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후작의 ‘쥐스틴’과 -
사드 후작(1740 – 1814)이 쓴 소설이다.(1791)
이 책의 제목은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이다. 이 소설을 소개하기보다는 이 소설을 쓴
사드 후작(또는 백작)이 훨씬 더 유명하다. 사드가 성 소설을 쓰게 된 18세기에는 앞에서도 보았듯이 성을 다룬 소설이 많았다. 그렇게 보면 사드는 좀 더 진하게 다룬 작가일 뿐이다.
사드 소설의 일반적인 흐름은 ‘인간의 육체는 성교를 위한 기계로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쥐스틴은 자기의 양심에 비추어 유혹을 피하고, 타인의 삶을 위해 탄원도 하고, 기도도 해주었다. 그 결과로 쥐스틴이 받은 것은 채채끽질이고, 변태적인 성 학대였다. 소설의 내용은 음란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그를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기에 앞서 그가 다룬 소설에서는 특징적으로 성적 변태를 많이 다루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사드는 소설에서 쥐스틴을 성적 학대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드는 자신과, 쥐스틴을 학대한 사람을 욕망의 공법으로 몰았다.
쥐스틴과 유사한 작픔으로느 ‘소돔에서 120일’이 있다. 사드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다가 프랑스 대혁명(1789) 때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다시 감옥에 갇혔고, 나중에는 정신병원에 갇혀서 살다가 1814년에 죽었다.
‘소돔에서 120일’은 다시 갇혔을 때 쓴 소설이다. 사드의 이 소설은 모 귀족의 손에 들어갔으나 출판되지 않았다. 1914년에서야 독일에서 아주 조잡하게 첫 출판을 하였다.
*사드의 생애
사드라고 하면 소설보다는 문화 용어인 사디즘이 더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생애를 여기에 올린다
1740년 6월 2일에 프로방스 지방의 명성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로 태어났다. 후작 또는 백작이었다. 1787년에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다. 사망 시에도 사드 백작으로 기록되었다.
사드는 이미 10대 후반부터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결혼 직후부터 그 특유의 사디즘적 면모를 보여 왔으나 귀족이란 신분 덕분에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1768년 부활절 때 사드가 매춘부를 학대한 사건이 온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다. 여기서 그의 악명이 유명해졌다.(투옥도 됨)
그의 음란함을 증오한 장모가 수를 써서 국왕에게 사면 없이 무기한 구금 명령을 받아 낸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1790년 왕정이 무너지고 봉인장의 효력이 상실할 때까지 13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집필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1790년 이후 사드는 정식으로 석방되어 자유를 찾았으나 사실상 빈털터리에 무일푼 신세가 된다. 특히 이때 아내와 이혼을 하였으며 그의 성까지 팔게 되어 머물 집조차 없었다. 그래서 잠시 연예계를 기웃거리며 소설 《쥐스틴》을 익명으로 간행했지만 어떤 작품도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악평만 얻었다.
이후 그는 생계를 위해 주요 저서들을 실명 혹은 익명으로 간행하지만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드의 사상과 성적 취향을 당시 프랑스 사회가 이해하지 못하고 불경으로 간주하다 보니[9]사드의 저서들은 팔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드는 저술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다. 정신병원에 갇히므로 그의 원고들이 거의 흩어졌다.
직원의 딸인 마들렌 르클레르와 친해져 그녀와 애인이 된다.[13]마들렌은 콩스탕스와 함께 사드가 죽는 순간까지 그를 돌봐주었다.
결국 독방에 갇힌 지 5년 만인 1814년 12월 2일에 사드는 이 정신 병원에서 7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가 죽은 후 자손들은 그를 부끄러워하여 오랫동안 사드 후작이라는 작위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사드가 재평가되면서 근래부터 그의 작위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저서들도 프랑스의 파리 문학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프랑스 큐레이터들이 사드의 저서들을 보고는 감탄할 정도였다.
**서다즘
가학성애(sadism)는상대 대상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쾌락을 얻는 것을 뜻한다. 가학성애자는 영어로 세이디스트(sadist) 라고 한다. 줄여서 S라고도 한다.
가학성애, 가학증, 기학증(嗜虐症), 학대음란증, 가학음란증, 학대성욕도착증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과거에는 정신병리학적 시각에서 이러한 사디즘을 보았으며 사디즘이 정신 병명으로도 사용되었으나(예: 가학성애자) 현재는 인간의 내면에는 파괴성이 존재하며 그 파괴성을 어떻게 표출하고 해소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어 정신병으로는 구분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정신병으로 구분만 안할 뿐이지 정신의학과의 심각적인 연구대상들 중 하나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