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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골목으로 들어온 미술_디플라스틱 아트De-Plastic Art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기획_릴레이 개인전
기획 ▶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작가 ▶ 이돈순, 고재욱, 이찬주
일정 ▶ 2022. 09. 03 ~ 2022. 12. 15
관람시간 ▶ 10: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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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스페이스 블록스(openspace BLOCK’S)
성남시 수정구 남문로 43번길 13-2
blocks414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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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성남문화재단 성남문화예술인 창작지원
● 생태적 전환을 위한 디플라스틱 실천
심소미(독립큐레이터)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플라스틱에 밝은 미래가 있다”는 대사가 영화 ‘졸업’(1967)에서 등장할 정도로 물질 문명사회에서 플라스틱 기반 사업은 호황이었으며, 이로부터 편리해진 일상은 물론이고 소비문화 또한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전후 성장과 경제 발전으로부터 풍요로움을 지향했던 전 지구적 낙관주의는 2000년대 들어 각종 사회적·생태적 위기와 재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 멈추지 않는 탄소발자국으로부터 오늘날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으나, 일상에서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며 친환경을 일상화하는 실천은 범시민적 움직임으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일상 속에서 예술을 공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문화예술의 공공적 가능성에 도전해온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이하 블록스)에서 올해 마련한 <2022 골목으로 들어온 미술_디플라스틱 아트(De-Plastic Art)> 전시는 예술, 일상, 환경 사이에서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생태 기반 프로젝트이다. 생태재난, 기후위기가 범람하는 현시점에서 인류의 만연한 소비문화를 반성하며, 예술과 일상의 실천적 변화를 촉구하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이돈순, 고재욱, 이찬주 세 작가의 개인전을 릴레이로 개최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세 전시에서 작가들이 수행한 친환경적 방법론과 예술적 의의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오늘날 예술에서의 생태적 실천이 시사하는 바와 그 너머의 가능성에 대해 접근해보고자 한다.
● 폐자원 공동체로 한 걸음 다가가기
: 이돈순 개인전 <디플라스틱 아트_'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
작가이자 블록스의 공동 운영자로서 지역 공동체에 대한 화두를 예술 활동으로 꾸준히 다뤄온 이돈순에게 플라스틱에 대한 문제 설정은 성남의 도시 문화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찰된다. 블록스의 대표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 ‘에코밸리커튼’이 언덕 위 마을에서 그늘막 하나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긴요하게 구상되었듯, 블록스와 예술 실천을 함께 해온 작가에게 태평동의 일상은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한다. 재활용 분리배출이 수월하지 않은 동네, 이러한 일상과는 상관없이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는 예술, 그리고 고조된 생태 위기 사이에서의 성찰이 이번 전시에서 탐구된다. 이러한 작가적 고민을 내비치는 전시 부제로서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에는 물질문명의 폐해가 점철된 세계에서 예술적 실천을 통해 소비문화의 가벼움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예술적 의지가 담긴다.
▲ 이돈순, 기억 폭발
나왕나무 패널에 파이롯트 펠트펜 밀봉 캡(재활용 플라스틱 오브제)
240 x 300cm, 2022
그 대표적인 작업은 전시장 정면 벽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기억 폭발>(2022)이다. 못을 화판에 일일이 박아서 만든 작업으로 알려진 작가의 기존 작에 비교한다면 빨강, 노랑, 파랑 등 화려한 색감부터가 낯선 작업이다. 그간의 작업에서 쇠못의 물성을 밀도와 높낮이 조절을 통해 한국화의 먹 마냥 다뤄 왔기 때문이다. 신작에서 쇠못을 대체하고 있는 이 화려한 못들은 버려진 플라스틱 펜의 밀봉캡을 재활용한 것이다. 2019년 성남제1공단에 있던 파이롯트 공장의 철거 직전에 지역 예술가들이 방문했을 시, 공장에 방치되어 있던 밀봉캡들을 작가가 수집한 것이다. 작업에서 화려한 색감은 밀봉캡의 색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이다. 펜의 밀봉캡을 뒤집어서 못과 같이 사용하여 제작한 <기억 폭발>에는 사라진 공간에 존재했던 제조업 산업의 역사와 공장 노동자들, 건물의 철거와 함께 사라진 무수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마치 폭발하는 빅뱅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이 작업에 사용된 밀봉캡은 5-6만 개에 다다르는데, 작가는 각각 흩어진 밀봉캡을 망치로 하나하나 두들겨 화판에 박음으로써 해체된 어느 공동체의 흔적과 기억을 단단히 고정시키고자 한다.
▲ 이돈순, 디플라스틱 아트De-plastic Art, Speaking Eyes(주민 체험을 위한 협업작업)
폐플라스틱을 성형한 못, 폐플라스틱 오브제, 120 x 80cm, 2022
못 작업에 대한 작가의 실험은 직접 동네에서 줍고 분류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고 성형해보는 물성 연구로도 이어진다. 블록스 지하에 위치한 공방에서 수동 사출기를 들여놓고, 폐플라스틱을 녹여 못의 형태로 만드는 절차는 노동의 과정으로 보자면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나, 기성 재료를 재활용 재료로 대체하고자 하는 물성 실험은 전시 준비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재활용 플라스틱의 공정이 가능한 곳을 수소문하다 강원도 횡성군에 있는 환경 사업소와의 협업을 통해 재활용 플라스틱 못을 일부분 함께 제작하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종일 제작해야 30-50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하는 수량 제한과 수작업의 노고, 그리고 기계의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속하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적 신념은 과정이 거듭될수록 그의 못 작업마냥 강화되어 나갔다. 그렇게 제작된 재활용 플라스틱 못은 전시장에서 참여형 작업인 <Speaking Eyes>(2022)의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직접 망치를 들고 플라스틱 못을 박아 완성시키는 과정형 작업으로, 못들의 노동집약적 열거와 공동체적 구성이 관객 참여를 통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간다. 물질문명에서 경시되어온 폐플라스틱이 갖는 도시문화적, 집단적 기억, 일상적 의미를 전시장에서 촉각적으로 경험하는 공감각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 이돈순, 식물 이주(맨드라미 가족)
콘크리트 언덕길 틈새에 맨드라미 꽃씨 파종, 태평동 마을 현장, 2022
▶ 이돈순, 태평동 맨드라미
나무 패널에 아크릴, 폐플라스틱을 녹여 성형한 못, 35 x 27.5cm, 2022
태평동의 도시문화를 관찰해온 작가의 시선은 플라스틱과 더불어 식물의 생존방식을 탐구하는 <식물 이주>(2022)에도 담긴다. 그 한 작업으로 장소 특정적 개입인 <식물 이주-맨드라미 가족>은 작가가 작업실에서 가져온 맨드라미 씨앗이 척박한 땅을 뚫고 자라나며 점차 블록스의 주변 이웃의 집 앞, 대문 앞까지 뻗어나간 자취로 관객을 유도한다.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나는 식물의 생명력, 삭막한 언덕길 위로 이웃의 집을 따라 하나둘씩 확산된 맨드라미꽃은 소소한 변화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일상에 전환을 일으키는 생태적 힘을 보여 준다. 이처럼 작가가 성찰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사회적·예술적 모순으로부터 나와 일상에서의 미시적 실천으로 통해 차츰 그 무게를 쌓아나간다.
▶ 고재욱, melting, PLA 3D 프린트 출력, 90 x 90 x 105cm, 2022
▲ 고재욱, 소금 기둥(pillar of salt), 현수막 출력, 180 x 320cm, 2022
● ‘죽은 자연’을 위한 미술 제도에 맞서기
: 고재욱 개인전 <디플라스틱 아트_‘Melting’>
이동형 노래방, 관객의 소원을 들어주는 제작 등 공공과의 접점과 소통 방식을 탐구해온 고재욱이 친환경 소재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9년으로 돌아간다. 자신과 동료 및 미술계에 속한 무수한 사람들이 배출하는 전시 폐기물, 전시에서 파생되는 쓰레기 문제를 심각히 고민하던 작가는 친환경 재료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하였다. 모두가 고민하지만 작업의 효율과 효과로부터 불편함과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고재욱은 과감하게 자신이라도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전시 후 쓰레기를 생산하는 대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는 썩을 수 있는 작업을 연구해왔다. 그의 전시에서 등장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 나오는 소금기둥 신화는 플라스틱의 물성과도 닮아 있다. 실제로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기간은 500년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굳으면 사실상 영원히 녹을 수 없는 재료이다. 전시의 부제인 ‘Melting’은 플라스틱의 영구불변성, 녹지 않는 속성의 반대편에서 접근된 말이다. 무작정 인터넷과 책을 뒤져서 곰팡이 균을 배양하며 아마추어 과학자 혹은 유사 생물학자로서 실험한 지난 3년간의 결과물은 이번 전시에서 세 가지 물성으로 도출된다.
먼저, 소돔과 고모라의 신화를 빗대어 인류의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상기시킨 현수막 작업 <소금 기둥>(2022)은 전시 종료 후 에코백으로 재활용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작업이다. 전시에서 유일하게 썩지 않는 이 작업은 전시가 끝난 후 블록스의 재활용 플라스틱 수거를 돕는 실용적 사물로 둔갑되었다. 문명사회의 향락을 잊지 못해 뒤돌아본 롯의 아내가 상징하는 소금 기둥은 생분해성 수지인 PLA 필라멘트를 재료로 한 3D 프린트 인물 조각상 <melting>(2022)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고뇌하는 현 인류를 형상화한 이 조각은 전시장에서는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전시 종료 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분해 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전시 후 폐기되거나 혹은 작업실 구석에 존재하다 언젠가 쓰레기로 버려지기보다는 한 줌의 흙으로서 대지의 한 부분이 되길 자청하는 작업이다. 두 작업이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반면, 전시장 맨 안쪽으로 유리 박스 안에 설치된 <친환경 소재 샘플>(2022)은 작가가 수년간 해온 친환경 재료 실험을 과정형으로 공유한다. 전시 기간 동안 콤부차 가죽, 머쉬룸 브릭, 전분 플라스틱, 단백질 플라스틱, 커피박 클레이 등 유기물 기반의 대체 플라스틱에서 변성작용이 생기는 작업이다. 버섯이 자라기도 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푸른곰팡이가 피어오르고, 벌레가 생기는 등 전시장 내내 미생물 간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그 형태가 변하고 또 다른 유기체의 번식을 불러일으키는 도발적 과정을 내포한다.
▲ 고재욱, 친환경 소재 샘플
콤푸차 가죽, 머쉬룸 브릭, 전분 플라스틱, 단백질 플라스틱, 커피박 클레이 등
가변 설치, 2022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샘플에서 보실 수 있으신 것처럼 다양한 균류가 붙어서 형태, 색, 냄새 등이 변하게 됩니다. 블록스의 경우는 작은 딱정벌레의 서식처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작업은 아무래도 앞으로 진행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여, 아마 블록스에서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고재욱 작가와의 인터뷰, 2022년 11월 1일
미술관은 애초부터 ‘죽은 자연’을 위한 공간이었다. 정물화의 불어식 표기가 ‘나뛰르 모르트(nature morte)’, 즉 죽은 자연의 의미라는 것을 상기시켜 본다면 예술의 영구불변함은 지극히 인간적 욕망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예술 작품의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상태 유지를 위해 여타의 미생물, 곰팡이와 균은 전시장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제도권 미술공간에서도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고재욱의 녹는 작업이 태평동에서 온기와 습기를 머금고 생물적 화학 작용을 일으켰다. 3주간의 낮과 밤을 보내며 “작은 딱정벌레의 서식처”가 된 그의 작업은 ‘죽은 자연’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살아 있는 자연’으로서 태평동에 존재한 것이다. 예술의 영구적 속성은 플라스틱의 영구성 속성과도 닮아 있기에, 그의 작업은 예술과 플라스틱의 불멸하는 속성에 모두 저항한다. 그러한 가능성을 도출한 블록스의 전시를 작가가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출발점으로 삼아, 그 진화의 과정을 계속하여 이어 나가길 고대해 본다.
▲ 이찬주, Water World
폐플라스틱 페트병·뚜껑, 흙, CMYK 조명, 가변 설치, 2022
● 인두와 인공 접착제 사이의 결정적 차이
: 이찬주 개인전 <디플라스틱 아트_'Water World'>
어쩌면 이 찌꺼기는 미래에 들어 있는 유일한 요소일지도 몰랐고, 그가 지금 밟고 있는 잔해처럼 기이하고 파편적인 속성을 지닐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물 빠진 강바닥의 부드러운 흙먼지 속에서 하나가 되어 녹아들 것이다. - J. G. 밸러드, 『불타버린 세계』에서
J. G. 밸러드의 SF 소설에서 황폐해진 미래의 풍경이 떠오른 이유는 <디플라스틱 아트>의 세 번째 전시인 이찬주의 <디플라스틱 아트_‘워터월드’> 때문이다. 얼핏 봐서는 산호, 심해어, 오징어 등등이 유영하는 장면으로 화려하게 드러난 이 작업은 인류가 사라진 미래의 바닷속 풍경을 다루고 있다. 영화 ‘워터월드’와 동명의 제목을 지닌 데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영화에서 다룬 파국적 미래와 해양의 조건에 관심을 둔다. 조명이 화려한 빛의 물결을 형성하는 그의 설치 작업은 전부 폐플라스틱으로 구성된다. 그것도 거의 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투명 페트병들이 재료의 대부분이다. 작가는 환경 정책으로부터 줄어든 컬러 페트병 대신, 조형적으로 사용하기 쉽지 않은 투명 페트병을 그대로 조형의 구성요소로 받아들인다. 이 볼품없는 페트병으로 이뤄진 바닷속 풍경에 스펙터클을 부여한 것은 작가가 응용한 CMYK 조명 효과 덕분이다.
조명의 환영을 제외하고 본다면 결론적으로 미래의 풍경은 모두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더미일 뿐이다. 이 상황은 픽션이 아니다. 최근 기후위기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온 현상이 일어나고, 폭염, 홍수, 태풍, 가뭄의 피해로부터 황폐해진 장소의 최후에 남겨진 사물은 플라스틱이다. 이찬주의 작업은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미래의 풍경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그의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예술을 할 수 있는가 하는 한 윤리적 고민을 파고든다. 먼저, 그의 작업에서 윤리적 성찰은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 노동의 과정으로 도모된다. 작가 자신의 일상과 블록스 측에서 수집한 플라스틱은 각기 라벨이 모두 제거되고 깨끗하게 씻어져 투명과 칼라로 구분이 된다. 노동의 과정을 통해 작업의 재료로 준비된 플라스틱을 조형화하는 과정에서 그가 우려한 것은 전시 이후에 또다시 폐기되는 처리 과정이다. 그간 얼마나 많은 예술 작품과 전시가 폐기물이 되어 이 세계에 남겨져 왔는지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작가는 노동의 과정이 수반되는 재활용의 절차와 번거로움을 작가로서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예술 노동과 현실 노동 사이의 경계를 무화시켜 보인다.
▲ 이찬주, Water World
폐플라스틱 페트병·뚜껑, 흙, CMYK 조명, 가변 설치, 2022
그 다음으로 작가의 친환경적 수행은 조각을 만드는 구조적인 방법론에 걸쳐진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재료로 활용한다고 해도 이때 흔히 사용되는 인공 접착제에 문제의식을 느낀 그가 이를 친환경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인두를 사용하는 것이다. 페트병들 사이를 마치 용접하듯이 인두로 녹여서 접합하는 방식이다. 인공 접합제로써 흔하게 사용되는 글루건이나 본드가 들어가면 향후에 기존의 플라스틱까지 재활용이 어려워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 접합 기법을 응용한 것이다. 건축적 구조를 다뤄온 작가의 기존 작업에서도 폐플라스틱을 다룰 시 인두를 사용한 경험이 누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그동안 조각가로서 물질성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삶에 대한 겸허한 시선을 바탕으로 조형 작업을 해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듯 이찬주의 작업은 환경을 다루는 예술의 소재적 접근과 한계를 넘어 생태적으로 조각하기, 친환경적 조형 원리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예고해 보인다.
▲ 이찬주, 디플라스틱 아트De-plastic Art, Water World(주민 참여 공간)
폐플라스틱 페트병·뚜껑, 흙, CMYK 조명, 가변 설치, 2022
세 작가의 전시에서 작가들의 친환경적 수행을 예술제도, 지역 문화, 물질성에 대한 이해 없이 얼핏 본다면 여타의 업사이클 전시 및 공공 프로젝트와 별 차별성이 없는 일군의 프로젝트로 인식될 수도 있다. 생태 위기에 대한 경각심은 예술인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었으며 이를 주제로 하는 예술 작품과 전시기획 및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이나, 상당수의 전시가 주제적 공감대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반면 실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한계라 할 수 있다. 특히, 예술의 수행적 측면에서 볼 때 과도한 물질 기반의 제작 환경, 전시 사후 쓰레기 배출 문제 등 방법론적인 괴리감은 여전히 큰 편이다. 그린 워싱이 오늘날 새로운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기업적 전략이 되었듯, 예술에서도 친환경을 둘러싼 메시지와 실천 사이에서의 간극은 커져가는 상황이다. 세 작가의 전시에서 탐구되고 있는 ‘디플라스틱(De-plastic)’은 소재나 주제에 머물지 않는다. 블록스가 지하공간에 재활용 공방을 마련하여 예술가와 주민을 함께 반기듯,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의 물성 실험을 독려하고 이를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이돈순의 작업은 예술의 소비 논리에서 벗어나 버려진 공동체적 자원을 재활용하여 예술적 가치를 재구성하고자 하며, 고재욱의 녹는 예술은 영원불멸한 예술의 부조리, 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불멸하는 쓰레기의 존재에 저항하는 유기체적 예술에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이찬주의 작업은 물성을 접근하는 조형적 섬세함을 바탕으로 생태적으로 조각하기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이돈순, 고재욱, 이찬주로 이어진 세 작가의 전시는 기후 위기가 일상인 현시점에 예술적 실천에 대한 논의를 물성 실험, 예술 노동, 자원 순환, 제도 비판, 시민 윤리 등에 걸쳐 다양한 방면으로 열어 놓으며, 생태적 전환을 위한 그 다음의 실천을 고대하게 한다.
#디플라스틱아트 #DePlasticArt