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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면적 6만2692㎡, 연면적 8만6574.7㎡, 지하 3층 ~ 지상 4층인 이 건물은 여러모로 기존 건축에 대한 상식을 깬다.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라 부르는 이 건물 어디를 둘러봐도 직선을 찾을 수 없다. 외관이나 내부나 유려한 곡선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다. 이 건물에는 똑바로 서 있는 벽이 하나도 없고, 외장재로 쓰인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 중 하나도 같은 게 없다고 한다. 내부에 들어서니 층고가 20여m에 이르고 기둥 하나 없이 탁 트인 공간이나 길이가 533m에 이르는 복도인 ‘디자인 둘레길’이 광활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면서도 흰색 석고보드로 마감한 유려한 곡선의 실내가 고래 뱃속에 들어온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자아낸다. 곡선으로 굽은 길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복도에서 자연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모두 기존 건축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느낌이다.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빠르게 이동하려면 지하 2층에서 지상 4층까지 연결된 계단을 이용하면 되는데, 이 역시 유선형의 리듬이 감탄을 자아낸다.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출신 건축가로, 1950년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1977년 영국의 건축명문 AA를 졸업했다. 지나칠 정도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오랜 시간 ‘건축물 없는 건축가’로 남아 있던 그는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하는 등 세계 건축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2007년 국제지명초청 현상설계에서 ‘환유의 풍경’이란 주제로 당선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도 그의 건축적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의 디자인은 그러나 새로운 건축공법과 탄탄한 시공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메가 트러스(Mega-Truss, 초대형 지붕 트러스),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 3차원 배열) 구조를 적용해 실내에 기둥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기존의 평면 설계방식이 아닌 3D 설계방식을 적용해 정교한 곡선을 구현해냈다. 다양한 비정형 노출 콘크리트를 건물 내-외부에 도입한 것도 눈길을 끈다. 자하 하디드의 독특한 디자인과 이를 구현해낸 우리나라의 건축기술에 모두 감탄하게 된다.
5개 시설, 15개 공간 알림터(4953.48㎡) - 창조적 생각과 비즈니스가 만나는 곳. 국제회의, 연회, 페스티벌, 신제품 발표회, 패션위크 등 개최 장소 - 알림1관(1500석), 알림2관(1000석), 국제회의장(200석) 배움터(7928.49㎡) - 한국의 디자인 창조원형과 세계의 트렌드가 만나는 곳 - 디자인박물관, 디자인전시관, 디자인둘레길, 박물관카페, 국내 최초 STEAM(융합인재교육) 어린이체험놀이터 살림터(8206.08㎡) - 디자인 트렌드와 정보의 공유, 소통과 비즈니스의 장 - 살림 1관, 살림 2관, 잔디사랑방, 디자인나눔관 디자인장터 - 24시간 개방되는 문화 콘텐츠, 체험, 숍인숍이 결합된 복합편집형 매장 동대문역사문화공원(4110.60㎡) - 이벤트와 문화행사가 이루어지는 휴식공간 - 동대문역사관1398,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이간수전시장, 갤러리 門, 8거리 |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경기대회가 열렸던 역사적 장소
그러나 이곳의 역사성과 지리적 위치에 부합하는 건물일까를 생각할 때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선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경기장이 있었던 곳이다. 1925년 일제가 이곳에 운동장을 만든 후 1929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경기대회인 전조선경기대회가 열렸고, 1959년 부속 야구장이 건립된 후에는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아마추어 야구의 성지가 됐다. 그러나 1984년 잠실종합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위상이 추락했고, 2000년 축구장, 2007년 야구장이 문을 닫았다. 풍물시장과 주차장으로 전락한 이곳을 공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이 추진된 것. 그러나 공사를 앞두고 오랜 역사를 지닌 운동장 철거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는데, 운동장을 들어내자 123m에 달하는 동대문~광희문 구간의 성벽, 성 밖으로 물을 내보내던 이간수문(二間水門) 등 이곳의 역사를 품은 유적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논란은 커졌다.
자하 하디드의 개성이 두드러진 기념비적인 건물이 주변 환경과 어울리느냐는 논란도 계속됐다. 이제 논란을 뒤로하고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서울시민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울시민이 새로운 건축경험을 하고, ‘이 기묘한 건축물이 지역적 특성과 어울리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건축문화의 대중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디자인’과 ‘창조 산업의 장’이다. 총 5개 시설, 15개 공간이 들어서는데, 디자인 이슈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의 홍보팀 배인혜씨는 “새벽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주변 상권과 연계될 수 있도록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시설 중 일부와 공원을 24시간 개방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주변 상권으로 유입되고, 주변 상권을 찾은 사람들이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면서 이 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설명이다. 자하 하디드 역시 “이른 새벽부터 밤이 저물 때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동대문의 역동성에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간송문화재단과 3년간 공동기획전 개최협약을 맺고 개관전으로 <간송문화전>을 개최한다. 한국 디자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80여 점의 국보급 유물이 전시된다. 1년에 두 차례 딱 2주씩만 개방하던 간송미술관이 76년 만에 외부에서 전시하는 것으로 관심을 끈다.
간송미술관의 유물을 보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는 건축뿐 아니라 요트, 와인병 등 전방위 디자이너로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하 하디드전>, 동대문운동장 자리라는 역사성과 패션시장에 둘러싸여 있다는 장소성을 살린 < 디자인 스포츠전> 등도 개관전으로 열리고,
제28회 서울패션위크도 3월 22~27일 이곳에서 열린다.
서울패션위크는 지난 14년간 국내 디자이너뿐 아니라 아시아 신진 디자이너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역사성과 공간 특성을 살려 명소화하는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조선시대 삶과 동대문운동장의 추억을 담은 역사자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독특한 구조를 바탕으로 한 공간자원, 이 건물의 뛰어난 상상력과 건축기술, 신진 디자이너의 창조적인 디자인 상품을 보여주는 창조자원 등 3개 분야로 나눠 명소 60곳을 선정하는 작업. 서울디자인재단은 서울성곽과 성 밖으로 물을 내보내던 이간수문, 조선시대 왕의 호위를 맡았던 하도감터, 한국 최초의 신식군대였던 별기군이 훈련했던 장소, 동대문운동장 시절 사용했던 조명탑 등을 역사자원 후보지로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