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손녀의 관심사 중의 하나는 스위치 누르기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기가 먼저 쪼르르 달려들어가 단추를 누르기에 바쁩니다.
조그만 손가락으로 정확한 층수를 얼마나 야무지게 누르는지요.
얼마전에는 손녀가 우리 집 부엌에서 제 엄마가 잠시 안고 있는 틈에 정수기 스위치를 꼭 눌렀습니다.
제가 당황한 순간 우리 슬기로운 며느리가 다시 그 스위치를 한번 더 꼭 누르자
나오던 물이 그만 뚝 그쳤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정수기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최신식으로 바꾼 것인데
이전에 사용하던 정수기는 조절 스위치를 수동으로 누른 채 뭍받이 통을 들고 서 있어야 했던 것에
비교하여 그건 한번 누르면 물이 1리터까지 나오고 자동으로 멈추는 것입니다.
새 것으로 바꾸고 나서 엄마와 저는 그런 신식 정수기가 신통방통하고 편리하다고
물이 자동으로 끊어짐에도 그때까지 곁에 서서 구경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리터라는 양이 매번 약간의 미세한 차이가 있어서 어떤 때는
제가 물을 받는 용기가 찰찰 넘치려고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이번에는 물이 안넘치나 곁에서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졸이고 서있곤 했었지요.
그런데 스위치를 한번 더 누르면 물이 멈춘다는 일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요즘엔 최신 엘리베이터 버튼 역시나 한번 누른 것을 다시 누르면 취소가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수기 스위치도 그런 기능이 적용되는 줄을 알기나 했겠습니까?.
사용한지 어언 3년이 되어 가는데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미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있기에 그런 건 이미 정보조차도 아닌 것을...
Switch....
그 뜻은 전환, 바꾸기 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무언가를 켜고 끄는 일을 담당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물론 켜고 끄는 것도 전환이 됩니다.
단순하게 일층에서 윗층으로 올라가는 것도 공간의 전환입니다.
무언가 지나치게 넘치게 차 오를때 그 맥을 끊는 것도 전환이 되겠지요.
무언가 한없이 가라앉을 때 그 바닥을 차고 오르는 것도 전환일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생각을 해 보니
우리들에게 감정 조절의 스위치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에는 자기계발 책에 이어 감정들여다보기에 대한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고
기업에서도 감정을 파악하고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감정코칭’이 확산되고 있답니다.
인지 능력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회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감정’의 역할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관리도 일종의 전략이라는 것이고 특히 상사들의 ‘화’가 직원들에게 감염되기 쉽기 때문에
‘심호흡’이나 ‘3분간 참기’를 권유한다고 하네요.
사랑이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연습과 훈련이 병행해야 하듯이
감정조절도 연습이 필요하고 어쩌면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우울 모드에 빠질때 간혹 어스름녁의 동작대교를 홀로 건너갈 때가 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으면서
그 우울감을 즐기고 나면 오히려 이내 기분이 다시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집안의 소파에 푹 잠기어 박인수의 ‘봄비’를 크게 듣기도 하지요.
그렇게 젊은 시절에 듣던 약간 염세적인 ‘나를 울려~~주는 봄삐’를 듣다보면
그 울림이 퍼지면서 마음에 평안이 찾아 오기도 합니다.
이런 방법들이 때로는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기본은 좀 다릅니다.
지난 얼마 동안의 기간에 저는 참으로 특이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살면서 맞닥뜨리지 않았던 의외의 경우를 체험했으니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란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수기 스윗치를 생각할 때 내가 얼른 눌러야 하는 내 안의 전환 스윗치가 무엇인지를
후다닥 떠올렸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순간적으로 스스로에게 하면 세상의 관점과는 다른 평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주입하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 수렁과도 같은 기묘한 상황에 침잠하지 않고 벗어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마음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쏟아낸다고 성경에서는 말해 줍니다.
내 안에 좋은 것들로만 가득 차 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더러운 것들, 추한 생각들,
자기 합리화와 변명, 분노 등등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제 안에 잘 정리되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이성과 감정의 피로도가 쌓여 있는 때에
그런 뜻하지 않은 충격이 가해지면 쉽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 떠올려야 하는 스윗치는 역시나 예수님이십니다.
전문가들은 자세나 습관을 교정하듯이 감정을 코칭하면 회복 탄력성이 생긴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늘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내게 적용하는 그런 전문인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늘 어설프고 어눌하고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가르치심이고
어디까지가 나의 고집인지의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이런 내나름의 전문성마저도 놓친다면
손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 될 뿐입니다.
어느 날엔가는 또 가스레인지의 불꽃이 점차로 붙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사올 때 구입한 것이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새 것인데요.
점차 사그라지더니 어느날 그만 불꽃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위험함을 무릅쓰고 우리 집안에서 찾기 어려운 라이타를 찾아내어 불을 붙이고 있는데
엄마가 곁에서 보시다가 말씀하십니다.
‘얘 거기 어딘가 뒷편에 빳떼리를 넣는 곳이 있을거야.’
오래전에 그렇게 하셨던 경험이 생각나셨다고 하십니다.
말씀대로 레인지 뒷편을 돌려보니 거기에 배터리를 넣는 곳이 있었습니다.
작은 배터리 하나를 갈아끼우니 불꽃이 순간적으로 활활 점화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순간적으로 누그러뜨려야 하는 감정도 있지만
서서히 침체 되어 가는 감정을 불꽃을 피워내듯 활활 되살려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열정과 냉정 사이.
사랑과 미움 사이.
분노와 침착함 사이
우울과 생동감 사이.
이런 명확하지는 않으나 상반된 두가지 감정들 사이를 조율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현재의 우리들 처럼 한정되고 불안정한 상황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열정이 넘치면 자신의 본분을 이탈하게 되어 본인이 화로 되돌려받기도 하고
사랑이 넘치면 집착이 되기도 하고 거룩한 분노를 몰라도 문제가 되겠지요.
어쩌면 자기 자신을 콘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비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안정감의 틀안에서 시작과 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자족할 줄 아는 비결, 감사하는 비결, 항상 기쁨을 유지하는 비결.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비결. 자신이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야야 할 일을 구분하는 비결.
그렇게 자가 탄력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넘치는 것을 전환 할 수 있는 스위치,
사그라진 것을 되살릴 수 있는 배터리를 가지고
우리들은 그 어떤 상황을 맞닥뜨려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감정의 위치를 공고히 하여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최고조를 누려야 할때는 선을 넘지 않는 한도내에서 그것을 유지하고
중간지대에 머물러야 할때는 중간을 잘 지키고
다시 회복이 되어야 할때는 바닥을 차고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만의 스위치, 자신만의 배터리를 통하여 강한 탄력성을 가지고
어떠한 경우에라도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멋진 영적 군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의 스위치, 나만의 배터리는 무엇일까요?
첫댓글 온마음 권사님의 글은 늘 제게 평온함을 줍니다.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서 저 거짓말쟁이의 입이 막히고 진리의 말씀이 쏟아 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욱...
아무리 눌러도 거짓말장이의 스위치는 작동이 안될것입니다.
네....내 감정의 위치를 잘 조절하며 그 무엇에도 감사하며 살도록 마음을 다해 보겠습니다 권사님의 깊이 있는 글 올려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
어느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감사할수 있는 것도 은혜라구요.
아주 평범할수 있는 말이 그날따라 크게 다가왔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사오기 전에는 자주 동작대교와 반포대교 아래 (거기 이름 생각안남)를 자주 걸었는데
요즘엔 잘 가게 되지 않네요.
다리를 홀로 걸으면서 바람을 맞으면서 이어폰 속의 노래를 듣는거 아주 좋답니다.
물론 찬송가도 듣기는 들어요. *^^*
도마님의 해바라기 글 잘 읽었습니다.
잔잔한 묵상을 이 멀리에까지 전달하시고 나누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늘 강건하세요.
멀리 계시는 군요.
먼 곳에서도 이곳에 들려주시니 제가 감사드립니다.
@온마음 저도 남쪽 400km 멀리서 감사드립니다.사랑의교회 마당기도회 화이팅!
감정은 참 다스리기 힘든 영역인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 문제'의 대부분은 감정을 건드리고 다스리는 데에 있는거 같습니다. 머리는 알아도 가슴이 따라주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탄생시킨 주님은 감정을 다스리는 새 스위치도 분명 우리 안에 장착하셨을텐데 너무 녹쓸지 않았기를 바래봅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의 조율이 참 힘드네요.
우리 안에 장착된 스위치도 수시로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야 하는가 봐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글 쓰시는 달란트가 있으시군요. 그런데요. 이 세상엔 스윗치가 고장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상담전문가들이 있어서 고치려고 하는데 영영 고칠 수 없이 망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서초 센터의 센터장이 좋은 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