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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십시오
(부제 : 시대의 표적을 보는 자가 되십시오)
설교본문 : 이사야 40:21~31, 42:1~9(참고 : 마태복음 16~17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5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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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분별하고 깨달아야 하는
시대의 표적에 대한 말씀을 마태복음 16장에서 보고,
이어서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보아야 할 두 개의 그림에 대한 것을
마태복음 17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더 깊은 은혜의 세계, 신앙의 목표점에 대한 말씀을
이사야 40, 42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시대의 표적을 보는 자가 되십시오(마태복음 16장).
1. 입술로는 하늘을 말하나 마음은 땅에 있는 사람들(마 16:1~4, 6)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여 주시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내일은 날씨가 좋겠구나’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겠구나’하나니,
너희가 이렇게 천기(하늘의 징조,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징조)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에는 격분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이 말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입술로는 하늘을 말하여 거룩한 자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마음은 땅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위선적이고 거짓된 것으로 가득한 것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표적도 보여 주지 않겠다 하시면서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십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땅에 속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두 가지 종교적 특성 가지고 있습니다.
1) 바리새인
➀ 보수적인 정통주의 : 오직 자기들만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자들
바리새인은 오직 자기들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기들만이 교회를 지키는 수호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 이외에는 모두 가짜요 거짓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➁ 바리새인의 신앙적 근거 : 그들의 종교적인 전통
바리새인이 독선적인 고집쟁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신실한 사람들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 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어떻게 씻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바리새파에 속한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➂ 인간적인 전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전통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면서도
오직 자기들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독선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항상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공격합니다.
➃ 오늘날에도 바리새파와 같은 유형의 독선적인 형식주의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보수적인 정통주의’, 혹은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교회의 수호자라 자청하지만,
그들이 수호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전통입니다.
고집만 있고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력은 없는 사람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지만 그들을 도우려는 자비와 긍휼은 부족한 사람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의 교훈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2) 사두개인
➀ 세속적 자유주의(진보주의, 합리주의자들)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이 이해한 것만 받아들이는 합리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리새인과는 달리 인간의 전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 중에서 초자연적인 것은 모두 믿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도 자기들이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입니다.
➁ 말씀을 자기 편리에 따라 해석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세속적 신앙인들
말씀을 자기들 편리에 따라 임의로 해석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세속적 자유주의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천사의 존재도 부활도 부인합니다.
모세 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예언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3)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공통점
바리새파나 사두개파는 자기들의 개인적인 종교적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 자기처럼 되어야 한다는 고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말씀해 주셔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스스로는 누구보다도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나
실상은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들이 된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비추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중단하는 순간 실상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2. 시대의 표적을 파악하는 눈을 가지십시오.
1) 하나님께서는 중대한 일을 하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징조를 보이십니다.(마 16:3)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겠구나’하나니,
너희가 이렇게 천기(하늘의 징조,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징조)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을 심판하거나 징계하거나 하는 중대한 일을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전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징조를 보이십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시대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시대의 표적을 잘 깨닫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면하라고 선포한 자들입니다.
2)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표적이요 징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표적이나 징조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표적이요 징조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든지 장차 엄청난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여러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3)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은 다 깨달았으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만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병든 자나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
심지어 이방인들까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깨닫는데,
성경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만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4) 성경을 가장 많이 안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몰라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말은 하늘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으나
실상 그들은 오직 땅의 것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땅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대의 표적을 못 보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앞에 계셔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 독선에 빠지는 순간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징조와 표적을 깨닫는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들도 처음엔 신령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기의 독선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독선에 빠진 순간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징조와 표적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적 상태 점검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이처럼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는 말씀 묵상을 중단하는 순간
우리는 점차 시대의 표적을 읽을 줄 아는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긴급한 위험의 신호를 읽을 수 있는 눈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과의 신실한 교제를 잃어버리는 순간 이 눈도 함께 잃어버리게 됩니다.
5) 오직 주를 찾고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만 보이고 깨닫게 하십니다(4절)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만을 찾는 자들에게는
예수께서 모든 기적을 아낌없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는
단 하나의 기적도 나타내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방인들에게까지 무려 3달씩 머무시면서 보여 주셨던 일들을
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감추십니다.
● 묵상 :
주님은 주를 찾는 자들에게 더욱 큰 은혜를 내려주시고,
주님을 찾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마저 빼앗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주님을 찾는 자들이 됩시다.
제 2 부 :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두 개의 시선(마태복음 17장)
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이신 예수님(마 17:1~4)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형되어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처럼 희어졌더라(옷이 빛과 같이 눈부셨더라).
3. 그때 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허락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1) 변화산 위에서 영광의 모습을 미리 보이신 예수님(1~2절)
예수께서 아직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었으므로
아직은 예수님의 본 모습을 사람들이 몰라야 합니다.
만일 알게 된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신 후의 일을 위하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사람만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재림하실 때의 예수님의 모습과,
그때 영광을 입은 천국의 백성들의 모습을 미리 보이십니다.
그리고 심판 후에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 경험하게 될
그 기쁨과 영광스러움을 미리 경험하게 하십니다.
2)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3~4절)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그 자리가 너무 좋다며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떠나기 싫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식민지 치하에 있던 자들이 천국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경험했으니
그곳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2. 변화산에서의 영광과 산 아래의 아픔의 대조 : 상반된 두 그림
• 변화산 아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한 아이의 아픔(14~16절)
14. 그들이 무리에게로 돌아오자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병으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속에 빠지기도 하나이다.
16.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산에서 내려와서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와 보니
한 사람이 간질병에 걸린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며
예수께 다가와 꿇어 엎드려 간청하였습니다.
➠ 변화산에서의 영광과 산 아래의 아픔의 대조 : 상반된 두 그림
우리는 여기에서 정반대의 두 그림을 봅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을 때
베드로가 그곳이 너무 좋아 그곳에 초막 셋을 짓고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고 말한 장면(마 17:3~4)입니다.
여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천국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다른 하나는 간질병으로 고통받는 아버지와 아들의 아픔입니다.
1) 첫 번째 그림 :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천국의 모습(1~4절)
(1~4절 성경구절 위에)
첫 번째 그림은
장차 우리가 누리고 경험하게 될 미래의 천국의 모습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모습은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실 영광의 주님의 모습이셨습니다.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그 입으신 옷까지도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2) 두 번째 그림 : 우리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의 모습(마 17:14~21 성경 참조)
두 번째 그림은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현재 우리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우리의 사명의 모습입니다.
장차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이 땅에서 우리가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믿음을 갖는 것과,
또 다른 사람들도 믿음을 가진 자가 되도록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3) 두 그림의 의미 : 천국의 기쁨을 원하는 자들은 먼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예수님은 이 두 그림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의 기쁨을 원하는 자들은
지금 이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어려움 속에 있는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죄사함의 기쁨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과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에게
도움과 치료와 위로를 해 주라는 것입니다.
➠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은
먼저 영광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아픈 현실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천국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으나
그 나라에 대한 꿈속에서만 살아가면서 이 땅의 고통 받는 자들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주께서 그들을 주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라 여기십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천국의 소망을 품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 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이 세상의 문제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 묵상 : 두 개의 시선을 모두 갖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본다면서 땅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반대로 땅의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의 문제를 모두 바라보는
이 두 개의 시선을 모두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을 가진 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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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시선 중에 하나의 시선만 갖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예 이 두 가지 시선을 모두 외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시선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려는 간절한 열망도 잃어버렸고
땅의 문제를 바라보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도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내 마음 평안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작은 갈등이나 문제만 생겨도
교회를 옮기거나 신앙생활을 아예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제 3 부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이사야 40장)
1. 허망하고 헛된 우상과 세상 통치자의 실체
1)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사 40:18)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누구와 비교할 수 있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3절에서 나온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전하다가
이제 그 위대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위대하신 분이신데
이스라엘은 어찌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2) 바벨론의 그 우상들은 장인이 부어 만들고 장색이 금을 입히고(19~20절)
19. 우상은 장인(匠人, 대장장이들)이 부어 만들고, 장색(匠色, 도금장이들)이
금으로 입혔고 은사슬을 만들어 그 우상에 걸친 것뿐이니라.
20. 가난하여 금이나 은을 구할 형편이 안 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숙련된) 장인을 찾아가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바벨론의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진 우상들 앞에서 벌어지는
바벨론의 저 엄청난 의식과 행사들을 보면 기가 죽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이사야에게(혹은 이사야가 전하는 말을 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우상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이 아무리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졌어도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어 세운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권력자들은 한낱 메뚜기에 불과하다(21~24절)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너희가 잘 알고 있던 일이 아니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居民,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遮日, 휘장)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쳐 놓으셨고,
23. 귀인(귀족)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士師, 땅의 통치자)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세상의 귀족과 통치자들)은 겨우 심기었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시니
말라 회리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초개(草介, 겨, 검불) 같도다.
그 강력한 힘을 가진 거대한 제국 바벨론의 통치자나 그 화려한 문화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메뚜기에 불과합니다.
하늘을 차일(천막)같이 치시는 이 땅과 하늘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들에 불과합니다.
2.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1) 너희는 어찌하여 내 사정은 하나님께 숨겨졌다고 말하느냐(사 40:27)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어찌하여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다”하고 말하느냐고 묻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나의 원통함을 돌아보시지도 않으신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2)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28~29절)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하지 아니하시며 곤비하지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그러나 땅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든지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것을 주실 수 있는 힘과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3)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30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여기에서 말하는 소년과 장정은
지금 이 땅에서 가장 힘이 있고 권세를 가진 세상의 최고 엘리트들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과 재벌들 같은 돈과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군인으로 말하자면 최정예 특공대 같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이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실 때인 여호와의 날이 오면
소년이라도 넘어지고 장정이라도 자빠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로 특별히 택함을 입은 자들일지라도
죽은 낙엽처럼 넘어지고 쓰러질 것입니다.
4)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31절)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힘차게 오르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 힘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 힘과 새 능력과 새 권세로 바꾸신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나를 도우실 날을 바라보며 끝까지 주님을 믿는 자리를 지킨 자들,
주님을 소망하며 기다린 자들을 주께서 새 힘으로 바꾸십니다.
그들의 연약함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하나님과 그 생명이 연결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채우십니다.
➠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앙망하다’에 해당하는 ‘코에’는 기대와 확신 가운데 끝까지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노동자가 그가 받을 품삯을 기대하며 해가 질 때까지 하루를 온종일 일하는 것처럼,
소망하는 것을 기대하며 끝까지 충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바라보며 좋든지 나쁘든지 기쁘든지 답답하든지
항상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며 사는 것, 이것이 앙망하는 것입니다.
5)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우리가 이 땅에 육신으로 있는 한 우리도 달음박질하기도 하고 걷기도 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도 때로 시련과 고난을 당하고,
이 땅에 있는 한 때로 우리도 힘들고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의 자리를 잃지 않는다면
그 힘들고 답답한 일을 당하는 중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산란기가 되면 알을 낳기 위해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송어처럼
오히려 시련과 위기를 거슬러 올라가 시대를 변화시기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도 좋아하시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조금만 시간을 내시면 됩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날마다 회개함으로 하루의 영의 더러움을 청소하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채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연약함을 강한 힘으로 바꾸십니다.
단순히 힘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 생명이 연결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 4 부 : 여호와의 종의 노래(이사야 42장)
1. 여호와의 종의 첫 번째 노래 :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사 42:1~7)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온 세상에) 공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고함을 지르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정의)를 베풀 것이며(의로운 심판을 성실하게 베풀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공의(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먼 나라 사람들도) 그의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영,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보호하며 너를 세워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의 눈을 밝히며(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어둠 속에 있는) 자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리라.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1절)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2~3절)
3)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8절)
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전파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결코 다른 자에게, 다른 우상에게는 주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천하 만민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 이사야가 말하는 여호와의 종은 누구인가? ●
➠ 그러나 이사야가 말하는 여호와의 종은 예수님 말고도 둘이 더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에 가장 적합하신 분은 물론 예수님이십니다만,
이사야가 말하는 여호와의 종에는 예수님 말고도 둘이 더 있습니다.
1)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
이사야서에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네 번 나오는데,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는 그중에서 첫 번째 노래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집사와 권사와 장로와 목사,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직책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여호와의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은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받게 하려고 대신 고난받는 자가
이사야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그가 받을 벌을 대신 받는 자,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그 사람 대신 고난을 받는 자가
이사야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2)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➀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 : 이스라엘 백성, 이사야(선지자), 예수님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난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이는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여호와의 종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특별하게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이고
둘째 여호와의 종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 선지자 본인이고,
(혹은 넓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 전체)
마지막으로 온전한 여호와의 종은 예수님이십니다.
➁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네 번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 일을 감당하려면 이스라엘 백성이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셔서
고난을 통하여 신앙의 훈련을 하신 것입니다.
➂ 최종적인 여호와의 종은 예수님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 기대감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그들에게 그 사명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 책임을 맡은 자가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 여호와의 종이 되고,
이사야 선지자는(혹은 이사야를 포함한 모든 선지자들은) 두 번째 여호와의 종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조절하여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였다가 점점 분명하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종의 카메라 렌즈는 예수님을 비추고 있으나,
처음에 흐릿할 때에는 이사야 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이 보입니다.
그러다 점점 렌즈의 조리개를 조절하니
예수님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사야서에 있는 네 번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통해서
점점 분명해지는 그 과정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본래 여호와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1) 예수께서 맡으신 여호와의 종의 자리는 본래 이스라엘이었습니다(21절)
21.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백성이 율법과 교훈을 존중하도록) 하려 하였으나
이사야 42:1~9에 나온 여호와의 종의 책임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담당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맡으신 여호와의 종의 책임은
본래 이스라엘이 담당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셨고,
이 일을 위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으며,
이 일을 위하여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2)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23절)
23.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누가 장차 다가올 일을 삼가 주의하여 듣겠느냐)?)
그들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 지키기를 거부했습니다.
남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훼방하면서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 고약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3)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탈자에게 넘기셨습니다(24절)
24. 야곱으로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에게
넘겨준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의 길로 행치 아니하며(주님의 길로 걸으려 하지 않았으며),
그의 교훈(가르침)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탈자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진노의 불을 쏟아부으셨습니다.
4) 자기의 몸이 불타고 있어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25절)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부으시매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분노가 그들의 몸을 불태우고 있으나)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 위에 쏟아부으시니
이스라엘이 불타고 있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의 몸이 불타고 있으나,
정작 그들이 자기의 일을 마음에 두지도 않습니다.
자기들이 받을 벌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고,
이 모든 일이 다 자기들에게 일어날 일인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장차 다가올 엄청난 일에 대하여 묻는 자도 없고,
혹 누가 말해주어도 귀담아듣지도 않습니다.
결 론 :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십시오
1) 시대의 표적을 보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시기 전에
그의 백성에게 미리 보이시는 시대의 표적을 보는 자가 되십시오.
자기 고집과 욕심에 빠진 자, 주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린 자들은
주께서 보이시는 시대의 표적을 잃어버려 그날을 미리 준비할 수 없습니다.
2)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는 눈과 이 땅의 아픔을 바라보는 눈, 이 두 눈을 가지십시오.
영이 건강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는 눈과 이 땅에 아픔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고,
이 땅의 아픔을 바라보며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합니다.
3)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8:12~14에는 잃은 양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100마리의 양 중에서 99마리는 산에 그대로 두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서
찾으면 잃어버리지 않은 99마리보다 그 찾은 양 한 마리를 인하여 크게 기뻐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는 이사야 40:31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자를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결론 :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 우리의 신앙의 목표점, 여호와의 종
이사야 40:31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걸어도 피곤하지 않고
달려도 곤비하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보다 더 높은 단계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태복음 5:10, 12)
주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내가 바라고 원하던 일을 포기하는 자들,
이들이 이사야가 말하는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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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여호와를 앙망하기만 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위하여 내가 원하는 계획, 목표, 일 일을 포기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려고 스스로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주께서 더 기뻐하십니다.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십시오.
주님
우리의 입술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주옵소서.
시대의 표적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날을 누리기 전에
먼저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 일에 충성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