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각국에서는 마약소탕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만 방식은 조금 달라서 어떤 나라들은 가벼운 마약은 아얘 합법화하여 봐주기도 하는 반면 많은 나라들은 마약이라면 모두 철저히 금지하곤 합니다. 그들 중 유달리 엄하게 다스리는 나라를 꼽자면 중국입니다.
중국의 최초로 유명한 마약(?) 사용 사례는 진시황입니다. 그는 불로불사를 원해서 당대 기준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 보았는데 그 중 하나가 수은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은은 전근대에 건강에 해로운 영향력을 많이 끼친 물질로 피부에 바르면 일시적으로 피부가 탱탱해져보이는 효과가 있어서 각광받았는데(물론 당연하지만 이거 바르면 건강에 해로우니 절대로 수은은 가까이 하지 마세요.) 진시황 또한 수은을 젊어지게 한다고 여겨 바른 것입니다. 진시황은 말년으로 갈수록 심한 폭정을 일삼았는데 이를 신경계를 손상시키는 수은의 부작용으로 봅니다.
그리고 후한말부터 오석산이라는 마약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오석산은 五石이라는 한자에서 보여주듯 기본적으로 5가지 광물로 만드는 것으로 여기서 오석산이 문제를 일으키게 만든 것은 웅황이라는 것으로 여기에 비소가 있어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것도 기본재료가 5가지라는 것이지 주사(이것도 수은이 들어있는거), 단사 같은 또다른 해로운 것들이 함께 첨가되어 더 해롭게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야 당연히 쳐다도 안 볼 물건이지만 당시에는 마약의 해독성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반면 즉효는 빠르게 알아차렸기에 이런 마약성 물질들을 약으로도 쓰고 그랬던 것인데 마침 시대도 오석산이 날개를 달기 좋았습니다. 하안을 비롯한 당대의 명사가 이를 흔하게 사용했을 뿐더러 특히나 하안은 이를 두고 복용했더니 피부가 마치 소녀와 같아졌다고 말하였습니다. 게다가 청담사상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공론을 논하는 사상이 유행하고 이 자리에서 오석산이 애용되면서 오석산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걸쳐 유행합니다.
문제는 청담사상이 사회 고위층으로 유행하면서 오석산도 그만큼 유행하고 덩달아 그 폐해도 유행하게 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게 됩니다. 당시의 명의들 중에서는 오석산의 위혐성을 알아차린 이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오석산은 유행했고 이 때문에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많았습니다.(예시로 북위의 개국군주인 도무제) 이 폐해는 남북조시대 말기에 이르러 점점 심해져 이 시대의 귀족들의 사회상을 기록한 글에서는 피부는 연약하고 뼈는 약해 잘 걷지도 못하고 몸이 약한 데다가 기운도 없어서 추위와 더위를 잘 견디지 못했다. 라고 나와있었습니다.
이러한 오석산은 당나라 시대에도 살아남아 명필인 왕희지가 오석산에 중독되기도 했고 그의 아들들 중 하나는 오석산 중독으로 죽기도 했지만 다행히 송나라 시대부터는 부작용이 확실하게 인지되며 사회에서 마약 취급을 받아 퇴출되게 됩니다.(여담으로 이 오석산은 기록상 한반도에서도 사용되었을 정황이 있다고 합니다.)
오석산의 뒤를 이어서는 주사, 단사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오석산과 동시대에 악명을 떨쳤지만 오석산의 영향력이 위진남북조 시대에 가장 컸다면 주사, 단사는 당나라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당나라 황실의 배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당나라 황실은 자신들을 노자의 자손이라 주장했는데 노자는 도교를 일으킨 인물이라 당나라 황실은 도교를 좋아했습니다.(고구려에 도교가 전해졌을 때도 당나라가 힘을 보탰습니다.) 그런데 도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불로불사를 얻는 신선이 되는 것이다 보니 도사들은 예전부터 불로불사에 관심이 많았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당연히 몸에 좋아보이는 것들은 몽땅 하용했으며 그중에서는 주사, 단사 등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폐해를 불러왔는데 특히 이번에는 군주들에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당나라 황제들은 몸에 좋다고 이런걸 먹어댔고 당태종, 당헌종, 당목종, 당무종, 당선종이 이걸 먹다 골로 갔는데(역대 황제들의 리스트로 가보면 진시황, 가정제, 태창제 옹정제 등도 포함) 당나라가 혼란스러웠던 중후기에 당나라를 캐리한 당헌종, 당선종 같은 명군들이 이걸 먹고 이상해지고 일찍 가는 바람에 당나라는 중흥기마다 매번 아쉽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주사와 단사의 부작용은 꽤 오래 갔는데 오석산과는 달리 청나라 시대에도 복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한약재로 쓰이기도 했고 단지 부작용을 아얘 모르지는 않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 취급을 했을 뿐입니다.(당연히 이게 약은 약인데 독약이라는걸 아는 현재는 안 씁니다.) 다만 그들 중에서 청나라 황제였던 강희제는 달랐는데 그는 서양 의학을 선호하였기에 주사, 단사 같은 것들을 배격했고 그래서인지 당시로서는 장수한 68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때에야 그 유명한 아편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아편이 한번 유행하자 사회 전체가 아편에 중독되어 일반인들은 일은 안 하고 온 종일 가족까지 팔아가며 아편을 피울 지경이었고 고위층도 일을 손에 놓기 일쑤라 아편전쟁 시기 청나라 황제인 도광제도 즉위 전엔 아편을 피우다 끊었던 사람이었으며 황족과 귀족들이 아편을 피우다 유배당하고 중앙관료의 10~20% 지방관료의 20~30%가 아편에 중독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이정도면 아편으로 유출된 엄청난 은화는 양호해보일 수준의 해악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편의 해악이 이어지다가 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퇴치됩니다. 마오쩌둥은 아편 중독자들을 몽땅 강제치료를 받게 했도 판매자는 처형했으며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 재배지에 다른 것을 재배하게 하였고 이 때문에 아편의 최대 경작지는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러한 마오쩌둥의 조치는 그 또한 아편의 해악성을 잘 알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는데 국공내전이 끝나기 전까지 중국의 군벌치고 아편을 안 팔아본 이들은 드물었고 그건 마오쩌둥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사실 이렇게 써놓으면 중국만 고생한 것 같지만 어차피 전근대에 즉효로 판단할 수 밖에 없던 미진한 의학수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해서 서양도 수은중독 등에서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그런 오만가지 해악이 있었으니 역으로 오늘날에는 그것을 멀리할 수 있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