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폭의 산수화 속에 들어온듯한 산속 교정.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총알같은 타구가 운동장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교장실 한켠에는 수많은 우승트로피가 빼곡히 채워져있다. 경남고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야구 마니아가 될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감독실 책상에 앞에 놓인 사진 한장이 눈길을 잡아 끌었다. 부산 사직구장 근처의 한 재활원 건물을 뒤로하고 선수들과 원생들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종운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선수들을 이끌고 재활원을 찾았고, 제자들에게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었다.자칫 '운동머신'이 되기 쉬운 선수들에게 봉사활동을 통한 인성 심어주기. 전통 깊은 명문고다운 모습이다.달라진 것 하나 더. 강압적인 분위기를 없애면서 자연스럽게 구타가 사라졌다.
지난해 경남고는 극심한 내부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감독은 불협화음속에 학교를 떠났고, 주전급 선수 5명이 짐을 챙겼다. 이감독은 가까스로 분위기를 추스렀으나 전력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예상(?)대로 청룡기, 대통령배, 황금사자기대회 지역 예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한계는 또렷해 보였다. 그러나 이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힘을 발휘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역예선없이 모든 학교가 참가하는 봉황기. 초반 탈락을 예상하고 숙박비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이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음으로 똘똘뭉친 선수단은 기라성같은 우승 후보들을 차례대로 꺾었다. 그리고 기적같은 우승을 연출했다.
봉황기서 4승을 거두며 MVP에 선정된 김상록(2학년)이 건재하고, 140km대 직구를 뿌리고 있는 박상흠(2학년)이 믿음직스럽다. 든든한 마운드는 내년 전망도 환하게 밝힌다. 운동장에는 땅거미가 내려앉았으나 자율훈련 중인 선수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야구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 부산=민창기 기자 huelva@> 〈 다음은 대전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