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 같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채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갈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는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낙타 / 이동순
낙타는 등짐 지고 이 늦은 저녁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서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가다가 이따금 고개 들고 아득한 지평선 바라보는 모습은 너에게 달려올 먼 데 소식 기다리던 옛 버릇인가
사막의 이슬 맺힌 풀 사각사각 씹으며 너의 눈은 언제나 슬픔에 젖어 있다 어머니 끓여주시던 갱죽 사발에 떨어지던 내 눈물처럼
낙타야 어린 낙타야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엄마를 따라가렴 네 가려는 곳으로 새벽까지는 서둘러 가야 한단다
낙 타 / 김진경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 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 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 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을 보여주겠네.
때때로 만나는 오아시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막 건너의 푸른 들판을 이야기하진 않으리. 자네가 절망의 마지막 벼랑에서 스스로 등에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설 때까지 일어서 건조한 털을 부비며 뜨거운 햇빛 한가운데로 나설 때까지 묵묵히 자네가 절망하는 사막을 가리키겠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까지는 거대한 육봉 안에 푸른 벌판을 감추고 건조한 표정으로 사막을 걷는다네. 사막 건너의 들판을 성급히 찾는 자들은 사막을 사막으로 버리고 떠나는 자.
이제 자네 속의 사막을 거두어내고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서게나. 자네가 고개 숙인 낙타의 겸손을 배운다면 비로소 들릴걸세 여기저기 자네의 길을 걷고 있는 낙타의 방울소리. 자네가 꿈도 꿀 줄 모른다고 단념한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
낙타 일기-돈황에서 / 하두자
네 귀는 타클라마칸의 바람 소리를 언제나 듣고 있다 눈썹과 눈썹사이에 걸려 있는 네 노역이 아득히 펼쳐 있는 모래사막 월하천을 끼고 방울을 울리면서 명사산 모래 능선에 서 있어도 네 눈엔 역사의 슬픈 발자국이 남긴 너울 펼럭이는 푸른강을 잊지 못하지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묻혀 버린 강의 숨결이 보고도 싶지 풀피리 소리도 들리지 않은 평원은 사막을 몰고 가는 사구가 되어 지평선 멀리 하얀 달무리 지나가는 길이 되었다 가파른 먼 길 걸어 오느라 닳아버린 네 개의 통굽 발톱들 네 등짐을 풀고 쉴 수 있는 오아시스는 어디쯤 있을까 네 형상의 끄트막이 지문처럼 얹혀 있는 쇠잔한 너의 등부리에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시간의 행로도 함께 얹혀 있다
낙타가 죽으면 / 최승호
낙타가 죽으면 낙타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고 사막의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고 고요의 사막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낙타가 앞으로 꽤 오래 살겠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으므로 언젠가 낙타가 죽으면 죽었다고 말하지 말고 낙타가 태어나기 전의 달빛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달빛 환한 그곳은 그곳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곳에서 낙타는 몸뚱이를 벗고 무슨 낙타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누워 있을 수 없다 서 있을 수도 없다 물론 성큼성큼 걸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낙타의 혹처럼 / 문정영
무심한 일상 속의 습관 같은 등지느러미를 떼어 버렸다 중심이 벗는, 나는 지상에서 온 몸으로 기어다니며 곪아터진 상처들의 딱정이로 딱딱해진 살의 흉터들로 두 발을 만들어 나갔다 물 속의 따뜻한 생활들은 이제 한 치씩 자라는 변화의 눈금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물방울이 사라진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하고 싶은 일들은 주저없이 해보고, 싫어하는 일들은 뜯어보지 않은 고지서처럼 봉해 두고 그저 산길에 숱하게 널린 공기쯤으로 치부해버린 지난 일과들 하지만 어디에서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낙타가 맨발로 사막을 건너갈 때 지느러미가 아닌 혹을 달고 걸어 가야 하는 것과 같다 내 위선의 등줄기를 떼어버리고 윗봉들 몇 개 달게 된 것은 완만한 물살을 쉽게 거슬러 오르는 일보다 광활한 7월의 사막을 홀로 걸어가기 위해서이다
낙타 무릎의 사랑 2 / 고 진하
─피정避靜일기
닳고닳아 낙타 무릎이 되었다. 봉해 수도원의 수도사들, 이젠 허파를 들썩이며 숨쉬지 않고
무릎으로 숨, 쉰, 다.
성체조배 시간, 핏빛성체를 향해 몸과 혼을 고정시키는 힘, 속으로 울부짖어도 아무 응답 없는 저 神의 침묵을 견디는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올까. 숨쉬는 무릎에서 나올까.
봉쇄된 울타리를 무릎으로 기어 넘을 순 없지만, 마루짱에 닿은 무릎에서 나오는 고요한 숨결은 유월의 붉은 줄장미 넝쿨처럼 훌쩍, 울타리를 넘는다.
닳고닳은 무릎은 힘이 세다. 우주의 모든경계가 허물어지고 마루짱이 음푹 패였다. 기도는 힘이 세다.
낙타 / 김충규
나의 집으로 낙타가 들어왔다 쉴 곳을 찾았다는 듯이 길게 숨을 토했다 맑은 눈에선 고행의 흔적을 엿볼 수 없지만 살 점 없이 앙상한 다리는 한없이 지쳐 보였다 낙타와 함께 지 내기엔 집이 너무 좁아 나는 낙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느 닷없이 낙타가 등을 낮췄다 나더러 올라타라는 것인지 푸르 르 몸을 털었다 나는 낙타의 등에 올라타지 않았다 나는 사 막을 지키는 전사가 아니므로 더구나 순례든 고행이든 사막 으로 떠날 계획이 없었으므로 낙타를 집 밖으로 몰아낼 생 각만 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지 않자 낙타는 그만 풀썩 주저앉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깜빡 이는 사이 낙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눈앞에 무덤 하나 덩그러니 웅크리고 있었다
낙타 2 / 김충규
목마름을 참은 만큼 낙타의 혹은 더 불룩하게 솟는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스린 낙타만이 사막을 덤으로 얻어 횡단할 수 있는 법. 사막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인장들이 제 속의 어둠을 가시로 밀어내고 견디는 것처럼 낙타는 제 등의 혹으로 인해 견디는 짐승이다. 그의 유순함은 견딤의 과정에서 얻은 상처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자는 들어라. 낙타의 두 눈이 오아시스로 출렁거리고 있다. 빠른 속도에 대한 극도의 경멸 끝에 낙타는 쉬엄쉬엄 걷고도 위엄을 터득했다. 사막에 뒹구는 고행자의 인골들, 그들의 죽음은 목마름에 대한 참지 못할 조급증과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스리지 않아 비롯된 것. 사막을 건너가려면 자신을 버리고 한 마리 낙타가 되어 터벅터벅 걸어야 한다. 등에 혹이 불룩하게 솟을 때까지 걸어야 한다. 낙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낙타 / 김옥숙
낙타의 젖은 눈썹을 본 일이 있는가 그림 속 낙타의 눈을 들여다보지 말라 낙타의 길고 아름다운 눈썹에 손을 대지 말라 천년만년 그림 속에 박제가 되어있어야 할 낙타가 고개를 돌려 당신 앞으로 걸어나올 것이다 낙타가 당신에게 올라타라고 말을 건넨다 언젠가 낙타의 등에 올라타고 한없이 사막을 건너갔던 것처럼 낙타의 익숙한 등 불룩한 혹을 쓰다듬을 것이다 당신은 지쳐보이는 식구처럼 낙타가 안쓰러울 것이다 선인장들은 하늘에다 무수한 가시를 박아 넣고 메마른 하늘을 마구 찔러대고 있다 선인장의 눈과 귀는 뿌리에 있지 낙타가 말한다 캄캄한 지하에 눈과 귀를 박아 넣고 수만 미터 아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아내는 거야 내 몸 속의 물을 꺼내 마셔, 괜찮아 낙타의 목을 끌어안고 우는 당신 낙타의 몸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모래바람이 불어와 낙타의 몸을 이불처럼 덮는다 당신은 눈물을 훔치며 그림 속을 걸어나온다 당신의 몸 속에 들어온 낙타 한 마리 문을 열면 모래 바람이 거세게 불고 당신의 늑골 속으로 기억 속으로 모래가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몸 속의 낙타 한 마리 거느리고 사막을 건넌다 그림 속의 낙타는 눈썹이 길다
낙타와 낙타풀 / 송재학
세상의 모든 낙타들은 다 길들여졌으나 고비 사막 어딘가 야생 낙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신기루 따라 걷는 야생 낙타는 타박타박, 그 소리는 사막 아래의 지하수
물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한때 이곳이 바다였듯이 내가 물고기라면 검은 아가미가 가만가만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낙타가 먹는 소소초라는 풀, 사막의 먹을 거리란 뻔한데 그마저 가시가
있는 낙타풀, 다른 짐승이 얼씬도 못하게 심술이 닿은 소소초의 운명은 고비 사막이
자꾸 넓어지는 것과 닮았다 소소초 안에도 모래와 자갈뿐인 사막이 있어 타박타박 야생 낙타가
걸어가고 물고기였던 나는 화석으로 발견되곤 한다 소소초를 씹을 때 낙타의 입은 가시 땜에 피가 흥건하지만, 내 육신은 막 떨어지는 해를 떠받치지 못해 피곤하다
사막으로 가는 바다 / 정재록
맨발의 무슬림이 소금자루를 진 낙타들을 끌고 사하라를 간다 그의 벽안이 홍해의 물빛처럼 깊어 보인다 저 소금 캐러밴의 행렬은 사막으로 바다를 끌어들이는 파이프라인 사내는 낙타의 등에 단단히 붙들어 맨 저 올망졸망한 바다보따리들을 종려나무 우거진 오아시스의 맹물에 풀어 놓을 것이다 내가 뿌릴 이 바다의 씨앗들이 사막의 낙원을 낙원으로 만들지 간이 밴 음식들, 맛깔 나는 파라다이스를 만들지 그는 모래위에 떠 있은 섬을 향하여 묵묵히 바다를 끌고 가서 한껏 출렁거리게 할 것이다 그가 내민 한 줌의 소금, 번철처럼 달궈진 모래밭을 밟아 온 한 자락의 파도가 베드윈의 식탁에서 파닥거릴 것이다 사하라의 모래밭에 생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간이 밴 한 끼의 식사는 먼 바다와의 소통 삼 세끼 혀끝에서 번져 나가는 바다 내 삶이 맹탕 같지 않았던 이유 소금 장수 무슬림의 눈에서 홍해의 푸른 물빛이 뚝뚝 떨어진다.
사하라 편지 / 김수우
1 매일 종아리가 빨갛게 부풀어도 모래 걷는 법을 모르겠거든 모슬렘 우편배달부 일 년을 마주치고도 사하라가 낯설거든 아이들 검은 발로 뛰노는 시장통에 가라 한 마리 늙은 노새로 서 있는 사막을 보러 가라 흰 무명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대추야자로 말린 사막을 팔고 있으리니 우기야* 백동전이 있는 대로 주고 한 됫박 사라 모래 묻은 대추야자 입안에 오물거리다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어머니 사막이니
2 해가 모래 속에서 뜰 때도 모래 속으로 질 때도 사하라 아이들은 세상이 껄끄럽지 않다 빈속으로 긷는 맨 우물에도 꿈의 도르래가 다시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는 것 저절로 배운다 모래능선으로 길을 읽어내듯 덤블 몸짓으로 봄을 찾아내듯 흙먼지 버석이는 대추야자를 씹으며 별 전체가 모래집임을 저절로 알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가 만든 팔랑개비를 돌린다
*우기야: 모리타니의 화폐 단위
사막의 서쪽 정거장 / 김수우
일년의 반은 바다가 되고 반은 모래숲이 되는 사막 서쪽을 아시나요 건너갈 수 없는 고요로 엎드렸다 모든 뼈를 세워 길을 만들며 비움을 되풀이하는 땅이 있답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이 선명한 그곳에 녹슨 냄비를 닮은 정거장이 서있지요 판자지붕이 환영처럼 삐걱대지만 실은 다락방 같은 사원이랍니다 멈추는 법, 머무는 법, 기다리는 법을 하루종일 중얼대는 거기선 먼지구름 몰아오는 바람의 옆모습이 잘 보이구요 삭정뼈 하나 물고기가 되었다가 전갈이 되었다가 낙타의 영혼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렴풋이 비치지요 벌거숭이 사막, 바다가 가슴을 대고 큰옷 입은 바다, 사막에 무릎을 대고 밀며 당기며 닮아가면서 내 어두운 단칸방까지 밀려옵니다 그 서쪽 정거장도 멈추는 법, 머무는 법, 기다리는 법도 삐걱삐걱 따라 들어옵니다
사막 / 김남조
1
이리 심각한 사나이는 처음 본다 천지개벽 이래 하느님처럼 혼자 살아온 옹고집 독신남자 그 뻑신 남자의 기를 모랫바람에 스륵스륵 칼날 벼르며 스스로도 전율하다니
2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고요를 이에 뵈옵느니 초월과 영원성 그 상류층 혈통의 맏형님을 이에 뵈옵느니
순교 후에 또 순교하는 단두대와 이슬 내음의 기다림을 이에 뵈옵느니
사막 / 이하석
사막의 무덤은 모래로 덮고 둥글게 봉분을 한다 누가 엎드려 울고 바람소리처럼 엎드린다 만든 꽃도 꽂는다
사막 3 / 임영조
낙타가 가는 길은 늘 사막이었다 삶이란 대개 마른 모래벌판에 터벅터벅 발자국을 찍는 일 뛰어봤자 세상은 또 사막이었다
간혹 가다 얻는 한 무더기 가시풀 그 억세고 질긴 요행을 오래 씹었다 입안에 피가 터져 흥건하도록 반추하는 노역의 쓰라린 세월처럼 맨밥은 참 팍팍하고 지금거렸다
등짐이 무거워도 고개를 들고 평생을 앞만 보고 걸었다, 더러는 무릎이 까지도록 설설 기면서 비단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사막의 하루는 일교차가 심했다
모래바람 뿌옇게 미친 날이면 속눈썹 긴 눈을 자주 끔벅거렸다 수상한 풍문만 천지에 분분할 뿐 온다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길 없는 길을 가는 낙타는 등에 진 제 육봉이 무덤이 된다 가도가도 끝 모를 길은 사막길 그 길만이 道라고 굳게 믿는 낙타는 제 무덤을 지고 다닌다
사막에서 1 / 김소엽
사막에 가서
나는 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을 만났네
사막에서 2 / 김소엽
길은 사막에서 끝나고
길은 사막에서 시작되네
땅의 길이 없어지니
하늘의 길이 열리네
사막에서 3 / 김소엽
별은 사막에서 처음 뜨고
사막으로 나중 지네
별은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서 눈을 감는구나
사막에서 10 / 김소엽
사막에 와서 나는
별이 그렇게 많이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별이 그렇게 크게
하늘나라에서 빛나고 있음을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심을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막에 와서 나는
이 땅에서 사는 피조물인 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히 안아달라고 청했다
사막에서 11 / 김소엽
사막에 와서 밤 되니
기온이 뚝 떨어져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언니가 시집가기 전
호롱불 밑에서 수놓았던
그 횃댓보를 덮었다
가정은 사막의 오아시스라던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행복한 가정 이루게 해달라고
한땀 한땀 정성 들여 수놓았던 십자수
아들 넷 딸 하나 낳고 알뜰살뜰 살았지만
남편은 첩을 얻어 두 집 살림 차리고
평생 속병 앓더니만 홀연 떠난 불쌍한 언니
낙타 한 마리를 끌고 가던
지친 발걸음의 나그네가
야자수 몇 그루 서있는
오아시스 앞에서 발걸음 멈추고
생명수를 바라보며 행복해했던
터번을 쓴 알 수 없던 아랍인도
시집갔던 언니도 저 하늘 어느 별이 되었을까
지구가 생긴 이래
태어나 죽은 사람마다 별이 된 게야
저 하늘 별만큼
인류가 태어나서 죽었던 게야
나도 머지않아 별이 될 게야
내가 덮은 횃댓보 위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삼방산 밑에서 낙타를 보다 / 김진경
저 낙타는 분명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거나 한라산의 목초지를 걷기 위해 여기 온 것은 아닐 게다 혹시는 이곳이 사막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기 위해 온 건지도 모르지
몇 장의 지폐에 팔려 사막보다 더 아득한 바다를 건너야 했던 몇 장의 지폐에 팔려 거대한 육봉 위에 아이들을 태우고 카메라 앞에 서는 낙타는 무슨 곡마단의 몸집 큰 장사처럼 순한 눈을 꿈뻑거린다
낙타는 풀과 종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음식을 타박하지 않는 사내처럼 메마른 신문지를 씹는다 시멘트처럼 말라붙은 지폐를 주랴
마실 물과 먹을 것 그 이외의 것은 갈수록 무거운 짐이 되는 낙타는 사막의 단순한 생존법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한다 낙타는 무슨 성자처럼 겸손하게 큰 눈을 꿈뻑거린다
혜초의 시간 - 투루판에서 둔황까지 / 이승하
또 다시 황사바람이 불어와 눈 비빈다 이 모진 바람 언제부터 불어왔을까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온 시간 바위가 돌이 되듯 시간 쌓였으리
둔황 막고굴에 봉인되어 있던 혜초의 시간 장장 1200년 그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즉어가면서 참 많이도 울었으리 눈물 없는 서방정토를 꿈꾸며 그렸을까 둔황벽의 그림을
시간은 바람처럼 왔다 물처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리며 그려내는 것 둔황 가는 길 다리 아파 밤하늘 우러르니 캄캄한 저 하늘에 가물가물 별빛 하나 고개 끄덕이며 내 가슴에 불 밝힌다.
비단길 / 김형술
구름을 향해 날아간 새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구름을 뚫고 오는 날아 나오는 새들은 없다
구름은 새들의 무덤이었나
아득한 한 점으로 멀어지다 시야에서 사라진 중천의 생애들 국경을 넘어 경계를 지우고 꽃피는 숲으로 떠났으리라던 믿음은 헛것이었나
한 줌 망설임도 없는 서늘한 직선으로 무덤을 향해 뻗어있는 새들의 길 저 허공의 비단길
주검도 묘비명도 없는 무덤을 제 속에 감춘 구름은 또 무슨 마음이길래 저리 날마다 가벼운가
구름은 새들의 무덤이다 새들의 무덤은 구름이어야 마땅하다 허공을 제 영토로 평생을 산 어느 날 것이 지상에다 뼈를 묻을까
겨울 골목길에 새 그림자 하나 얼핏 앉았다 사라진다
하늘에 흩어지는 구름들 은밀히 새발자국을 닮아있다
라자스탄*의 밤 사막에 누워 / 이성선
사막의 밤하늘에 가득히 반짝이는 주먹만한 별들
그 이불 덮고 누워 대지에 귀를 댄다
당신의 넓게 두근거리는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가슴에 노래로 내려박힌다
바람의 옷 입고
당신 목소리 찾아 먼 여기까지 흘러왔거니
막막한 광야 어디에 짐승 소리 울리고
숨은 성자의 목소리 들려오는가
몸 위로 하늘의 말씀이 ?아져
기운 四更의 달빛이
대지를 쓸어 어루만지며 내 이마를 짚어준다
사랑하는 이여
나 여기 와 누워 처음으로 당신의 사람이다
지는 해의 긴 낙타 그림자에 실려
말이 그친 곳 그리움도 절한 곳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지상의 마지막에 돌아와
떨어지고 있는 별 사이로 당신의 꽃을 받느니
곁에 잠들지 않은 낙타의 방울 소리가
외로운 내 꿈을 더 먼 곳으로 이끈다
나 이 사막에 누워 비로소 당신과 하나다
티벳에서 / 이성선
사람들은 히말리야를 꿈꾼다 설산 갠지스강의 발원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생의 꽃봉우리로 오른다
그러나 그 산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많은 짐을 지고 이 고생이다
티벳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 / 이성선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어도
그의 영혼은 길가에 핀 풀꽃처럼 눈부시다
새는 세상을 날며
그 날개가 세상에 닿지 않는다
나비는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
모두가 잠든 밤중에
달 피리는 혼자 숲나무 위를 걸어간다
우리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새처럼 가난하고
나비처럼 신성할 것
잎 떨어진 나무에 귀를 대는 조각달처럼
사랑으로 침묵할 것
그렇게 서로를 들을 것
우파니샤드 / 이성선
이 말은 스승 곁에 가까이 앉다
라는 뜻이다
오늘은 나의 구루*요 산야신*인
산양 곁에서 하룻밤 자려고 산에 왔다
벼랑 끝별 아래
당신 곁에
일생을 살며 허공에 뿔을 걸면, 그렇게
생애에 단 한 밤이라도
당신과 별을 쳐다보며
아무 말은 없어도 좋다
* 구루: 영적인 스승
* 산야신: 구도자, 포기자
山上에서 / 이성선
대청봉 위에서 맑게 솟는
물을 마시니
티벳 영산 물 한 모금이 줄었다
설악에 엎드린 내가
히말라야 성수를 끌어 마셨구나
티베트의 나팔 깔링* / 이영주
허벅지에서 뼈를 꺼냈다 나팔을 만들었다
새장 같은 침대에 누웠다 새들의 잘린 머리가 밤새도록 죽은 자들의 문장을 읽었다
허벅지에 길게 그어진 칼자국을 만지며 그는 다리에서 음악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 밤, 택시를 타고 국경을 달렸다
수많은 나팔들을 넣어두고 죽어서도 음악을 듣지 못하는
내 몸이 부끄러웠다 티베트에는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 이따금 한밤의 별 속으로 들락거리는
길고 어두운 뼈 하나가 몸 밖을 빠져나간다
*티베트의 악기, 죽은 자의 넓적다리 뼈로 만든 나팔.
*********************************************************** 지도상에 있는 먼 나라에 가서 지도에 없는 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도플갱어처럼 또 다른 내가 오래 전부터 그 곳에서 살고 있다가
나를 처음 만난 것일까. 아니면 전생의 내 허벅지에서 빼낸 뼈로 만든
'깔링'이 그 곳에 있었을까. 시인은 오래 전에 그곳에 가본 느낌을 받는다.
낯선 나라의 풍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날 시인은 '내 몸이 부끄러워'
지고, 내 영혼은 아직 '음악을 듣지 못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이 작품은 외면의 의미를 읽다가 행간에서 자꾸 걸린다. 왠지 이방의 국경
검문소에서 오래 여권검사를 받듯 아무 잘못도 없는데 초조해진다.
그러나 시인이 그와 나 사이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감추듯 하다, 또한
행간과 행간을 벌려놓은 것은 여행시가 주는 친절을 없애고 시인이 받은
충격을 그곳에서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 연 한 연이 주는
의미를 삼키며 여러 번 읽는 것이 이 시의 매력을 아는 길이다. / 문정영 시인
고비사막을 건너는 힘 / 이면우
낙타도 없이 이 세상 끝에 뭐하러왔느냐고 물어주길 바라며 찬바람 쌩쌩 흙먼지
풀풀대는 사막을 한참 걸어갔다.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흰구름 양떼 따라 바로 당신을 만나러 왔노라고,
흙모래 속에 듬성듬성 박힌 바다자갈 낯 선 이 사막을 다 건너 처음 만나게
될
나무같은 다음 생을 만나러왔노라고.
꿈꾸는 낙타 / 전서은
어릴 적 우리집 문간방 살던 쌍가마 아줌마 그 남편은 소문만 주정뱅이였네 철규, 동규 두 아들 남부럽지 않게 키운다고 유난히 억척을 떨었었네 미군부대 담벼락 개구멍으로 보였던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그 황무지를 밤낮없이 헤매었네 쑤근대던 눈초리가 낙타풀처럼 따가워도 양색시들 등에 업고 앞만 보고 걸었네 무시로 불어대던 모래바람 앞을 막아도 눈물로 뱉지못한 세월이었네 전기세 대신 가져다 준 깡통 버터가 꽁보리밥 속에서 매끄럽게녹을 때면 철규엄마는 우리 육남매의 오아시스였네 미제는 정말 부드러웠네 법대 간 아들 따라 상경한 후론 휘어진 등 위로 고무다라이 이고 오던 고단한 그림자를 끝내 보지 못했네 이따금 쥐어주던 츄잉껌처럼 질기고 끈끈한 추억이었네 테헤란로를 유유히 걸어가는 저 단봉낙타 한 마리
타클라마칸에 내리는 눈 / 장석원
화양리 네거리의 십자가, 성탄에 길 잃은 양들. 꽃같은, 양같은 여자를 사랑한 나쁜 놈. 나쁜 놈 머리에 눈이 내립니다. 산 양이 뿔 세우고 죽은 꽃을 따라갑니다. 정치인에게 부조나 조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랑 앞에서 함부로 우는 일은 불법입니다.
이별만 남겨놓던 뻔한 스토리 앞에서 울음을 왜 참아야 하느가에 대해 약술하라고 하신다면, 달 밝은 밤 노닐다 들어오니 다리가 넷이어라.
얄미운 사람이여. 참혹한 적의 혹은 인내의 미덕을 讚 讚 讚하라. 한 잔
또 한잔. 취하기는 마찬가진데, 빼앗겨도 할 수 없는데, 필요한 것은
고해성사.
아버지 그들 먼저 용서하소서, 그들에게 지도와 편달을, 그들에게
도망갈 길을, 내게는 그녀에게 가는 길을, 지름길만 보이는 지도를...... .
나를 말이라 생각하시고 매우 치시옵소서. 밧테리가 다 되었습니다. 방전된 족속을 아십니까, 내가 그 출신
이랍니다. 뭣 때문에 기력이 쇠진해졌는지 아신다면, 이 지나친 방사
때문에, 至毒한 여자, 사건은 그때 벌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그녀가
기르는 누에였습니다. 번개나 한 방 먹여주세요.
보이지 않는 길이 때로 명확한 길이 된다는 말씀에 취한, 나는 사랑의 삐에로, 나는 쁘띠피티, 나는 타클라마칸 또는 소금 사막이니, 내 배
위로 지나가는 낙타에게 출렁이는 쌍봉낙타에게 낙타를 타고 오는
성자에게, 죽은 이로 하여금 죽은 이를 묻게 하라는 말씀, 말씀 같은
적설을.
되돌아보면, 오렌지빛 하늘 아래 내게 달려오는 눈부신 꽃마차와
네거리의 십자가와 네거리의 順伊, 그리고 요르단 강 같은 침묵.
사막 편지2 / 이규리
사막은 남성성을 지녔다 잊을 만하면 돌아와 앞섶을 여는 회오리, 사막이 우는 날은 내가 한없이 유순해진다 비로소 그를 안을 수 있 는 때이기도 하다 평원의 한 곳, 모래를 파고 만든 내 방에 한번 와 보시라 나는 점점 단순해지고 방안엔 명호청보다 부드런 깔개만 하 나 있다 어떤 울음, 혹 콜로라도 강줄기를 따라갔던 여행자들 중 만 의 하나 다시 이곳을 들르는 사람은 보겠지 내가 사막의 페니스를 물고 기꺼이 혼절하는 것을, 사막에서 재는 온도는 일생 중 가장 붉다 그건 울음의 온도이다
낙타 화분 / 김수우
죽은 화분에 물을 준다 혹여 촉이 돋을까 혹여 촉이 돋을까 여름과 가을 지나고 다시 겨울이 지나는 베란다
죽음을 키우고 있는 뿌리를 본다 충분히 기다릴만한 神聖 죽음만한 질긴 꽃받침이 어디 있으랴
플라스틱 화분 속으로 걸어오는 모랫산 말린 낙타고기를 싣고 홀로 가풀막을 오르며 사막의 딸이 노래를 한다
낙타의 고비에서는 하늘에 바로 닿을 수 있네 암컷 낙타의 눈처럼 고비의 물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신기루의 고비에서는 따뜻한 마을이 떠나지 못하네*
거멓게 타버린 잎줄기가 따라 부른다 그 나직하고 느린 음조에 물을 준다 충분히 꿈꿀만한 밤 그래, 죽음만한 양식이 어디 있으랴
움푹움푹 허공꽃으로 피어난 저 발자국들
* 낙타를 타면 해가 가까워진다는 고비사막의 노래
낙타가 울고 있다 / 이 섬
낙타가 우는 것을 보았다 큰 눈망울 가득 눈물이 글썽이는 걸 보았다
이집트에 있는 시내산 오르는 길 붉은 바위로 뒤덮인 가파른 오르막길을 낙타 등에 앉아 산을 올랐다 급경사의 산길을 오르며 가늘게 떨리는 낙타의 다리를 보면서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 보겠다고 오르는 방향에다 기우뚱대며 몸을 얹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낙타는 습관처럼 지그재그로 이어진 돌길을 타박타박 올라가는데 휘청거리며 떨리는 다리가 슬프고 덕지덕지 군살이 덮인 무릎도 안쓰럽고
이 세상 아픔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눈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인지
시내산에서 보았던 낙타의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마음속에 있는 명치끝을 자극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낙타가 울고 있다
낙타는 외로움을 모른다 / 이동호
사막에서 길을 잃을 잃었다 두려운 나는 낙타와 함께 밤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모래바람에 익숙해진 낙타는 본능적으로 눈을 반쯤 감고 달빛을 따라 걸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밤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며 촉촉한 낙타의 눈 속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말해주었다
살다보면 때로는 혼자 될 수 있다는 걸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에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한 단 한 사람을 위한 노래
하지만 메아리도 없이 흩어지는 나의 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낙타는 쉬지 않고 걸었다
생사에 기로에 놓였는데 무슨 놈에 사랑타령이냐는 듯 혼자 달 속을 걷고 있었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표 성냥/ 최치언
성냥갑 그림 속의 낙타는 초식동물이다 낙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인을 잡아먹지 않는다 낙타와 단둘이 사막을 건너는 이들은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은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면 낙타의 물혹을 잘라 갈증을 해소한다 물론 그 낙타는 죽는다 낙타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오아시스 있는 곳을 항상 정확하게 기억해둔다 만약 오아시스가 기억을 배반한다면 낙타는 그때부터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도 낙타의 눈치를 본다 아주 지루하고 기나긴 사막의 길을 두 동행자는 사형수와 간수처럼 서로 의심하며 초조히 가는 것이다 사막의 밤은 깊어가고 낙타가 잠든 사이 주인은 제 집 담을 뛰어넘는 도둑처럼 낙타의 목을 내리친다 그때 낙타의 눈빛을 보았는가 촉촉이 젖은 마지막 희망의 오아시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것으로 모든 의심은 끝이 난다 사막에서 죽은 자들은 항상 낙타보다 몇 발 앞서 쫓긴 자처럼 쓰러져 있다 그때 낙타의 혹을 물통처럼 열고 주둥이를 들이밀었던 죽은 자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보았는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들고 막다른 제 집 광 속에 갇혀 불안에 떨고 있는 저 도둑의 손끝에서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낙타표 성냥 한 갑을 당신은 본 적이 있었던가 그림 속의 낙타는 왜 항상 혼자 오아시스에 도착하고 있는가
사막에 뜨는 별 / 양현근
드르륵 드륵 어머니의 낙타표 브라더미싱이 돌아요. 나는 사막을 건너는 어머니의 등에 붙은 혹, 어머니는 나를 매달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을 건너가요. 달콤한 잠의 모퉁이를 돌다 얼핏 깨어보면 아직도 걷고 있는 낙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무늬가 다른 상처도 서로 잇대면 사막 같은 세상도 넉넉히 덮고 건널 수 있는 거란다. 늦은 밤까지 손바닥만한 달빛을 한 조각씩 이어붙이며 걷는 어머니, 꿈이 무성하게 자라는 동안 어머니가 이어 붙인 노래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나요 중간 중간 깨어나는 밤이 환해요. 모래바람도 잠든 밤, 아직도 어머니는 침침한 눈으로 부라더미싱을 돌리고 계시는지 별빛이 한 움큼씩 쏟아져 내리네요. 꿈에서 길을 잃으면 환한 별자리로 먼저 와 별빛을 켜들고 나보다 앞서 걷는 어머니, 보셔요 당신의 아침이 쑥쑥 자라나고 있어요
내 워크맨 속의 갠지스/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서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스를 감고 돌리고 창틈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24시 사막 / 정다혜
삼산동 경남은행 사거리 돌아서면
그곳에 최신식 24시 사막 있다
사막 입장료도 만 원이고 사막도 만 원이다
모래시계 가는 허리 닮고 싶은 여자들
허리마다 두툼한 모래주머니 달고
눕거나 앉아서 사막 건너가고 있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갈 수 없듯
여자들의 출렁거리는 모래주머니 속에서
모래는 사막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를 대머리 아라비안 상인들
냉 오아이스를 지고 와 팔기도 하고
소금가마를 지고 와 팔기도 한다
사막의 밤은 불타오르는 불야성을 이루고
사막의 새벽은 유목민의 폐허가 된다
사막, 어디선가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나고
타닥,탁,탁 생소금이 튀는 소리가 난다
몇은 입맛 다시는 돼지꿈에 빠지고
또 몇은 일어나 자신의 모래시계 바라본다
허리에 찬 모래시계는 여전히 두툼하고
사막 여전히 지글지글 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사막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사막여자 / 채필녀
저 살갗이며 피이며 심장이며 자궁인 모래, 어디를 만져도 몸이 달아, 숨이 막히는 뜨거워, 벌거벗은 채 수없이 체위를 바꾸는 여자 팔과 다리는 바람과 함께 떠도는 불구, 천형의, 일어나지 못하는 여자 상상임신으로 늘 배가 둥글고 젖가슴이 홀로 흔들리는 여자 짓밟는 발자국을 신기루로 유혹해 쓰러뜨리고 하얗게 삭아가는 뼈와 몸을 섞는 등골이 오싹한 여자 가도 가도 메마른, 끝이 없는 여자 낮 동안 빨아들인 해의 열기, 해와의 정사를 싸늘하게 식혀버리는 밤, 살아 있는 씨를 감추고 한 방울의 비를 기다리며 초원을 꿈꾸는 여자 가끔 모래폭풍을 일으켜 세상 끝까지 정복하는 여자, 원래 녹생의 땅이었던, 누워 있는 그 자리가 전생이며 내생인 때가 묻지 않은 여자 심연 깊숙이 푸른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는,
물소뿔을 불다 / 이선이
티벳을 가야겠다는 손금 같은 사연 담은 엽서 한 장 물끄러미 내다보는 오동나무 잎새 사이로 묵소 한 마리 걸어나왔다
유적지 가을하늘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 들릴 듯한 눈망울이 멀뚱하다
저 물소와 함께 산다는 히말라야 高山族은 죽음 곁에 이르러 그 흔하디 흔한 꽃 대신 눈물 대신에 물소뿔을 불어준다 한다
우리 사는 동안 가슴을 들이치기만 하던, 바로 그 멍들 다음 生까지는 가져가지 말자고 새로 태어날 슬픔까지를 노래로 날려보내는 것이다
사는 동안 한번도 넘지 못했던 얼음산을 훌쩍, 녹이며 넘어가는 것이다
타르쵸* / 함성호
인류여 멸망하자ㅡ 봄날 우리 묵묵히 그 모래 바람 속을 걸었습니다 긴 여행에 오래도록 지쳐 이력이 난 대상들처럼 우리 행렬을 이룬 시간과 시간의 녹슨 기둥들 사이로 영동의 푸른 바람이 깨진 유리잔의 파열음으로 울고 갈 뿐이었습이다 그 울음들을 달래며 우리 잔들이 넘쳐흘렀습니다 잔을 들지요, 매일매일의 순결함으로 부활하며 황도를 홀로 가는 태양의 그 지루한 여행을 위해ㅡ, 우리 그 한밤을 긴 노래로 메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물기에 젖은 낙타의 가는 울음이 그 밤을 도와 파랑 모래를 뜨겁게 달구며 마른 나룻가지 위의 독사가 허물을 벗고 한줌 수분도 남기지 않은 채
우리 마지막 잿속에서 사르어지는 알불처럼 메말라갔습니다 한밤 꽃들이 터져 피는 소리에 화들짝 잠을 깨고 밤새 가슴을 쓸며 가는 물소리에 오래도록 잠 못이룰 뿐 투명한 물그림자 우리 얼굴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추억하시나요? ㅡ잔을 비우시지요, 갈증을 달래는 순수한 물의 희구를 버리시지요 나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의와도 타협하는 마왕 파피아스의 어린 제자 내 속의 슬픔을 핥아주시지요 혹 그 끝없는 표류의 깃발을 보셨나요? 입 안 가득히 씹히는 상념의 모래알을, 깊은 발자국마다 고여드는 영욕의 물그림자 속에서 북한산에 구름이 일더니 연신내가 넘친다 나의 운명이 한 잎 대마 연기처럼 폐부 깊숙이에서 떠오르는 한낱
몽환과 같은 것일 때 황사에 가린 흐린 도시의 물때 낀 屋上 깃발에 적은 내 시를 읽어가는 광기에 부푼 바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라방드 같은 비와 폴로네즈 같은 가로수를 걸으며 나는 집시처럼 춤춥니다 당신처럼 푸르른 세상은 없을 겁니다 이처럼 어두운 희망도 없습니다 나도 전자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영상처럼 리모컨의 붉은 단추로 사라져버리는 허상이지요 아니면 욕계의 더러운 짐승? 습기 머금은 바람의 서자다 살해의 도구를 피하려 안간힘 쓰는 자궁내의 태아처럼 단 하나의 출구가 내겐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입구다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절망을 나는 안다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이 별을 위해, 인류여 멸망하자 흐린 날의 숲들은 자꾸 어디에로인가 가고 싶어한다 다시 지옥으로ㅡ, 바람은 숲들의 전설을 검은 머리칼처럼 풀어놓아 밤은 테러리스트의 유우머처럼 신비롭다 바다로 가는 별들, 맨발자국마다 고여드는 그물 같은 은하 그리운 눈동자마다 고여드는 별빛의 푸르름은 진정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추억의 힘이다ㅡ나는 새로운 種을 기다린다 그대들 불어가는 시간의 바람 속에서 왔으니 이제 다시 그 바람에 실려 가라, 시간의 지층 속에서 켜켜로 누워 있는 고단한 화석으로 태양을 일구는 사막의 한가운데로 도시의 대형 창들이 살의로 떨어지고 마천루들이 흐르는 모래에 잠겨간다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 키스하고 싶다 그 얇은 입술에, 유랑의 창녀 테오도라가 건설한 비밀한 사원에서 해풍처럼 땀내나는 알롬으로 성애의 긴 춤을 추고 싶다 독오른 뱀의 혀처럼, 튀어오르는 잭나이프의 칼날같이 내 온몸은 죽음의 수상한 공기를 감지하고 있다 재생용지 같은 생이라면 아무에게도, 아무에게도, 이 잔을 옮기고 싶지 않다
* 타르쵸
티베트 승려들의 경전을 적은 붉은 천.
티베트 승려들은 그 천을 깃대에 걸어 사막에 꽂아두고 바람에
부르르 떠는 깃발의 소리가 나면 바람이 황포에 적은 경전을
읽고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쉬운 범신론이 아니다.
나는 '반문명의 문명'의 한쪽으로 이것을 잡는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최승자
창문 밖, 사막, 바라보고 있다. 내세의 모래 언덕들, 전생처럼 불어가는 모래의 바람.
창가에서 이 십 년 전쯤 처음 만났던 노래를 들으며 찻잔을 홀짝이다가, 나는 결정한다. 이제껏 내가 먹여 키워왔던 슬픔들을 이제 결정적으로 밟아버리겠다고 한때는 그것들이 날 뜯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이 그것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먹여 키웠는지 이제 안다. 그 슬픔들은 사실이었고, 진실이었지만 그러나 대책 없는 픽션이었고, 연결되지 않는 숏 스토리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저 창 밖 풍경, 저 불모를 지탱해주는 눈먼 하늘의 흰자위, 저 무한으로 번져가는 무색 투명에 기대고 싶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파라오의 여자들 / 최금녀
여행중 그날 하루
우리는 파라오의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루비와 에메랄드로 꾸며진
파라오의 특별실에서 비스듬히 누워
몽골의 공주처럼
두 발을 스물 나이의 손들에게 맡겼다
손들은 열두 제자의 발이나 씻어주듯
땀방울을 흘리며
파라오의 여자들에게 봉헌했다
발에 향유를 붓고
별자리를 찾아
어르고 달래며 맛사지를 하는 동안
여자들은, 여자들의 치마폭으로
곤두박질쳐 내려오는
흑보석 같은 사막의 별들을 주워담기 바빴다
여자들의 몸에서는
피돌기와 마디 마디의 뼈들이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파라오의 살 냄새 느끼했지만
“여행은 즐거웠음. 발 맛사지 추가.
파라오의 아방궁에서”
메시지 전송완료.
매일 떠나는 낙타 / 박진성
- 서울 혹은 사막
사막에 가본 적이 있나요? 푸른 바다의 전설이 조개 껍질 속에서만 수런대는, 사막은 바다의 기억을 잃은 지 오래 청량리 사원 미아리 사원이 있을 뿐이에요 사원에는 드레스를 입은 낙타들이 모여있죠 페르시아를 노래하는 낙타들. 거짓말처럼 사막에 눈이 내리는 날 사원의 귀퉁이에서 낙타 하나 울고 있어요 나의 손목을 잡고 신전(神殿) 귀퉁이 자그만 방으로 데려가서는 거친 사막을 지나 파미르 고원에 가면 싱싱한 꽃나무들이 피어 있을 거라며 가시가 모두 빠진 선인장처럼 둥글게 둥글게 웃고만 있어요 온 몸으로 뒹굴면서 경북 의령이라든가 칠곡이라든가 낯선 이방(異邦)의 계절에 대해 이야기하네요 물기 잃은 눈 속에서는 먼 바다의 비밀처럼 파도가 울렁이고 있었고 나는 잠시 내가 떠나온 도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막의 사원에서는 밤마다 몹쓸 꿈들이 뒹굴고 있어요 이곳은 일교차가 아주 심한 곳 이곳에서 파미르 고원을 꿈꾸는 건 금물입니다 그저 잠시 지친 몸이나 쉬었다 가세요 너무 목이 말라도 낙타의 혹을 쉽게 가를 수는 없을 거에요 이곳은 사막이랍니다
수미산 간다 / 원무현
편지함은 빈 지 오래다 흙바람만 뒹굴어 부고장이라도 몰고 올 까마귀를 기다리지만 손바닥만한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다 산 1번지 벌집 봄은 산 아래 아파트촌 벚꽂 길 끝에서 꿈쩍도 않는데 이 집 저 집 아내들은 손톱 뽑혀나가듯 빠져나간다 그래도 아침을 향해 가는 길은 함부로 자를 수 없는 것 아이는 낮달 같은 얼굴 금새 지워선 잠에 들고 얘야 아비는 웅크린 채 밤새워 징겅다리가 되는구나
새벽이 오면 산 1번지 벌집이여 인력시장으로 통하는 아비의 길 그리고 잘난 놈 없이 웃음이 공처럼 튀어 오르는 운동장으로 가는 길 쑥쑥 뽑을 것을 믿는다
말똥구리가 기어오르고 있다 달이 온몸으로 버티며 빛을 내리고 있다 사막의 모래폭풍도 덮을 수 없는 오체투지 그 찬란한 길 뽑아낸다는 수미산으로 내딛는 첫 발을 거둬들인다
빨래궁전 / 문인수
-인도소풍
야므나강변 작은 촌락 한 움막집에, 그 집 빨랫줄 위로 옛날 옛적 사랑
많이 받은 왕비의 화려한 무덤, 타즈마할 궁전이 원경으로 보입니다.
궁의 둥근 지붕이 거대한 비누방울처럼, 분홍 엷은 나비처럼 아련하게
사뿐 얹혀 있고요 빨래가, 원색의 낡고 초라한 옷가지들이 젖어 축 처진
채 널려 있습니다.
족보에도 없는, 이 무슨 경계일까요. 오색 대리석으로 지어 졌으나 죽음은
그 어떤 역사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이 가볍고 가벼워서 짐이 없는데요,
삶이란 또 몇 벌의 누더기에도 당장 저토록 고단하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때, 어린 새댁이 하얗게 웃으며 얼른 움막 속으로 숨어 버렸는데요,
개똥밭에 굴러도 역시 이승에 땡깁니다. 오래 내 마음을 끄는 그녀의 남루한
빨래궁전 쪽, 저 검고 깊은 눈이 전적으로 아름답습니다
수자타마을에 가서 / 장철문
수자타 마을 가는 길에 일출이 준비되고 있었다
건기의 네란자라 강으로
마을 사람들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가느란 물길을 따라 엉덩이를 까고 있었다
붓다가 몸을 씻은 강물에
똥을 싸고 있었다
강심江心에 손을 적셔 밑을 닦고 있었다
내장을 비워
다시 하루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입에 넣은 양식으로
하루를 살고,
남은 것들을 강물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한 사내가
누천년 먹은 마음의 똥을 우지끈 비운
그 나무 그늘이 멀지 않은 강에서
나란히 항문을 열어 똥을 싸고 있었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나란히 엉덩이를 들어 밑을 닦고 있었다
미주알이 씰룩이듯
진홍의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햇태양을 우지끈 밀어올리고 있었다
네란자라 강이 실어 나르는 흙에서
밥을 얻는 사람들이
간밤에 어두운 아랫배로 품은 것을 밀어내고 있었다
* 수자타
사문 고타마가 깨닫기 전에 우유죽을 바친 소녀
조장(鳥葬) /김선태
티베트의 드넓은 평원에 가서 한 사십 대 여인의 장례를 지켜보았다.
라마승이 내장을 꺼내어 언저리에 뿌리자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달겨들더니 삽시에 머리카락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다시 쇠망치로 뼈를 부수어 밀보리와 반죽한 것을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잠깐이었다.
포식한 독수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의식은 끝났다, 그렇게 여인은 허, 공에 묻혔다 독수리의 몸은 무덤이었다 여인의 영혼은 무거운 육신의 옷을 벗고 하늘로 돌아갔다, 독수리의 날개를 빌어 타고 처음으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을 게다.
장례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유족들은 울지 않았다, 침울하지 않았다, 평온했다 대퇴골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스님의 표정도 시종 경건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생전 못된 놈의 시신은 독수리들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슬퍼한다고 했다.
언덕길을 내려오다 들꽃 한 송이를 보며 문득 죽은 여인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평원의 풀과 나무들도, 모래알도, 독수리도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꾀죄죄한 소년들이 허리를 굽히며 간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삶과 죽음이 한통속이었다.
라자스탄 처녀의 방 / 정복여
내 낙타 이름은 까므라* 혼자 사는 등뼈가 이제 간신히 여물었다고 착하게 나를 업고 사막을 간다 목덜미 솜털이 구름으로 일고 잠깐씩 돌아보는 눈매가 영락없이 호수다 젖은 눈가에는 길다랗고 숱이 많은 생각들 내가 오른쪽으로 고삐를 당기면 물거울이 철렁 방울소릴 낸다 세상 울음을 모두 담아 둔 듯 그 소리에 사막이 움푹움푹 젖는다 낙타의 발, 자, 국, 가고 싶은 데로 이리저리 고삐를 당긴다 언제부턴지 나는 낙타의 주인 그러나 내 발자국은 없다 인가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더욱 없다 낙타가 가다가 가시먹풀을 보고 방향을 바꾼다 칼잎에 베인 입을 쓰윽 닦으면 하늘로 번지는 찌릿한 기도 바람이 휘이익 불어 낙타의 발자국도 가고 이제 나도 낙타도 없다 안장처럼 얹힌 밤이 있을 뿐 사막 어디쯤 날 떨군 그런 모래 사나이만 있을 뿐
나는 인도 여자가 좋다/ 김성수
나의 우파니샤드를 펼치면 진리의 말씀보다 까딱춤을 추는 인도 여인의 발목 방울 소리만 가득하다 자분자분 젖어드는 리듬에,고혹적인 손길을 따라 깨달음은 유세차를 읊조리며 소지로 태워 올리고 칼리 여신이 이끄는대로 끌려가는 속된 껍데기일지라도 카레 냄새나는 인도 여자가 좋다 갠지스 강에서 말갛게 씻긴 달 같은 눈동자의 그 깊은 내력과 넉넉한 여유로움에 기대여 여물지 못한 내 사념 마저도 녹아드는 것을 느낀다 현란한 치장을 하고 사리에 숨긴 열정을 엿보는 나는 피리 소리에 춤을 추는 혹은 반응하는 코브라같이, 읽지도 못하는 산스크리트 경전을 넘기며 엉뚱한 주문을 흥얼거리는 사이비 일 것이다 잡지책의 겉표지를 대하 듯 인도 여자의 외모를 탐한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나의 우파니샤드에서 걸어 나오며 나마스테, 인사를 하는 인도 여자가 좋다 차이를 마시면 딱딱한 깨달음이 내 안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아랫도리는 미투나 상을 보는 듯 제 나름의 깨달음으로 일어선다 이런 내게 타지마할로 스며드는 노을에 깃든 노래가 왜 가슴을 후비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지 마라 울컥, 토해논 달이 한강에서 멱을 감고 나와 인도 식당을 나서는 내 이마를 때렸다
알타미라의 소 / 김수우
1 고대이집트에서 나는 창조신 누트였고 길고 짧은 신화를 수없이 건넜으며 인도에선 지금도 성자이다 이중섭의 손끝에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식구였으며 알타미라 동굴에서 매일 지축 울리고 오늘도 허공을 넘는 尋牛인데
2 냉이꽃 듬성한 다리 밑 액체질소통 -196°C로 동결된 수소의 정액이 거래된다 전기자극으로 뽑아낸 정액을 분양받은 가축인공수정사들, 몸에 바람 든 암소를 안는다 수태시킨다 산도 바다도 애비 없는 단백질덩이로 태어난다 채권과 채무로 절룩거리는 생명의 流轉, 일상은 신상품과 재고로만 유통된다 下水에 무심히 젖는 봄
신은 이제 번식 관리되는 중이니 신화도 식구도 푸른 허공도 배합사료일 뿐이니
3 뼈와 살을 뜯어 먹이는 일 가죽구두를 신기는 일 그저 사랑이었거늘 찬란한 제의였거늘 내 눈이 수평선이었거늘 수평선 너머 네 집, 네 아침이었거늘 너희가 냉이꽃보다 쓸쓸한 이유를 안다 까닭없이 절망하는 이유를 안다
이 영악한 슬픔들아, 영원한 슬픔들아
김수우 시인
사막의 추억 1 / 최병무
일부다처를 본 적이 있다. 직접 궁금한 점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최소한 부인의 방이 네개로 설계된 아파트먼트를 짓고 있었는데
그 사막에서 일부다처의 나들이는 하나의 백로와 다수의 까마귀떼의 소풍이었다. 지금 내 입장에서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좋은 것이냐 절대 받아들일 수없는 제도냐가 아니라 아내가 단체적이며 아내의 역할이 공동적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던 생각이 난다
일부다처와 일부일처의 배후가 역사의 재편 때마다 충돌한다. 한 씨족의 나들이 풍경이 삼십년이 지난 지금 왜 갑자기 떠올랐는가? 오늘 밤 위그르 사람에 대한 또 한편의 시를 읽은 것이 원인인 것이다
사막의 추억 2 / 최병무
그때 나는 매일 밤 윤시내의 '열애'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아라비아왕국의 사막에서. 캠프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면 집이 그리웠다. 그런 날은 길없는 사막으로 나갔다. 홍해를 거닐기도 했는데 나는 모래산을 오르며 조개화석을 찾아 다녔다. 오래 전 사막은 바다의 궁전이었다. 낙타와 유목민과 차도르
쓴 여인을 만나면 손을 흔들며 오아시스까지 진출했는데, 나는 지금도 신기루가 먼저였는지 오아시스가 먼저였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그곳에서 신들이 쉬었다가며 모종의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하였으리라는 생각 하나와 선견지명이 있는 신들은 문명의 시대를
대비하여 석유를 비축해 놓았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막의 바람을, 돌개바람을 맞아 보셨는지요. 삼십년이 흐르고, 오늘 밤 그 바람이 왜 불어오는지...
1979년 아라비아 사막에서
사막의 추억 3 / 최병무
그때 나는 기독교에 심취해 있었는 데, 밤마다 묵상을 하며 성경을 읽고 있었다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리고 낮에는 문만 열면 광야의 체험을 할 수 있었으니까 어느날 나는 꿈을 꾸었다 말하자면 실제로 신약시대의 한 장면을 보았다는 것인 데, 그 꿈이 내가 만든 환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 지구촌 한 모퉁이에서 나도 일종의 호접몽(胡蝶夢)을 체험한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30년간 지속된 염체(念體)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 같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채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갈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는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낙타 / 이동순
낙타는 등짐 지고 이 늦은 저녁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서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가다가 이따금 고개 들고 아득한 지평선 바라보는 모습은 너에게 달려올 먼 데 소식 기다리던 옛 버릇인가
사막의 이슬 맺힌 풀 사각사각 씹으며 너의 눈은 언제나 슬픔에 젖어 있다 어머니 끓여주시던 갱죽 사발에 떨어지던 내 눈물처럼
낙타야 어린 낙타야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엄마를 따라가렴 네 가려는 곳으로 새벽까지는 서둘러 가야 한단다
낙 타 / 김진경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 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 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 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을 보여주겠네.
때때로 만나는 오아시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막 건너의 푸른 들판을 이야기하진 않으리. 자네가 절망의 마지막 벼랑에서 스스로 등에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설 때까지 일어서 건조한 털을 부비며 뜨거운 햇빛 한가운데로 나설 때까지 묵묵히 자네가 절망하는 사막을 가리키겠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까지는 거대한 육봉 안에 푸른 벌판을 감추고 건조한 표정으로 사막을 걷는다네. 사막 건너의 들판을 성급히 찾는 자들은 사막을 사막으로 버리고 떠나는 자.
이제 자네 속의 사막을 거두어내고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서게나. 자네가 고개 숙인 낙타의 겸손을 배운다면 비로소 들릴걸세 여기저기 자네의 길을 걷고 있는 낙타의 방울소리. 자네가 꿈도 꿀 줄 모른다고 단념한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
낙타 일기-돈황에서 / 하두자
네 귀는 타클라마칸의 바람 소리를 언제나 듣고 있다 눈썹과 눈썹사이에 걸려 있는 네 노역이 아득히 펼쳐 있는 모래사막 월하천을 끼고 방울을 울리면서 명사산 모래 능선에 서 있어도 네 눈엔 역사의 슬픈 발자국이 남긴 너울 펼럭이는 푸른강을 잊지 못하지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묻혀 버린 강의 숨결이 보고도 싶지 풀피리 소리도 들리지 않은 평원은 사막을 몰고 가는 사구가 되어 지평선 멀리 하얀 달무리 지나가는 길이 되었다 가파른 먼 길 걸어 오느라 닳아버린 네 개의 통굽 발톱들 네 등짐을 풀고 쉴 수 있는 오아시스는 어디쯤 있을까 네 형상의 끄트막이 지문처럼 얹혀 있는 쇠잔한 너의 등부리에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시간의 행로도 함께 얹혀 있다
낙타가 죽으면 / 최승호
낙타가 죽으면 낙타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고 사막의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고 고요의 사막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낙타가 앞으로 꽤 오래 살겠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으므로 언젠가 낙타가 죽으면 죽었다고 말하지 말고 낙타가 태어나기 전의 달빛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달빛 환한 그곳은 그곳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곳에서 낙타는 몸뚱이를 벗고 무슨 낙타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누워 있을 수 없다 서 있을 수도 없다 물론 성큼성큼 걸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낙타의 혹처럼 / 문정영
무심한 일상 속의 습관 같은 등지느러미를 떼어 버렸다 중심이 벗는, 나는 지상에서 온 몸으로 기어다니며 곪아터진 상처들의 딱정이로 딱딱해진 살의 흉터들로 두 발을 만들어 나갔다 물 속의 따뜻한 생활들은 이제 한 치씩 자라는 변화의 눈금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물방울이 사라진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하고 싶은 일들은 주저없이 해보고, 싫어하는 일들은 뜯어보지 않은 고지서처럼 봉해 두고 그저 산길에 숱하게 널린 공기쯤으로 치부해버린 지난 일과들 하지만 어디에서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낙타가 맨발로 사막을 건너갈 때 지느러미가 아닌 혹을 달고 걸어 가야 하는 것과 같다 내 위선의 등줄기를 떼어버리고 윗봉들 몇 개 달게 된 것은 완만한 물살을 쉽게 거슬러 오르는 일보다 광활한 7월의 사막을 홀로 걸어가기 위해서이다
낙타 무릎의 사랑 2 / 고 진하
─피정避靜일기
닳고닳아 낙타 무릎이 되었다. 봉해 수도원의 수도사들, 이젠 허파를 들썩이며 숨쉬지 않고
무릎으로 숨, 쉰, 다.
성체조배 시간, 핏빛성체를 향해 몸과 혼을 고정시키는 힘, 속으로 울부짖어도 아무 응답 없는 저 神의 침묵을 견디는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올까. 숨쉬는 무릎에서 나올까.
봉쇄된 울타리를 무릎으로 기어 넘을 순 없지만, 마루짱에 닿은 무릎에서 나오는 고요한 숨결은 유월의 붉은 줄장미 넝쿨처럼 훌쩍, 울타리를 넘는다.
닳고닳은 무릎은 힘이 세다. 우주의 모든경계가 허물어지고 마루짱이 음푹 패였다. 기도는 힘이 세다.
낙타 / 김충규
나의 집으로 낙타가 들어왔다 쉴 곳을 찾았다는 듯이 길게 숨을 토했다 맑은 눈에선 고행의 흔적을 엿볼 수 없지만 살 점 없이 앙상한 다리는 한없이 지쳐 보였다 낙타와 함께 지 내기엔 집이 너무 좁아 나는 낙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느 닷없이 낙타가 등을 낮췄다 나더러 올라타라는 것인지 푸르 르 몸을 털었다 나는 낙타의 등에 올라타지 않았다 나는 사 막을 지키는 전사가 아니므로 더구나 순례든 고행이든 사막 으로 떠날 계획이 없었으므로 낙타를 집 밖으로 몰아낼 생 각만 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지 않자 낙타는 그만 풀썩 주저앉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깜빡 이는 사이 낙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눈앞에 무덤 하나 덩그러니 웅크리고 있었다
낙타 2 / 김충규
목마름을 참은 만큼 낙타의 혹은 더 불룩하게 솟는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스린 낙타만이 사막을 덤으로 얻어 횡단할 수 있는 법. 사막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인장들이 제 속의 어둠을 가시로 밀어내고 견디는 것처럼 낙타는 제 등의 혹으로 인해 견디는 짐승이다. 그의 유순함은 견딤의 과정에서 얻은 상처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자는 들어라. 낙타의 두 눈이 오아시스로 출렁거리고 있다. 빠른 속도에 대한 극도의 경멸 끝에 낙타는 쉬엄쉬엄 걷고도 위엄을 터득했다. 사막에 뒹구는 고행자의 인골들, 그들의 죽음은 목마름에 대한 참지 못할 조급증과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스리지 않아 비롯된 것. 사막을 건너가려면 자신을 버리고 한 마리 낙타가 되어 터벅터벅 걸어야 한다. 등에 혹이 불룩하게 솟을 때까지 걸어야 한다. 낙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낙타 / 김옥숙
낙타의 젖은 눈썹을 본 일이 있는가 그림 속 낙타의 눈을 들여다보지 말라 낙타의 길고 아름다운 눈썹에 손을 대지 말라 천년만년 그림 속에 박제가 되어있어야 할 낙타가 고개를 돌려 당신 앞으로 걸어나올 것이다 낙타가 당신에게 올라타라고 말을 건넨다 언젠가 낙타의 등에 올라타고 한없이 사막을 건너갔던 것처럼 낙타의 익숙한 등 불룩한 혹을 쓰다듬을 것이다 당신은 지쳐보이는 식구처럼 낙타가 안쓰러울 것이다 선인장들은 하늘에다 무수한 가시를 박아 넣고 메마른 하늘을 마구 찔러대고 있다 선인장의 눈과 귀는 뿌리에 있지 낙타가 말한다 캄캄한 지하에 눈과 귀를 박아 넣고 수만 미터 아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아내는 거야 내 몸 속의 물을 꺼내 마셔, 괜찮아 낙타의 목을 끌어안고 우는 당신 낙타의 몸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모래바람이 불어와 낙타의 몸을 이불처럼 덮는다 당신은 눈물을 훔치며 그림 속을 걸어나온다 당신의 몸 속에 들어온 낙타 한 마리 문을 열면 모래 바람이 거세게 불고 당신의 늑골 속으로 기억 속으로 모래가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몸 속의 낙타 한 마리 거느리고 사막을 건넌다 그림 속의 낙타는 눈썹이 길다
낙타와 낙타풀 / 송재학
세상의 모든 낙타들은 다 길들여졌으나 고비 사막 어딘가 야생 낙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신기루 따라 걷는 야생 낙타는 타박타박, 그 소리는 사막 아래의 지하수
물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한때 이곳이 바다였듯이 내가 물고기라면 검은 아가미가 가만가만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낙타가 먹는 소소초라는 풀, 사막의 먹을 거리란 뻔한데 그마저 가시가
있는 낙타풀, 다른 짐승이 얼씬도 못하게 심술이 닿은 소소초의 운명은 고비 사막이
자꾸 넓어지는 것과 닮았다 소소초 안에도 모래와 자갈뿐인 사막이 있어 타박타박 야생 낙타가
걸어가고 물고기였던 나는 화석으로 발견되곤 한다 소소초를 씹을 때 낙타의 입은 가시 땜에 피가 흥건하지만, 내 육신은 막 떨어지는 해를 떠받치지 못해 피곤하다
사막으로 가는 바다 / 정재록
맨발의 무슬림이 소금자루를 진 낙타들을 끌고 사하라를 간다 그의 벽안이 홍해의 물빛처럼 깊어 보인다 저 소금 캐러밴의 행렬은 사막으로 바다를 끌어들이는 파이프라인 사내는 낙타의 등에 단단히 붙들어 맨 저 올망졸망한 바다보따리들을 종려나무 우거진 오아시스의 맹물에 풀어 놓을 것이다 내가 뿌릴 이 바다의 씨앗들이 사막의 낙원을 낙원으로 만들지 간이 밴 음식들, 맛깔 나는 파라다이스를 만들지 그는 모래위에 떠 있은 섬을 향하여 묵묵히 바다를 끌고 가서 한껏 출렁거리게 할 것이다 그가 내민 한 줌의 소금, 번철처럼 달궈진 모래밭을 밟아 온 한 자락의 파도가 베드윈의 식탁에서 파닥거릴 것이다 사하라의 모래밭에 생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간이 밴 한 끼의 식사는 먼 바다와의 소통 삼 세끼 혀끝에서 번져 나가는 바다 내 삶이 맹탕 같지 않았던 이유 소금 장수 무슬림의 눈에서 홍해의 푸른 물빛이 뚝뚝 떨어진다.
사하라 편지 / 김수우
1 매일 종아리가 빨갛게 부풀어도 모래 걷는 법을 모르겠거든 모슬렘 우편배달부 일 년을 마주치고도 사하라가 낯설거든 아이들 검은 발로 뛰노는 시장통에 가라 한 마리 늙은 노새로 서 있는 사막을 보러 가라 흰 무명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대추야자로 말린 사막을 팔고 있으리니 우기야* 백동전이 있는 대로 주고 한 됫박 사라 모래 묻은 대추야자 입안에 오물거리다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어머니 사막이니
2 해가 모래 속에서 뜰 때도 모래 속으로 질 때도 사하라 아이들은 세상이 껄끄럽지 않다 빈속으로 긷는 맨 우물에도 꿈의 도르래가 다시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는 것 저절로 배운다 모래능선으로 길을 읽어내듯 덤블 몸짓으로 봄을 찾아내듯 흙먼지 버석이는 대추야자를 씹으며 별 전체가 모래집임을 저절로 알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가 만든 팔랑개비를 돌린다
*우기야: 모리타니의 화폐 단위
사막의 서쪽 정거장 / 김수우
일년의 반은 바다가 되고 반은 모래숲이 되는 사막 서쪽을 아시나요 건너갈 수 없는 고요로 엎드렸다 모든 뼈를 세워 길을 만들며 비움을 되풀이하는 땅이 있답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이 선명한 그곳에 녹슨 냄비를 닮은 정거장이 서있지요 판자지붕이 환영처럼 삐걱대지만 실은 다락방 같은 사원이랍니다 멈추는 법, 머무는 법, 기다리는 법을 하루종일 중얼대는 거기선 먼지구름 몰아오는 바람의 옆모습이 잘 보이구요 삭정뼈 하나 물고기가 되었다가 전갈이 되었다가 낙타의 영혼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렴풋이 비치지요 벌거숭이 사막, 바다가 가슴을 대고 큰옷 입은 바다, 사막에 무릎을 대고 밀며 당기며 닮아가면서 내 어두운 단칸방까지 밀려옵니다 그 서쪽 정거장도 멈추는 법, 머무는 법, 기다리는 법도 삐걱삐걱 따라 들어옵니다
사막 / 김남조
1
이리 심각한 사나이는 처음 본다 천지개벽 이래 하느님처럼 혼자 살아온 옹고집 독신남자 그 뻑신 남자의 기를 모랫바람에 스륵스륵 칼날 벼르며 스스로도 전율하다니
2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고요를 이에 뵈옵느니 초월과 영원성 그 상류층 혈통의 맏형님을 이에 뵈옵느니
순교 후에 또 순교하는 단두대와 이슬 내음의 기다림을 이에 뵈옵느니
사막 / 이하석
사막의 무덤은 모래로 덮고 둥글게 봉분을 한다 누가 엎드려 울고 바람소리처럼 엎드린다 만든 꽃도 꽂는다
사막 3 / 임영조
낙타가 가는 길은 늘 사막이었다 삶이란 대개 마른 모래벌판에 터벅터벅 발자국을 찍는 일 뛰어봤자 세상은 또 사막이었다
간혹 가다 얻는 한 무더기 가시풀 그 억세고 질긴 요행을 오래 씹었다 입안에 피가 터져 흥건하도록 반추하는 노역의 쓰라린 세월처럼 맨밥은 참 팍팍하고 지금거렸다
등짐이 무거워도 고개를 들고 평생을 앞만 보고 걸었다, 더러는 무릎이 까지도록 설설 기면서 비단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사막의 하루는 일교차가 심했다
모래바람 뿌옇게 미친 날이면 속눈썹 긴 눈을 자주 끔벅거렸다 수상한 풍문만 천지에 분분할 뿐 온다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길 없는 길을 가는 낙타는 등에 진 제 육봉이 무덤이 된다 가도가도 끝 모를 길은 사막길 그 길만이 道라고 굳게 믿는 낙타는 제 무덤을 지고 다닌다
사막에서 1 / 김소엽
사막에 가서
나는 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을 만났네
사막에서 2 / 김소엽
길은 사막에서 끝나고
길은 사막에서 시작되네
땅의 길이 없어지니
하늘의 길이 열리네
사막에서 3 / 김소엽
별은 사막에서 처음 뜨고
사막으로 나중 지네
별은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서 눈을 감는구나
사막에서 10 / 김소엽
사막에 와서 나는
별이 그렇게 많이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별이 그렇게 크게
하늘나라에서 빛나고 있음을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심을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사막에 와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막에 와서 나는
이 땅에서 사는 피조물인 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감히 안아달라고 청했다
사막에서 11 / 김소엽
사막에 와서 밤 되니
기온이 뚝 떨어져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언니가 시집가기 전
호롱불 밑에서 수놓았던
그 횃댓보를 덮었다
가정은 사막의 오아시스라던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행복한 가정 이루게 해달라고
한땀 한땀 정성 들여 수놓았던 십자수
아들 넷 딸 하나 낳고 알뜰살뜰 살았지만
남편은 첩을 얻어 두 집 살림 차리고
평생 속병 앓더니만 홀연 떠난 불쌍한 언니
낙타 한 마리를 끌고 가던
지친 발걸음의 나그네가
야자수 몇 그루 서있는
오아시스 앞에서 발걸음 멈추고
생명수를 바라보며 행복해했던
터번을 쓴 알 수 없던 아랍인도
시집갔던 언니도 저 하늘 어느 별이 되었을까
지구가 생긴 이래
태어나 죽은 사람마다 별이 된 게야
저 하늘 별만큼
인류가 태어나서 죽었던 게야
나도 머지않아 별이 될 게야
내가 덮은 횃댓보 위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삼방산 밑에서 낙타를 보다 / 김진경
저 낙타는 분명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거나 한라산의 목초지를 걷기 위해 여기 온 것은 아닐 게다 혹시는 이곳이 사막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기 위해 온 건지도 모르지
몇 장의 지폐에 팔려 사막보다 더 아득한 바다를 건너야 했던 몇 장의 지폐에 팔려 거대한 육봉 위에 아이들을 태우고 카메라 앞에 서는 낙타는 무슨 곡마단의 몸집 큰 장사처럼 순한 눈을 꿈뻑거린다
낙타는 풀과 종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음식을 타박하지 않는 사내처럼 메마른 신문지를 씹는다 시멘트처럼 말라붙은 지폐를 주랴
마실 물과 먹을 것 그 이외의 것은 갈수록 무거운 짐이 되는 낙타는 사막의 단순한 생존법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한다 낙타는 무슨 성자처럼 겸손하게 큰 눈을 꿈뻑거린다
혜초의 시간 - 투루판에서 둔황까지 / 이승하
또 다시 황사바람이 불어와 눈 비빈다 이 모진 바람 언제부터 불어왔을까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온 시간 바위가 돌이 되듯 시간 쌓였으리
둔황 막고굴에 봉인되어 있던 혜초의 시간 장장 1200년 그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즉어가면서 참 많이도 울었으리 눈물 없는 서방정토를 꿈꾸며 그렸을까 둔황벽의 그림을
시간은 바람처럼 왔다 물처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리며 그려내는 것 둔황 가는 길 다리 아파 밤하늘 우러르니 캄캄한 저 하늘에 가물가물 별빛 하나 고개 끄덕이며 내 가슴에 불 밝힌다.
비단길 / 김형술
구름을 향해 날아간 새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구름을 뚫고 오는 날아 나오는 새들은 없다
구름은 새들의 무덤이었나
아득한 한 점으로 멀어지다 시야에서 사라진 중천의 생애들 국경을 넘어 경계를 지우고 꽃피는 숲으로 떠났으리라던 믿음은 헛것이었나
한 줌 망설임도 없는 서늘한 직선으로 무덤을 향해 뻗어있는 새들의 길 저 허공의 비단길
주검도 묘비명도 없는 무덤을 제 속에 감춘 구름은 또 무슨 마음이길래 저리 날마다 가벼운가
구름은 새들의 무덤이다 새들의 무덤은 구름이어야 마땅하다 허공을 제 영토로 평생을 산 어느 날 것이 지상에다 뼈를 묻을까
겨울 골목길에 새 그림자 하나 얼핏 앉았다 사라진다
하늘에 흩어지는 구름들 은밀히 새발자국을 닮아있다
라자스탄*의 밤 사막에 누워 / 이성선
사막의 밤하늘에 가득히 반짝이는 주먹만한 별들
그 이불 덮고 누워 대지에 귀를 댄다
당신의 넓게 두근거리는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가슴에 노래로 내려박힌다
바람의 옷 입고
당신 목소리 찾아 먼 여기까지 흘러왔거니
막막한 광야 어디에 짐승 소리 울리고
숨은 성자의 목소리 들려오는가
몸 위로 하늘의 말씀이 ?아져
기운 四更의 달빛이
대지를 쓸어 어루만지며 내 이마를 짚어준다
사랑하는 이여
나 여기 와 누워 처음으로 당신의 사람이다
지는 해의 긴 낙타 그림자에 실려
말이 그친 곳 그리움도 절한 곳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지상의 마지막에 돌아와
떨어지고 있는 별 사이로 당신의 꽃을 받느니
곁에 잠들지 않은 낙타의 방울 소리가
외로운 내 꿈을 더 먼 곳으로 이끈다
나 이 사막에 누워 비로소 당신과 하나다
티벳에서 / 이성선
사람들은 히말리야를 꿈꾼다 설산 갠지스강의 발원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생의 꽃봉우리로 오른다
그러나 그 산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많은 짐을 지고 이 고생이다
티벳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 / 이성선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어도
그의 영혼은 길가에 핀 풀꽃처럼 눈부시다
새는 세상을 날며
그 날개가 세상에 닿지 않는다
나비는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
모두가 잠든 밤중에
달 피리는 혼자 숲나무 위를 걸어간다
우리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새처럼 가난하고
나비처럼 신성할 것
잎 떨어진 나무에 귀를 대는 조각달처럼
사랑으로 침묵할 것
그렇게 서로를 들을 것
우파니샤드 / 이성선
이 말은 스승 곁에 가까이 앉다
라는 뜻이다
오늘은 나의 구루*요 산야신*인
산양 곁에서 하룻밤 자려고 산에 왔다
벼랑 끝별 아래
당신 곁에
일생을 살며 허공에 뿔을 걸면, 그렇게
생애에 단 한 밤이라도
당신과 별을 쳐다보며
아무 말은 없어도 좋다
* 구루: 영적인 스승
* 산야신: 구도자, 포기자
山上에서 / 이성선
대청봉 위에서 맑게 솟는
물을 마시니
티벳 영산 물 한 모금이 줄었다
설악에 엎드린 내가
히말라야 성수를 끌어 마셨구나
티베트의 나팔 깔링* / 이영주
허벅지에서 뼈를 꺼냈다 나팔을 만들었다
새장 같은 침대에 누웠다 새들의 잘린 머리가 밤새도록 죽은 자들의 문장을 읽었다
허벅지에 길게 그어진 칼자국을 만지며 그는 다리에서 음악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 밤, 택시를 타고 국경을 달렸다
수많은 나팔들을 넣어두고 죽어서도 음악을 듣지 못하는
내 몸이 부끄러웠다 티베트에는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 이따금 한밤의 별 속으로 들락거리는
길고 어두운 뼈 하나가 몸 밖을 빠져나간다
*티베트의 악기, 죽은 자의 넓적다리 뼈로 만든 나팔.
*********************************************************** 지도상에 있는 먼 나라에 가서 지도에 없는 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도플갱어처럼 또 다른 내가 오래 전부터 그 곳에서 살고 있다가
나를 처음 만난 것일까. 아니면 전생의 내 허벅지에서 빼낸 뼈로 만든
'깔링'이 그 곳에 있었을까. 시인은 오래 전에 그곳에 가본 느낌을 받는다.
낯선 나라의 풍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날 시인은 '내 몸이 부끄러워'
지고, 내 영혼은 아직 '음악을 듣지 못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이 작품은 외면의 의미를 읽다가 행간에서 자꾸 걸린다. 왠지 이방의 국경
검문소에서 오래 여권검사를 받듯 아무 잘못도 없는데 초조해진다.
그러나 시인이 그와 나 사이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감추듯 하다, 또한
행간과 행간을 벌려놓은 것은 여행시가 주는 친절을 없애고 시인이 받은
충격을 그곳에서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 연 한 연이 주는
의미를 삼키며 여러 번 읽는 것이 이 시의 매력을 아는 길이다. / 문정영 시인
고비사막을 건너는 힘 / 이면우
낙타도 없이 이 세상 끝에 뭐하러왔느냐고 물어주길 바라며 찬바람 쌩쌩 흙먼지
풀풀대는 사막을 한참 걸어갔다.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흰구름 양떼 따라 바로 당신을 만나러 왔노라고,
흙모래 속에 듬성듬성 박힌 바다자갈 낯 선 이 사막을 다 건너 처음 만나게
될
나무같은 다음 생을 만나러왔노라고.
꿈꾸는 낙타 / 전서은
어릴 적 우리집 문간방 살던 쌍가마 아줌마 그 남편은 소문만 주정뱅이였네 철규, 동규 두 아들 남부럽지 않게 키운다고 유난히 억척을 떨었었네 미군부대 담벼락 개구멍으로 보였던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그 황무지를 밤낮없이 헤매었네 쑤근대던 눈초리가 낙타풀처럼 따가워도 양색시들 등에 업고 앞만 보고 걸었네 무시로 불어대던 모래바람 앞을 막아도 눈물로 뱉지못한 세월이었네 전기세 대신 가져다 준 깡통 버터가 꽁보리밥 속에서 매끄럽게녹을 때면 철규엄마는 우리 육남매의 오아시스였네 미제는 정말 부드러웠네 법대 간 아들 따라 상경한 후론 휘어진 등 위로 고무다라이 이고 오던 고단한 그림자를 끝내 보지 못했네 이따금 쥐어주던 츄잉껌처럼 질기고 끈끈한 추억이었네 테헤란로를 유유히 걸어가는 저 단봉낙타 한 마리
타클라마칸에 내리는 눈 / 장석원
화양리 네거리의 십자가, 성탄에 길 잃은 양들. 꽃같은, 양같은 여자를 사랑한 나쁜 놈. 나쁜 놈 머리에 눈이 내립니다. 산 양이 뿔 세우고 죽은 꽃을 따라갑니다. 정치인에게 부조나 조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랑 앞에서 함부로 우는 일은 불법입니다.
이별만 남겨놓던 뻔한 스토리 앞에서 울음을 왜 참아야 하느가에 대해 약술하라고 하신다면, 달 밝은 밤 노닐다 들어오니 다리가 넷이어라.
얄미운 사람이여. 참혹한 적의 혹은 인내의 미덕을 讚 讚 讚하라. 한 잔
또 한잔. 취하기는 마찬가진데, 빼앗겨도 할 수 없는데, 필요한 것은
고해성사.
아버지 그들 먼저 용서하소서, 그들에게 지도와 편달을, 그들에게
도망갈 길을, 내게는 그녀에게 가는 길을, 지름길만 보이는 지도를...... .
나를 말이라 생각하시고 매우 치시옵소서. 밧테리가 다 되었습니다. 방전된 족속을 아십니까, 내가 그 출신
이랍니다. 뭣 때문에 기력이 쇠진해졌는지 아신다면, 이 지나친 방사
때문에, 至毒한 여자, 사건은 그때 벌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그녀가
기르는 누에였습니다. 번개나 한 방 먹여주세요.
보이지 않는 길이 때로 명확한 길이 된다는 말씀에 취한, 나는 사랑의 삐에로, 나는 쁘띠피티, 나는 타클라마칸 또는 소금 사막이니, 내 배
위로 지나가는 낙타에게 출렁이는 쌍봉낙타에게 낙타를 타고 오는
성자에게, 죽은 이로 하여금 죽은 이를 묻게 하라는 말씀, 말씀 같은
적설을.
되돌아보면, 오렌지빛 하늘 아래 내게 달려오는 눈부신 꽃마차와
네거리의 십자가와 네거리의 順伊, 그리고 요르단 강 같은 침묵.
사막 편지2 / 이규리
사막은 남성성을 지녔다 잊을 만하면 돌아와 앞섶을 여는 회오리, 사막이 우는 날은 내가 한없이 유순해진다 비로소 그를 안을 수 있 는 때이기도 하다 평원의 한 곳, 모래를 파고 만든 내 방에 한번 와 보시라 나는 점점 단순해지고 방안엔 명호청보다 부드런 깔개만 하 나 있다 어떤 울음, 혹 콜로라도 강줄기를 따라갔던 여행자들 중 만 의 하나 다시 이곳을 들르는 사람은 보겠지 내가 사막의 페니스를 물고 기꺼이 혼절하는 것을, 사막에서 재는 온도는 일생 중 가장 붉다 그건 울음의 온도이다
낙타 화분 / 김수우
죽은 화분에 물을 준다 혹여 촉이 돋을까 혹여 촉이 돋을까 여름과 가을 지나고 다시 겨울이 지나는 베란다
죽음을 키우고 있는 뿌리를 본다 충분히 기다릴만한 神聖 죽음만한 질긴 꽃받침이 어디 있으랴
플라스틱 화분 속으로 걸어오는 모랫산 말린 낙타고기를 싣고 홀로 가풀막을 오르며 사막의 딸이 노래를 한다
낙타의 고비에서는 하늘에 바로 닿을 수 있네 암컷 낙타의 눈처럼 고비의 물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신기루의 고비에서는 따뜻한 마을이 떠나지 못하네*
거멓게 타버린 잎줄기가 따라 부른다 그 나직하고 느린 음조에 물을 준다 충분히 꿈꿀만한 밤 그래, 죽음만한 양식이 어디 있으랴
움푹움푹 허공꽃으로 피어난 저 발자국들
* 낙타를 타면 해가 가까워진다는 고비사막의 노래
낙타가 울고 있다 / 이 섬
낙타가 우는 것을 보았다 큰 눈망울 가득 눈물이 글썽이는 걸 보았다
이집트에 있는 시내산 오르는 길 붉은 바위로 뒤덮인 가파른 오르막길을 낙타 등에 앉아 산을 올랐다 급경사의 산길을 오르며 가늘게 떨리는 낙타의 다리를 보면서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 보겠다고 오르는 방향에다 기우뚱대며 몸을 얹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낙타는 습관처럼 지그재그로 이어진 돌길을 타박타박 올라가는데 휘청거리며 떨리는 다리가 슬프고 덕지덕지 군살이 덮인 무릎도 안쓰럽고
이 세상 아픔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눈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인지
시내산에서 보았던 낙타의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마음속에 있는 명치끝을 자극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낙타가 울고 있다
낙타는 외로움을 모른다 / 이동호
사막에서 길을 잃을 잃었다 두려운 나는 낙타와 함께 밤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모래바람에 익숙해진 낙타는 본능적으로 눈을 반쯤 감고 달빛을 따라 걸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밤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며 촉촉한 낙타의 눈 속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말해주었다
살다보면 때로는 혼자 될 수 있다는 걸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에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한 단 한 사람을 위한 노래
하지만 메아리도 없이 흩어지는 나의 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낙타는 쉬지 않고 걸었다
생사에 기로에 놓였는데 무슨 놈에 사랑타령이냐는 듯 혼자 달 속을 걷고 있었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표 성냥/ 최치언
성냥갑 그림 속의 낙타는 초식동물이다 낙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인을 잡아먹지 않는다 낙타와 단둘이 사막을 건너는 이들은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은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면 낙타의 물혹을 잘라 갈증을 해소한다 물론 그 낙타는 죽는다 낙타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오아시스 있는 곳을 항상 정확하게 기억해둔다 만약 오아시스가 기억을 배반한다면 낙타는 그때부터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도 낙타의 눈치를 본다 아주 지루하고 기나긴 사막의 길을 두 동행자는 사형수와 간수처럼 서로 의심하며 초조히 가는 것이다 사막의 밤은 깊어가고 낙타가 잠든 사이 주인은 제 집 담을 뛰어넘는 도둑처럼 낙타의 목을 내리친다 그때 낙타의 눈빛을 보았는가 촉촉이 젖은 마지막 희망의 오아시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것으로 모든 의심은 끝이 난다 사막에서 죽은 자들은 항상 낙타보다 몇 발 앞서 쫓긴 자처럼 쓰러져 있다 그때 낙타의 혹을 물통처럼 열고 주둥이를 들이밀었던 죽은 자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보았는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들고 막다른 제 집 광 속에 갇혀 불안에 떨고 있는 저 도둑의 손끝에서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낙타표 성냥 한 갑을 당신은 본 적이 있었던가 그림 속의 낙타는 왜 항상 혼자 오아시스에 도착하고 있는가
사막에 뜨는 별 / 양현근
드르륵 드륵 어머니의 낙타표 브라더미싱이 돌아요. 나는 사막을 건너는 어머니의 등에 붙은 혹, 어머니는 나를 매달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을 건너가요. 달콤한 잠의 모퉁이를 돌다 얼핏 깨어보면 아직도 걷고 있는 낙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무늬가 다른 상처도 서로 잇대면 사막 같은 세상도 넉넉히 덮고 건널 수 있는 거란다. 늦은 밤까지 손바닥만한 달빛을 한 조각씩 이어붙이며 걷는 어머니, 꿈이 무성하게 자라는 동안 어머니가 이어 붙인 노래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나요 중간 중간 깨어나는 밤이 환해요. 모래바람도 잠든 밤, 아직도 어머니는 침침한 눈으로 부라더미싱을 돌리고 계시는지 별빛이 한 움큼씩 쏟아져 내리네요. 꿈에서 길을 잃으면 환한 별자리로 먼저 와 별빛을 켜들고 나보다 앞서 걷는 어머니, 보셔요 당신의 아침이 쑥쑥 자라나고 있어요
내 워크맨 속의 갠지스/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서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스를 감고 돌리고 창틈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24시 사막 / 정다혜
삼산동 경남은행 사거리 돌아서면
그곳에 최신식 24시 사막 있다
사막 입장료도 만 원이고 사막도 만 원이다
모래시계 가는 허리 닮고 싶은 여자들
허리마다 두툼한 모래주머니 달고
눕거나 앉아서 사막 건너가고 있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갈 수 없듯
여자들의 출렁거리는 모래주머니 속에서
모래는 사막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를 대머리 아라비안 상인들
냉 오아이스를 지고 와 팔기도 하고
소금가마를 지고 와 팔기도 한다
사막의 밤은 불타오르는 불야성을 이루고
사막의 새벽은 유목민의 폐허가 된다
사막, 어디선가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나고
타닥,탁,탁 생소금이 튀는 소리가 난다
몇은 입맛 다시는 돼지꿈에 빠지고
또 몇은 일어나 자신의 모래시계 바라본다
허리에 찬 모래시계는 여전히 두툼하고
사막 여전히 지글지글 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사막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사막여자 / 채필녀
저 살갗이며 피이며 심장이며 자궁인 모래, 어디를 만져도 몸이 달아, 숨이 막히는 뜨거워, 벌거벗은 채 수없이 체위를 바꾸는 여자 팔과 다리는 바람과 함께 떠도는 불구, 천형의, 일어나지 못하는 여자 상상임신으로 늘 배가 둥글고 젖가슴이 홀로 흔들리는 여자 짓밟는 발자국을 신기루로 유혹해 쓰러뜨리고 하얗게 삭아가는 뼈와 몸을 섞는 등골이 오싹한 여자 가도 가도 메마른, 끝이 없는 여자 낮 동안 빨아들인 해의 열기, 해와의 정사를 싸늘하게 식혀버리는 밤, 살아 있는 씨를 감추고 한 방울의 비를 기다리며 초원을 꿈꾸는 여자 가끔 모래폭풍을 일으켜 세상 끝까지 정복하는 여자, 원래 녹생의 땅이었던, 누워 있는 그 자리가 전생이며 내생인 때가 묻지 않은 여자 심연 깊숙이 푸른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는,
물소뿔을 불다 / 이선이
티벳을 가야겠다는 손금 같은 사연 담은 엽서 한 장 물끄러미 내다보는 오동나무 잎새 사이로 묵소 한 마리 걸어나왔다
유적지 가을하늘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 들릴 듯한 눈망울이 멀뚱하다
저 물소와 함께 산다는 히말라야 高山族은 죽음 곁에 이르러 그 흔하디 흔한 꽃 대신 눈물 대신에 물소뿔을 불어준다 한다
우리 사는 동안 가슴을 들이치기만 하던, 바로 그 멍들 다음 生까지는 가져가지 말자고 새로 태어날 슬픔까지를 노래로 날려보내는 것이다
사는 동안 한번도 넘지 못했던 얼음산을 훌쩍, 녹이며 넘어가는 것이다
타르쵸* / 함성호
인류여 멸망하자ㅡ 봄날 우리 묵묵히 그 모래 바람 속을 걸었습니다 긴 여행에 오래도록 지쳐 이력이 난 대상들처럼 우리 행렬을 이룬 시간과 시간의 녹슨 기둥들 사이로 영동의 푸른 바람이 깨진 유리잔의 파열음으로 울고 갈 뿐이었습이다 그 울음들을 달래며 우리 잔들이 넘쳐흘렀습니다 잔을 들지요, 매일매일의 순결함으로 부활하며 황도를 홀로 가는 태양의 그 지루한 여행을 위해ㅡ, 우리 그 한밤을 긴 노래로 메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물기에 젖은 낙타의 가는 울음이 그 밤을 도와 파랑 모래를 뜨겁게 달구며 마른 나룻가지 위의 독사가 허물을 벗고 한줌 수분도 남기지 않은 채
우리 마지막 잿속에서 사르어지는 알불처럼 메말라갔습니다 한밤 꽃들이 터져 피는 소리에 화들짝 잠을 깨고 밤새 가슴을 쓸며 가는 물소리에 오래도록 잠 못이룰 뿐 투명한 물그림자 우리 얼굴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추억하시나요? ㅡ잔을 비우시지요, 갈증을 달래는 순수한 물의 희구를 버리시지요 나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의와도 타협하는 마왕 파피아스의 어린 제자 내 속의 슬픔을 핥아주시지요 혹 그 끝없는 표류의 깃발을 보셨나요? 입 안 가득히 씹히는 상념의 모래알을, 깊은 발자국마다 고여드는 영욕의 물그림자 속에서 북한산에 구름이 일더니 연신내가 넘친다 나의 운명이 한 잎 대마 연기처럼 폐부 깊숙이에서 떠오르는 한낱
몽환과 같은 것일 때 황사에 가린 흐린 도시의 물때 낀 屋上 깃발에 적은 내 시를 읽어가는 광기에 부푼 바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라방드 같은 비와 폴로네즈 같은 가로수를 걸으며 나는 집시처럼 춤춥니다 당신처럼 푸르른 세상은 없을 겁니다 이처럼 어두운 희망도 없습니다 나도 전자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영상처럼 리모컨의 붉은 단추로 사라져버리는 허상이지요 아니면 욕계의 더러운 짐승? 습기 머금은 바람의 서자다 살해의 도구를 피하려 안간힘 쓰는 자궁내의 태아처럼 단 하나의 출구가 내겐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입구다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절망을 나는 안다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이 별을 위해, 인류여 멸망하자 흐린 날의 숲들은 자꾸 어디에로인가 가고 싶어한다 다시 지옥으로ㅡ, 바람은 숲들의 전설을 검은 머리칼처럼 풀어놓아 밤은 테러리스트의 유우머처럼 신비롭다 바다로 가는 별들, 맨발자국마다 고여드는 그물 같은 은하 그리운 눈동자마다 고여드는 별빛의 푸르름은 진정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추억의 힘이다ㅡ나는 새로운 種을 기다린다 그대들 불어가는 시간의 바람 속에서 왔으니 이제 다시 그 바람에 실려 가라, 시간의 지층 속에서 켜켜로 누워 있는 고단한 화석으로 태양을 일구는 사막의 한가운데로 도시의 대형 창들이 살의로 떨어지고 마천루들이 흐르는 모래에 잠겨간다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 키스하고 싶다 그 얇은 입술에, 유랑의 창녀 테오도라가 건설한 비밀한 사원에서 해풍처럼 땀내나는 알롬으로 성애의 긴 춤을 추고 싶다 독오른 뱀의 혀처럼, 튀어오르는 잭나이프의 칼날같이 내 온몸은 죽음의 수상한 공기를 감지하고 있다 재생용지 같은 생이라면 아무에게도, 아무에게도, 이 잔을 옮기고 싶지 않다
* 타르쵸
티베트 승려들의 경전을 적은 붉은 천.
티베트 승려들은 그 천을 깃대에 걸어 사막에 꽂아두고 바람에
부르르 떠는 깃발의 소리가 나면 바람이 황포에 적은 경전을
읽고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쉬운 범신론이 아니다.
나는 '반문명의 문명'의 한쪽으로 이것을 잡는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최승자
창문 밖, 사막, 바라보고 있다. 내세의 모래 언덕들, 전생처럼 불어가는 모래의 바람.
창가에서 이 십 년 전쯤 처음 만났던 노래를 들으며 찻잔을 홀짝이다가, 나는 결정한다. 이제껏 내가 먹여 키워왔던 슬픔들을 이제 결정적으로 밟아버리겠다고 한때는 그것들이 날 뜯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이 그것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먹여 키웠는지 이제 안다. 그 슬픔들은 사실이었고, 진실이었지만 그러나 대책 없는 픽션이었고, 연결되지 않는 숏 스토리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저 창 밖 풍경, 저 불모를 지탱해주는 눈먼 하늘의 흰자위, 저 무한으로 번져가는 무색 투명에 기대고 싶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파라오의 여자들 / 최금녀
여행중 그날 하루
우리는 파라오의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루비와 에메랄드로 꾸며진
파라오의 특별실에서 비스듬히 누워
몽골의 공주처럼
두 발을 스물 나이의 손들에게 맡겼다
손들은 열두 제자의 발이나 씻어주듯
땀방울을 흘리며
파라오의 여자들에게 봉헌했다
발에 향유를 붓고
별자리를 찾아
어르고 달래며 맛사지를 하는 동안
여자들은, 여자들의 치마폭으로
곤두박질쳐 내려오는
흑보석 같은 사막의 별들을 주워담기 바빴다
여자들의 몸에서는
피돌기와 마디 마디의 뼈들이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파라오의 살 냄새 느끼했지만
“여행은 즐거웠음. 발 맛사지 추가.
파라오의 아방궁에서”
메시지 전송완료.
매일 떠나는 낙타 / 박진성
- 서울 혹은 사막
사막에 가본 적이 있나요? 푸른 바다의 전설이 조개 껍질 속에서만 수런대는, 사막은 바다의 기억을 잃은 지 오래 청량리 사원 미아리 사원이 있을 뿐이에요 사원에는 드레스를 입은 낙타들이 모여있죠 페르시아를 노래하는 낙타들. 거짓말처럼 사막에 눈이 내리는 날 사원의 귀퉁이에서 낙타 하나 울고 있어요 나의 손목을 잡고 신전(神殿) 귀퉁이 자그만 방으로 데려가서는 거친 사막을 지나 파미르 고원에 가면 싱싱한 꽃나무들이 피어 있을 거라며 가시가 모두 빠진 선인장처럼 둥글게 둥글게 웃고만 있어요 온 몸으로 뒹굴면서 경북 의령이라든가 칠곡이라든가 낯선 이방(異邦)의 계절에 대해 이야기하네요 물기 잃은 눈 속에서는 먼 바다의 비밀처럼 파도가 울렁이고 있었고 나는 잠시 내가 떠나온 도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막의 사원에서는 밤마다 몹쓸 꿈들이 뒹굴고 있어요 이곳은 일교차가 아주 심한 곳 이곳에서 파미르 고원을 꿈꾸는 건 금물입니다 그저 잠시 지친 몸이나 쉬었다 가세요 너무 목이 말라도 낙타의 혹을 쉽게 가를 수는 없을 거에요 이곳은 사막이랍니다
수미산 간다 / 원무현
편지함은 빈 지 오래다 흙바람만 뒹굴어 부고장이라도 몰고 올 까마귀를 기다리지만 손바닥만한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다 산 1번지 벌집 봄은 산 아래 아파트촌 벚꽂 길 끝에서 꿈쩍도 않는데 이 집 저 집 아내들은 손톱 뽑혀나가듯 빠져나간다 그래도 아침을 향해 가는 길은 함부로 자를 수 없는 것 아이는 낮달 같은 얼굴 금새 지워선 잠에 들고 얘야 아비는 웅크린 채 밤새워 징겅다리가 되는구나
새벽이 오면 산 1번지 벌집이여 인력시장으로 통하는 아비의 길 그리고 잘난 놈 없이 웃음이 공처럼 튀어 오르는 운동장으로 가는 길 쑥쑥 뽑을 것을 믿는다
말똥구리가 기어오르고 있다 달이 온몸으로 버티며 빛을 내리고 있다 사막의 모래폭풍도 덮을 수 없는 오체투지 그 찬란한 길 뽑아낸다는 수미산으로 내딛는 첫 발을 거둬들인다
빨래궁전 / 문인수
-인도소풍
야므나강변 작은 촌락 한 움막집에, 그 집 빨랫줄 위로 옛날 옛적 사랑
많이 받은 왕비의 화려한 무덤, 타즈마할 궁전이 원경으로 보입니다.
궁의 둥근 지붕이 거대한 비누방울처럼, 분홍 엷은 나비처럼 아련하게
사뿐 얹혀 있고요 빨래가, 원색의 낡고 초라한 옷가지들이 젖어 축 처진
채 널려 있습니다.
족보에도 없는, 이 무슨 경계일까요. 오색 대리석으로 지어 졌으나 죽음은
그 어떤 역사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이 가볍고 가벼워서 짐이 없는데요,
삶이란 또 몇 벌의 누더기에도 당장 저토록 고단하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때, 어린 새댁이 하얗게 웃으며 얼른 움막 속으로 숨어 버렸는데요,
개똥밭에 굴러도 역시 이승에 땡깁니다. 오래 내 마음을 끄는 그녀의 남루한
빨래궁전 쪽, 저 검고 깊은 눈이 전적으로 아름답습니다
수자타마을에 가서 / 장철문
수자타 마을 가는 길에 일출이 준비되고 있었다
건기의 네란자라 강으로
마을 사람들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가느란 물길을 따라 엉덩이를 까고 있었다
붓다가 몸을 씻은 강물에
똥을 싸고 있었다
강심江心에 손을 적셔 밑을 닦고 있었다
내장을 비워
다시 하루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입에 넣은 양식으로
하루를 살고,
남은 것들을 강물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한 사내가
누천년 먹은 마음의 똥을 우지끈 비운
그 나무 그늘이 멀지 않은 강에서
나란히 항문을 열어 똥을 싸고 있었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나란히 엉덩이를 들어 밑을 닦고 있었다
미주알이 씰룩이듯
진홍의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햇태양을 우지끈 밀어올리고 있었다
네란자라 강이 실어 나르는 흙에서
밥을 얻는 사람들이
간밤에 어두운 아랫배로 품은 것을 밀어내고 있었다
* 수자타
사문 고타마가 깨닫기 전에 우유죽을 바친 소녀
조장(鳥葬) /김선태
티베트의 드넓은 평원에 가서 한 사십 대 여인의 장례를 지켜보았다.
라마승이 내장을 꺼내어 언저리에 뿌리자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달겨들더니 삽시에 머리카락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다시 쇠망치로 뼈를 부수어 밀보리와 반죽한 것을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잠깐이었다.
포식한 독수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의식은 끝났다, 그렇게 여인은 허, 공에 묻혔다 독수리의 몸은 무덤이었다 여인의 영혼은 무거운 육신의 옷을 벗고 하늘로 돌아갔다, 독수리의 날개를 빌어 타고 처음으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을 게다.
장례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유족들은 울지 않았다, 침울하지 않았다, 평온했다 대퇴골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스님의 표정도 시종 경건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생전 못된 놈의 시신은 독수리들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슬퍼한다고 했다.
언덕길을 내려오다 들꽃 한 송이를 보며 문득 죽은 여인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평원의 풀과 나무들도, 모래알도, 독수리도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꾀죄죄한 소년들이 허리를 굽히며 간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삶과 죽음이 한통속이었다.
라자스탄 처녀의 방 / 정복여
내 낙타 이름은 까므라* 혼자 사는 등뼈가 이제 간신히 여물었다고 착하게 나를 업고 사막을 간다 목덜미 솜털이 구름으로 일고 잠깐씩 돌아보는 눈매가 영락없이 호수다 젖은 눈가에는 길다랗고 숱이 많은 생각들 내가 오른쪽으로 고삐를 당기면 물거울이 철렁 방울소릴 낸다 세상 울음을 모두 담아 둔 듯 그 소리에 사막이 움푹움푹 젖는다 낙타의 발, 자, 국, 가고 싶은 데로 이리저리 고삐를 당긴다 언제부턴지 나는 낙타의 주인 그러나 내 발자국은 없다 인가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더욱 없다 낙타가 가다가 가시먹풀을 보고 방향을 바꾼다 칼잎에 베인 입을 쓰윽 닦으면 하늘로 번지는 찌릿한 기도 바람이 휘이익 불어 낙타의 발자국도 가고 이제 나도 낙타도 없다 안장처럼 얹힌 밤이 있을 뿐 사막 어디쯤 날 떨군 그런 모래 사나이만 있을 뿐
나는 인도 여자가 좋다/ 김성수
나의 우파니샤드를 펼치면 진리의 말씀보다 까딱춤을 추는 인도 여인의 발목 방울 소리만 가득하다 자분자분 젖어드는 리듬에,고혹적인 손길을 따라 깨달음은 유세차를 읊조리며 소지로 태워 올리고 칼리 여신이 이끄는대로 끌려가는 속된 껍데기일지라도 카레 냄새나는 인도 여자가 좋다 갠지스 강에서 말갛게 씻긴 달 같은 눈동자의 그 깊은 내력과 넉넉한 여유로움에 기대여 여물지 못한 내 사념 마저도 녹아드는 것을 느낀다 현란한 치장을 하고 사리에 숨긴 열정을 엿보는 나는 피리 소리에 춤을 추는 혹은 반응하는 코브라같이, 읽지도 못하는 산스크리트 경전을 넘기며 엉뚱한 주문을 흥얼거리는 사이비 일 것이다 잡지책의 겉표지를 대하 듯 인도 여자의 외모를 탐한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나의 우파니샤드에서 걸어 나오며 나마스테, 인사를 하는 인도 여자가 좋다 차이를 마시면 딱딱한 깨달음이 내 안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아랫도리는 미투나 상을 보는 듯 제 나름의 깨달음으로 일어선다 이런 내게 타지마할로 스며드는 노을에 깃든 노래가 왜 가슴을 후비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지 마라 울컥, 토해논 달이 한강에서 멱을 감고 나와 인도 식당을 나서는 내 이마를 때렸다
알타미라의 소 / 김수우
1 고대이집트에서 나는 창조신 누트였고 길고 짧은 신화를 수없이 건넜으며 인도에선 지금도 성자이다 이중섭의 손끝에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식구였으며 알타미라 동굴에서 매일 지축 울리고 오늘도 허공을 넘는 尋牛인데
2 냉이꽃 듬성한 다리 밑 액체질소통 -196°C로 동결된 수소의 정액이 거래된다 전기자극으로 뽑아낸 정액을 분양받은 가축인공수정사들, 몸에 바람 든 암소를 안는다 수태시킨다 산도 바다도 애비 없는 단백질덩이로 태어난다 채권과 채무로 절룩거리는 생명의 流轉, 일상은 신상품과 재고로만 유통된다 下水에 무심히 젖는 봄
신은 이제 번식 관리되는 중이니 신화도 식구도 푸른 허공도 배합사료일 뿐이니
3 뼈와 살을 뜯어 먹이는 일 가죽구두를 신기는 일 그저 사랑이었거늘 찬란한 제의였거늘 내 눈이 수평선이었거늘 수평선 너머 네 집, 네 아침이었거늘 너희가 냉이꽃보다 쓸쓸한 이유를 안다 까닭없이 절망하는 이유를 안다
이 영악한 슬픔들아, 영원한 슬픔들아
김수우 시인
사막의 추억 1 / 최병무
일부다처를 본 적이 있다. 직접 궁금한 점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최소한 부인의 방이 네개로 설계된 아파트먼트를 짓고 있었는데
그 사막에서 일부다처의 나들이는 하나의 백로와 다수의 까마귀떼의 소풍이었다. 지금 내 입장에서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좋은 것이냐 절대 받아들일 수없는 제도냐가 아니라 아내가 단체적이며 아내의 역할이 공동적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던 생각이 난다
일부다처와 일부일처의 배후가 역사의 재편 때마다 충돌한다. 한 씨족의 나들이 풍경이 삼십년이 지난 지금 왜 갑자기 떠올랐는가? 오늘 밤 위그르 사람에 대한 또 한편의 시를 읽은 것이 원인인 것이다
사막의 추억 2 / 최병무
그때 나는 매일 밤 윤시내의 '열애'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아라비아왕국의 사막에서. 캠프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면 집이 그리웠다. 그런 날은 길없는 사막으로 나갔다. 홍해를 거닐기도 했는데 나는 모래산을 오르며 조개화석을 찾아 다녔다. 오래 전 사막은 바다의 궁전이었다. 낙타와 유목민과 차도르
쓴 여인을 만나면 손을 흔들며 오아시스까지 진출했는데, 나는 지금도 신기루가 먼저였는지 오아시스가 먼저였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그곳에서 신들이 쉬었다가며 모종의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하였으리라는 생각 하나와 선견지명이 있는 신들은 문명의 시대를
대비하여 석유를 비축해 놓았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막의 바람을, 돌개바람을 맞아 보셨는지요. 삼십년이 흐르고, 오늘 밤 그 바람이 왜 불어오는지...
1979년 아라비아 사막에서
사막의 추억 3 / 최병무
그때 나는 기독교에 심취해 있었는 데, 밤마다 묵상을 하며 성경을 읽고 있었다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리고 낮에는 문만 열면 광야의 체험을 할 수 있었으니까 어느날 나는 꿈을 꾸었다 말하자면 실제로 신약시대의 한 장면을 보았다는 것인 데, 그 꿈이 내가 만든 환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 지구촌 한 모퉁이에서 나도 일종의 호접몽(胡蝶夢)을 체험한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30년간 지속된 염체(念體)가
첫댓글신경림, 김남조 등 자칭 타칭 난다 긴다하는 시인들이 제 아무리 언어를 비틀어도, 사막에 실제 살고있는 아프리카 어린이 동시 보다도 울림이 없는 것은 왜일까요?....김소엽과 최병무 시인의 글이 그중 모래바람과 낙타의 똥내음이 나는군요. 그 중 처음으로 읽어보는 김소엽의 최근의 시를 찾아 답글로 올려봅니다.
첫댓글 신경림, 김남조 등 자칭 타칭 난다 긴다하는 시인들이 제 아무리 언어를 비틀어도, 사막에 실제 살고있는 아프리카 어린이 동시 보다도 울림이 없는 것은 왜일까요?....김소엽과 최병무 시인의 글이 그중 모래바람과 낙타의 똥내음이 나는군요. 그 중 처음으로 읽어보는 김소엽의 최근의 시를 찾아 답글로 올려봅니다.
진정성의 문제 아닐까요? 무심히 읽고 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낙타와 사막에 대한 시를 읽으면서 나도 그들과 길동무 되어서 가보리라. 꿈으로 끝날지는 모르지만요. 동산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