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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누님이 계신 익산에 다녀 왔습니다.
지난번에 장모님을 모시고 합천 장인어른 산소에 성묘하고 안면도로 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얼굴만 보고 올라와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누나가 가까운 곳에 있을때는 자주는 아니더래도 집사람과 셋이서
혹은 딸내미와 넷이서 가끔 성지순례도 하고 낚시도 함께 가고 했습니다.
오래전에 사랑하는 큰 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냈고 몇년전에는 자형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누나는 삶에 회의나 흔들림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남은 두 아들과 함께
늘 감사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몇년간 가톨릭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다가 작년에 퇴직을 했습니다.
노인요양원에서는 한때는 한 가정의 엄마였지만 인생의 말년에
자기가 평생을 희생하며 봉사해 온 남편과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무의탁
독거 할머니들을 돌보는 시설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습니다.
맞교대로 힘들게 일하는 틈틈이 내가 어디 가자고 하면
무척 힘이 들텐데도 소풍가듯이 따라 나섰었습니다.
나같이 요령 피우고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 신앙심이 아니라 모든 일에 감사하며
주님이 주시는 고통까지도 기도로 극복하는 진짜 갑자 내공의 신앙심을 가진 누나입니다.
봄에 낚시를 함께 가면 집사람과 누나는 인근 풀밭에서 나물을 캐거나 고사리를 꺽었습니다.
지난 추석전에 갑자기 큰 아들이 있는 익산에 내려 가서 같이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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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집사람도 쉬는 토요일이라니 누님께 내려가서 함께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딸내미는 그 날 종로에서 학회모임이 있어서 KTX를 타고 익산에서 만나기로 하고
집사람과 둘이 먼저 내 차로 출발했습니다.
조금 늦은 출발이라서 고속도로가 정체는 아닌데 전체적으로 속도가 안나서
점심때가 지나서야 익산에 도착했습니다.
조카는 일일 의료봉사 활동팀에 합류를 해서 집에 없고...
누님과 지난 늦봄에 결혼한 새 조카 며느리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
조카 며느리는 반포선당 결혼식에서 보고 이번에 두번째 입니다.
서울에서 결혼후 만나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내가 많이 바빠서 식사도 못햇습니다.
중학교 선생님인데 성격이 밝아서 누나 새식구로 잘 어울립니다.
주로 서울로 조카가 올라가는데 시어머니가 계시니까 이번에는 익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앞으로 신랑이 졸업하고 본격적인 일을 할 때까지 힘이 들겠지만
고생을 함께 감내하면서 미래를 위한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 갈 겁니다.
게다가...주님의 은총으로 늦은 결혼이지만 바로 아기를 가져서 엄마 준비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누나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데려가고
이제 다시 두 사람을 누나에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데려가신 두 사람도 누나의 마음속에는 큰 사랑으로 남아 있고
새로 온 두 사람도 큰 사랑으로 왔으니, 결국 주님께서 두 배의 사랑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마음급한 누나가 손주 or 손녀 태명을 '은복'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촌스런 이름으로 들리지만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라는 아주 멋진 태명입니다.
아마, 태어나면 엄마 아빠가 다른 예쁜 세상이름을 지어 주겠지만,
그동안은 은복이라는 따뜻한 이름으로 세상을 향한 10달간의 여행을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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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집에서 점심식사를 먼저 하고 출발하자고 제안했지만
오늘 내가 생각했던 일정을 소화할려면 조금 서둘러야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 안 된 세여인들을 재촉해서 곧장 강경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7시 15분까지는 익산역에 도착하는 딸내미와 도킹이 돼야 합니다.
만약 성지를 한 곳만 간다면 시간은 넉넉하겠지만...일단 내 목표는 두 곳입니다.
익산에서 강경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니까 30분이내에 도착합니다.
늦은 점심으로 강경에서 유명한 생복탕을 택했습니다.
점심식사후에 강경나루터에 가서 잠시 금강 구경을 하고
곧장 나바위성지에 들렀다가...가능하면 여산성지까지 둘러보는 조금 빡센 코스가 되었습니다.
누나는 첫 손주를 가진 며느리가 걱정이 되는지 연신 "괜찮냐?" 묻고 며느리는 늘 같은 대답입니다.
"괜찮습니다.어머님"...
이제 갓 임신을 했으니 괜찮지는 않겠지만...시어머니와 시외삼촌과 함께 하는 길에
힘든 내색않고 분위기를 잘 따라주는 걸로 봐서 아주 좋은 며느리와 엄마가 될 것 같습니다.
하여간, 고부간에 사이좋게 기분좋은 반나절의 일정을 함께 해서 감사했습니다.
성전에서 온 마음으로 주님께 봉헌을 드렸습니다.
"이제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은복이에게 그 놈 이름 그대로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강경읍내에 있는 생복으로 유명한 한산식당입니다. 이른 봄에 강경에 갈 때면 위어회가 별미입니다.
위어회 시즌이 지나면 생복탕이 좋다고 합니다. 생복탕은 동해에서 낚시클럽 후배들과 먹거나 과거
회사가 있었던 지역에 복매운탕으로 유명한 집이 있어서 가끔씩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에서 강경맛집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한산식당 생복국이 개운하다고 해서 내가 선택한 식당입니다
<왼쪽이 제가 주문한 얼큰한 복매운탕이고 오른쪽이 집사람과 누나, 조카며느리가 주문한 복지리...>
<기본 반찬이 가짓수는 많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맛있는 놈으로 나옵니다.>
금강변 유원지에 들렀습니다. 누나도 익산에 내려온지 몇 달 되었지만 차편이 마땅찮아서 강경읍내도
처음이고 나바위도 처음이라고 합니다.
강경 젖갈축제장으로도 활용되는 금강변에는 강 기슭으로 키가 넘는 갈대밭을 보존해 놓고 있었습니다.
갈대밭사이로 오솔길을 내어서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도 만들어 줍니다.
<강경젖갈축제때는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강변유원지...빈 유원지는 더 썰렁하게 계절을 느끼게 합니다>
<이곳은 분명 금강이지만... 이곳 강경포구에서 서해로 고기잡이 배가 나가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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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바위성지를 찾았습니다.
나바위성지는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조선땅에 상륙한 땅으로
초대 천주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미사봉헌은 못드리고, 성지구경을 하고 뒷편으로 올라가면서 주님께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으시고, 무덤에 묻히는 전 과정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습니다.
마침 모두 기도서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그냥 올라갈려다가...제가 제안을 햇습니다.
다 가톨릭 신앙인이니까 14단계별로 올라가면서 지금까지 기도해본 기억을 더듬어 보고
각 처의 묵상을 생각하면서 올라가자고 했는데...한 처만 틀리고 모든 묵상 주제를 다 맞췄습니다.
함께 해 주신 주님께 감사...ㅋㅋ
<성전앞 벤치 주위에는 낙엽을 쓸지 않아서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에게 가을정취를 더하게 합니다.>
<역시 동산뒤로 이어지는 산책길에도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낙엽을 밝아보니 바삭거리는 소리가
예상외로 큽니다. 데이트를 한다면 소문내고 하는 격이 됩니다.ㅎㅎ>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세사람+ 아직 뱃속의 은복이가 맨 뒷줄에 서 있습니다....>
첫댓글 돈독한 신앙심이 엿보이는 영상과 고운 글입니다 은복이게게도 은총이 있기를 꽃삽 어딨지?
늦가을 정취까지 아름다운 나들이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갈대 색감이 익어 갑니다
은복아~ 꽃삽할아버지랑 띠동갑이 돠겠구나~ 음매...튼튼하게 자라다오...난 언제 북한땅 구경가보나~ ...
감사합니다. 은복이 글이 어쩌다 보니 가톨릭 성지 순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죄송^^ 은복이가 이제 16주 되었다니 앞으로 36주 뒤면 세상에 나오겠군요. 많은 사랑속에 건강하게 태어나서 밝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밤에 비가 왔는지 아침부터 추워지면서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꽃삽님, 키달아찌님, 예쁜꽃님, 예쁜이님 따뜻한 휴일 맞으시길 빕니다.
사랑스런 손자를 그리는 글 처럼 좋은 글이 어디 있겠습니까?...항상 부드럽고 넉넉함이 흐르는 이웃 할아버지 같으신 분이 샤프랑님이십니다. 감사드립니다
단단한 성 가정에서 완정감이 있는 가족들의 끈끈한 우애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