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4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 시 147:1-11, 20c; 사 40:21-31; 고전 9:16-23; 막 1:29-39
사공이 많으면 배가 더 빨리 가지 않고,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들어보았습니다. 여러 각기 다른 주장이 하나로 이어지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말입니다. 성주에 사드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군민 전체가 똘똘 뭉쳤습니다, 8월 15일은 삭발투쟁으로 815명을 모집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르면서 소성리 마을 주민마저 분열음이 들리고 있습니다. 뜻을 한데 모으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의 교회가 분열되고 분열되어 지금은 수백이나 될 만큼 쪼개졌습니다. 유럽 어느 지역에서는 이슬람교와 천주교, 개신교가 연합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희소식도 들립니다. 대구에서는 매년 신구교회 일치 기도회가 있지만, 여전히 시선이 차갑습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서로를 이단으로 낙인찍습니다. 예전에 김남경 전도사님은 절에 가면 부처님께 절을 한다고 해서 저 역시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도전해보려고 하였지만 한 번도 실행하지 못한 것을 보면 폐쇄적인가 봅니다. 우리 주보 표지에 부처님 오신 날 축하한다고 했더니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수천 년 전 고린도전서 본문의 바울의 태도는 놀라운 정도를 넘어 충격입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태도는 무엇 때문일까요? 오직 구원 때문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어떤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까지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요? 자신을 한없이 과시해도 될만한 인물이지만,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사람이지만, 완전히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물론 그것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높은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예수의 말이 여기에 응할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17살 솔이의 동갑내기 여자친구의 편지를 보았습니다. 17살이 느끼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솔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될까요? 여기서 행복은 따뜻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에서 행복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들면서 행복의 조건은 확장되는 것일까요? 웬만해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70~80대의 권사님과 장로님, 4, 5, 60대의 젊은이들께서는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까? 불안, 초조, 걱정, 염려 등등은 행복과 가까워지기 힘든 단어들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일까요? 지나치게 치열한 무한경쟁은 오롯이 성적뿐입니다. 처음으로 2등 했다고 몸을 던진 안타까운 사연도 들었습니다.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의 나라에서 행복도는 참담합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이사야 본문이 그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 정말 그럴까요? 주가 어떤 분이기에 그럴 수 있을까요? 이 시대의 주는 그런 분일까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실지 삶은 부정이 높은 것 같습니다. 개독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개의치 않습니다. 완전 이기적이라는 방증입니다. 때문에 주님의 능력이 살아 움직일 리 없습니다. 그저 자신을 위한 도깨비방망이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살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서 본문에 예수는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침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기를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순간 예수의 말은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라고 합니다. 이 말의 느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생명, 정의, 평화가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상을 죽이는 심판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고 살리기 위해 왔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성령 하나님은 살아 움직입니다. 개독교는 참 순전한 기독교가 될 것입니다. 바울의 정체성도 분명해 보이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 침묵!
240204 시 147:1-11, 20c; 사 40:21-31; 고전 9:16-23; 막 1:29-39
시 147:1-11, 20c
1 1)할렐루야. 우리의 하나님께 찬양함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하나님께 찬송함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마땅한 일인가!
2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신다.
3 마음이 상한 사람을 고치시고, 그 아픈 곳을 싸매어 주신다.
4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신다.
5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니, 그의 슬기는 헤아릴 수 없다.
6 주님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며, 악인을 땅의 먼지만큼이나 낮추시는 분이다.
7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러드려라. 우리의 하나님께 수금을 타면서 노래 불러드려라.
8 주님은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내릴 비를 준비하시어, 산에 풀이 돋게 하시며,
9 들짐승에게,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
10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다리 힘센 사람도 반기지 아니하신다.
11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20c 할렐루야.
사 40:21-31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 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22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 놓으셨다.
23 그는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시며, 땅의 지배자들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24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풀포기와 같다. 심기가 무섭게, 씨를 뿌리기가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말려 버리시니, 마치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
25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26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군대처럼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29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고전 9:16-23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러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전하려고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이 주는 복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막 1:29-39
29 14)그들은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30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정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3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33 그리고 온 동네 사람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그는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39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내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