 차출되어서 면내 예비군 중대본부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1970년대 중반에 대전으로 가서 공직시험 준비를 했고, 70년대 말에 국가공무원이 되어서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했다.
퇴직한 뒤 고향 시골로 내려가 그때까지 혼자서 살던 아흔살 넘은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집을 에워싼 텃밭 세 자리에 수백그루의 과일나무 묘목을 심고, 건달농사꾼이 되어 엉터리로 농사 지었다.
어머니가 만95살이 된 지 며칠 뒤에 저너머 세상으로 떠났기에 나 혼자서 시골에서 살기가 뭐해서, 도로 서울로 올라왔다.
정년퇴직한 지도 오래되었고, 나이 많은 영감탱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백수건달이 되었다.
당뇨, 전립선비대증, 파키슨병 등으로 골골거리면서 병원과 약국에 숱하게 다닌다.
요즘에는 척추가 더욱 굽혀져서 아파서 절절매면서 겨우 살아간다.
주먹 쥔 손으로 등허리뼈를 살살 두들기면서, 어기적, 비틀비틀, 휘청거리며, 느릿느릿하게 겨우 걷는다.
내 일생 대부분은 현재 서울에서 보내고 있고, 학생시절에는 대전에서 보냈고, 내 어린시절에는 서해안 산골 아래에서 보냈다.
내 일생 가운데 가장 기억이 남는 세월, 세상은 시골에서 살던 옛시절 이야기이다.
산골, 농촌, 바닷가 어촌의 생활상이 눈에 훤하게 비친다. 나이 많은 지금도.
나는 1950년대의 산골, 농촌, 어촌, 강변 마을의 실상을 기억한다.
60년대의 대전 생활
70년대부터 서울 생활
모두가 다 특징이 있다.
나는 내 어린시절 1950년대의 과거 세상과 2020년대의 초현대 세상을 비교하면서 말한다.
'천지가 개벽한 듯이 많이 변했다'라고.
나중에 보탠다.
잠시라도 쉬자.
등허리뼈 아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