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州의 중심도시로 맨체스터에서 북서쪽으로 45㎞를 차로 달리다보면 다다르는 프레스턴市.
아이리시海로 흘러가는 리블 강하구에 위치한 자그마한 이 소도시에는 1946년부터 1960년까지 이 곳의 축구팀인 프레스턴 노스 엔드서 433경기에 출전, 187골을 터트린 톰 피니 경을 기리는 거리가 있다. 잉글랜드 대표 공격수로 76경기에 나서 30골을 터트렸던 원로를 기리는 이 거리에는 잉글랜드 축구의 역사를 한 데 모은 국립 축구박물관(The National Football Museum)이 우뚝 서있다.
3층으로 이뤄진 이 박물관의 관장은 보비 찰턴 경이며 부관장은 알렉스 퍼거슨 경, 톰 피니 경, 트레버 브루킹 경 등 3명이다. 이들 중 브루킹 경을 제외한 3명은 이 곳에 꾸며져있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의 초대 헌액자들이다. 명예의 전당은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지 10주년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2년 창설됐다. 명예의 전당은 프리미어리그 뿐 아니라 그 이전 리그1(※1992년 이전 프리미어리그 명칭) 시절의 역사가 망라돼있다.
가입요건은 30세 이상으로 잉글랜드서 5년 이상 뛰거나 감독으로 활동한 자로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추천과 심사에 의해 선정된다. 매년 3개 부문(남자선수·여자선수·감독)에 걸쳐 선정되는 데 초창기였던 2002년(29명)과 2003년(13명) 두 해동안 42명을 뽑은 이후 2003년부터는 매년 10명(남자선수 7명·여자 선수 1명·감독 2명)으로 한정해오고 있다.
오는 9월 1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섀도 스트라이커의 교과서이자 아스널의 전설 데니스 베르캄프는 특이한 경우다. 원래 명예의 전당의 심사위원들은 10명으로 시작, 헌액자들이 다음해부터 자동적으로 심사위원 자격을 얻어 현재는 28명(생존자)이 선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팬투표 방식으로 한 명을 뽑기로 하고 'BBC 풋볼 포커스'를 통해 팬투표를 실시했는데 베르캄프는 폴 스콜스(맨유) 트레버 브루킹 경(전 웨스트햄) 레이 클레멘스(전 리버풀) 렌 셰클턴(전 선덜랜드) 레이 윌슨(전 에버턴)을 제치고 아스널 출신으로는 6번째, 비영연방 출신으로도 6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페르캄프는 아스널 출신으로는 6번째, 비영연방 출신으로도 6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GettyImages/멀티비츠/나비뉴스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베르캄프의 선정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는 단지 골을 터트린다기 보다 우아함과 섬세함을 갖춘 '컨트롤러 오브 거너스(Controller of Gunners)'였으며 424경기서 총 121골 166어시스트를 기록한 위대한 선수였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3회(1998·2002·2004) FA컵 우승 4회(1998·2002·2003·2005)의 위업을 세웠던 그는 평소 이렇게 말해왔다. "많은 이들은 나를 득점자로 부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도움자다(Many people call me 'scorer'. but I think I'm assistant.)라고.
▲서른 살을 향한 K리그여! 기억상실증에서 벗어나자
지난해 리버풀 크라운 프라자 호텔서 열린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식에는 400여명의 전설들이 한 데 모였다. 과거 현역시절 때 필드에서 살인적인 태클을 불사했던 적일지라도, 현재 프리미어리그서 으르렁거리는 앙숙이라 할지라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했다.
명예의 전당은 단지 과거의 영광을 돌이키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를 논하며 미래를 꿈꾸는 건설적인 장이다. 명예의 전당을 통해 결코 잊어서는 안될 전설들이 탄생되며 이들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회자되는 '스토리있는 컨텐츠'로 발전한다.
25년째를 맞이하는 K리그는 무엇을 추억하고 기리고 있는가? 각 구단들은 단지 우승횟수에만 매몰돼있으며 몇대몇으로 이겼고 졌는 지만 관심있을 뿐이다. 열광했고 감동했으며 억울하고 안타까웠던, 그리고 짜릿한 골과 승리의 희열을 전했던 우리들의 영웅들을 우리들은 쉽게 잊어왔다.
각 구단들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정리하는 데 미숙했고 인색했다. 각 팀들은 어떤 역사성을 지니고 어떤 길을 걸어 현재까지 걸어왔는 지를 제대로 팬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으며 오로지 닥친 그 시즌의 성적에만 급급해왔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아시아 최고(最古)를 자랑하는 25살의 K리그는 과거를 잊은 빈약한 스토리에 허덕이며 지역 팬들과 호흡할 거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허정무 코치에게 감독직을 승계하며 멋지게 떠난 이회택 감독 역시 존경할 축구계 어른이다. (IS포토)
포항 스틸러스를 보라! 1973년 4월 실업팀 포항제철로 창단한 후 이회택 박수일 박성화 박태하 황선홍 홍명보 이동국 등 50여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한 산실임에도, 35년간 숱한 이야기들이 존재했음에도 마치 가공하다만 원석처럼 스스로 자신들의 과거를 까먹고 있을 뿐이다.
두 달 전 홍명보 코치랑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혹시 1992년 포항에서 정규리그 우승할 당시 유니폼과 축구화를 보관하고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라나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홍명보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얘기가 필요할까? 백마디의 말이나 글보다 당시 홍명보의 땀묻은 유니폼과 사진에다 축구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그 이상인 것을.
잉글랜드 국립축구박물관은 1층은 '전반 갤러리(first half gallery)'로 이름을 붙여 역사를 정리해뒀다. 2·3층은 '후반 갤러리(second half gallery)'로 역사적인 인물들과 축구와 관련된 흥미있는 자료들이 모여있다. 연간 10만명이 이 곳을 찾고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되찾고 발굴해야할 K리그의 역사들
만일 K리그 명예의 전당이 세워진다면 한국 축구의 산실이었고 1983년 슈퍼리그 개막전이 벌어졌던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지닌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동대문운동장은 축구인들의 최소한의 동의절차 없이 패션몰과 공원 부지로 이미 축구장의 기능을 잃고 주차장으로 전락해있다.(축구인들의 동의절차 없이 청계천복원사업의 미명하에 동대문운동장을 없앤 분은 현재 대통령 후보에 올라있다)
K리그 명예의 전당은 무엇으로 채워야할까? K리그 원년 할렐루야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한국 축구 발전에 평생을 바쳤던 故 함흥철 선생은 리버풀의 빌 섕클리 감독처럼 언제나 존경받아야 마땅한 분이다.
1992년 포항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후 허정무 코치에게 감독직을 승계하며 멋지게 떠난 이회택 감독 역시 존경할 축구계 어른이다. 1990년 한국에 처음으로 과학적인 훈련법을 도입한 독일 출신의 엥겔 전 대우 감독과 둔탁한 한국 축구에 세밀함을 불어넣은 발레리 니폼니시 전 부천 감독에게도 우리는 경의를 표해야 한다.
최순호가 정작 K리그서는 9년간 불과 10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IS포토)
조광래 변병주 이태호 김주성 등 대우로얄즈의 스타군단은 성남 일화, 수원 삼성, FC 서울에 뒤지지 않을 만큼 찬란했다. 8경기 연속골을 뽑아냈던 럭키금성의 조영증, 황소라는 별명처럼 필드 곳곳을 누볐던 박성화, 오버래핑의 달인 박경훈, 득점기계 백종철, 털보 조긍연에다 K리그 최초로 100골을 넘어선 윤상철 등 우리가 제대로 정리해서 기려야할 전설들은 너무나 많다.
외국인 감독들에게 밀려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에 볼 좀 찼던 고만고만한 지도자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K리그가 한국축구가 보호해야할 전설들이다.
어디 이뿐이랴. 적토마 고정운과 '영리한 축구'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김현석 신태용에다 '팽이' 이상윤의 짜릿한 골뒤풀이도 그립다.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라이벌전의 도화선이 됐던 서정원 역시 K리그의 전설로 남기에 충분하다.
짜릿한 명승부들도 많았다. 1995년 일화 천마와 포항 스틸러스가 중립경기 3차전까지 치렀던 챔피언결정전은 그야말로 명승부의 백미였으며 1999년 8월 수원 삼성이 포항 스틸러스에게 3골을 먼저 내주고도 4골을 뽑아내며 역전했던 그 승부, 그리고 그해 가공할만한 파괴력으로 상대를 잇따라 제압하며 4개 대회를 휩쓸었던 '수원 삼성 99' 는 K리그에 길이 남아야 한다.
얼마전 한국을 다녀간 피아퐁과 라데, 샤샤에다 바데아 올리 등 K리그 발전에 밑거름이 됐던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잊고 싶은 아픔도 담아내야 한다. 구단이기주의에 선수 생명을 잃었던 김종부에다 부상으로 날개를 펼쳐보지 못했던 김병수 나승화 등.
그리고 한국을 대표했던 세계적인 킬러 최순호가 대표팀 위주의 정책 때문에 정작 K리그서는 9년간 불과 10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2007년 최다 출전 기록을 날로 새로 쓰고 있는 김병지(서울)와 김기동(포항)은 살아있는 전설들이다. 전북의 최진철(전북)도 마찬가지다. 마치 이름만을 나열하듯 쓰고 있는 듯 하지만 단지 이름만을 기억해서는 역사가 될 수 없다. 팬들이 두고 두고 얘기하며 자식들에게 대물림돼 이어받아야 진정한 역사가 만들어진다. 프로축구연맹 김원동 총장에게 들은 얘기다.
1980년 말 프랑크푸르트서 뛰던 차범근에게 악의적인 백태클로 '제2 요추 골횡 돌기부 골절상'을 입혔던 레버쿠젠의 위르겐 겔스도프가 은퇴한 이후 차기 프랑크푸르트 감독 후보에 오른적이 있다고 한다.
이 때 프랑크푸르트 팬들은 "차붐에게 선수생명을 앗아갈 악의적인 파울을 범했던 자가 우리의 감독이 될 수 없다"고 항의하며 그의 감독행이 좌절됐다고 한다. 팬들이 스스로 기억할 수 있어야 진짜 역사다. 그리고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각 구단과 연맹, 미디어가 해야할 사명이다.
K리그 발전을 이야기하자면 몇날 몇일 밤을 새도 못다할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최우선은 감동할 수 있고 삶과 밀접하게 결부된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명예의 전당 건립이 그 첫발이 아닐까?
첫댓글 명예의 전당이 없었군요 =-ㅁ=?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라이벌전의 도화선이 됐던 서정원? 쌰랍!
현역은 긱스 뿐인가. 대단하다
팬들이 기억해도 협회와 구단이 기억하지 못하면 개털인 k리그 현실도 감안해야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