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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37_경남 하동군 화개면 칠불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36 12.03.08 13: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옥정호에서 환상적인 일출을 만끽하고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으나 구름이 걷혀도 맑은 사진을 얻을 수 없다는 고참들의 말을 듣고 철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벌써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서둘러 옥정호를 빠져나갔다. 순창을 지나며 전화를 하였다. 성산은 벌써 일어나 있는 것 같았다. 준비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대강이라는 곳을 경유 곡성에 도착을 하였다. 이번에는 한참만에 만나는 상봉이다. 우선 반가움을 말하기 전에 출발할 여행지를 의논해야 한다. 봉구아재로 칭하는 백산은 몸이 허락하지 않아 불참을 하게 되었고,

창원의 솔이네는 오후에 출발을 한다 하였다. 중간에 남는시간 동안에 작년에 올랐다 진입로 공사 때문에 못보았던 쌍계사위의 칠불사를 보러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망설일 것 없이 구례를 통하여 하동으로 향하였다. 토요일 아침이긴 하지만 한가한 길을 만끽할 수 있다. 만끽이란 단어는 천천히 달리며 좌우 단풍구경을 하면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거의 입구 쪽까지 오르니 작은 산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곳엔 여기저기 감을 말리느라 줄에 매달아 놓은 것이 너무도 아름답다 표현해야 될 정도로 하늘에 수를 놓고 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둘이 찍어댔다. 조금이라도 더 멋진 구도를 잡으려... 한참을 구비구비 오르니 섬진강이 눈아래 아득히 보이고 멀리 일주문이 보이는 주차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일주문 앞에 탑도 있고 또 오르는 길가에 작은 규모의 부도군도 보며 경내로 들어섰다. 칠불사는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 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 하여 칠불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내가 김해 김씨 목경파 자손으로서 더욱 흥미를 가지고 이곳을 접하게 된다.

[칠불사입구 산장 뒤뜰에 많은 감을 말리느라...]

[칠불사 일주문 "智異山七佛寺" 라 쓰여진...]

[입구에 복원불사 사적비가...]

영지못 맞은 편에는 20여년간 칠불사를 복원한 기록을 새긴 칠불사 복원불사 사적비가 서 있습니다. 그 뒤편에는 무가당 스님과 백암성총 스님의 부도탑이 있다고 쓰여있는데. 잠시 숨을 돌리고 옛 정취가 풍기는 이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고 하는 말을 생각도 못하고 지나치고 말아 영지 못을 그냥 스치고 지나간 것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다.

[입구에 두 개의 부도군과 부도 받침이 자리한다...]

칠불사에 대해 오마이뉴스 곰발바닥님의 글을 빌어본다. "김수로왕은 서기 42년 생으로 인도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여 슬하에 10남 2녀의 자녀를 둔다. 큰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했고 차남 석(錫)과 삼남 명(明) 왕자는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나머지 일곱 왕자가 출가하여 왕비의 친정 오빠인 보옥(寶玉) 선사를 따라 수도 정진하다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현재의 칠불사 자리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수도하다 103년, 수로왕 62년 음력8월 15일 모두 생불이 되었으니 광불, 당불, 상불, 행불, 향불, 성불, 공불 등 일곱 부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칠불사의 창건설화는 여기서 시작된다일곱(七) 왕자가 성불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수로왕과 왕비는 기쁜 마음에 일곱 왕자를 만나려 지리산 운상원을 찾았다. 그러나 일곱 왕자의 스승이자 외삼촌인 보옥선사는 불법의 엄한 계율에 따라 그들을 대면시키지 않았다. 대신 '경내에 있는 연못을 지켜보라'고 일러주었다. 일곱 왕자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어쩔 수 없이 왕과 왕비는 연못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연못을 지켜보니 얼마의 시간이 지나 연못에 성불한 일곱 왕자의 금빛 찬란한 모습이 비쳤다 한다.

[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보설루가 반기고...]

[설선당이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고...]

[설선당앞을 가로막은 코스모스가...]

[경내 입구에 사찰의 텃밭이...]

[사각연못 중간섬위의 갈대 숲?...]

[사각연못 중간섬위의 갈대 숲?...]

[국뚝과 단풍?...잘 어울리는 듯...]

[칠불사의 잘 정돈된 장독대...]

[스님들만 쓰인다는 해후소...]

[보설루에서 본 대웅전...]

[설선당...]

[동국제일선원 보설루...]

[원음각이라 쓰인 종각이...]

범종을 울리는 근본 뜻은 천상과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종신부는 항아리 모양으로 상대와 하대, 유곽에는 보상화문과 당초문이 새겨져 있고, 9개의 유두 주위에는 연꽃을 새겼다. 그리고 공양상 4구가 돋을새김 되었으며 명문이 새겨져 있다. 위에는 용뉴와 음통이 장식되어 있다.

[칠불사 대웅전...]

칠불사의 금당인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로, 근래에 지은 건물이다. 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 석가여래좌상과 좌우에 협시하고 있는 문수ㆍ보현 보살좌상의 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 밖에 역시 최근에 조성한 후불탱ㆍ칠성탱ㆍ신중탱 등이 있다.

[대웅전 불상위의 아름다운 ...]

[대웅전 중앙에 모셔진 삼존불과 후불탱...]

[대웅전 좌측에 모셔진 신중탱...]

[칠불사의 어원인 칠불이 모셔진 칠성탱...]

[대웅전 좌측엔 아자방이...]

"세계건축대사 전에 기록될 정도로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는 아자방(亞字房)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로 넓이가 8평방미터 정도라고 한다. 여느 방들처럼 방 전체를 평평하게 하지 않고 방안 네 귀퉁이를 70cm 높게 하여 아(亞)자 형태의 구조로 되었기에 '아자방'이란 이름이 붙었다. 방안 네 구석의 높은 곳은 좌선처이며 중앙의 십자형 낮은 곳은 행경처인데 한번 불을 지피면 49일 또는 겨울 내내 훈훈한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고 오마이뉴스 곰발바닥 이라는님이 전해준다.

[칠불사 설선당...]

[사각 연못엔 연과 가운데 섬엔 갈대가...]

[중생의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이....]

[경내에서 내려다본 텃밭 위엔 이름모를 석상이 ...]

[벽엔 커다란 목탁이 매달려있고...]

[요사채 천장의 아름다운...]

[칠불사 텃밭에 미련을 두며 발길을 내려설 수 밖에...]

칠불사에는 김수로왕의 아들 칠형제의 이야기가 스며있는 사찰이며 허황후의 연못과 가락국의 이미지가 서린 그런 사찰임에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찾아간 아쉬운 여행이었다. 곡성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다음번엔 착실하게 공부를 마친 후 칠불사를 답사형식으로 정확히 알고자 찾아갈 것을 다시한번 다짐을 하며 바쁜 걸음을 순천으로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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