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시편90,12).
“날수를 셀 줄 알도록”이라는 표현은 인생의 덧없음과 고통에서 배우는 교훈을 암시한다(Briggs).또한 이 표현은 인생의 유한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하느님께“가르치소서”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시인은 자신을 배우는 학생으로,하느님을 지혜의 스승으로 이해한다.또한 날수를 헤아리는 것이 사람의 지적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주님의 가르침이 필요함을 인식한다.
12절은 이 시편의 중심 주제다.인생의 더없음에 대한 인식은 지혜를 찾도록 인도한다.노인이라고 해서 지혜로운 것은 아니며(119,100참조)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지혜로워질 수 있다.“슬기로운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지혜로운 마음’으로 옮길 수 있다.‘마음(레밥)’은 내적이고 비물질적인 본질,인간의 감정.생각.의지의 기능과 관련되며,특히 도덕적 숙고의 중심인 지혜의 자리다.‘지혜(호크마)’는‘기술’,‘통찰력’,‘종교적 신중성’,‘윤리.도덕적 지혜’를 뜻한다.시편에서 지혜는 이해력이 있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하여(51,8참조)그 사람이 모든 생활과 사고에서 현인임을 증명해 준다.“지혜로운 마음은,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바든 상 賞이다.왜냐하면 그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의식하기 때문이다.12절은 인간의 유한성과 연약함에 대한 인식,그리고 현실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함을 반영한다(Grant).
시편 90편의 전체적 의미:90편은 영원하신 하느님과 유한한 인간에 관해 묵상한다.
시인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영원하신 데 비해 인간의 본질은 흙이며 무상함을 성찰한다.인간은 기것해야 칠십 년 또는 팔십 년박에 살지 못한다.그나마 그 세월도 고생과 고통이다.제한된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인간의 본질이다.이같이 저항할 수 없는 인생의 한계 앞에서도 시인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지혜로운/슬기로운 마음’을 청함으로써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희망을 품은다.지혜는 피조물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며,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사용하여 우주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깨달을 때 지혜를 얻게된다(폴런2019,365).지혜로운 마음은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시인의 메시지는,덧없는 인생이지만 지혜로운 마음으로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복되게 살 수 있다는 희망과,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동기를 주는 것이다.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하느님의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인식하고 지혜로워지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로 삶을 긍정하며 희망을 안고 살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이 시편은 교회 안에서 덧없는 인생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성가(가톨릭 성가423장)로 널리 애창된다.신약성경에서 베드로 사도는“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4절)라는 시인의 말을“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2베드3,8)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시간이 하느님의 영원성 안에 속해있음을 피력한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3-3 시편90-150편/전봉순 著/바오로딸)
Ⅴ.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사랑
228.자연을 돌보는 일은,더불어 사는 삶과 친교의 능력을 포함하는 생활 양식의 일부입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며 그래서 우리가 형제자매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형제적 사랑은 무상의 것이어야만 하며 누군가가 해 준 것 또는 앞으로 해 줄 것에 대한 보답일 수 없습니다.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바로 이 무상성은 우리가 바람과 태양과 구름을 통제할 수 없어도 그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합니다.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보편적 형제애를논할 수 있습니다.
229.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타인과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착하고 성실한 것이 가치 있음을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윤리,선,신앙,정직을 비웃으며 도덕적 타락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이제 우리는 그러한 쾌락적 피상성이 우리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사회생활의 기초가 무너지면,인간이 개인적 이익을 지키려고 서로 다투게 되고,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잔인함이 발생하며,환경 보호를 위한 참다운 문화의 증진이 저해됩니다.
230.리지외의 성녀 데레사의 모범은 평화와 우정의 씨앗을 뿌리는 친절한 말,미소,모든 작은 몸짓을 소홀히 하지 말고 사랑의 작은 길로 나아가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또한 통합적 생태는 폭력,착취,이기주의 논리를 타파하는 단순한 일상 행위로 이루어집니다.이와는 반대로,광란의 소비 세계는 모든 형태의 생명을 착취하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231.서로를 돌보는 작은 몸짓으로 넘치는 사랑은 또한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 되며,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행동으로 드러납니다.사회에 대한 사랑과 공동선에 대한 투신은 개인들간의 관계뿐만 아니라“사회,경제,정치 차원의 거시적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애덕의 탁월한 표현입니다.그래서 교회는 세상에“사랑의 문명”이라는 이상을 제시한 것입니다.사회적 사랑은 참다운 진보를 위한 열쇠입니다.“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게 걸맞은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생활-정치,경제,문화-에서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합니다.”이러한 맥락에서,일상의 작은 몸짓들의 중요성과 더불어 사회적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 우리가 환경 훼손을 효과적으로 막고 돌봄의 문화가 온 사회에 스며들도록 장려합니다.이 사회적 역동성 안에 다른 이들과 함게 참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영성에 속하는 것이고 사랑의 실천이며,이를 통하여 자신이 성숙하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32.모든 이가 정치를 직접 하라는 소명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자연과 도시의 환경을 보호하면서 공동선을 위하여 활동하는 수많은 다양한 단체들이 사회 안에서 꽃피고 있습니다.예를 들어,어떤 단체는 건물,분수,방치된 기념물,경관,광장과 같은 공공장소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의 보호,청결,개선,미화를 위하여 노력합니다.이들 주변에서는 유대가 수립되거나 회복되며 새로운 지역 사회 관계망이 형성됩니다.이러한 방식으로 공동체는 소비주의적 무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여기에는 공동 정체성, 곧 보존과 전달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형성됩니다.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연대 의식을 가지고 세상과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의 질을 돌보는 것입니다.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집에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이기도 합니다.이러한 공동체 활동은 자기 자신을 내주는 사랑을 표현할 때에 강렬한 영적 체험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2015년 6월18일,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 받으소서>라는 장문의 회칙을 발표했다.기후변화에 의해 점점 거세지는 지구적 위기를 다룬 이 회칙에서 교황은 지구의 건강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한편,‘현재 통용되는 경제학’이나‘시장 성장’이 우리가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기후 재앙이나 그로 인해 초래될 기아와 빈곤을 막아줄 수 있다는 사고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로마가 입을 열면 논쟁은 끝난다 Roma Locuta,causa finita”는 바티칸의 오랜 금언을 믿은 적이 없지만,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로마 주교(교황)와 내 생각이 같다는 점이 흡족했다.우리가 현재 실천하는 경제 관행이 교황이 말하는 ‘우리 공동의 집’에 야기한 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위기라기보다 도덕적 위기다.이것은 정신적인 심지어 신학적 위기이며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
나는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야기된 조기 사망을 ‘살인하지 말지다’라는 가르침에서 금지된 살인과 동일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과장법에 탐닉하는 게 아니듯,단순히 은유적인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교황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강력한 세계관, 즉 모든 것을 자신의 궤도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일종의 종교로 인식해야 하는 현실관에 대해 우리의 집단적 관심을 환기한다.‘시장의 종교’라는 구절은 단순히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실제로 시장의 작용에 관한 믿음은 자체적인 사제와 의례,교의와 신학,성자와 예언자,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개심자를 확보하려는 열망을 완비한 채 기능하는 종교의 형태를 띤다.시장 신앙의 복사 服事들이 공식적으로 시장을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우리는 현실을 그대로 바라볼 때 시장 신앙이 제기하는 심대한 변화와 우리가 직면한 지구적 위기의 깊이와 범위를 판단할 수 있다.”(신이 된 시장/하비 콕스 14~15쪽발췌)
(독립문 공원 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홀로 밤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追悔 이리 기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설야/김광균)
행복한 날 만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