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 부천호(呂島副千戶) 최완(崔浣)이 왜인을 뒤쫓아 가서 싸운 것이 아니고, 왜인이 금음모도(今音毛島)에 이르러 육지에 내려오매, 최완이 손을 휘둘러 불러 오게 하니,왜인이 친히 도서문인 을 바치는데 최완이 이를 보고 모두 목을 베었습니다. 최완은 스스로 그 죄를 알므로 도망해 숨을까 염려되오니, 청하옵건대, 금고(禁錮)시키고 추국(推鞫)하소서.”
세종24년 11월 13일
그렇다면 최완은 왜 왜인들을 다 죽였을까?
8월달에 최완은 여도천호였지만 10월달에 그의 직위는 여도부천호로 나타납니다. 단순히 조선왕조실록의 표기 실수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떤 문제로 공을 세웠음에도 직책이 한단계 낮아졌고 그로 인해 공명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증명서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조업을 하는 것을 인정 받았지만, 그 중에는 꼭 그를 이용해서 불법적인 일을 벌이는 집단이 생겨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관리/통제해야 하는 일선지휘관들은 당연히 일이 배가된 셈이니 골머리를 썩을수 밖에 없었고, 8월경에 왜인들을 추포한 일을 겪은 최완으로서는 왜인들의 불법적 행태에 대해 더욱 고압적인 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돼었든 함부로 왜인들을 죽인 최완의 행동이 용서가 될 일은 아니었지만요.
물론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었고, 왜인들이 다니던 지역이 서로 약정된 지역이 아닌것 만은 분명했습니다만, 어쨌든 체포해서 벌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죽인 것은 분명히 나중에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지만 요즘도 그렇듯이 사건 하나가 사건 하나로 종결이 되지 않고 다른문제로까지 여파가 퍼지는 것은 피할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일과 같은 외교와 관련된 문제는 말이죠.
첫댓글 왜인의 출입을 허용한 것부터가 잘못이지요. 서해에서 짱개들의 조업을 허용하는 것도 잘못이고.......
그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올릴예정입니다 ㅎ
고대 로마만 대단한게 아니라, 저 시대에 저렇게 체계적이고 올바른 행정처리를 공정하게 하려던 조선도 (그리고 그 기록덕후질도 -_-;;) 정말로 대단한겁니다.
저런 기록이 남아있다는것은 저렇게 공정하게 하려했다는 것을 조선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거죠. 그게 정말 대단한것 같습니다 ㅎㅎ
외국인을 자국관리가 죽였다고 조사를 시키다니... 15세기에.
다음번에 다루겠지만 인도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조선의 위엄은 정말 ㅎㄷㄷ
@배달민족 하지만 그옆에 야만국 일본
금고와 추국의 명분을 세우는 부분이 참 흥미롭네요. 명분만 놓고 보면 마치 구속영장 발부 심사하는거 같음.
다음편이 궁금합니다~
와;;; 제대로 선진국이네;; 우리나라가 어쩌다 지금같이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