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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보다가 귀가 번쩍 뜨였다.제작비를 엄청나게 들였다고 하길래 CG나 보자하는 마음에서 오랜만에 지상파 TV를 켰는데 200억짜리 화면을 능가하는 저 음악은 대체 뭔가...? 1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내용을 전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욘사마의 어색한 긴 머리에도 불구하고 주책맞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나 자신에 민망해 하며 정신을 차리고 음악을 들어봤다. 들을수록 웅장하면서 동양적이고 애절한 선율인데...혹시...? 하면서 인터넷을 뒤진 결과 역시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유명한 히사이시조.한국의 <웰컴투동막골>으로 2005년 제4회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한 히사이시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거의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하며 지브리표 애니메이션의 마침표를 찍는 음악감독이다. 그 둘이 만나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안심이 된다고 할 만큼 둘의 만남은 걸작들을 쏟아낸다. 반면 폭력의 미학을 노래하는 기타노다케시와도 콤비를 이루어 '기타노 블루'의 우울함을 완성하기도 한다. '동화'와 '우울함'. 극단적으로 보이는 두가지 정서를 넘나드는 그의 음악세계로 고고~!1.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속의 ‘아름다운 동화의 선율’‘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테마곡들은 이미 한국 대중들에게도 친숙하다. 영화에 어울리는 건 둘째치고 그냥 듣기에도 좋은 이 지브리 O.S.T.는 각종 벨소리, 컬러링, CF, 오락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한다. 유명한 몇 곡외에도 좋은 곡이 많다. 그의 음악이 나올 때마다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그의 필로그라피를 읊어주고 싶을 정도로 그의 O.S.T.는 강~추!다. 그가 없는 지브리표 애니메이션을 상상도 할 수 없다. 히사이시조는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판타지 세계를 음악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의 국립음악대학 작곡과를 재학하면서 현대음악 작곡활동을 시작했으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때 미야자키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는 피아노, 오케스트라, 기타등 팝과 클래식을 가리지 않고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제로 어느 인터뷰에서 "늘 제가 추구하는 것은 좋은 곡을 쓰는 것입니다. 클래식이나 팝 같은 장르에 관계 없이 그냥 좋은 곡을 쓰려고 하죠." 라고 했다.아까 말했듯이 <태왕사신기>의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음악만 듣고도 가슴이 벅차오르게 할 만큼 섬세하면서 웅장하고 감동적인 선율이 히사이시조 음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그의 음악을 몇번 듣다보면 이런 스타일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사실 <태왕사신기>를 딱 듣고 그가 떠올랐다.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이 런 음악 스타일은 미야자키의 여러 애니메이션을 '명작'에 올려놓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제작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연구했음이 틀림없다. 실제로 어느 인터뷰에서 히사이시조는 “미야자키의 세계관이 슬라브계 멜로디와 통한다”며 미야자키에 대한 자신의 통찰력을 나타냈다.
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OST -風の谷のナウシカ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환경파괴, 자연과의 공생 관계등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는 주제의 영화. 히사이시조는 여기에 세기말적이면서 애절한 중동풍의 음악으로 주제를 더욱 부각시켰다. 이 작업으로 제2회 애니메이션 대상 시상식에서 음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2) 이웃집 토토로 OST- となりのトトロ(이웃집 토토로)지브리의 마스코스가 된 <이웃집 토토로>. 토토로~토토로~라는 그 유명한 메인 테마곡. 밝고 귀여운 선율이 토토로와 고양이버스를 딱 표현하는 것이 그 자체로 동화다. 내한공연에서 이 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3)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人生のメリ ゴ ランド(인생의 회전목마)'인생의 회전목마'라는 한국어 제목이 더 유명한 테마곡. 이 음악을 듣고 ‘올드보이’의 나 ‘번지점프를 하다’의 가 연상되었는데 이 셋의 공통점은 바로 왈츠다. 가녀리고 섬세하면서 인생의 핵심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이 음악을 듣다보면 세상을 다 살아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데 명수인 것 같다. 히사이시조는 미야자키와 만나면 미야자키의 감동적이고 섬세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그런 스타일이 때론 '과잉'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웰컴투동막골>이 바로 그랬다. 영화의 테마곡인 왈츠풍의 A Walts of Sleigh는 영화와 어울렸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영화보다 음악이 더 튀는 다소 간지러운 장면도 몇몇 연출되었다.(영화를 같이 보던 필자의 친구 曰, “음악이 좀 간지럽다야-;;;;”)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에서 그의 동화스런 스타일은 약간 부담스러운 것일 수도...?
2. 기타노 다케시 작품 속의 ‘우울한 현실의 선율’
그는 폭력의 미학을 노래하는 기타노 다케시와도 콤비를 이루며 일본 아카데미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기타노타케시의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국내 연예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내기도 하고, 일본의 대표 문화인으로 뽑히기도 했다지만 그의 영화를 언뜻 보면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허무주의 B급 영화같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런 건조한 폭력 속에서도 잃지 않는 서정성이다. 이 것이 바로 히사이시가 담당하는 부분이다. 폭력적인 등장인물의 의외의 천진난만함과 히사이시조의 우울하고 애절한 음악이 만나면 허무주의 폭력과 유머는 가슴 시린 공허함으로 바뀐다. 미야자키와는 동화적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면 기타노와는 우울한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1)하나비 OST-HANA-BI 끊어질듯 이어지는 현악기의 선율은 주인공의 뒷모습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영화를 가만히 살펴보면 지나치리만큼 다른 장면에는 음악이 절제되어 건조하다. 그러나 불구가 된 호리베가 그림을 그리며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니시가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장면등에서는 절제되었던 감정들을 그대로 음악으로 토해놓는다.
2) 소나티네 OST-act of violence 감정을 고조시키는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 뒤에 기타 소리도 들린다. 클래식과 락의 만남이 더 우울하게 느껴진다. 그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을 들으면 야쿠자들의 건조한 폭력과 그들의 예기치 못한 천진난만함,그리고 죽음이 떠오른다. 이 OST로 제 16회 일본아카데미 최우수상, 제 47회 마이니치 영화 콩쿨 최우수상 수상하게 된다.
3) 기쿠지로의 여름 OST-Summer 밝은 기타노의 영화이다. 마치 미야자키의 동화처럼 따뜻하고 감동적인 선율이 바로 SUMMER. 여전히 폭력적이고 막무가내 아저씨인 기타노의 천진난만함이 여름방학처럼 재밌고 유쾌하게 그려질 수 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테마곡이다..음악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질 정도로 심한(?) 히사이시 스타일이다. 국내에선 영화 자체보다 OST가 더 유명하다.
기타노 다케시는 히사이시조와 소위 패밀리라고 할 정도로 콤비로 작업을 많이 하면서도 서로간에 거리를 둔다고 한다. 서로 친해지게 되면 원하는 음악을 주문할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결론적으로, 기타노다케시와 미야자키하야오라는 감독 두 사람이 매우 다른 성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히사이시조와 작업을 하는 이유는 히사이시조라는 음악감독이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감동적으로 만드는데 최고기 때문이다. 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동화', '우울한 현실' 이 두 가지 주제를 음악적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 속의 이상 세계를 그리던지, 건조한 폭력이 난무하는 우울한 세계를 그리던지 그는 스토리가 가지는 ‘감정’ 부분을 극대화 시키면서 사람을 감동시킬 줄 안다. 그 특징이 때론 <웰컴투동막골>의 어느 장면처럼 과잉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그가 선사하는 수 많은 감동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음악은 영화의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메세지 그 자체다.
이웃집에 토토로가 살 수 있었던 것도, 센이 자신의 본명인 치히로를 기억할 수 있었던 것도, 소피가 다시 젊어질 수 있었던 것도, 니시가 은행을 턴 뒤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도 다 그의 음악 덕분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다음 편 예고 :- 명대사로 보는 노다메칸타빌레 OST -
▲ 히사이시조가 직접 연주하는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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