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벨의학상 ‘텔로미어 연구’, 노화의 비밀 어디까지 풀었나
과연 인간은 얼마나 오래, 이왕이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치매·암·뇌졸중·관절염 등 각종 노화 관련 질병에 걸리지 않고, 주름 없이 활기 있게 노년기를 보낼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노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고 말한다. 올해 노벨의학상 수상자는 바로 노화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은 미국의 의학자들이었다.
항노화연구 새 패러다임 제시
스웨덴의 카롤린스카연구소는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와 존스홉킨스 의대의 캐럴 그라이더 교수, 그리고 하버드대 의대의 잭 샤스턱 교수를 2009년 노벨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발표했다. 이들의 선정 이유는 “텔로미어(telomere)의 구조와 역할을 규명해 노화 연구와 유전질환 치료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것이다.
‘텔로미어’란 운동화 끈의 끝을 감싼 플라스틱처럼 세포의 염색체 끝부분을 감싸고 있는 유전자 조각을 말한다. 세포는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열하는데, 그럴 때마다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의 끝이 닳듯 길이가 점점 짧아진다. 텔로미어 길이가 어느 단계까지 짧아지면 세포는 결국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노화돼 죽게 된다. 그래서 텔로미어는 세포의 노화 정도와 수명을 알려주는 ‘생체 타이머’로 불린다. 반면 암세포는 일반 체세포와 달리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고 분열을 계속한다.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해주는 효소가 텔로머라이제인데, 암세포에는 이 텔로머라이제가 유난히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이 1980년대 후반 이러한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이제의 기능을 처음 밝힌 이래, 노화 연구의 주류는 크게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활성산소 가설이 가장 유력한 노화 이론이었다. 활성산소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가 음식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로, 세포 내에서 여러 염증반응(산화)을 일으켜 노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활성산소의 생성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과 다양한 항산화물질을 찾아내는 것이 항노화 연구의 주요 과제였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확립된 텔로미어 가설이 그 흐름에 변화를 가져왔다. 텔로미어 연구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의 정인권(생물학) 학장은 “정상적인 체세포의 텔로미어 길이를 최대한 유지시켜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반대로 암세포는 텔로머라이제의 활성화를 막아 텔로미어 길이가 노화점까지 짧아지게 하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정 학장은 “실험실 세포단계 수준의 연구에서는 성공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며 “그러나 인체에 적용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시키려다 오히려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뀌지 않도록 조절할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또 ‘노화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현상’이라는 교과서적 이론을 깨고 이미 노화된 세포에 유전자를 주입해 다시 젊은 세포로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던 서울대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의 박상철(의대 생화학교실 교수) 소장도 “세포가 다시 젊어지면서 텔로미어의 길이도 늘어난 것을 발견했는데, 그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이젠 ‘웰 에이징’ 필요해
노화가 세계인들의 공통 관심사가 되면서 항노화 연구 결과는 속속 실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노화방지 전문 클리닉이 부쩍 늘었다. 생체 나이, 피부 노화, 혈액 상태, 체성분, 생활습관과 병력 분석 등 다양한 검진을 실시해 처방을 내리는데, 검사 비용만 수백만원이 넘는다. 기존의 항노화 연구 중에서도 어떤 내용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클리닉의 처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주로 섭취 칼로리를 제한하거나 활성산소의 생성을 억제하는 식이요법, 호르몬이나 태반주사요법·운동요법 등이 이용된다. 그러나 단순히 피부의 주름살을 없애주고 탄력을 높여주는 정도의 시술을 하면서 노화방지 클리닉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100세인’ 연구로 유명한 박상철 소장은 “항노화요법이 단기적·표피적 처방에 그칠 경우 나중엔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겉으로 보이는 노화현상을 막는 것만으로는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장수 연구에서 주로 말하는 최빈사망연령(자연적으로 가장 많이 죽는 나이)의 경우 일본은 벌써 92세에 이르고 머지않아 100세까지도 될 수 있다”며 “숫자뿐인 나이에 연연하지 말고 건강하고 당당하게 늙는 ‘웰 에이징(well-aging)’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건강 나이(real age)’ 개념의 창시자로 알려진 뉴욕주립의과대학의 마이클 로이젠 교수도 저서 『 내 몸 젊게 만들기』에서 “노화는 하나가 아닌 전체의 문제”라며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내 몸에 관심을 갖고 유리한 것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면 100살 또는 그 이상까지 살 수 있고, 나아가 양질의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수
첫댓글 머지 않아 100세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삶의 길이 보다 삶의 질이 더 문제겠지요. 앞으로 이런 쪽으로 더 활발한 연구, 그리고 많은 관심과 투자가 모일 듯 합니다.
오래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나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