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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 (1857- 1929)】
비과시적 소비의 부상과 새로운 계급의 탄생, 『야망계급론』
■ 짧은 책 소개
소스타인 베블런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의 사회적 의미를 가장 날카롭게 포착한 사회비평가이자 경제학자다. 1899년 출간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물질적 재화와 지위의 관계를 정확히 설명한 결정적인 텍스트로, 과시적 소비를 통해 사회적 구별짓기를 하는 유한계급을 맹렬히 비판했다. 쓸모없고 별다른 기능도 없는 물질적 재화로써 자신의 사회적ㆍ경제적 지위를 끊임없이 과시하는 부유하고 게으른 집단으로서 유한계급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베블런의 시대 이래 사회와 경제는 극적으로 변화했고,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소비도 달라졌다.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발전으로 중간계급이 생겨났고 물질적 재화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과시적 소비는 주류의 행태가 되었다. 베블런이 말한 유한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엘리트들은 스스로가 오랜 시간을 일하고 자녀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문화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능력주의 및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규범을 통한 계급 재생산에 몰두한다. 물질적 소비보다 정신적 소비로 자신의 지위를 구별짓고자 하는 ‘야망계급’의 출현이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은 이러한 야망계급의 소비문화가 과거 유한계급의 물질적 소비문화보다 훨씬 더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며 이를 생생하고 치밀하게 분석한다.
■ 도서 소개
유한계급이 사라진 자리에 야망계급이 등장했다
“베블런이 유한계급에 관한 시론을 쓸 때만 해도 과시적 소비는 극히 특수한 일부 사회계층에 국한된 것이었다. 물론 모든 사회계층이 어느 정도는 과시적 소비를 했지만, 물질적 재화를 사용해서 지위를 드러낼 수 있는 집단은 유한계급이 유일했다. 오늘날 물질적 재화는 풍부해졌지만, 이 재화가 사회적 이동성을 드러내거나 가능케 하는 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지배적인 유한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차지한 야망계급은 소비 양식을 새롭게 쓰는 동시에 전통적인 과시적 소비에서 손을 떼고 있다.” (1장 유한계급의 침식, 야망계급의 등장, 46쪽)
1899년,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의 사회적 의미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일을 하며 과시적 소비, 즉 쓸모없고 별다른 기능도 없는 물질적 재화로 사회적ㆍ경제적 지위를 끊임없이 과시하는 부유하고 게으른 집단으로서 유한계급을 맹렬히 비판했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쓸 때만 해도 과시적 소비는 극히 특수한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으로, 유한계급은 물질적 재화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부유하고 게으른 귀족집단이 사라지고 교육받은 자수성가형 엘리트가 부상함에 따라 이제 ‘유한’은 상층계급과 동의어가 아니다”.(34쪽) 다시 말해 베블런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 상층 사회경제 집단은 누구보다 오랜 시간 일하고 삶 전반에서 생산성에 몰두하며, 시간이 더 많은 게 아니라 부족하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은 《유한계급론》의 주요 개념을 이어받아 현대의 소비문화와 계급을 새롭게 살핀다.
베블런의 시대 이래 사회와 경제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발전으로 중간계급이 생겨나고 물질적 재화가 저렴해지면서 과시적 소비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한 사람들도 명품 하나쯤 갖고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시적 소비의 차별성은 흐릿해졌고, 이에 따라 부유층과 엘리트들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찾아냈다. 이들은 물질주의와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사회적ㆍ환경적 의식과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둔다. 즉, 오늘날 구별짓기 실천으로서의 소비는 쓸데없이 화려하고 과시적인 물건을 사는 과시적 소비가 아니라 지식수준, 문화자본, 사회적ㆍ환경적 의식 등을 드러내는 비과시적 소비에 초점이 맞춰진다. 저자는 오늘날 더 이상 지배적 유한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과거 유한계급의 자리에 야망계급(Aspirational Class)이 등장했다고 선언한다.
야망계급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야망계급은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인가? 이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구별하는가? 저자는 오늘날 디자이너 제품에 수십만 달러를 쓰는 많은 이들은 스스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한다. 대다수가 정당한 노동을 통해서 말이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부유층은 풍요로운 여가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는 이미 여러 연구로 입증된 바 있다. 과거의 유한계급과 달리 야망계급은 고학력, 전문기술,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경제적 사다리를 오르지만 저자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소득수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야망계급의 성원들 대다수가 교육을 받고 지식을 쌓기는 해도 반드시 경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며, 노동시장의 부유한 엘리트가 아닌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계급을 하나로 묶는 것은 소득수준이 아니라 문화수준이다.
이 새로운 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이며, 이는 경제적 효용과 무관하게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물질적 재화가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뚜렷한 표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야망계급이 스스로를 남들과 구별하는 지점은 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활용해 사회와 환경을 의식하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있다. 여기서 소비는 그 성원들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표지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야망계급에는 (대다수가 소득 상위 10퍼센트 이내에 분포하긴 하지만) 반드시 소득이 많지 않더라도 충분한 교양과 문화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야망계급에는 은행가나 법률가, 엔지니어처럼 교육과 전문화된 지식으로 경제적 상향 이동성을 확보한 이들도 있지만 예일대학교 문예창작 학위가 있는 이들, 영화계 종사자, 아직 시나리오를 팔지 못한 시나리오작가, 출판계에서 일하는 젊은 도시인 등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엘리트 문화집단을 관통하는 특징은 지식 습득과 그에 기반한 가치관에 있다. 이들은 더 높은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의식을 얻고자 지식을 활용한다. 사회적 지위는 지식을 습득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따라서 이 새로운 집단은 비슷한 지식을 습득하고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며 그것을 통해 집단적 의식을 구현한다고 말한다. 가령, 문화평론 읽기, 최신 뉴스 따라잡기, 유기농 식품 섭취 등은 이들이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서로 연결되는 방법들이다. “지식과 문화자본은 무엇을 먹을지, 환경을 어떻게 대할지, 어떻게 더 좋은 부모, 더 생산적인 노동자, 더 식견 있는 소비자가 될 수 있을지 등에 관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된다.”(40쪽)
과시적 소비에서 비과시적 소비로
야망계급의 등장을 이해하려면 과시적 소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소비자지출조사 데이터를 분석해 미국 소비의 초상을 그려낸다. 21세기의 과시적 소비를 살펴보는 2장과 비과시적 소비의 부상을 이야기하는 3장은 미국의 소비문화라는 폭넓은 맥락의 일부로 야망계급의 소비 습관과 실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분석을 제공한다. 과시적 소비가 어째서 더 이상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지를 밝혀내며 엘리트집단이 수행하는 가장 일관된 구별짓기 소비 실천으로서 비과시적 소비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비가시적이지만 동류집단에게는 지위를 드러내는 비과시적 소비가 어떻게 엘리트와 나머지 집단을 가르는 가장 유해한 실천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엄청난 비용이 들면서도 비가시적일 수 있는 비과시적 소비 실천은 과시적 소비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기회와 경제적 이동성을 가져온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가 정리한 미국 소비의 중요한 거시적 추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유층과 상층 중간계급(소득 상위 1퍼센트, 5퍼센트, 10퍼센트 계층)은 과시적 소비에서 미국인 평균 지출액 대비 덜 지출하는 반면, 중간계급(소득 상위 40~60퍼센트)은 더 많이 지출한다. 둘째, 지출 비중으로 볼 때 중간계급은 소득 대비 과시적 소비 비중이 큰 반면 부유층은 적다. 셋째,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는 비과시적 소비로 대체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유층의 소비는 더 많은 여가와 삶의 기회를 창출하는, 비과시적이면서도 고가인 서비스로 대체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교육, 의료, 육아, 보육, 가사도우미 등 노동집약적 서비스가 여기에 속한다.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과거와 달리 그 비중이 상당 부분 줄어들고 교육과 같은 비과시적 소비 영역의 지출이 극적으로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미국 사람들의 교육 지출은 1996년 이래 60퍼센트 증가했지만 상위 1~10퍼센트 소득분위로만 좁혀보면 300퍼센트 가까이가 늘어났다. 다른 소득집단의 비중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위집단의 지출이 총지출 증가를 추동했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상위 소득집단에서 이런 지출의 비중이 늘어났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미래의 궤적이 정말로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지출 증가의 혜택을 입은 아이들은 단순히 교육을 더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 간단히 말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지출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에게 유의미하게 다른 결과를 안겨준다.
비과시적 소비와 새로운 엘리트들
비과시적 소비에 대해서는 3장에서 상세히 서술된다. 저자가 말하는 비과시적 소비란 “알 만한 이들에게만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더 미묘하고 덜 물질주의적인 형식”(92쪽)으로서의 구별짓기 소비 실천이다. 때로 이런 소비 선택은 아예 지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고가의 제품이든 자녀의 삶의 기회에 대한 투자든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언뜻 평범하면서도 생산적으로 보이는 비과시적 소비는 사회경제적 위치를 공고히 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야망계급의 비과시적 소비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째, 수많은 물질적 소비재의 접근성이 낮아지고 그러한 소비가 공공연해진 탓에 부유층과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 덜 알려지고 암호화된 상징을 찾아냈다. 둘째, 세계경제의 재구조화와 함께 지적 능력을 보유한 능력주의 엘리트층이 높이 평가되었고, 이 노동시장의 엘리트들(다수가 야망계급)은 자신의 경험에 기인해 상향 이동성을 신봉하며 자녀들도 자신과 똑같이 누리기를 바란다. 이들은 고소득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하며 이에 따라 여가시간은 매우 희소한 자원이 된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소비활동으로 채워지고,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오늘날의 노동시장 엘리트들, 특히 야망계급에 속하는 이들은 육아, 가사, 휴가 등에 상당한 돈을 지불하는 식으로 여가시간을 확보하며 또한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다시 돈을 쓴다. 마지막으로, 물질적 소비는 더 이상 교육이나 은퇴, 의료처럼 중요한 지출에 투자하는 것보다 우선시되지 않는다. 이러한 소비는 모두 높은 가격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동시에 야망계급 지위를 재생산하고 나머지 전체와 야망계급을 한층 더 분리하는 결정적 통로가 된다.
저자는 이러한 비과시적 소비가 계급 구분의 새로운 원천이 되고 있다고 본다. 비과시적 소비는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정보비용이 드는 비과시적 소비’와 ‘대단히 값비싼 비과시적 소비’가 그것이다. 정보비용이 드는 비과시적 소비는 매니큐어 색깔에서부터 어느 칼럼니스트를 대화에 인용하고 어느 식당에 가는지까지 꽤나 사소해 보이고 그리 비싸지도 않지만 문화자본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소비다. 대단히 값비싼 비과시적 소비는 육아, 의료, 대학 등록금 등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의 삶을 크게 개선하는 동시에 계급 구분을 강화하는 소비다. 저자는 거의 모든 비과시적 소비의 핵심은 아는 사람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비가시적이며, 따라서 암묵적 정보나 상당한 돈이 없이는 모방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생산성으로 점철된 야망계급의 여가, 그리고 과시적 생산
4장과 5장은 야망계급의 여가와 소비가 어떻게 특권을 은폐하며 그것을 일종의 도덕 문제로 만드는지를 살펴보는 부분이다. 과거 베블런은 과시적 유한을 ‘비생산적인’ 시간이라고 정의했지만 저자는 오늘날 야망계급의 과시적 유한이 생산성으로 점철돼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지점에서 4장 ‘모성은 어떻게 과시적 유한이 되었나’는 양육의 여러 측면을 과시적 유한의 새로운 통로로서 이야기한다. 야망계급의 부모는 양육을 일종의 발달 프로젝트로 접근하며 똑같은 시간을 비생산적인 여가에 쓰는 대신 자녀의 미래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실천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오늘날 일정한 방식의 출산과 양육, 예를 들어 가정분만이나 모유 수유라는 선택은 언뜻 가치관에 따른 선택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돈) 및 문화자본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이는 계급 재생산으로도 이어진다.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의 경험을 아우르며 자신을 포함한 야망계급의 양육이 ‘옳은’ 방식을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계급적 실천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인다.
저자는 과시적 유한의 대표적 예시로 양육을 서술하지만, 일과 삶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생산성’은 양육을 넘어서까지도 확장된다고 말한다. 베블런의 시대에 과시적 여가의 기관으로 여겨졌던 대학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고, 배움은 품행이나 박식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을 생산성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21세기의 엘리트들은 사회적 위치를 암시하는 새로운 과시적 여가를 찾아냈고, 양육과 함께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는 운동을 이야기한다. 디자이너 운동복이 과시적 여가의 물질적 상징이 되고, 여가시간이 자기계발의 기회로 흡수되는 상황은 야망계급의 문화적 규범이 전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21세기의 과시적 여가를 둘러싼 신화가 시간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배적 사회계급이 누리는 사치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저자는 풍요와 정보의 특권이 대량생산에 대한 반발과 만나며 불러일으킨 변화로 과시적 생산을 서술한다. 과시적 생산으로 만들어진 재화는 야망계급 소비의 핵심 영역이다. 지식과 사회적ㆍ환경적 의식을 중요시 여기는 야망계급에게 우리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것 그 자체이며, 이에 따라 많은 재화의 불투명한 생산과정이 매 단계에서 투명성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스페셜티 커피의 부상으로, 커피 수확에서부터 추출에 이르기까지 매 단계의 과정을 꼼꼼하게 관리하며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희소성을 만들어내는 이 산업은 미국의 ‘3대 스페셜티 커피’로 손꼽히는 곳이자 최근 한국 서촌에 글로벌 1호점을 열기도 한 인텔리젠시아, 유기농 식품만을 취급하는 홀푸드마켓의 성공 사례 등으로 매우 생생하게 서술된다.
‘소비의 풍경’이 된 도시와 야망계급
6장 ‘도시와 야망계급’은 도시를 통해 야망계급 및 이들의 소비 양상의 지형도를 그려보는 장이다. ‘소비의 풍경’이 된 21세기 도시는 야망계급의 다양한 구별짓기 소비 실천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나 부유한 야망계급 성원들의 중심점이 되는 뉴욕,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의 소비 양상을 세세히 살펴봄으로써 저자는 21세기 야망계급과 이 계급의 독특한 생활 방식을 규정하는 지역으로서 도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소비 양상을 살펴보면 대도시는 평범한 소도시와 다른 것만큼이나 각 도시들끼리도 매우 다른 차이점을 보인다. 과거 많은 연구가 ‘도시’를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서 이해하고자 시도했지만, 소비 양상을 통해 살펴보면 마치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각 도시는 매우 다르다. 저자는 사람들이 먹는 것, 마시는 것, 사는 공간에 대한 소비 양상을 통해 도시 간 차이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도시에서만 이뤄지는 사치, 도시에만 존재하는 편의시설 등을 서술하며 오늘날 불평등과 계급 구분을 강화하고 있는 도시의 현실을 드러낸다.
달라진 소비문화는 어떻게 불평등을 은폐하고 강화하는가?
저자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단순한 과시적 소비 대신 과시적 생산, 과시적 여가, 비과시적 소비에 참여하는 야망계급의 소비문화가 과거 유한계급의 물질적 재화 소비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심각하게 계급 격차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은수저를 사거나 긴 휴가를 가는 대신 교육과 건강, 은퇴, 양육에 쏟는 투자는 어떤 물질적 재화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급을 구분짓고 나아가 계급 재생산을 보장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가 아니라 전례가 없는 심대한 문화적 격차라고 지적하며, 양육, 지식, 환경 의식 등 모호한 규범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에도 그 이면에 경제적 위치가 자리한다는 사실과, 상징적 경계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을 가리킨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야망계급의 반대편에 자리하는 미국 중간계급의 현 상태를 서술하는데, 야망계급이 그토록 열망하는 비과시적 소비를 이들은 감당할 여력이 없다. 오늘날 중간계급의 현실이란 대규모 실업, 주택 가격 하락, 임금 정체를 맞닥뜨리고 있으며 비과시적 소비는커녕 물질적 버전의 만족스러운 삶을 구입하는 것도 훨씬 더 어려워졌다. 삶의 질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 예컨대 교육, 의료, 육아, 대학교 학비 등은 텔레비전이나 미니밴처럼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들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오늘날 야망계급의 가장 부유한 성원들은 여기에 지출함으로써 다른 모든 이들과의 격차를 한층 더 확대한다.
충분히 가치 있어 보이는 야망계급의 소비 실천조차 실제로는 사회적ㆍ경제적 계급을 가로지르며 파괴적인 내집단/외집단 구분을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비는 사람들이 자신을 구별짓고 정체성을 표현하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양한 형태의 소비는 계급 구분선을 보여주는 명확한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지위 표지로서의 소비가 특히 유해한 것은 그것이 사실은 경제적 제약이나 자유에 관한 것임에도 도덕적 선택처럼 여겨진다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그로 인해 불평등은 은폐된다. 양육과 문화 지식, 음식 선택 등은 개인의 취향이나 도덕으로 포장되곤 하지만 사실 대부분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른 선택이다. 모유 수유를 하고,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고, 주 3회 이상 개인 강습을 받으며 운동을 하고, 유기농 식품으로 장바구니를 채우는 건 단순히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다. 《야망계급론》은 이런 소비 실천이 사회의 절대다수에게 선택지조차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야망계급의 성원 여부를 떠나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소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 차례
1장 유한계급의 침식, 야망계급의 등장
2장 21세기의 과시적 소비
3장 비과시적 소비와 새로운 엘리트들
4장 모성은 어떻게 과시적 유한이 되었나
5장 투명함의 가치, 과시적 생산
6장 도시와 야망계급
7장 달라진 소비문화와 심화되는 불평등
감사의 말
부록: 소비자지출조사 데이터 분석
주
참고문헌
■ 해외매체 서평
★ 커리드핼킷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과거의 귀족들이 대대로 영지와 작위를 물려준 것과 똑같이 유해한 방식으로 야망계급의 성원들도 자녀에게 특권을 물려준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입증한다. ―《타임스》
★ 소득 불평등의 현 상황에 관해 제대로 알려준다. ―《퍼블리셔스위클리》
★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인의 소비 습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한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 ―《이코노미스트》
★ 탄탄하다. …… 커리드핼킷은 물질적 소비와 부의 과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희귀한 정보를 가진 이들만 접근할 수 있는 관습을 만드는 식으로 계급 장벽이 세워진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
■ 본문에서
사회와 경제에서 벌어지는 이런 온갖 다양한 변화는 21세기의 지위 획득과 소비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며 이를 변화시키고 있다. 오늘날 소비는 어떤 모습이며, 지난 수십 년간 소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우리의 성별, 인종, 직업, 거주지 등은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오늘날 누구나 비교적 공평하게 물질적 재화를 획득할 수 있다면, 부유한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만약 베블런이 21세기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뭐라고 말할까? 이 책은 이런 변화들, 그리고 이 변화들이 우리가 돈과 시간을 쓰는 데, 이런저런 방법으로 우리의 지위를 드러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룬다. (20~21쪽)
이 새로운, 지배적인 엘리트 문화집단을 아주 간단하게 야망계급(aspirational class)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들의 상징적 지위는 간혹 물질적 재화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지식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문화적 기표들—디너파티에서 신문 칼럼을 놓고 나누는 대화, 정치적 견해와 그린피스 지지를 나타내는 범퍼 스티커,농민 직거래 시장에서 장보기 등—을 통해 드러난다. 이런 행동과 기표들은 야망계급의 가치관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런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 또한 넌지시 드러내준다. 오늘날의 야망계급은 커리어에서부터 식품점에서 구입하는 식빵 종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선택을 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데서 가치관과 문화적·사회적 의식, 지식 습득을 소중히 여긴다. 이들은 크고 작은 온갖 선택을 할 때마다 자신이 사실에 근거해(유기농 식품, 모유 수유, 전기차 등의 장점에 관해) 올바르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결정이 식견 있는 것이며 정당하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요컨대 베블런의 유한계급이나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보보스(bobos)’[보헤미안 부르주아(bohemian bourgeois).—옮긴이]와 달리, 이 새로운 엘리트는 경제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야망계급은 특정한 가치관과 지식 습득에 기반한 집단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을 얻는 데 필요한 희소한 사회적·문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40~41쪽)
이 책에서 나는 주로 21세기 야망계급의 습관과 규범, 소비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문화집단은 그 이전의 문화집단 없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야망계급이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미국인 일반이 어떻게 소비하는지, 그리고 이런 소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모든 집단이 그렇듯, 야망계급으로서의 인식도 일부는 차별화로, 일부는 동화로 이루어지며, 종종 두 가지가 한꺼번에 나타난다. 이 장에서는 소득수준 전반에 걸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국인들이 어떻게 소비해왔는지, 그리고 이런 소비 습관에 인종과 성별, 직업, 위치, 소득수준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21세기 미국의 소비문화라는 폭넓은 맥락의 일부로 야망계급의 습관과 실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4~55쪽)
마찬가지로, 21세기에 사회적 지위는 단순히 자동차나 시계뿐만 아니라 접근하기 어려운 기회와 정보, 투자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야망계급에게 이런 기표들은 내가 ‘비과시적 소비’라고 부르는 것, 즉 알 만한 이들에게만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더 미묘하고 덜 물질주의적인 형식이다. 때로 이런 소비 선택은 아예 지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든 사람이 구매하는 재화 가운데 가장 고가의 제품이든 자녀의 삶의 기회에 대한 투자든 간에 이 새로운 형태의 비과시적 소비는 삶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복지(지적인 복지든 신체적 복지든)를 개선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 엘리트들(문화적으로 부유한 야망계급과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 모두)의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비과시적 소비는 자신과 자녀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공고히 한다. (92쪽)
야망계급이 볼 때 우리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것 그 자체이며, 이 때문에 일부 재화의 불투명한 생산과정은 매 단계에서 투명성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 투명성은 단지 더 많은 문화적 가치를 더하는 게 아니다—투명성 자체가 가치다. 우리는 농민 직거래 시장에서 더 작고 못생긴 사과를 사 먹는다. 직접 농부를 만났고, 그가 과일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뿌리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리넨 셔츠에 3배 많은 값을 치른다. 이 셔츠를 파는 가게 주인이 직접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 어딘가에 있는 작은 가게로 출장을 가서 재단사(그리고 그의 자녀)를 만나고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레틴A크림 대신 유기농 코코넛 오일을 듬뿍 바르며, 식당 앞 투박한 입간판에 분필로 원산지 목장을 적어놓은 레스토랑에서 20달러나 하는 맥앤치즈를 사 먹는다. 마크 그라이프가 《모든 것에 반대한다》에서 말한 것처럼, “맛대가리 없는 슈퍼마켓 토마토를 먹는 건 정말 ‘멋대가리 없는’ 짓이다. 그러나 똑같이 맛없고 물만 많은 토마토라도 그게 토종 토마토라면 ‘진짜’ 맛이 된다”. 새롭게 구성되는 경제 및 문화 시스템에서 과시적 지위 표지의 핵심은 소비가 아닌 생산에 있다. 이것이 바로 할리우드의 성공한 시나리오작가와 실업자 힙스터를 같은 카페에서 보게 되는 이유다. 수백 년간 정반대에서 대립한 끝에 마침내 야망계급으로 한데 뭉친 이 두 집단은 똑같은 물건을 원하고 높이 평가한다. (204~205쪽)
■ 지은이 소개
지은이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Elizabeth Currid-Halkett)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도시·지역계획학 제임스 어바인 석좌교수이자 공공정책학 교수. 구겐하임 펠로십을 수상한 그의 연구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뉴요커》 등 수많은 언론에서 소개되었다. 저서로 《간과된 미국인: 미국 농촌의 회복력은 무엇을 말하는가(The Overlooked Americans: The Resilience of Rural America and What It Means For Our Country)》(2023), 《스타스트럭: 셀러브리티 산업(Starstruck: The Business of Celebrity)》(2011), 《워홀 경제: 패션과 미술, 음악은 뉴욕을 어떻게 움직이는가(The Warhol Economy: How Fashion, Art, and Music Drive New York City)》(2007)가 있다. 현재 남편, 두 아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웹사이트: http://elizabethcurridhalkett.com/
옮긴이 유강은
국제 문제 전문 번역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미국의 반지성주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능력주의》,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