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다.
어김없이 그 시간이다
새벽 4시
열 살 무렵부터 일 나가는 아부지 아침 밥
짓느라 잠이 덜 깬 눈으로 비틀거리며
내려서던 썰렁한 정짓간
시계가 없어서 서쪽 하늘에 빛나는 큰 별을
기준으로 새벽 4시를 알았던 시절
그 별은 무슨 별이고
별의 이름은 무엇으로 불리울까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그렇게 빛나고 있으려나
별 안 보고 산지 하도 오래라
살면서 한 번도 새벽을 모르고
초저녁부터 내쳐 아침 볕이 이불위로
환하게 들어올 때까지 자 본 적이 없었지 싶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의 현장은 새벽부터
집결하는 곳이라 새벽과 노동 현장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아버지에 이어
내 아들 새벽밥 짓는 일도 한 25년 했다
그나마 내 아부지 때 보다 좋은 가옥의 환경에서
밥을 지어 먹였고
열악하던 말던
내 아들과 친정아버지를 비교?할 수있을까만
아들의 밥은 기꺼이, 당연시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아버지 때는 내가 어렸고 그래서 언제나 분해했고
억울했고 내 작은 속창지가 배배꼬여 있던 터였다
아버지는 새벽마다
그 기다란 발로 나를 차서 깨웠다
발길질에 아파서 잠을 깨었던 나 또한
왜 아니 곤했던가
종일 남의 집 아이 업기
땔감 주워오기 들판에 나가 나물 캐기에 녹초가 된
나를 그렇게 모질게 발길질로 깨웠어야 했는지
이해가 아니 가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 본인도 종일 중노동에 시달렸고
새벽 곤한 잠 한숨이라도 더 자야 하는 판에
어린 딸 깨워 놔야 한숨이라도 더 자지
잠에 노곤한 육신 일으키기 싫어 발길로
차면서 깨웠던 것을
아들은 경력직 시험을 치고 온 후
일용직 앱에 들어가 일자리를 찾더니
근처 자이 아파트 짓는 곳으로 일을 나갔다
집에서 논지 2년 만에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합격 소식 듣고 면접 보고 난 후 발령받을 때까지
석 달쯤 일을 나갔다
그러게나
내 생애 처음 그렇게 신나는 새벽밥을 지어 본 적이
없지 싶었던 석달 좀 넘는 날들 그 새벽밥 시간들
석 달 열흘을 그렇게 4시에 일어나 밥을 짓는데
오만 정성을 다 기울여 상을 차리고 아이를 깨우고
륙색에다 간식을 챙겨주었던
아주 행복한 새벽밥 짓던 일이라니
어린 아이서 부터 처녀 때
그리고 내 아들서 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신나고 행복한 새벽밥을 지은 적이
없었다 한 번도
하루 빠지면 3일을
일 못들어 오게 하게 하는 일용직
엄청 추웠던 작년 겨울 그 속에서 얼굴 꽁꽁
싸매고 나가던 아들
먼지 투성이로 들어서던 아들
저녁마다 시멘트 범벅인 작업복을 손 빨래하면서도
어찌 그리 행복하던지 내 아들이 이제 공무원이
되었구나.
운전직이면 어때
경력직이면 어때
비 맞고 눈 맞고 중장비 트럭 속에서
더러는 무거운 짐 속에서
다치고 베이고
거친 사람무리에서 몸뚱이 하나로
버텨야 하는 작업
일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 늘 말이 없던 아들
묻는 말에도 억지로 대답하던 아들
아들은 일용직 석 달 일해서 번 돈을
몽땅 나에게 주고 양구로 갔다
나의 기나긴 새벽밥 시대는
아들이 끝내줬다.
그러나 내 몸의 시계는 아직도 4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잠이 너무 그리운 그래서 분한 마음 가득 담고
쳐다보던 서쪽 하늘 빛나던 큰 별
아! 네시다 네시 반이구나 늦었다 하던
별시계 그 새벽 별도 잊지 못한다.
그 별은 새벽 4시 별
별이 조금 더 내려오면 4시 반이라 여겼지
그 별 이름은 뭘까?
~~
사랑하는 삶의 방 식구님들
요즘 날씨가 왜 이러지요?
춥고 비오고 ㅎㅎ
겨울 옷을 그대로 입고 지냅니다
감기로 힘드네요 다들 건강하세요~
네 저 별이 네 것 우리 별이 힘차게 날아 올라
일 찍 출석하고 ~~~~~~
ㅎ 그래요 출석 일찍했어요 ~
운선님 이제 다시 좋은 남자 만나
양말 빨고 새벽밥 지으세요
악담 아닙니다. ㅋ ㅋ
에이 양말이야 얼마든지 빨아도 남자는 시러요 저 혼자가 너무 좋아요 생애 처음 맞는 저의 이 소중한 행복을 오롯이 혼자 누릴겁니다
10살무렵부터 새벽에 일어나 아버지의 밥을 짓고
아들의 밥을 지으셨으니 새벽시간에 일어나는게
뇌에 각인되어 지금도 일찍 일어나시는가 봅니다
다행히 아드님이 좋은 곳에 취직하셨으니
이제는 편히 아침까지 푹주무셨으면 합니다
그래요 뇌에 몸에 딱 붙었나봐요 도무지 더 잘 수가 없네요 어때요 뭐 이젠 안자도행복합니다 ㅎ 그산님 늘 고맙습니다
모진 구비들
다 헤쳐나오고
지금 평온의 일상으로
하고픈거 하면서
잘 살고 계시니
지금이 화양연화입니다
운선님 글을 볼때마다
철없이 살아온 나도 돌아보고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손주 등원시켜
그이 역에 태워주고 잠시 혼자를
즐기며 이른출석합니다
고마워 정아님 화양연화라 오늘 두번 듣네 너무 좋다야 ㅎ 얼씨구 절씨구~^^
이제 사는 거처럼 살아보는거 같네 요새 감기 이거쯤 암것도 아녀 예쁜 정아 고마워잉
운선님.
사랑합니다.
몸이 기억해버린 새벽 네시.
<운선별>
이제는 새초름 반짝반짝 빛나는거 맞죠?
암만요.
무슨 영달을 꿈꾸는지 거리의 현수막들과
마이크 고성들이 눈쌀을 찌뿌리게 하네요.
그보다 훨씬 빛나는 운선별이 있어
희망이 키워집니다.
선거철이라 소란스럽네요 운선별이라 하시니 행복해집니다 몽연님 글에 저도 감화받습니다
우린 이렇게 서로를 비쳐보며 자신에게 주어졌던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내는 듯합니다 몽연님 늘배우는 자세 마음가짐 제 가슴에 담습니다
선배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아드님 공무원 됐으니
세상을 다 가진거 같지요?
얼마나 기쁘실까요.
축하드립니다 ~~
막내가 32세인데 알바 인생
살고 있었어요. 제가 도서관에서
팜플렛 갖다 줬는데 다행이도
폴리텍 10개월짜리 잘
다니고 있어요.
아들만 취직 된다면 세상을 다
가진거 같을텐데요
늘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현정님 마음과 같았다오 늘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에 돌 하나 매달린 듯했지요 이제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단 말 뜻 알거 같습니다 현정님 아드님 아직 나이가 있잖아요 기다려보세요 제 아들은 49세 입니다 ㅎ
달디단 잠을 자도 모자랄 어린아이가 새벽4시에 일어나 새벽밥하셨다니ㅠㅜ
굽이 굽이 잘 헤쳐 나오신 장하신 운선님
이젠 든든한 아드님과 꽃길만 걸으시길요 ...
글 읽으며
저도 모르게 몰입되어 눈물 한컵은 흘렸네요
어쩌나 둥근해님을 울렸어요 ㅠ 다 지난 일이라 전 담담합니다 제 얘기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새벽에 볼 수 있는 별..
샛별..이름하여 금성이 아닌가 하옵니다.
힘든 일도 미래가 보이면 덜 힘든건데..
아마도 새벽밥 짓는 일 힘든줄 몰랐다함도 같은 맥락같습니다.
결국 3개월 후 좋은 일을 만나게 되었으니 운선님 얼마나 다행인가요...ㅎ
우리네 인생길에
내일이 있고..희망이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네요 이제 다들 샛별이라고 금성이라고도
알았습니다 당시는 시계가 없어서 새벽 밥 지으려면 샛별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지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고 날이 흐리면 대충
일어나는 시간에 밥을 짓습니다 어느 땐 자정에 밥을 지어 놔서
난감할 때도 그럴 때는 아부지 밥과 점심밥을 따로 싸서 아랫목에 묻어 놓고
잤지요 참 어려운 시기였고 모든게 부족한 시절이었지요
가을이님 오셔서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돌아와 답글 답니다 학교에서
짬짬히 달아도 영 불편했지요 ㅎㅎ 가을이님
자주 좀 와 주세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 합니다.
어린 소녀 때부터 힘든 일 많이 겪으셨으나
잘 키워내신 따님 가족과 든든하게 자리 잡은 아드님이 운선 언니 삶의 훈장인 걸요.
저는 대기만성, 대기만성을 되뇌이며 여태 자식이라는 나무에 물만 줍니다.
곧 그 나무에 열매 열릴 날이 오리라 믿으면서요. ^^
우리 막내 6월 하순에 시험 봅니다.
내 딸아, 저 강릉의 그분처럼 철썩! 붙어다오^^
우리 운선 언니께는 아무리 박수를 쳐드려도 모자랍니다!
아 그렇구나 오늘 부터 기도 하마 꼭 붙게 해달라고
막내야 열심히 공부해라 나도 기도 해줄께
항아리님 자식은 끝이 없어요 신경이 몽땅 가는 게
어디 잘된다고 안가지나요 자식 가슴에서 지워질 날이 없어요
내 죽고 나면 잊을라나 항아리님 우리 기도 열심히 합시다
새벽 4시에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은 금성입니다.해뜨기전 동쪽 하늘에서 보이기 때문에 '샛별'이라고 한다네요.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합니다.희망을 갖고 살아왔기에 지금의 행복한 날이 있었겠네요...
이제는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그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샛별을 감상하세요...
샛별 쳐다 보고 시간을 맞추고 솔가지 때서 밥짓고
국까지 다 끓여 놓고 검댕이 묻은 손과 얼굴을 들어
마당에 나와 서쪽을 쳐다 보면 부연 새벽이 열리고 그때까지도
샛별은 고갯마루에 걸려 있지요 돌아가긴 싫지만 그런 기억도
새삼 스럽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중학교때 새벽6시 버스를 타야했지요
엄니는 저만의 새벽 냄비밥을 해서 먹여 보내고
다시 아궁이에 불지펴 가족들 식사를 챙겼지요
3학년때부터 자취했어요
가끔
그당시 그렇게 먹기 싫었던
새벽 냄비밥 생각나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5.05 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