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성지(전담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는 3월 29일 광교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용인시 수지구 동천로 437번 길 67 성지 현지에서 오메트르 베드로(Aumaitre Peter, 1837-1866) 성인 동상 축복·제막식을 거행했다.
오후 3시에 열린 동상 축복 및 제막식은 성지 내 ‘도리 피정의 집’ 옆 ‘성 김(도리, Dorie) 헨리코 신부 동상’ 오른편 양지바른 터에 새로 건립한 ‘성 오(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동상’ 앞에서 진행됐다.
동상 축복 예절에는 오메트르 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있는 용인대리구 신봉동본당 등 신자 90여 명이 함께했다.
축복 예절을 집전한 윤민구 신부는 “3월 30일 내일은 오메트르 신부님이 순교하신지 149주년이 되는 날”이라며 “신부님은 우리나라에 오셔서 32개월가량 사목하셨는데, 그중 절반인 15개월 동안 이곳 손골에서 생활하셨다.”고 말했다.
“진작 오메트르 성인을 수원교구에서 모시고 잘 공경하며 살아왔어야 했는데, 그동안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잘 몰랐었다.”고 전한 윤민구 신부는, “이제 차츰 알아가고 있다.”며 “오늘 뜻 깊은 날을 앞두고 동상을 모시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골성지를 자주 방문, 각자 신앙을 돌아보며 그분 성인의 삶을 본받는 신자들이 되자!”고 당부했다.
축복 예절 중에는, 성인의 소신학교 시절부터 동료이자 벗이었던 당시 프랑스의 한 교구 사제에게 보낸 편지가 낭독됐다.
병인박해 때 충남 보령 갈매못서 29세에 하느님께 자신 봉헌
동상 축복·제막식 후에는, 오메트르 성인이 편지에 언급했던 ‘막걸리’ 그리고 ‘빵’을 대신한 건빵과 인절미·달걀 등과 함께하는 친교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상임위원 등 본당 교우 20여 명과 함께 본당주보 오메트르 성인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고 밝힌 신봉동본당 총회장 김창식(빈첸시오) 씨는 “한 목숨 내어던진 신앙의 용사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있을 수 있다.”며 “후손된 저도 진리의 사도로서 성인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103위 성인 중 한 분인 성 오메트르 베드로(파리 외방 전교회)는 1837년 4월 8일 프랑스 앙굴렘(Angouleme) 교구 뤼페크(Ruffec) 본당의 에제크(Aizecq) 마을에서 태어났다. 1862년 6월 14일에 사제로 서품된 오메트르 신부는 중국 어선으로 연평 바다를 거쳐 1863년 6월 23일 조선 한양에 도착했다. 그해 6월 말부터 서울로부터 24km 남쪽에 있는 손골에 머물렀다. 오(吳) 베드로 신부는 그곳에서 15개월 동안 조선어와 풍습을 익히며 손골 및 미리내 근처 교우촌 등을 사목했다. 또한 1865년 11월부터 무량골, 음다라니, 사기막, 소내실 교우촌 등을 방문하며 사목활동을 이어갔다. 1866년 박해가 일어나 동료 선교사들이 순교하게 되자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와 의논하기 위해 거더리(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로 갔다가 3월 11일 체포됐다. 서울로 압송된 후 충청도 보령 수영(水營)의 갈매못 사형장으로 끌려가 1866년 3월 30일(성 금요일) 참수 치명했다. 그때 그의 나이 29세였다.
손골성지는 병인박해 150주년(1866-2016)을 한 해 앞두고 현재 성당과 사제관, 성모경당과 순교자 기념관 등 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손골성지 순례 및 후원 문의 031-263-1242, 인터넷 카페 http://cafe.daum.net/Sonkol
성기화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