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먹는 초록 뱀이 사는 세계
온갖 동식물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낙원, 그곳에 뭐든지 먹는 초록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어요. 천진난만한 초록 뱀에게는 모든 것이 다 맛있는 음식이에요. 달콤한 꽃잎을 냠냠, 시원한 냇물을 꿀꺽, 한낮에는 기분 좋게 입을 벌리고 따뜻한 햇빛도 맛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평화로운 낙원에 재앙이 닥칩니다. 멀리서 탁한 바람이
불어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먼저 해님이 꽁꽁 숨어버려 어둠이 찾아왔고 곧이어
꽃과 나무들이 말라버립니다. 더러워진 냇물에는 물고기도 물풀도 살지 못하고요.
황량하게 변해버린 낙원, 뭐든지 먹는 초록 뱀이지만 이제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배고픈 초록 뱀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노래하다!
《초록 뱀이 꾸울꺽!》은 배가 고파서 세상을 통째로 먹어버린 신비한
초록 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에서 뭐든지 먹는 초록 뱀은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그리고 배고픔이라는 강렬한 위기 앞에서 본능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온 세상을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린 것이지요. 배 부른 초록 뱀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즐거운 낙원이 펼쳐집니다.
《초록 뱀이 꾸울꺽!》의 첫 장면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신화 속의 나무입니다. 태양과 달 그리고 줄기를 감싸고 올라간 두 마리의 뱀으로 구성된 생명나무는 태초 에덴동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신비한 나무입니다. 겨울에는 죽은 듯이 보여도 봄이면 다시 새싹이 돋는 나무를 보며 고대인들은 자연의
위대한 재생력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 매일 밤 조금씩 사라지지만 한 달을 주기로 다시 차오르는 달과 밤이면 사라졌다가 아침이면 다시 나타나는 태양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초록 뱀이 꾸울꺽!》의 이야기는
바로 이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는 신화 속의 낙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고대 신화에서 뱀은 순환과 재생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원을 연상시키는
긴 끈 형태와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생태적인 특성 때문이지요. 그래서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그리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 또한 뱀 한 마리가 휘감고 있는 지팡이입니다.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평화로운 낙원에 갑자기 불어
닥친 탁한 바람은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의 문명을 뜻합니다. 물론 생명력과 재생력의 상징인 초록 뱀은
그 모든 탁한 것들까지 몽땅 삼켜 소화함으로써 세상을 정화합니다.
그래서 《초록 뱀이 꾸울꺽!》은 배고픈 초록 뱀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과 재생력을 노래하는 신화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를 꼭 빼닮은 천진난만한 초록 뱀
《초록 뱀이 꾸울꺽!》은 신예 일러스트 이유진의 데뷔작입니다.
신예 일러스트레이터 이유진은 명랑쾌활한
색감과 소박한 그림체로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한 초록 뱀의 세계를 단순하고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작가는
뱀을 신화적 상징으로 끌어들이면서도 한껏 위엄을 내세우는 신이 아닌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먹는 초록 뱀의 속성 또한 손에 잡히는 것이면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한 숨 자고 일어나자 다시 낙원이 펼쳐지는 낙천적인 결말도, 세상이
끝난 듯이 울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뛰어 노는 어린 아이의 내면과 맞닿아 있습니다. 니체는‘어린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라는 말로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세계를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다시 낙원이 펼쳐진 마지막 장면에서 명랑하게 웃고 있는 초록 뱀의 모습을 보며 그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말-이유진
4년 전 어느 날 세상이 망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용기를 내어 신화 속의 뱀을 빌려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창조 신화 속의 뱀은 무한이면서 근원물질을 상징합니다.
저에게는 너무 벅찬 의미이지만 이야기를 만들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초록 뱀은 이곳 저곳을 다니며 낙원을 맛봅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 더러운 바람이 불어와 낙원을 망칩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자연도 더러워지게 마련이지요.
초록 뱀은 더러워진 세상을 삼킵니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시작되지요.
자연은 그저 순환 법칙에 따라 돌아갑니다. 인간은 그 커다란 순환
속에 잠시 머무르는 존재일 뿐이지요.
낙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동안 초록 뱀이 우리에게 준 자연의 축복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산다면
그것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 그림·이유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습니다. 《오줌누고 잘껄》
《여기 반창고 하나》 《하늘을 울리는 거문고》 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입견 없이 진지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놀이를 만드는 아이들처
럼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