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raise me up
梁泰龍(나를 찾는 論語여행 저자)
37년 동안 몸 담았던 조직에서 나왔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 22일간의 여정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건너편 가게의 간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국어사전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④번 항목에 시선이 머문다. “‘얼굴, 생김새’를 속되게 이르는 말 -간판은 훤한데 속은 개차반이야” 풀이와 예시까지 제시하고 있다. 참 얼굴값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직책에 맞게 행동해야 하고 처해진 위치에서 처신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자유인이다. 간판을 내려놓으니 한결 어깨가 가볍다. 여행의 명분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 곁을 지켜준 사람에 대한 보답과 이어도離於島의 중요성을 알리는 애국운동이다. 여행의 대강은 이렇다. 제주 올레 길을 걷는다. 주요 지점에서 이어도 홍보 현수막-해양주권이어도를 지키자-을 펼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어도를 알리는 것이다. 아울러 남는 시간은 주변 관광을 하는 것으로. 시간절약을 위해 숙소를 제주시내, 서귀포 화순 그리고 표선지역으로 이동하며 1주 씩 살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새벽에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왔다. 열심히 달려 완도항에 도착했다. 예정된 배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하여 주변 공원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육지에서 바다는 새로움이다. 마치 37년 입었던 옷을 번지듯. 내 가방에는 김시습 평전 한 권이 들어있다. 불현 듯 김시습 처럼 살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다. 김시습은 외모도 볼품없고 성격도 매몰찼고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이제 조금은 나 자신에게 거만하게 살고 싶다. 제주항에 내리자마자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흑돼지식당으로 향했다. 자글자글 삼겹살은 노랗게 익어간다. 젓갈에 찍어 한 쌈 삼킨다. 자유와 여유 그 언저리에서 이제 <나는 탐라국의 왕족이다>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탐라국은 3신(梁을라,高을라,夫을라)이 세웠기에 분명 나는 왕족이다. 일행 중 한 명은 반기를 든다. 나의 답은 무지한 탓이로다. 도본무명道本無名-도란 이름 할 수 없는 것-아니던가. <중용>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으로 시작한다. 하늘의 명령은 본성대로 살라는 것이다. 性(마음) 相(물질) 體(형상)가 정제되고 절제된 것이 아닌 그냥 이대로 면 어떤가. 수염도 기르고 속박 없는 자유를 찾고 싶다. 이런 생각 속에 올레길의 여정을 시작한다.
올레길 19.20코스; 하도-김녕-조천. 김녕 해수욕장 인근 까페에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현명한 사람인가. 일상이 심심할 때 간을 맞추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는 이면에 “돈 많이 있나보네” 라며 조롱하는 면도 있다. 인생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필요한 곳에 집중하고 중요하지 않는 곳에 비중을 두지 않는 안빈낙도의 의미를 새기며 나는 그대를 조롱한다. 행원포구. 광해군 기착비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한 컷 찍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이름하여 광해우光海雨-1641년의 제주는 극심한 가뭄을 겪던 중 광해가 생을 마감하자 많은 비가 내려 지독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칭함- 광해의 아픔. 애환을 잠시 생각해 본다. 유배 중 모욕을 당하면서도 독살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한 여름에도 펄펄 끓인 물만 마셨다고 한다. 당파싸움의 피해자. 광해여! 편히 잠드소서. 저녁은 제주 시내로 들어와 귀아낭이란 식당에 들러 돼지 국밥으로 해결한다. 귀아낭의 의미는 제주도의 6대 명당 양택 중 제 1의 길지란다. 손님들의 면면을 보니 지역사람들이다. 출입자 명부에 주소를 ‘서울’ 이라고 적으니 주인은 긴장하는 눈치다. 답변 또한 투박하다. 음식이 나왔다. 내용물을 보니 돼지 부속이 아닌 원재료를 쓰고 있다. 냄새가 없고 국물이 진하다. 몸에 온기가 도니 보양식임에는 틀림없다.
올레길 17.18코스; 조천-원도심-광령. 제주도는 외세의 침범이 잦았기에 곳곳마다 연대-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가 있다. 조천연대에 올라 바다를 조망해 본다. 머리에 응어리진 것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좌측으로 작은 까페가 하나 있으나 문을 닫았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옆에는 나무 한그루가 꺾어진 형태로 바람의 저항을 받으며 서 있다. 모진 세파를 이런 때 쓰는가. 성상근 습상원性相近 習相遠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무란 본디 태양을 보고 곧게 뻗어서 자라나는 것이 본성인데 거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니 꺾어진 형태로 자라나고 그 모습은 습성과 반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도 본디 태어날 때는 서로 비슷한 성품을 지니나 자라면서 습관에 의해 제각각이듯. 조천리 일대는 마을 자체가 제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우물, 목욕탕. 불턱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한 켠에는 유배된 선비가 행여나 임금이 불러줄까 학수고대하며 한양을 바라보았던 조록나무 기둥의 연북정이 말없이 서 있다. 조록나무는 나무결이 석류알 처럼 총총하여 단단하다. 임금을 향한 마음 굳건히 지키고 싶은 마음의 반영일까. 마을을 돌아 다시 얼마를 걷다보니 가게 유리창에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는 문구가 보인다. 생활인으로 살면서 불필요한 근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근심이라는 단어가 ‘일어나지 않을 현실에 대한 가짜 증거’-걱정의 95%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통계-가 아니던가. 제주 원도심으로 진입하여 보말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한다. 주인아줌마는 무뚝뚝하나 맛은 일품이다. 국물을 버섯으로 우려내고 보말과 감태를 풀어 넣어 걸쭉하고 담백하다. 대식가를 위해 보리밥도 제공하고 있다. 찬으로 나온 무말랭이 짱아치도 부드럽고 쫄깃하다. 도심의 사라봉은 제주시민들의 휴식처다. 50대로 보이는 부부가 산을 올라가고 있다. 부인은 씩씩하고 발걸음이 가벼운데 남편은 발걸음이 무겁고 숨소리가 거칠다. 숲속을 보니 열대림과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자라기에 군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기후조건 가리지 않고 자라는 게 소나무다. 열대목과 공생하는 모습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생각한다. 조화를 이루되 결코 하향 평준화를 이루지 않는 모습. 이래서 군자라고 칭하는 가 보다. 저녁이 되자 제주 도심의 누웨거리로 이동하여 몇 군데 살피다 고등어벙커로 들어섰다.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일행 중 한 사람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걷는 거리가 길어지고 체력소모가 많아 힘들다는 것이다. 일정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걷는 거리를 조정하기로 했다. 마음의 화합을 이루어서 인지 고등어조림은 맛이 일품이다. 밑에 무를 잔뜩 깔고 양념이 잘 배여 술술 넘어간다. 추가하여 대방어가 나오자 막걸리 잔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푸른 뚜껑의 제주 막걸리는 유산균 덩어리로 목 넘기는 즐거움이 있다.
올레길 15.16코스 ; 광령-고내-한림. 애월항을 지나 곽지리에 들어서니 진눈개비로 시작한 눈은 순식간에 폭설이 되었다. 바람은 강풍을 넘어 광풍狂風이 되어 몰아친다. 한림의 오일장터는 텅 비어있고 잘 자란 자색의 양배추는 구멍이 송송 나기 시작한다. 길 가의 소나무는 본의 아니게 백송이 되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눈비를 피해 식당으로 들어서니 상호가 우니담이다. 주인장은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상호의 의미를 물으니 우리보고 처음인가 되묻고는 ‘바다를 담은 성게’란다. 성게 미역국에 전복, 옥돔으로 상을 차렸다. 옆 테이블에는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욕망을 말한다. 고내해변은 이국적인 풍광을 드러내고 있다. 해변에는 최초의 고기잡이 배인 테우 모형이 있다. 테우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으로 한라산 일대에 자생하는 구상나무를 재료로 하는 무동력선이다. 협재 해수욕장 가는 길에 이색간판 ‘월령작야月令昨夜’가 눈에 들어온다. 달은 어제 밤에 네게 있었던 일을 묻고 있는 듯하다. 어김없이 이 가게도 코로나19의 파고를 넘지 못하는가보다. 괴오름을 향해 가는 길. 눈이 제법 쌓였다. 승용차 한 대가 고랑에 쳐 박혀 있다. 순간 불안해 지기 시작한다. 속도를 늦추고 이동하는데 목장에는 말 한 마리가 머리를 숙이고 멍하게 서있다.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어느새 백석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떠올린다. 가난한 시인은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산골로 가 오두막 짓고 살고 싶다고. 나탸샤는 먼 훗날 천억을 기부하면서 사회를 향해 내 뱉는다. “거금 천억이 아니라 백석 시인의 시 한줄 만 못하다.”고. 시란, 시인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내게는 시 한 줄 표현 할 능력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동문시장-삼성혈-용두암 57년만의 폭설이란다. 하늘 길, 바다 길. 제주로 들어오는 길이 모두 막혔다. 눈비가 와도 폭풍이 몰아쳐도 여행은 계속된다. 계획에도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목적지는 없다. 무조건 바다를 향해서 가자. 이내 신발에 물기가 촉촉하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 할 때 즐겨 암송한 ‘야설野雪’이란 시를 읊는다. 오랑캐처럼 난잡하게 걷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기에 광복의 날을 하루라도 앞당겨졌을 것이리라. 나는 오늘도 뚜벅뚜벅 걷는다. 이어도를 알리기 위해 ‘해양주권 이어도를 지키자’는 깃발을 들고. 좁은 영토의 대한민국.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야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의 보고는 이어도를 지키는 길 밖에 없다. 어느 듯 배가 출출하다. 동문시장에 들어서서 회 한 접시로 끼니를 해결한다. 탐라국의 발상지 삼성혈에 도착했다. 제법 눈이 쌓이고 소나무는 하얗게 분장을 하고 백송으로 변신했다. 삼성혈, 삼성전, 삼사석,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동해 벽랑국의 3공주는 오곡의 종자와 가축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전한다. 통치자는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으뜸이다. 재난소득, 기본소득제, 이익공유제가 뭔지 모르지만 국민적 합의를 거쳐 두루 잘 살고 복지사각지대가 없었으면 좋겠다.
올레14.14-1코스; 한림-저지-서광 눈은 계속 내린다. 길은 엉망진창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오설록에 도착한다. 녹차 밭은 온통 눈으로 덮혔다. 설록이 이름값을 한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차를 좋아했던 다산과 추사 그리고 초의선사에 대해서 소개 글이 있다. 소인들은 술이 교제수단이다. 다산과 추사는 차가 교제수단인 셈이다. 필자도 한때 차를 마신 적이 있지만 왠지 밋밋했다. 차를 마시면 마음의 중심이 가라앉고 술을 마시면 열기가 머리로 치솟아 마음의 안정을 찾기에는 차가 제격인 셈이다. 저지오름을 향해서 발길을 옮긴다. 산을 휘돌아가는 길. 한 참을 걸었는데도 길은 쌓인 눈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길을 개척하기 위해 눈밭을 뒤적이다 겨우 찾았다. 어렵사리 정상에 오르니 분화구의 깊이가 엄청나다. 산과 바다를 조망하는 오름에 오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오름을 소재로 하는 화가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오름에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오시라”는 답변이 왔다. 예술가가 느끼는 오르가즘은 뭘까.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안내하는 여성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가 추사 김정희로 옮겨갔다. 몇 마디 던졌더니 대화가 진지하게 진행된다. 세한도가 길이길이 전해질 줄이야. 모든 일에는 이야기 거리가 중요하다. 제자 이상적의 의리가 아니었더라면 한 점의 문인화로 묻혔을 것이다. 수선화를 좋아했던 추사. 고결하고 자존심 강한 수선화처럼 살고 싶었던 것일까.
올레12,13코스: 저지-용수-무릉 옹포리는 지형이 ‘항아리’와 같다는 뜻에서 옹포리瓮浦里다. 항몽항쟁을 주도했던 고려장군 김통정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들어왔던 곳. 제주도는 전체가 저항의 역사고 투쟁의 역사다. 청소년들에게 안보의식 고취와 역사교육에 최적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교직에 있는 친구는 수학여행 코스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한다. 옹포리의 방사탑. 사악한 기운을 막아낸다는 의미다. 지역에서 기가 허한 곳이라 이곳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옛날은 맹목적으로 신을 믿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바닷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래사장은 그냥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금능해변의 하얀 모래사장 옆으로 야자수 나무가 즐비하여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착각하게 만든다. 포구의 해변에 있는 가게는 세월이 다 되어가는 듯하다. 세월이 있다는 것은 좋은 시절로 가게가 성업을 이루는 시기다.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00’s음식’이라는 간판은 이름값도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썰렁하기까지 하다. 이런 곳에서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는 더욱 처량하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힘이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아름답게 보고 만족하면서 살아야지. 상호 ‘훤日日-밝은 나날’-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처럼 밝은 나날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계속되는 해변로는 경관이 아름다워 걷거나 자전거타기에 적합한 곳이다. 걸을수록 마음은 한결 가볍다. 퇴직과 함께 선택한 여행지 제주도는 그냥 유토피아다. 신창해변에는 유난히 풍차가 많다. 바람이 많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청량한 하늘인데도 풍차는 돌고 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차귀도 해변의 식당에 들어섰다. 서툰 글씨체의 표구가 눈에 들어온다. 안중근의사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을 ‘일일불음주 구중생형극一日不飮酒 口中生荊棘’으로 바꿔치기해서 붙여 놓았다. 주인장이 술을 꽤 즐기는 모양이다. 본래 고향은 부산인데 제주로 와서 사업을 하고 있다. 시간 날 때 마다 붓을 든다니 좋은 취미를 가진 셈이다. 용수포구에는 절부암이 있고 마을 가운데 큰 성당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기착지라 성역화 한 곳이다.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배가 반파된 상태로 도착한 곳이라지만 포구는 고요하기만 하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추사 유배지에 도착한다. 관람할 만한 곳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은광연세恩廣衍世의문당疑問堂일로향실一爐香室등 글자가 새겨진 간판만 덩그러니 서 있다. 잘 나가던 선비가 이곳 제주에서 8년8개월을 유배 생활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는 분노하지 않고 세한연후지송백후조歲寒然後知松栢後彫의 글귀를 새기면서 수양했고 제자 이상적은 중국에서 귀한 서적을 구해 보냈던 것이다. 이익 앞에 신의를 헌 신짝 버리듯 하는 물질만능의 세태에 귀감이 되는 내용이라 국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올레10,11코스; 무릉-모슬포-화순 진눈개비 나리는 아침은 을씨년스럽다. 모슬봉을 향해 가는데 공군원사가 나와서 투박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군사보호구역이라며 진입을 저지한다. 모슬봉 표지를 바라만 보고 방향을 바꿔 내려오는데 마주친 곳은 공동묘지다. 낮은 봉분에 돌담으로 에워싸고 있다. 기상 탓일까 착잡錯雜하다. 하모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바람도 잠잠하고 걷기도 편하다. 해변에는 말 가족 동상이 있다. 마음에 평온을 찾을까 하는데 이제 도착한 곳은 알뜨르 비행장. 일본군이 비행장으로 건설하고 요새화하면서 주민을 착취했던 곳. 비행장내 격납고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리본이 달려 있다.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비행장 입구에는 9m의 거대한 소녀가 파랑새를 들고 있다. 소녀와 새. 화해와 용서 그리고 평화를 의미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평화를 부르짖기 전에 제대로 된 일본의 반성이 전제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원수를 덕으로 갚을까요. 제자의 물음에 공자는 말한다. “원수는 원칙으로 대응하고 덕은 덕으로 갚으라”고. 송악산으로 가는 길.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입구에 도착하니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곳 또한 전장의 상처가 남아 있다. 군데군데 동굴진지가 당시의 상황을 말해 준다. 전쟁의 상처와 피해를 생각하니 머리가 무겁다. 바다가운데 형제바위의 모습은 마치 쌀 한 섬을 두고 형 먼저 아우먼저 하며 서로 양보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용머리해변은 걷기에 최적이다. 흑갈색의 바위는 태초의 모습이다. 앞에는 산방산이 우뚝 솟아 제주남쪽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보문사로 들어서니 그대는 누구인가? 라는 하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고집스런 나, 조고각하照顧脚下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산방산을 내려오니 까페가 해변에 꽤 넓은 터를 확보하고 있다. One&only. 최고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리가 최고지 커피 맛이 최고일까? 경관에 취해 사람들은 인증사진 찍기에 바쁘다.
올레10-1코스; 가파도-마라도 가파도 가는 배를 놓치고 마라도부터 걷기 시작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최남단 섬. 제주도를 여행할 때 마라도에 입도하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는 기상이 좋았다. 탐방객들은 하나라도 더 보기위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상인들은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최남선 선생의 한국해양사를 인용한 ‘누가 한국을 구원할 것인가?’ 해양(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껏 이어도 사랑 홍보활동을 했지만 사진으로만 봐온 이어도. 모형도를 보는 순간 이어도 현장에 도착한 기분이라 너무나 기뻤다. 환호하고 사진 한 컷을 찍었다. 얼마를 지나 유난히도 빨간 우체통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느린 우체통. 마음으로 느린 편지를 붙여본다. 애월항의 어느 까페에서 본 문구. “하얀 종이배에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낼게. 어느 날, 너의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종이배가 도착한 거야” 가슴이 두근거릴 친구가 있다면 사랑을 한다는 거지. 마라도를 나와 모슬봉 인근의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도니장어’로 들어갔다. 돼지찌개와 장어탕. 흑돼지와 장어가 제대로 들어갔다.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보고 싶다. 가장 키 작은 섬, 해발 20.5미터의 가파도. 골목길에는 벽화가 있다. 자리돔 잡이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1960년대 이전에는 통나무와 대로 엮어서 만든 테우, 1960~70년대는 부속선 없이 작은 그물로 잡은 마르바리, 70년대 이후 현재는 부속선 2척으로 큰 그물을 설치하여 잡는 요새바리. 인간의 두뇌는 시대에 따라 발전해 왔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인간의 욕구는 기술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가파도의 풍수지리는 유어농파사격遊漁弄波沙格-물고기가 파도를 타고 노는 격-이다. 눈앞에 보이는 무덤은 육지의 것과는 다르다. 4방으로 돌을 쌓았고 봉분이 낮다. 예전의 제주도는 별다른 장례절차 없이 풀밭에 시체를 갖다버렸다고 한다. 매장문화는 세종 때 제주목사 기건奇虔이 부임하면서 생겼다. 외곽을 돌아 봉우리 근처에 몽골가옥인 게르가 있고 입구에는 소망을 적은 리본이 가득 달려있다. 하나 적어 본다. “그냥 이대로” 이 나이에 무엇을 바라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야지. 몇 년 전 같이 근무하던 젊은 친구에게 물었다 너의 꿈이 뭐냐고. “그냥 평범하게”라는 답이 왔다. 그 답을 나는 환갑이 지나서 알았다.
올레길8.9코스; 화순-대평-월평 화순의 금모래해수욕장은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폭도 좁고 금빛은 찾아볼 수 없다. 월라봉을 넘어면서 동굴진지를 보는 순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솟는다. 작은 체구의 가미가제는 지독한 인간으로 각인된다. 조슨다리-말이 이동하기 좋게 바위를 정으로 쪼아 만든 길-, 몰질-고려시대 말이 다니던 길. 제주지역에 키우던 말을 대평포구에서 원나라로 실어가기 위해 만든 길-이란 팻말을 보면서 수탈의 역사에 가슴이 에린다. 아픈 역사는 뒤로 하고 박수기정을 앞마당으로 군산을 뒷 병풍으로 하고 있는 하얀 집. 그 곳엔 누가 살까. 고급 외제승용차 2대가 주차되어 있다. 대평포구는 조용하고 다이버들이 몇몇이 물질 준비하고 있다. 예래 생태공원, 중문색달 해수욕장을 지나 대포포구에서 회국수로 끼니를 해결한다. 이곳 맛 또한 일품이다.
올레길7-1,7코스; 월평-서귀포터미널-여행자터미널 월평포구. 선교사의 집 앞바다. 너무도 고요하다. 얼마를 걸으니 강정천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강정마을. 군사기지로 뉴스에 등장하는 마을인데 주민들의 외침은 오간데 없고 비닐하우스 단지만 즐비하다. 커피집에 들러 잠시 여유를 찾는다. 이제 법환리로 들어서는데 이곳은 이웃 간의 갈등이 심한 모양이다. 두머니頭面怡물-강정마을과 법환마을의 경계선으로 사소한 이해관계로 충돌할 때 양측 대표가 만나서 화합을 다짐하던 장소-은 이름값 하기 위해 구름도 쉬어가고 파도도 잠든 듯하다. 돔베낭 길은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 최적인 코스다. 추억의 돌담길처럼 정감이 있다. 바다로 나가는 길에 진입금지의 줄이 쳐져 있다. 이상히 여겨 내려가 보니 남자 4명이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저런 망할…. 올레센터본부를 지나 고근산으로 향하고 있다. 삼림욕하는 시민들이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삼림이란 생산자인 식물, 소비자인 동물과 분해자인 미생물이 관계를 설정하며 공존하는 곳. 공존하기 위해서는 제각각의 특성과 능력에 맞게 자라고 번식한다. 자연의 이치나 사람의 이치가 매 한가지다. 태양을 향해 끝없이 치솟는 교목이 있고 그늘아래 조용히 나지막하게 자라는 관목도 있다. 먹이사슬에서 포식자가 있는가 하면 끝없이 도망 다니는 무리도 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분해하면서 관계를 지속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산은 서귀포시민의 쉼터다. 할머니 한 분에게 길을 물으니 한라산부터 올레길 설명과 함께 제주도에 심취되어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엉또폭포 가는 길. 이름도 특이하여 호기심이 생긴다. 다가가니 농장이 있고 중앙에 집 한 채가 있다. 기암절벽과 천연 난대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때 묻지 않았다. 피톤치트, 테르핀을 생각하니 머리가 한결 가볍다. 하지만 폭포는 자취를 감췄다. 농장의 무인 찻집. 찻집은 석가려夕佳廬-해질녁이 아름다운 오두막-라는 이름을 붙어놓고 도연명의 음주5수가 있다. 도연명에 심취한 사람인가 하여 전화를 걸었다. 대화를 꺼리는 것일까 아니면 시 한 구절에 빠진 것일까….
올레길5.6코스; 쇠소깍-여행자센터-남원 이중섭 거리를 걷는다. 소牛와 가족으로 각인된 화가 이중섭. 1951년 서귀포로 피난 와서 1년 정도 산 경험이 있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란다. 거리에는 이중섭을 상업소재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거리 한쪽에 술집상호가 재미있다. 몽리夢裏. 꿈속이라 술에 취해 비몽사몽이 되란 말인가. 주인입장에선 매상을 많이 올리라는 건가. 꿈속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이중섭 공원에 팽나무와 밀감나무는 작가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한 평 남짓한 작은 골방에서 맑고 높은 이상을 간직하며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보아 작품은 공간의 아늑함과는 무관한 것 같다. 어떻게 생각을 짓느냐가 문제지. 방에는 그의 사진과 당시 사용하던 전구와 전기줄이 있고 ‘소의 말’이라는 시가 있다. 소는 그의 자화상이고 가족은 경제적문제로 이별의 아픔이 배여 있지 않나 생각된다. 정방폭포가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진나라 시황제의 사자 서불이 한라산으로 불로초를 캐서 돌아 갈 때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를 새겨놓았단다. 서불공원에는 그 때를 연상하여 황칠나무,오가피,울금,흰민들레,사철쑥,잔대,맥문동,황근,야관문,종가시나무,약용나무와 약초들이 잔뜩 식재되어 있다. 건너편 섶 섬에는 섬지기의 전설이 있다. 빨간 뱀이 용이 되고자 기도를 드렸다. 기도에 감복한 용왕이 섬 동쪽 깊은 바다 속에 숨겨진 야광주를 찾아오면 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랜 노력을 기울였으나 찾지 못하고 10개의 알을 낳고 죽었다. 이를 가엽게 여긴 용왕은 뱀은 섶섬지기로 10개의 알은 섶섬동자로 환생했다고 한다. 제지기 오름. 94.8m의 야트막한 산이다. 보목바다를 내려다본다. 까페의 광고문구가 재미있다. ‘어딘가에 오르다. 무언가를 바라다. 그렇게 오르다 바라는 마음으로 오르바 오르바’ 쇠소깍의 바다는 좁고 길쭉하게 늘어선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룬다. 나룻배를 타는 연인들은 그저 평온할 뿐이다. 위미 동백군락은 우리나라 고유의 동백군락지다. 이 군락은 현맹춘씨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해초를 캐고 품팔이를 하여 모은 돈으로 이 군락지를 일군 것이다. 단지 바람막이용으로 심었으나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관광 상품이 되어 우리를 반긴다.
올레코스 3.4코스; 남원-표선-온평 남원용암포구에서 스탬프를 찍고 올레길 답사에 나선 여자분들과 격려와 응원을 보내면서 이어도 사랑 홍보활동을 하고 출발 했다. 제주도는 가는 곳곳마다 4.3사태 희생자를 기리는 비가 있다. 토산리에는 특이하게 모자상이 있다. 18-40세의 장정은 끌려가서 희생을 당한 아픈 역사에서 슬픔에 잠길 여유도 없었다. 평화공원에서 보았던 목격담. “총을 맞고 한 어멈이 죽었는데 겨울에 아기가 살아가지고 젖을 빨고 있었어요.” 오싹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는데 장성한 아들이 어머니! 하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의 글을 올리고 있다. 고요히 잠든 밤. 별을 바라보면서 한 없이 울고 견뎌낸 어머니는 풀잎에 베일세라 돌부리에 채일 새라 금지옥엽으로 키워주신 것에 감사의 마음이다. 파도소리는 혼령들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진다. 마을까페 고팡을 지나서 마을회관에 들렀다. 사무실 담당자들은 코로나 때문인지 원래 무뚝뚝한지 말 건네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화장실에서 위안을 찾는 문구를 발견한다. “부모 된 사람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 된 자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자신들의 삶이 자식들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공자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너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 ‘I LOVE YOU. 사뭇사랑햄수. 내 인생최고의 날’ 인근 호텔의 풀장,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난대림의 오솔길로 이어지는 소망터널 부둣가는 연인들이 걷기 좋은 길이다. 표선면 세화리로 접어드니 광명등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포구에 들어오는 배를 위해 등대역할을 했다. 옛날에는 광명등을 켜는 사람을 ‘불칙이’라고 했는데 마을에서 나이가 들고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역할을 했다. 직장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늙은 말의 지혜도 있지 않는가. 이곳 사람들은 이 말을 실행했던 것이다. 또뜻노랑 가마리.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자란다는 황근黃槿-노란 무궁화-의 자생지다. 은근과 끈기의 상징이라 우리민족의 근성을 닮아 국화로 지정되어 있다. 표선해수욕장으로 들어선다. 가장 포근하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에머럴드 빛이 층층이 그리고 칸칸이 색을 달리하여 어휘구사의 한계를 느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표선해수욕장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경관과 백사장을 자랑하고 있다. 신풍신천 바다목장. 광활한 대지에 목장은 물빛 바다와 풀빛 초목장의 어울림이다. 짐승들이 살기에 최적이다. 겨울이라 소나 말 한 마리 보이지 않고 감귤껍질만 태양욕(?)을 즐기고 있다. 행인의 입장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달갑지 않다. 저 멀리 3명의 인부는 흰 장화에 가래삽을 들고 감귤껍질이 잘 마르도록 가래질 하고 있다. <맹자>에 솔수이식인率獸而食人-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 먹음-이란 말이 스친다. 혹여 짐승을 몰아 사람 잡는 일은 하지 않겠지. 하도 세상이 뒤숭숭 하니 생각이 여기에 미친다. 신상,온평,신산 환해장성. 이 또한 제주의 뼈아픈 역사와 관련 있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약 120km에 쌓은 석성이다. 고려원종11년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하는 삼별초군이 탐라로 진입하는 몽고군에 저항하기위해 쌓은 성이 시초이다. 이후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활용하였고 현재는 10여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허구한 날 침범으로 피해만 입고 살아온 선조들의 삶이 안타깝다. 이것을 교훈삼아 '이어도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 신산리 일대에는 바다 살리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백화현상-연안 암반지역에 무절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해조류와 어패류가 사라지고 어장이 황폐화되는 것을 방지한 노력. 바다에 해조를 심어 해중림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하는 해중림 조성사업은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고 수산자원의 안정적인 공급과 회복을 도와준다고 한다.
올레코스 1.2코스; 온평-광치기-시흥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정아농원 일대는 태양열 시설이 즐비하다. 돈의 유혹. 농지는 농지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하기야 이것도 제 3자니까 편하게 말하지만 당사자는 돈의 유혹에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김영갑 갤러리. 알만한 지인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천재 사진작가란다. 야외전시장에는 김영갑의 벗 김숙자의 토우작품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홀로 그리고 함께’ 라는 시를 보면서 예술을 하는 그들의 만남은 모든 것이 낯설어 어지러워할 때 선 뜻 손을 내밀어주고 잡아주던 길동무였던 모양이다. 사진작품은 용오름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이곳을 유토피아로 본 모양이다. 상상속의 이어도. 꿈은 나다움을 지킬 때 가능하다. 혼인지 마을. 탐라국의 시조인 삼신인(梁을라,高을라,夫을라)과 벽랑국에서 시집온 3공주가 혼인한 장소다. 이때부터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온다. 입구에 자귀나무가 있다. 잎이 밤에는 포옹하듯이 붙어 지내기에 금슬 좋은 부부에 비유된다고. 신방굴은 3가지의 가지굴이 있는데 삼신인과 공주가 첫 날 밤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혈거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대수산봉. 주변을 조망하기에 적합하여 예전에는 봉수대 터로 사용되었다. 고성리에 있는 두 개의 오름 중 큰 오름인 큰물뫼이다. 정상에 오르니 한라산부터 동으로는 시흥지역이 남서쪽으로는 일출봉과 광치기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오름에서 내려오니 더덕선별작업을 하는 창고가 있다. 말을 걸어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만 한다. 입구에 선별작업하면서 상품가치가 없는 더덕을 한 줌을 챙겨서 돌오름으로 향하고 있다. 입구에 도착하니 조류독감감시원이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우회하여 마을길을 지나는데 간판하나가 시선을 끈다. “‘일상에 위트를 더하다. B일상잡화점’ 창문에는 ‘일상에 위트를 더하다는 슬로건아래 집에 사가면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 맞을 것들을 모아모아 판매합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장사를 재미로 하는 듯하다. 이곳 또한 관광객이 발길을 끊어 문이 잠겨있다. 시흥리 마을. 올레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한자어에 답이 있다. 처음 시始일 흥興, 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100년 전 시흥리가 포함된 정의군 군수(채시강)이 맨 처음이란 뜻으로 시흥리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시흥리에서 시작하여 종달리에서 순찰을 마쳤다고 한다. 종달리의 종은 끝낼 종終이다. 말미오름을 가는 농로는 돌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이름에 맞게 약1.5km을 뛰었다. 말미오름은 말머리처럼 생겼다. 주변은 성산포 들판이 펼쳐져 있고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정상부위에 간세-제주 조랑말로서 제주올레의 상징-가 있고 주변을 조망하는데 어린이들이 몰려온다. 이어도 홍보활동하기에 제격이다. 현수막을 펼치고 이어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아마 시흥초등학교 학생들로 추정된다. 말고기를 먹기로 한 날이다. 지인이 추천한 식당에 연락하니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맛 집을 추천해 준다.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요즘은 식용으로 키우고 있단다. 주인장이 상냥하고 부위별 특성을 잘 설명해 준다. 장단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었더니 추가메뉴가 나온다. 왕족이란 말에 딴지 걸었던 일행은 말을 잘하니 말고기 집에서 혜택을 본다고 한다.
올레21코스; 영불덕-지미오름-해녀박물관 아침에 티브에서 00구청 공무관이라는 사람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을, 척추가 마비된 남자가 ‘모나리자’를 부르고 있다. 도전정신이 아름답다. 청춘의 꿈이란 게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극기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지미오름. 종달리 북동쪽에 있는 표고 166m의 야트막한 오름. 북향으로 말발굽분화구가 있는 오름. 조선시대는 정의현소속의 지미망이라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삼나무와 해송이 눈에 들어온다. 산을 내려오니 허기가 진다. 세화리를 돌면서 다방주인이 추천해 준 식당으로 들어갔다. 상주에서 온 시어머니와 구미에서 온 며느리가 운영하는 밥집. 빨간색 작은 간판-세화야참-은 경양식분위기인데 한식집 아니 그냥 밥집이다. 된장찌개와 고등어가 가정식으로 정성스럽게 한 상 차려진다. 소리 소문 없이 아름답게 살기위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영등바다에 들렀다. 물질하고 들어오는 해녀에게 미역과 소라를 샀다. 저녁이 기대 된다. 별동진. 하도의 까페 마을을 돌고 나오는데 내 또래 남자가 가게에서 과자와 소주를 사들고 집으로 간다. 코로나 때문인가? 해녀박물관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는다. 해녀들의 일본저항운동을 알리는 내용이 있다. 역사의 현장인 제주도는 저항의 도시, 항거의 도시, 생존의 도시 이다. 이제는 화해와 상생, 평화와 희망의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여행 마지막 밤 이제 마무리 할 시간이다. 머리도 식힐 겸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돌고 나름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S호텔을 예약했다. 해변을 산책하다가 시간이 되어 자리로 찾아드니 피아노 반주와 함께 공연준비를 하고 있다. 다가가 신청곡을 넣었다. 잠시 후 여자가수가 You raise me up을 부르고 있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버팀목이 되어준 노래.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 있기에 험한 산도 넘고 거친 파도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이어도離於島의 중요성을 알리는 애국운동에도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감미로운 밤이다. 식욕이 올라 랍스타를 잔뜩 먹고 한라산 불로탕(?)을 마시면서 인생의 포만감을 느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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